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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현상과 집단성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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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현상과 집단성질

[최무영의 과학이야기] <73> 복잡성의 의미 ①

인간에 의한 자연의 해석이라는 본질에 비추어볼 때 자연과학에서 가장 흥미롭고 핵심적인 주제는 아마도 우주와 생명이 아닐까 합니다. 지난 강의에서는 우주에 대해 논의하였으니 앞으로는 생명현상을 살펴보려 합니다. 그런데 생명이란 참으로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우주보다 훨씬 더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에 대해 논의하기 전에 최근에 물리학에서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는 복잡계를 먼저 살펴보기로 하지요.

앞에서 배운 내용에서 관련된 부분을 간단히 되새겨 볼까요. 자연현상을 기술하는 기본 방법을 동역학이라 하는데, 물리학에서는 이를 이용해서 대체로 간단한 계만 다루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공을 던지면 어떻게 날아가는지, 지구가 태양 주위를 어떻게 도는지, 아니면 수소 원자의 구조가 어떻게 돼 있는지, 또는 당구를 칠 때 당구공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따위의 비교적 간단한 대상들이죠. 그런 것들은 일반적으로 질서를 보이는데, 질서란 결정론에 따라 기술되므로 예측할 수 있는 현상에 해당합니다. 공을 던질 때 초기조건을 정확히 주면 공이 포물선을 그리면서 어디에 떨어질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질서정연한 것이고, 그러한 현상을 보편지식으로 체계화하여 표현한 것을 물리법칙이라고 하지요. 뉴턴의 운동법칙이나 양자역학에서 슈뢰딩거방정식 같은 이론체계를 말하는데, 이런 것들은 대체로 질서를 보이고 예측할 수 있는 현상을 기술하는데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혼돈이라는 현상도 배웠습니다. 간단한 계인데도 불구하고 혼돈스럽고 복잡하며 무질서해 보이는 그런 거동이 나타날 수 있음을 지적했지요. 예를 들어 주사위를 던졌을 때 운동은 공을 던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고전역학, 구체적으로 뉴턴의 운동법칙으로 기술되므로 결정론에 따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초기조건만 정확히 정해지면 결과도 결정되어 있는 것인데, 실제로는 결과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초기조건을 아주 조금만 바꿔도 결과는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을 혼돈이라고 불렀고, 이 때문에 일기예보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죠. 이런 현상을 다루는 방법을 비선형동역학이라고 부르는데, 이것도 기본적으로는 동역학이고 고전역학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비선형계, 특히 혼돈과 관련된 현상을 주로 다룸을 강조하는 용어지요.
▲ 그림 : 에셔, ≪질서와 혼돈≫

그림 1은 에셔의 판화로 제목이 ≪질서와 혼돈(Order and Chaos)≫입니다. 20세기 중반의 작품으로 기억하는데, 물론 혼돈이라는 개념이 알려지기 전입니다. 혼돈 현상이 처음 알려진 때는 1960년대였지만 그 개념은 1980년대 들어와서야 확립되었지요. 앞에서도 여러 번 지적했지만 예술가의 상상력이나 통찰력을 보면 예술과 과학에 흥미로운 유사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모든 대상은 엄밀하게 말해서 구성원이 매우 많은 이른바 뭇알갱이계입니다. 15강에서 다루었지요. 예를 들어 이런 지우개를 생각해봅시다. 지우개를 던져서 그 운동을 이해하려면 전체를 하나의 대상, '알갱이'로 보고서 고전역학으로 기술하면 됩니다. 그러나 지우개의 빛깔, 단단한 정도 등을 알려면 이걸 구성하고 있는 분자의 수준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현실에서 우리가 감각기관으로 감지할 수 있는 모든 대상은 엄청나게 많은 구성원들 - 일반적으로 분자들이나 원자들 - 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우개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뭇알갱이계지요. 사실 그림 1도 뭇알갱이계의 상황을 그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뭇알갱이계에서 구성원들이 교실에 있는 사관생도들처럼 질서정연하게 앉아 있으면 고체가 됩니다. 정돈되어 있고 질서가 있는데, 수학의 관점에서는 대칭성이 깨졌다고 합니다. 반면에 쉬는 시간에 초등학생들처럼 구성원들이 일어나서 마구 움직이고 돌아다니고 뛰어다니며 난리를 친다면 대칭성이 있고 정돈되지 않은 기체나 액체 상태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대칭성이 깨지고 질서정연하게 되는 현상, 예컨대 물이 왜 얼음이 되느냐 하는 것은 구성 분자 하나하나 하고는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이것은 많은 수의 분자가 모여서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전체 집단의 성질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분자 하나하나 하고는 관련이 없는 집단성질이 이른바 협동현상에 의해 새롭게 생겨나게 되며, 이를 떠오름이라 부른다고 앞에서 소개하였지요.

협동현상에 의해 떠오르는 궁극의 집단성질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생명이 아닐까 합니다. 예컨대 세포(cell)는 매우 많은 수의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물과 무기물(mineral), 그리고 흰자질을 비롯해서 핵산(nucleic acid), 지질(lipid) 따위의 생체분자(biomolecule)들이 있지요. 그런데 이러한 구성원들은 비교적 커다란 분자일 뿐이고, 자체로서 생명처럼 특이한 성질을 지니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많은 수가 모여서 세포라는 뭇알갱이계를 형성하면 지극히 놀라운 협동현상을 보여서 생명이라는 신비로운 집단성질이 떠오르게 됩니다.

한편 사회는 개인이라는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뭇알갱이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역시 구성원들 사이의 협동현상에 의해 희한한 집단성질이 떠오를 수 있지요. 앞서 언급한 '붉은 악마'를 예로 들 수 있을 듯합니다. 몇 해 전 월드컵 축구 대회 때 시청 앞, 광화문에서 몇 십만 명이 모여서 난리가 났잖아요. 구성원 하나하나와는 직접 관계가 없는 특이한 집단 성질이 떠오른 겁니다. 요새는 볼 수 없지만 혹시 동맹휴업이라는 것을 들어본 적 있어요? 학생들이 모여서 강의를 거부할까 말까 결정합니다. 보통 강의하는 교수가 미워서 그런 것은 아니고 불합리한 사회 상황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동맹휴업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글쎄요, 실제로는 교수가 싫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사실 교수도 강의 안하면 편하고 좋아요. 군사 독재 정권 시절에 그런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아무튼 동맹휴업을 하느냐 마느냐에 대해 각 사람의 의견이 있을 터인데 전체가 모여서 논의하면 그와 다르게 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혁명이 일어나는 것도 어떻게 보면 구성원 사이의 협동성에 의해서 집단성질이 떠오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강한 의미의 환원론(reductionism)이 타당하지 않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환원론에서는 전체는 부분의 합이라는 관점을 받아들입니다. 부분을 알면 전체를 알 수 있다는 주장이 환원론의 기본 전제인데, 협동현상에 의한 떠오름은 이러한 전제가 타당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아무리 구성원 하나하나에 대해 잘 알아도 구성원이 모여서 뭇알갱이계를 이뤘을 때 어떤 집단성질이 '떠오를지' 알 수 없는 겁니다. 이는 환원론의 문제점을 명백히 보여줍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이를 앤더슨은 "더 많으면 다르다"라고 표현했지요.

그러나 물론 환원론이 모두 잘못 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실은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환원론을 몇 가지로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인식에 관련하여 강한 의미의 환원론이 타당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거지요.

복잡성

지금까지 대체로 질서와 무질서를 대비시켰지만 실제로 자연에는 완전히 질서정연하지도 완전히 무질서하지도 않은 현상도 많습니다. 일상의 예로서 주위의 경관을 들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이렇게 다 학교에 왔는데, 집에서 학교로 오는 길을 잃지 않았지요? 어떻게 해서 길을 잃지 않을까요? 자연의 한 가지 성격이 여기 있습니다. 만약에 집에서 학교까지 오는 길이 완전히 무질서하다면 어떨까요? 모든 것이 뒤죽박죽 섞여있으면 길을 구분할 수 없을 겁니다. 학교 가는 길이 어느 쪽인지 구분해서 알 방법이 없지요. 반면에 길과 주변이 완벽하게 질서정연하다면 어떨까요? 갈림길도, 건물도, 모든 게 다 똑같습니다. 그러면 마찬가지로 어디가 어디인지 구분할 수 없겠지요.

여러분이 집에서 학교로 오는 길을 잃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완전히 질서정연하지도 않고 완전히 무질서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변이가능성(variability)이 크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완전히 무질서하거나 완전히 질서정연하다면 더 이상 변이가능성이 없습니다. 거기서 끝인 거죠. 중간적인 것이 변이 가능성이 많고, 이를 '복잡하다'고 합니다.

언뜻 생각하면 뭔가 질서정연하면 간단한 것이고 무질서하면 복잡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완전히 무질서하면 아주 간단한 것이고 이해하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던졌을 때 언제나 1만 나오는 주사위를 생각해보지요. 이런 주사위는 질서정연한 결과를 줍니다. 앞에서 배운 엔트로피기억이 납니까? 언제나 1만 나오면 엔트로피가 얼마인 거죠? 가질 수 있는 상태, 이른바 접근가능상태가 하나밖에 없으니까 W = 1이고 엔트로피는 S = log W = 0이 됩니다. 하나의 상태로 정해졌으니 정보는 완벽하고, 간단한 경우이지요. 반면에 제대로 만든 주사위라서 1부터 6까지 나올 확률이 모두 같다고 합시다. 이는 가장 무질서한 상태에 해당하며, W = 6으로서 엔트로피는 최대값인 log 6이 됩니다. 이도 역시 간단한 경우지요. 이러한 주사위를 6천 번 던졌다면 1에서 6까지 각 수가 대략 천 번씩 나오게 됩니다. 간단하고 이해하기 쉽지요.

그런데 주사위를 아무렇게나 만들어서 1에서 6까지 각 수가 나오는 확률이 똑같지 않고, 그렇다고 언제나 1로만 나오는 것도 아니라고 합시다. 그 중에 어떤 수는 조금 더 많이 나오고 어떤 수는 조금 더 적게 나오는 등 확률이 적절히 섞여 있다면 그것이 복잡한 겁니다. 간단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이지요. 그래서 완전히 질서정연하지도 않고 완전히 무질서하지도 않은 경우를 보통 복잡하다고 부릅니다. [이를 영어로는 complex라 표현하며 무질서 따위의 '단순한' 복잡함 또는 번거로움을 나타내는 complicated와 구분하기도 하지요.]

실제로 자연에는 완전히 무질서하지도 않고 완전히 질서정연하지도 않아서 복잡성을 보이는 현상이 종종 나타납니다. 질서와 무질서의 사이라는 특성을 우리말로 고비성(criticality)이라고 하고 한자어로는 임계성이라 부르지요. 이러한 고비성은 공간에서 나타나기도 하고 시간에서 볼 수도 있습니다.

* 이 연재기사는 지난 2008년 12월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라는 제목의 책으로(책갈피 출판사) 출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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