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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상 자진반납'의 아픈 기억 '황우석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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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상 자진반납'의 아픈 기억 '황우석 사태'

[세명대 저널리즘특강]〈4〉 이은정 〈KBS〉 과학전문기자

한국사회에는 민주화 이후 오히려 담론이 사라졌다는 말이 있습니다. 진지하게 논의돼야 할 이슈들이 산적해 있는데도, 아예 쟁점으로 떠오르지 않거나 간혹 논쟁이 벌어지더라도 갈등만 증폭되는 현상도 보입니다. 담론의 복원을 위해 어느 때보다 건전하고 창의적인 언론활동이 요청되는 시기입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은 보도와 칼럼, 프로그램 제작, 매체창업 등을 통해 우리사회의 건전한 담론형성과 의사소통에 크게 기여해온 분들이 진행하는 <저널리즘 특강>을 마련했습니다. 강의를 들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쓴 기사는 1학기에 <오마이뉴스>에 연재된 데 이어, 2학기에는 <프레시안>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과학은 자본·권력과 뗄 수 없는 사회적 이슈"

▲"과학보도는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라며 환하게 웃는 이은정 기자 ⓒ김종석
2005년 5월 제177회 이달의 기자상은 '황우석 생명과학 혁명, 한국의 과제'를 쓴 경향신문 과학전문기자가 받았다. 심사위원회는 "많은 매체들이 황 교수팀 연구의 현상적인 측면만을 찬양 일변도로 쏟아내는 상황에서 연구의 문제점과 향후 과제 등을 전문적인 식견으로 오랜 기간 밀착 취재해 집중적으로 분석 보도했다"고 호평했다. 하지만 1년 뒤 수상 기자는 "황 교수의 연구가 세계적인 가치가 있다는 잘못된 전제를 바탕으로 작성한 기사"라는 이유로 상을 자진 반납했다.

지금은 KBS로 자리를 옮긴 이은정 과학전문기자의 이야기다. 세명대 저널리즘특강 네 번째 시간, 이 기자가 '과학보도와 전문기자 제도'라는 주제를 들고 예비언론인들을 만났다. 미생물학을 전공한 '이공계 출신' 이 기자는 1994년 과학전문기자를 염두에 두고 경향신문에 입사해 10년 만에 목표를 이뤘다. 2005년에는 '생명복제와 생명윤리'를 주제로 논문을 써 의학박사 학위도 받았다. 그는 이날 과학보도의 사회적 의미와 전문기자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그가 넘고 싶은 또 다른 하나의 산을 앞에 두고 있는 사람 같았다.

이 기자는 "과학보도가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과학은 뭔가 정적이고 어려울 것 같지만 자본과 권력 같은 사회적 문제와 뗄 수 없기 때문이란다. '차세대 에너지 혁명', '세균분류체계 한국인 첫 발견'처럼 "누구에게도 해를 미치지 않는 전형적인" 과학기사도 있지만, 이 기자는 사회와 맞물려 있는 과학기사를 좋아한다.

그는 작년 말 수능 물리 오답 논란을 단독보도했다. 수능이 끝나고 한달이 지나서야 오답 논란이 일어난 것은 '단원자', '다원자', '이상기체' 등 어려운 말이 들어간 제보를 언론사들이 외면했기 때문이다. 이 기자는 소식을 듣고 바로 '큰 기사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고, 결국 교육부는 복수정답을 인정했다. 이런 기사는 어떻게 태어날까?

"과학기사는 같은 (소재로) 기사를 쓰더라도 어떤 지식을 갖고 있느냐,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기사를 다루는 방식에 큰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새로운 기사를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독자나 시청자가 접하는 기사는 날 것 그대로의 사실이 아니다. 기자의 해석을 거쳐 전달되기 때문이다.

"기자들이 의심하지 않고 '논란'으로 보도"

이은정 기자는 황우석 사태와 언론의 태도를 통해 예비언론인들에게 과학보도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황우석 사태는 그를 비롯한 과학기자들에게 '큰 고민과 생각할 거리를 던진 사건'이었다. 2004년 2월 황우석 교수의 논문이 <사이언스> 표지논문으로 채택됐을 때, 언론은 '미국의 심장부에 태극기를 꽂았다'며 '황우석 신드롬'을 만들어냈다. 이 기자는 '논란'만 무성했던 황우석 보도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2004년 첫 번째 <사이언스> 논문이 발표됐을 때, <네이처>에서 여성연구원이 난자를 제공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연구윤리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논란이 되긴 했지만 해결이 되지 않고 끝났죠."

"11월 13일에 섀튼 교수가 갑자기 공동연구 중단을 선언합니다. 황 교수의 연구 내용 중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 함께 연구할 수 없다고 했죠. 많은 기자들이 <네이처>에서 제기했던 난자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고 생각했어요."

"11월 22일 피디수첩 1탄이 방영됐습니다. 황 교수 연구에 매매된 난자가 많이 사용됐고, 여성연구원 2명이 난자를 제공했다는 내용이죠. 그러자 황우석 교수가 윤리를 위반했다는 기자회견을 합니다. 기자들은 어느 정도 사건이 진화된다고 생각했어요. 굉장히 혼란스러웠지만 황 교수 스스로 생명윤리에 문제가 있었다는 걸 인정하면서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후에 줄기세포 진위 논란이 벌어집니다."

돌이켜 보면 황우석 사태는 의심할 점이 많다. 브릭(BRIC) 사이트에서 제기한 의혹은 과학 전공자라면 논문이 조작됐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하지만 언론은 논란의 진위를 파악하는 대신 논란 자체를 보도하는 데 그쳤다. 황 교수에게 유리한 내용은 부풀려 보도하고 견제 목소리는 줄였다. 언론이 황우석 신드롬에서 자유롭지 않은 이유다.

전문기자가 '컨트롤 타워' 역할 해야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발명에 관한 취재보도는 연구팀 관계자 등 이해당사자의 발언에만 의존하는 것을 지양하고, 이해관계가 없는 국내외 관련 전문가의 견해를 반드시 확인한다." "과학기술 연구에 대한 취재 및 보도는 철저한 사실 확인을 토대로 하여 자칫 왜곡, 과장되어 전달되지 않도록 주의한다."

2005년 11월 30일 과학기자협회가 채택한 과학보도 윤리선언 가운데 일부다. 과학담당 기자들이 황우석 사태를 겪으면서 그동안의 보도를 반성하는 차원에서 나온 것이다. 황우석 교수 관련 보도에서는 전문기자가 쓴 기사와 사회부 기자가 쓴 기사 사이에 별 차이점이 없다는 비판도 있었다. 과학전문기자인 이 기자가 보는 한국의 전문기자 제도는 불완전하다. 1992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시행된 전문기자 제도가 도입 17년째를 맞고 있지만 장애물이 많기 때문이다.

"기자를 일단 뽑아놓고는 재교육을 시키지 않아요. 아침 6, 7시에 나가서 밤 11시까지 일하고 술먹고 들어가면, 입사 준비할 때 공부한 걸 빼먹으면서 기자 생활을 하게 됩니다."

전문성을 갖추려면 기자 개인의 노력과 회사의 재교육이 필요하지만 열악한 업무 환경 때문에 힘들다는 것이다. 출입처 위주의 취재 관행도 문제다.

"출입기자는 출입처에서 발생하는 일을 매일 챙겨야 하기 때문에 깊이 있는 기사를 쓸 시간이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출입기자에게는 자료를 잘 주는데 그렇지 않으면 자료를 잘 안 주기도 하구요. 한 문제가 여러 부처로 나뉘어져 있는데 여러 출입처를 교집합으로 챙기는 전문기자가 쉽게 나올 수 없습니다."

▲현행 전문기자 제도는 그렇게 좋은 방법이 아니라면서 전문기자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은정 기자 ⓒ김종석

수용자와 언론사가 상품성을 낮게 평가해 깊이 있는 기사를 쓰기 어렵고, 내부 기자보다 외부 전문가를 신뢰하는 경향, 공채 위주 선발 방식과 배타적인 직업 문화도 걸림돌이다. 이 기자는 "현재 전문기자 제도는 그렇게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황우석 사태를 예로 들어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전문기자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황우석 사태 때 과학 전문기자, 사회부 기자 할 것 없이 다 몰려갔는데, 필요한 건 새로운 팩트가 나왔을 때 그것을 해석할 수 있는 정확한 눈입니다. 과학전문기자는 과학 분야만 취재한다고 생각하는데, 과학을 제대로 아는 기자들이 사회부나 정치부에도 있어야 돼요. 그래서 과학 분야에 큰 사건이 터졌을 때 일반기자들도 경중을 판단할 수 있어야 되는 것이죠. 사실 모든 기자가 전문기자가 돼야죠."

▲2006년 2월 10일자 <경향신문> 10면. 이은정 기자가 검찰 수사상황을 취재해 쓴 기사는 사회면에 실렸다. ⓒ김종석
황우석 사태는 과학문제이면서 사회문제였다. 전공자들은 브릭의 의혹 제기가 타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해석 능력이 없는 언론사 대부분이 안전한 방법을 택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전문분야에만 매달리는 전문기자들의 태도도 경계한다.

"전문기자들이 특정 분야에만 매몰되는 문제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과학 분야는 메울 수 있지만, 과학문제와 사회문제가 결합된 사안의 경우 기사의 가치나 편집 방향을 판단하는 데 문제가 생깁니다. 전문기자들 스스로도 끊임없이 노력해야죠."

자신의 말처럼 이은정 기자는 2006년 검찰이 황우석 교수 논문 조작사건을 수사할 때, 검찰에 출입하며 수사상황을 취재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과학전문기자가 검찰 수사를 취재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대부분 언론이 황우석 교수 수사에 대해 '반황' '친황'의 여론싸움을 부추기는 동안, 경향신문이 심층적인 분석기사를 내놓을 수 있었던 이유다.

전문적 지식도 윤리의식을 수반하는 게 중요

"전문가들이 인정할 만한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고, 그 사안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찾아 매체 특성에 맞게 보도하는 기자." 이 기자는 전문기자를 이렇게 정의했다. 전문기자가 갖춰야 할 조건이 하나 더 있다.

"전문기자는 전문적 지식, 지식을 관리할 수 있는 기술적 능력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상당히, 이게 상당히 중요한데요, 언론인으로서 책임과 윤리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전문지식만 쓰면 되는데 왜 윤리의식이 필요할까, 천천히 생각해 보십시오."

언론인으로서 책임과 윤리의식. 예비언론인들에게 던져진 과제다.

덧붙이는 글: 한국 언론의 새로운 표준과 가치를 모색해보려는 '저널리즘 특강'에 독자 여러분, 특히 언론인과 언론인이 되고자 하는 분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서울에서 진행되는 특강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분은 사전에 연락해주시면(043-649-1148) 제한적이나마 자리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특강일정표와 장소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홈페이지(http://journalism.semyung.ac.kr) 공지사항에 게시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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