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베네수엘라의 경우 보수언론들이 중남미 좌파의 기수라는 차베스 죽이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고, 한국의 경우엔 이른바 좌파(?)언론이 국민들의 먹을거리 문제를 가지고 MB정권의 문제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직접적인 비교에는 무리가 따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우익언론들은 차베스 정권 몰아내기에 노골적으로 정면승부를 걸었었고, 한국의 <PD수첩>과 인터넷 여론은 국민들의 먹을거리에 대한 안전성을 거론했을 뿐인데 한국 정부의 대응은 차베스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지나치게 강경일변도여서 충격을 주고 있다.
결과야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미루어본다면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들에게 재갈을 물리려는 MB정권의 언론관은 차베스보다 훨씬 더 비민주적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 같아 보인다.
MB정권과 차베스 중 누가 더 독재적인가 하는 최종판단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기면서, 차베스와 보수언론들과의 끈질긴 악연의 시작과 대립, 그리고 법정투쟁의 결과 등을 재구성 해본다. (더 자세한 사항은 <프레시안>에서 RCTV를 검색해 보기 바란다)
차베스와 베네수엘라 보수언론으로 대표되는 RCTV와의 대립은 지난 1999년부터 시작됐다. 보수언론들의 자금 줄이자 공생관계였던 석유회사들의 국유화 조치가 차베스 타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이다.
차베스와 대립의 각을 세운 보수언론들은 2002년 4월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 노동자들을 부추겨 총파업을 주도케 하고 야당과 일부 학생들을 동원, 반(反)차베스 기치를 높이 들기 시작했다.
그 후 이들 언론들은 반차베스계의 시위 장면만을 위주로 편집한 내용을 지속적으로 방영하는가 하면 군인들이 시위대에 조준사격을 하는 장면을 짜깁기해 사태를 왜곡시키기도 했다. 사회혼란을 유도해 차베스 축출을 위한 쿠데타를 직접적으로 선동한 것이다.
또한 이들 언론들은 노골적으로 쿠데타 군대을 지지하는 방송을 내보내고 차베스가 사임했다는 거짓방송과 보도를 내보냄으로써 친차베스계 군부의 출동을 사전에 봉쇄해버렸다. 실질적으로 차베스 죽이기 작전에 최선봉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이런 노력은 3일 천하로 막을 내렸다. 베네수엘라 주요언론을 모두 장악한 이들은 자신들이 전체 여론을 좌지우지한다고 굳게 믿고 외딴섬에 유배된 차베스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차베스는 유배지에서 자신은 사임하지 않았으며 보수언론들이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친필이 담긴 팩스를 지지자들에게 보내기 시작했다. 차베스의 친필서명이 담긴 이 팩스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눈과 귀가 가려졌던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사방에서 차베스 복귀를 외치며 들불처럼 일어난 것이다.
뒤늦게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진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결과였다. 지금이야 언론통제가 이루어진 상황에선 인터넷과 휴대폰 등이 돌발상황과 진실을 알리는 통신수단이지만 당시에는 팩스와 대자보 등이 차베스 근황을 알리는 첨병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쿠데타 세력을 몰아내고 기사회생한 차베스는 이들 언론들을 왜곡보도 혐의와 반정부활동 등으로 고발했다. 합법적인 수단으로 보수언론들의 왜곡행위에 단호한 철퇴를 가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차베스는 사법부의 독립적인 판단을 존중했다. 사법기관에 정치적인 압력을 행사하거나 공권력을 투입해 언론사 죽이기에 나서지도 않았다.
반차베스계 보수언론들은 막강한 자금력과 국제여론, 힘있는 변호사들을 총동원해 차베스 정부의 사법적인 고발조치를 무력화시켰다. 천하의 차베스도 이들이 내세운 '언론자유'라는 명분 앞에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차베스에게 복음 같은 희소식이 하나 전해진다. 베네수엘라 공중파 관련 면허갱신법이 그것이다. 지난 1987년 제정된 이 법령은 '베네수엘라 민간방송사업은 국가통신위원회의 감시를 받으며 매 20년마다 전파사용 면허기간을 새롭게 갱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RCTV는 지난해 5월 이 법에 따라 공중파 방송면허가 취소됐고 현재는 유선방송(케이블 TV)으로 전환, 반차베스 활동을 예전보다 더 활발하게 전개 중이다.
그러나 차베스 정부는 이들 언론들의 반복되는 반차베스 보도행태에 대해 더 이상 문제를 삼고 있지 않다. 민주주의와 언론자유라는 기본권을 존중해서다. 다만 이들 보수언론들이 어떻게 권력화되고 국민들의 알 권리를 왜곡시켰나 하는 백서 등을 발간해 이들의 행포에 대항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차베스는 보수언론들의 이와 같은 행포에 대항해 자신의 정책을 홍보해줄 친 정부성향의 언론사 창립에 주력, 국민들과의 대화시간을 늘려갔다. 국민들과 쌍방 소통을 중시한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강제성을 띄지 않고 모든 선택은 국민들의 몫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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