세계에서는 아마 압제된 국론 통일에 가장 근접한 나라가 북한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는 유신 독재 기간이 아닐까 한다.
해방과 분단 이후 우리는 통일에 대한 크고 작은 유혈 무혈의 이념 각축, 세력간 세대간 지역간 갈등, 정책 대립, 전략 충돌을 끊임없이 겪어왔다. 이제는 민주화의 성공, 민주 정치의 정착으로 첨예한 이념 각축은 상대적으로 많이 극복했지만, 아직도 갈등, 대립, 충돌의 불씨는 도처에 남아있다. 이것이 우리의 정치 현실이다.
우리의 정치 현장, 통일의 길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통일 비전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그 통일 비전을 국민과 반대 세력, 우방 동맹국에게 설명하고, 설득을 통해 그 평화적 비전을 점차적으로, 누적적으로 실천하고, 위의 이념 각축, 세력간 세대간 지역간 갈등, 정책 대립, 전략 충돌을 최소화하는 지도력이 관건이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대한민국 대통령의 정치 지도자로서의 제일의 덕목은 자유 민주주의 평화 통일에 대한 흔들림 없는 비전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 이명박 정부는 지난 10년 간, 더 길게는 1971년 남북 적십자회담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쌓아 온 남북간 대화와 협력의 결과물에 보탬을 주지 못하고, 뒷걸음질하고, 통일의 길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 같아 크게 실망스럽다. 안타깝다.
구체적으로 다음 몇 가지 질문을 이명박 정부에게 던지고 싶다.
1. 남북간 평화적 교류, 협력, 긴장완화와 안정 없이 대한민국만의 정치 안정, 안보, 경제 발전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2. 남북간의 갈등과 대립이 고조되면 우리의 외교 역량이 커지는가? 작아지는가?
3. 한반도의 평화 없는 동북아의 영구 평화가 가능한가?
4. 평화적 통일을 포함해 우리 조국의 운명을 우리 아닌 그 누구에게 맡길 수 있는가? 우리 아닌 어느 누가 1차적으로 주도적·주체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가?
5. 왜 현 정부는 이미 참담한 실패로 끝난 부기 1기 외교. 안보 팀의 대북 조건부 강경 정책(CVID)을 답습하고 있는가?
'강철 덮개'로 닫힌 北, 어떻게 열 것인가
남북 사이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체제 이념 적대성(systemic and ideological antagonism), 국체 구조 및 기능 모순(state's structural and functional contradiction), 정권 부조화(regime asymmetry), 정책 및 전략 불일치(policy and strategic incongruity) 등 적어도 네 가지 차원의 거대한 장애물이 통일의 길을 막고 있다. 여기에다 남북 두 지도자, 두 집권 세력의 동상이몽(同床異夢)까지 합치면 통일의 길은 문자 그대로 첩첩산중이다.
더구나 한국전쟁을 포함해 남북간에는 증오와 불신, 물적·정신적 상처, 적대감 등 감정의 골이 뿌리 깊고 끈질기다. 아직도 죽음의 골짜기 같이 무섭고 험난하다.
북한이, 그 체제가, 그 정권이, 그 상황이, 어떻다는 것(what it is)에 대해서는 여야, 보수와 진보, 집권 세력과 재야가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의 장벽은 과거 냉전시대 모택동 중공(中共)의 '죽의 장막'(bamboo curtain), 스탈린 소련의 '철의 장막'(iron curtain)보다 더 혹심한 '강철의 덮개'(steel drapery) 같다. 이 덮개를 벗기고 여는 작업은 마치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물방울로 바위에 구멍을 뚫는다는 수적석천(水滴石穿)의 시간과 끈기를 요구한다.
문제는 이러한 북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대처해야(how to deal with)하느냐에서 여야, 보혁(保革) 등이 극과 극으로 달라진다는 것이다. 상충한다. 북한 고사(枯死) 작전에서 무조건 항복에 이르기까지 극과 극의 대안이 난무한다. 이 양극의 세력과 목소리들이 안팎의 정치 변동, 경제·사회 변화의 변수로 우왕좌왕, 좌고우면하며 날뛰고 허둥댄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60년이 넘는 분단에도 불구하고 변수 아닌 상수(常數)가 있다. 그 것은 우리의 고도의 언어, 역사, 문화, 전통, 풍속의 동질성(homogeneity)이다. 이 상수가 크게 훼손되지 않았다는 것은 분단 이후 남북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이 수많은 심적·물적 장벽들을 허물어, 화해와 화합, 협력으로 통일의 길을 닦는데 무엇보다도 큰 자산이요 밑거름이 아닐 수 없다.
▲ 페루 APEC 정상회의에서 만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아소 다로 일본 총리, 이명박 대통령, 조지 부시 미 대통령 ⓒ연합뉴스 |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개인도 그의 부모가 아무리 억만장자이더라도, 자기 스스로 운명의 주인, 주체, 개척자임을 포기하고 부모의 재산(상속)만 믿고 산다면 인생을 헛되이 살게 된다. 불쌍한 사람이다. 불행한 일이다. 줏대 없는 인간이다.
같은 논리로 2차 대전 종전 전후 우리 국민의 의사와 무관한 미국의 38선 획정 결정(소련의 묵인)을 계기로 우리는 분단국가라는 결코 달갑지 않은 정치 유산을 등에 업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유산이 결코 우리 민족과 국가의 숙명이 아니라면, 이를 스스로 극복하는 것이 우리의 최대·최고의 목표여야 한다. 마냥 이 눈치 저 눈치만 보며 다른 나라에 우리 국가와 민족의 숙원을 맡긴다면 분단의 비극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유일한 군사 동맹국인 미국을 포함해 중국, 일본, 러시아는 강약(强弱)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가, 남북한이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통일의 길을 열어가지 않는 한 현상유지(status quo)쪽에 무게를 두는 것은 자연스럽다. 왜냐하면 개인도 국가도 불확실성은 불안을 낳기 때문이다.
이 나라들에는 통일된 한국의 이념, 체제(國體, 政體), 지도자, 정책 등이 미지수이기 때문에 차라리 오늘의 분단 현실이 훨씬 부담도 불확실성도 적고, 불안 요인도 구체적으로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바로 남북이 힘을 합쳐 미국을 포함한 주변 우방국들을 평화적인 통일 방안을 구체화해서 설명·설득하고, 이 나라들이 갖고 있고 가질 수 있는 불안과 부담 요인, 우려 사항을 최소화해야 하는 당위성이 있다. 우리의 외교 역량과 수완이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구체적으로, 오바마 차기 미 행정부의 동북아 전략도 중국의 급부상에 대응한 이른바 '분별력을 가진 울타리 쌓기'(prudent hedging)가 최우선이 아닐까 한다. 북핵 문제도 이 전략의 테두리 안에서 해법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 또 현재 미국, 일본, 호주가 참가하는 이 'Hedging' 전략에 한국도 참여시키려는데 정책과 전략의 우선순위가 있지, 남북한 통합과정은 뒷전으로 밀려 미국의 시야 밖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숙지해야 한다.
이 때문에라도 한국 정부는 남북관계와 북핵 해결을 병행하는 전략을 밀고 나갈 수밖에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Hedging' 전략의 테두리 안에서는 우리가 주도권을 갖고 남북 통합과정의 길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은 호주와 함께 미국이 주도하는 대 중국 'Hedging' 전략에 발을 맞추고 있다. 중국은 한반도에 자신들의 국가 전략과 이익에 반하는 어떤 변화에도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다.
한편, 러시아는 위 세 나라들에 비하면 현재로서는 한반도 문제에서 한 발자국 물러선 상황이다.
여러 가지 대내외 변수를 논외로 하고 6자회담에 참여하는 위의 네 나라들의 남북한 통합과정에 대한 이른바 최소 저항 원칙(the rule of least resistance)을 적용해 저항이 적을 나라의 순위를 매기면 러시아, 미국, 중국, 일본 순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순위는 우리와 이들 나라와의 역사·문화·전통의 원근(遠近), 강약(强弱), 명암(明暗)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지정·지경학적 위치 및 위상도 반영된 셈이다.
물론 이들 나라가 갖고 있는 심정적·주관적 저항순위와 군사력, 경제력 등 객관적 저항 순위는 또 다른 차원의 순위 평가다.
다시 강조하지만, 북한과의 관계를 포함해 대한민국의 정제되고 세련된 4강 외교라는 것은 위의 주관적·객관적 저항 순위를 역순위로 해서, 한반도 통합 과정이나 자유민주주의 평화 통일이 북한은 물론이거니와, 위 네 나라의 안보, 경제 발전, 지역 안정, 세계 평화에 결코 걸림돌이나 위협이 안 되고, 거꾸로 보탬이 된다는 것을, 제로섬(zero-sum)이 아닌 플러스섬(plus-sum) 게임이라는 것을 행동과 실천을 통해 보여주고 적극적으로 설명, 설득하는 작업이다.
통일 전 서독이 미국, 러시아를 포함해 프랑스, 영국 등 EU 회원국에 펼친 중장기 외교·통일 전략을 우리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통일 비용은 숫자놀음이 아니다
통일은 우리 국민의 숙원으로, 목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통일의 심정적,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혜택과 가치는 궁극적으로 돈이나 그 무엇으로도 계산할 수 없다. 마치 일제로부터 우리 민족이 되찾은 8.15 해방, 광복을 돈으로 계산하려는 것 같이 어리석다. 따라서 이러한 대전제 하에서, 여기서는 이론적으로 두 가지 보기만 들어보자.
우선 실제로 2차 대전 뒤 분단의 비극을 겪은 베트남과 독일의 사례 가운데, 베트남식식 무력통일은 우리의 바람직한 선택이 아니다. 독일식 통일도 평화적 방법은 우리가 참고해야 하지만, 흡수와 병참의 속도가 너무 빨리 이루어져, 그 후유증을 지금도 앓고 있다는 점에서 김대중 3단계 통일론과 같이 평화적이고 점진적인 방법이 바람직하다.
동독 출신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귄터 그라스(Gunter Grass)가 2002년 서울을 방문해 한국이 독일 통일에서 파생한 감당하기 어려운 세금과 혼란(human dislocation)을 피하려면, "긴 교류 협력 기간을 거친 다음에 통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충고와도 맥을 같이한다.
아무튼 통일 비용 추정 작업 첫 보기는 세계은행이다. 세계은행은 남한 GDP의 5~6배인 2~3조 달러가 소요될 것이라고 추산하는가 하면, 미국의 북한 경제 전문가 마커스 놀랜드(Marcus Norland)는 북한이 남한 소득의 60% 수준에 이르기 위해서는 앞으로 10년간 3000~6000억 불이 소요된다고 추정한다.
샘 바크닌에 의하면, 서독은 통일 후에도 동독에 1조 불을 투입했고, 그 외에도 연간 26억불의 EU 보조금이 투입되고 있어도 동독 지역의 소득 수준이 서독의 70%에 머무르고 있고, 실업률이 17.8%(2002년)라는 것을 우리는 눈 여겨 봐야 한다.
또 하나의 보기는 미 국가 연구기구의 하나인 랜드(RAND)에서 시뮬레이션(simulation) 방법으로 남북한 통일 비용을 추산한 것이다. 북한은 1960년대 중반부터 정보 및 통계 자료를 일체 공개 출판하지 않고 있어서, 이 시뮬레이션에서는 2002년을 기준으로 북의 GDP를 170억 불, 남은 4,770억 불(FX rate)로, 구매력 기준(PPP)으로는 북이 230억 불, 남이 8180억 불로 보고, 1인당 국민소득은 북이 762불, 남이 1만 불(FX rate), 구매력 기준으로는 북이 1021불, 남이 1만5500불로 추산했다.
이 조사에서는 특히 통일 방법을 3가지 이론적 모형으로 구분하는 것이 눈에 띤다.
1. 체제 진화와 통합(through system evolution and integration)
2. 붕괴와 흡수(through collapse and absorption)
3. 분쟁(through conflict)
여기서 독일 통일은 제2의 모형, 베트남 통일은 제3의 모형이었고, 남북한 통일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 대체로 제1의 모형과 비슷한 길을 가다가 현 정부 출범과 함께 불행히도 크게 삐걱거리고 뒷걸음질 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시뮬레이션에서는 앞으로 4~5년 동안 북한 GDP를 두 배 증가시키는데 필요한 증분 자본 소요(incremental capital requirements)를 2003년 기준으로 추산한 결과 500억~6700억 불이 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비자본 비용(인도주의적 구제 비용, 정치 및 직업 재교육 비용, 행정 대체 비용, 정치적, 사회적 통합 비용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지만 통일은 숫자놀음이 아니다. 우리 국민과 국가로서 통일은 유형, 무형, 객관적, 주관적인 목적 가치다. 따라서 통일 비용 추산은 단순 참고용일 뿐이다.
▲ 이명박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연합뉴스 |
필자가 정치학을 공부하겠다고 대학에 들어간 지 올해로 50년이다. 반세기, 지천명(知天命)의 세월이다. 미국과 한국의 대학 강단에서 정치학을 강의하고 남북한, 특히 통일 문제를 붙들고 살아 온지도 정치·외교 일선에서 외도했던 10년을 포함한다면 30년이 넘는다. 누군가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지도자라고 답할 것이다. 지도자와 정책은 정치의 핵심이다.
좋은 정치는 한마디로 방향성(directedness)과 통합성(integration)이 있어야 한다. 마치 선장이 배가 어디로 가야 좌초하거나 태풍을 만나지 않고 가장 빠르고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 주듯이, 훌륭한 민주 지도자는 그의 재임 기간 정책 목표를 설정하고 흔들림 없이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고 설득해서 그 목표를 차질 없이 달성하는 것이다. 그것이 방향성이다.
통합성은 나라라는 인간 공동체 울타리 안에서 표출되는 구성원들의 온갖 다양하고 복잡한 이해관계, 의견, 목적의 충돌과 갈등, 분열, 분쟁을 최소화하고, 그들 모두를 아우르는 공동목표와 공동선을 찾아 화합, 화해, 화목을 최대화하는 것이겠다.
정치의 궁극적인 목표는 국민 개개인의 행복 실현이다. 자유민주주의 정치의 핵심은 국민 개개인의 자유와 자율을 최대한 보장하고 확대하는 것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고 달성하는 것이다. 국태민안(國泰民安)이다. 안팎의 군사적 안보, 정치, 경제, 사회 안정 속에 큰 근심 걱정 없이 절대 다수 국민이 발 뻗고 안전하게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4안(安)-안보, 안정, 안전, 안심-은 남북관계 개선, 한국 경제 성장, 주변 주요 국가와의 관계 증진이 서로 동떨어져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모두가 유기적으로 조절·조율되어 함께 진전될 때만 가능하다.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 정착이란 틀 밖에서 한국만의 경제 번영, 정치 안정은 있을 수 없다.
거듭 강조하지만 국민에게 비전 있는 지도자는 행운이고, 그렇지 않은 지도자는 재앙이다. 우리의 정치 지도자는 증권회사 홍보 요원이 아니다. 그는 분단 조국에, 7000만 국내외 동포에게 하나된 조국으로 가는 길에 꿈과 희망, 그리고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향도(嚮導)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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