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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의 남자'에서 '대구남자'로…유시민의 苦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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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의 남자'에서 '대구남자'로…유시민의 苦鬪

학연·지연 총동원했지만 여전히 높은 벽

"아이코, 아지매! 내 요 옆에 수성초등학교 나왔심더. 대구 사람임니데이. 댕기면서 말 좀 잘 해 주이소."
"어무이, 한 달에 팔만 원씩 나라에서 돈 나오지예. 그거 내가 장관하면서 만든거 아잉교. 찍어주믄 어르신들 마카 잘 모실께예."

4월 1일 오전 11시 대구광역시 수성구 중동 대구은행 앞, 수다스러운 인사말이 한산한 거리의 늦잠을 깨운다. 무심한 듯 지나치려던 행인들은 귓전을 울리는 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한 번 돌리고선, 그제야 '아~'하는 표정을 짓는다. '어디서 많이 봤던 사람'이란 시그널이 머문 곳엔 '7번 무소속' 어깨띠를 두른 유시민 의원이 서 있다.

가슴이 무릎에 닿도록 인사를 해대던 유 의원은 "다시 태어난 기분"이라며 기자를 맞았다.

유시민 "선거전략? 인맥으로 승부"
▲ 경로당을 찾은 유시민 의원ⓒ프레시안

수성을(乙)에서 '환생한' 유 의원은 부드러워져 있었다. 두 달여 전 여의도에서 봤을 때보다 턱 선은 야위었지만 작은 칭찬에도 쉽게 웃는 눈빛에 경계심이 사라졌고 까칠했던 말끝도 한결 물컹해 졌다. 유 의원은 "싸울 일이 없어지니 경계할 적도 냉소할 상대도 없다"고 대꾸했다. 무소속으로 나와 당과 갈등할 일이 없으니 홀가분하다는 설명이었다.

'똑똑한 싸가지'는 서울에서 얘기다. 유 의원은 이날 하루 30분 단위로 구역을 옮겨가며 후미진 상가까지 손수 명함을 돌렸고 구릿한 경로당에선 화투판에 끼여 훈수를 놓아가며 '친한 체'를 했다. 다른 동네 선거 지원하느라 정작 자기 지역구(일산 덕양갑)는 큰 길만 누비던 4년 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그 때 얘기에 "이제와 생각하니 중앙정치 한다고 지역을 못 챙긴 게 많이 죄송하다"며 쓴 입맛을 다셨다.

'빠(열성 지지자)'가 따르는 몇 안 되는 스타급 정치인이자 입만 열면 기사가 됐던 왕년의 정치논객으로, 양 어깨에 잡혀있던 '후까시'도 빠졌다. "인맥과 호감도로 승부한다"는 원초적인 전략 아래 명함이며 공보물엔 '들이대기'가 난무한다. 플래카드 제 이름 석자 앞엔 '대구 남자'가 별칭으로 붙었고 꽁무니엔 '수성초(48회)-대륜중(45회)-심인고(19회)'로 요약되는 프로필이 따르는 식이다. 공보물에선 아예 '고향은 안동 하회마을이고 임진왜란을 극복하고 '징비록'을 남긴 조선시대 영의정 류성룡의 13대손'이라며 족보까지 읊어놓았다.

캠프가 만든 첫 구호는 '마음을 열면 대구가 넉넉해집니다'였다. 하지만 "몇 달을 기다려도 대구가 마음을 열어주지 않아" 좀 더 대중적인 구호를 고민한 끝에 '대구 남자'로 캐치프레이즈를 바꾸고 선거운동의 전체 방향도 연고를 강조하는 쪽으로 틀었다고 한다. 처음엔 "대구의 똘레랑스"를 운운했던 유 의원도 일단 고차원적 얘기는 접어두기로 한 듯 연신 '동네 얘기'만 입에 올렸다.

"<대륙의 붉은 별>을 보면 '대장정에선 살아남는 자체가 승리'란 구절이 있다. 나 역시 살아 남는 것이 승리다."

이처럼 낮은 자세로 접근하는 유 의원에게 호감을 보이는 주민들도 적지 않다. 지산동 스포츠센터 앞에서 선거벽보를 읽고 있던 60대 남성은 "내캉 국민학교도 같고 중학교도 같네"라며 "같은 값이면 후배 찍겠다"고 돌아섰고, 수성못을 산책하던 70대 노인은 "그 엄마가 여기서 아직도 가게 한다카드라"며 관심을 표했다.
▲ 두 후보 공보물의 한 부분ⓒ프레시안

호감도는 높아졌지만…표심은?

그러나 호전된 분위기가 당장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선거 판세를 뒤집을 만한 저력을 발휘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였다. 지난 24일 YTN·영남일보·한국리서치 등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유 의원의 지지율은 22.7%였다. 상대인 한나라당 주호영 의원은 55.8%의 지지를 얻었다. 더블스코어 이상의 차다. 하지만 노무현의 꼬리표를 달고도 그가 대구에서 얻고 있는 20% 대의 지지율에는 함의가 있다.

지명도 면에선 주 의원에게 밀리지 않았지만 '대구 남자'가 되기 전 '노무현의 남자'였던 과거가 족쇄가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로 귀향한 이후 전국적으로는 호감도가 높아졌지만 대구의 '반노(反盧)기류'는 여전한 듯 했다.

두산동 대구지방경찰청 앞에 모여 있던 택시기사들은 "유시민이가 아무리 잘 해도 노무현이 미워서 못 찍는다"고 입을 모았다. 유 의원은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열린우리당'으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고, 탈당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도 "결국 뿌리가 같다", "당선되면 민주당으로 들어간다" 등의 의견을 내놓으며 '비토론'을 펼쳤다.

한나라당 아성이 두터움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수성 동아백화점에서 네일아트를 받고 있던 40대 여성은 선뜻 "한나라당이 아닌 국회의원도 하나 있으면 안 좋겠습니꺼"라면서도 "그래도 선거 날 다가오면 마음이 살살 바뀝니더"라고 했다. 옆 자리 또래 여성도 "12월에도 이회창 씨 불쌍해가 찍어줘야지 했는데 그날 되니까 혹시 내가 안 찍어가 한나라당 떨어질면 우야꼬 싶어가 한나라당 찍게 되데예"라고 했다.

이처럼 대구지역 전반에 농후한 '한나라당 멤버십'은 선거 막바지면 의례히 한나라당 쏠림 현상을 만들어 냈고, 이전에도 지역 기반을 바탕으로 철옹성에 도전했던 이재용 전 남구청장(2004년 총선), 이강철 전 대통령 특보(2005년 재보궐) 등이 예상외의 뒷심에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느긋한 주호영 측 "그래도 목표는 최다득표"
▲ 병원 앞에서 지역구민들과 인사하는 주호영 의원ⓒ주호영 의원 측

이 같은 전례 탓인지, 주호영 의원 캠프에선 '거물 상대'에 대한 긴장감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 사진이 두 번이나 등장하는 공보물에서도 '교육특구 지정', '신천 좌안도로' 등과 같은 지역 현안 일색이었다.

주 의원이 공개적으로 유 의원을 향한 댓거리를 한 적은 단 한 번, 거리 유세 중 '대구 남자'라고 쓰인 유 의원의 플래카드를 보고 "여기 대구 남자 아닌 사람은 어디있습니까"라고 꼬집은 게 다였다고 한다.

주 의원 캠프의 선거 담당자는 "유 의원을 신선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여당 의원이 돼야 지역이 발전한다는 게 전반적인 정서이니 큰 걱정을 하지는 않는다"며 "전국 최다득표 목표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했다.

현역 의원의 탄탄한 조직력 역시 주 의원 측이 우세를 확신케 하는 요인이었다. 유 의원의 사무실이 '자원봉사' 위주로 정돈된 분위기였다면 주 의원의 사무실에는 선거를 지원하기 위해 모인 운동원들로 곳곳이 분주했다.

실제로 기자가 한 나절 이상 지역구를 돌아다녔지만 유 의원 본인의 선거운동 외에 유세차나 운동원들의 유세를 보기는 힘들었던 반면, 현철의 '사랑의 이름표'를 개사한 주 의원의 로고송을 틀고 다니는 유세차는 대로변이나 상가 밀집지역 곳곳에서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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