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은 이미 수많은 토론을 거친 문제라고 토론의 필요성을 부정했다. 하지만 최근 미국식 금융자본주의가 세계경제를 파탄으로 내몰고 있고 FTA에 부정적인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됨에 따라 한미 FTA를 재검토하자는 심 대표의 문제제기는 사실 시기적으로 적절한 것이었다.
한미 FTA와 관련해 가장 잘 얘기할 수 있는 두 정치인의 치열한 논쟁을 기대하다 싱겁게 끝난 게 아쉬움이 남아 전문가의 입장에서 미진한 논쟁에 관전평을 붙인다. 비교적 쟁점이 잘 나타난 11월 19일자 심 대표의 재반론을 중심으로 정리한 것이다.
1. 미국의 금융위기를 보면서도 이런 제도를 추종할 것이냐는 문제
심 대표는 한미 FTA가 한국의 금융시스템 등을 미국식 제도로 따라가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 파탄이 명백해진 현 시점에서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사전적으로 결과를 예견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명백한 잘못이 드러날 경우, 경험을 살려 정책을 수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 내에서도 이번 금융위기를 미국의 경제구조를 개편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성찰이 나올 만큼 역사적 사태인 만큼 우리가 그 교훈을 참고하지 않는다는 것은 차라리 무모한 오기다.
2. 개방에 대한 입장 차이
심 대표는 첫째 개방의 혜택이 특정세력에 집중되어 양극화를 심화시켰다고 주장한다. 또 개방으로 얻은 이익에서 손해를 보상해 주어야 국익이 증진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보상의 원칙'으로 교과서적인 논리다. 하지만 이는 사후적 판단이 될 수밖에 없어 아직 시행에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국익을 논하기는 이르다고 생각된다.
둘째, 체급을 넘어서는 과도한 개방으로 취약한 구조가 되었다는 지적이다. 대외의존도(무역/GDP)가 70%를 상회해 인구규모로 세계 최고의 나라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외 취약구조는 개방에 항시 따르는 것으로 이를 피하려면 철저한 쇄국으로 자급자족하는 수밖에 없다. 또 우리의 의존도도 개방으로 성공한 나라, 예컨대 네덜란드나 싱가포르의 수준에 크게 못 미쳐 사실 개방의 여지는 아직 많다.
심 대표는 여기서 자본시장의 개방도 최고 수준이고 취약구조를 가져왔다고 지적한다. 그는 여기서 무역과 자본 자유화를 한데 묶어서 대외 취약구조라고 우려했지만 사실 이 문제는 구분해 다뤄야 한다.
아시아 경제위기가 세계적인 화제였던 1998년 5월, 저명한 국제경제학자인 바그와티 (Bhagwati) 교수는
"이론적으로는 어느 것이나 개방에 따른 이익을 가져온다. 그러나 자본 자유화는 단기 투기성 자본의 이동성 때문에 과열과 공황을 일으키기 쉽다. 한번 금융위기가 닥치면 경제, 사회, 국제적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그 비용은 개방에 따른 이익과 비교가 안 된다. 이런 위험성 때문에 자본 자유화는 신중히 추진되어야 하고 일정한 규제도 필요한데 이데올로기보다는 이해관계 때문에 아시아에서도 자본 이동의 자유화가 급격히 추진되어 화를 불러왔다. 월가의 금융회사들이 활동영역을 세계적으로 넓히기 위해 워싱턴의 재무부, 국무부, IMF, 세계은행 등을 동원해 자유화를 추진한 이 네트워크를 그는 월가-재무부 복합체 (Wall Street-Treasury Complex) 라고 명명했다"
이러한 차이를 고려한다면, 우리의 경우, 특히 대기업의 횡포를 견제하고 소비자의 이익을 위해 무역부문의 개방이 필요한 부분은 많이 남아 있으나 자본 자유화는 이미 지나친 수준이라 생각된다. 최근 우리 주식시장과 환율시장의 대파동이 이를 웅변으로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3. 한미FTA 협정이 무분별한 협정이라는 주장
심 대표는 지나친 대외 의존도 때문에 추가 개방보다는 내수에 의한 균형 발전이 필요하고 개방을 통해 구조조정 하겠다는 발상에 이의를 제기한다. 산업 클러스터의 조성을 통한 전략산업의 육성도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구조 조정이 필요한 경우, 전략적으로 외압을 이용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국내 저항이 심했던 일본에서 이런 외압은 효과적으로 사용된 사례도 있다. 노동의 산업간 이동성을 높여 구조조정을 용이하게 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정부의 몫이므로 된다, 안 된다, 하며 다투기보다 효율적인 방안을 논의할 문제다.
또 한미 FTA는 단순히 관세장벽을 낮추는 FTA가 아니고 미국의 법과 제도를 이식하고 서비스, 지적 재산권, 투자 등의 장벽을 제거하는 복합적 협정이라고 심 대표는 지적한다.
미국은 서비스 산업의 비중이 국내 총생산의 70%가 넘고 그 분야가 국제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1990년대 이래의 통상정책의 기본 방향은 이 부문의 개방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한국의 OECD가입 때나 IMF 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주력한 부문도 이런 개방이었기 때문에 한미 FTA와 무관하게 이 부문의 개방압력은 피할 수 없는 대세라고 보아야 한다. 다만 FTA가 이를 더 촉진하고 악화할지가 논쟁의 초점일 것이다.
심 대표는 또한 미국과의 FTA를 거부하고 WTO체제에서 발언권을 강화한 브라질의 룰라 정부를 본받으라고 한다. 하지만 현재 WTO체제는 도하 라운드부터 거의 역할을 못하는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따라서 많은 나라들이 다자간 체제보다는 양자간 FTA 방식에 의존해 그야말로 무분별한 협정이 남발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환경은 일종의 도미도 연쇄효과를 일으키기 때문에 이런 추세에 초연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다만 미국과 같은 대국과의 FTA는 칠레와는 달리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4. 자동차 문제에 대하여
노 전 대통령은 FTA를 체결하면 자동차 장벽이 낮아져 궤멸할 것이라는 심 대표의 우려를 반박한다. 그 우려는 과장된 것이라는 노 전대통령의 지적은 맞지만 미국이 동등한 수준의 수입개방을 요구할 수도 있다는 심 대표의 지적도 타당하다. 사실 미국은 80년대 일본과 무역협상에서 이런 형태의 기계적 상호주의 논리를 사용해 일본을 압박했다.
5. 신자유주의 논쟁
심 대표는 워싱턴 컨센서스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형태고 노 전 대통령은이를 실현하는 수단인 한미 FTA를 추진했으므로 신자유주의자라고 규정하는 데 반해 노 전 대통령은 부자를 위한 정부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부정하고 있다. 원래의 신자유주의는 철학적, 이론적 배경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의 논쟁은 이런 배경은 제외하고 누구를 위한 정책이냐는 실질적인 혜택을 호도하는 껍데기 논쟁이 되고 말았다. 미국이 추진하는 통상정책도 거창한 이데올로기를 내세우기보다 이미 지적한 월가의 이익을 위한 정책이라고 보는 것이 정곡을 이해하기 쉽다. 우리나라에서 신자유주의 논쟁도 껍데기를 벗어 던지고 벌이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이상의 지적은 주로 심 대표가 제기한 문제점에 대한 논평이다. 한미 FTA가 없어도 한미 통상관계에서 힘의 불균형은 명백하기 때문에 미국이 관철하고자 하는 개방은 수용해야 할 것이다. 가장 위험시 되는 자본 자유화도 OECD 가입, IMF 위기를 통하여 전 정권부터 분별없이 추진한 정책이다. 무역 자유화도 FTA 외에도 다자간, 일방적 자유화 등 다양한 채널이 있기 때문에 좀더 큰 통상정책의 틀에서 한미 FTA를 볼 필요가 있다. 이런 문제들까지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못하고 토론이 끝난 것이 결국 한국적 풍토의 한계 때문인 것 같아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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