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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의 패배'에서 한국 대선 후보들이 배울 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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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아베의 패배'에서 한국 대선 후보들이 배울 점은?

한반도브리핑 <61> '양극화', '도농 격차' 방치하다 몰락

일본 참의원 선거가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의 참패로 끝났다. 중·참의원의 양원제를 택하고 있는 일본 정치에서 참의원 선거는 정권의 향배를 직접 좌우하는 의미는 적고, 일종의 중간평가와 같은 성격을 지니는 만큼, 그 비중은 중의원 선거에 미치지 못한다.

고이즈미 승리, 주목했던 한국 정치권, 이번 선거에선 어떤 시사점을?

하지만 집권 자민당을 중심으로 연립여당이 역사적인 대패를 기록했고, 향후 일본 정치가 유동화 내지 격동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역대 참의원 선거 중 가장 주목을 받고 있다.

5년 단임 대통령제인 한국과 4년 임기 내각책임제인 일본이 서로 역사나 제도, 경제 수준 등에서 많은 차이가 있지만, 비교정치 차원에서 일본 선거는 한국 정치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가까운 예로 2001년 소수파의 이단정치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후보가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예상을 뒤엎고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그 여세를 몰아 총선에서도 승리를 거두었을 때, 당시 한국에서도 이회창 대세론에 눌려 있던 민주당 일각에서는 여기서 힌트를 얻어 국민경선 도입을 적극 추진한 바 있다. 그리하여 소수파 중 소수파인 노무현 후보의 당선은 많은 점에서 고이즈미 총리 집권과 비교되었던 경위가 있었다.

이번 선거는 지난 2005년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 공명당의 연립여당이 의석의 3분의 2 이상을 확보한 뒤, 그 여세를 몰아 압도적인 여론 지지율로 아베 총리가 자민당 총재에 선출됐던 10개월 전이 먼 일로 느껴질 만큼 자민당의 패배로 끝났다.

끊임없는 스캔들, 연금 기록 분실…자민당 지지해 온 노인들도 등 돌려

일본의 아사히, 요미우리 등 신문, NHK 등 방송들은 대체로 그 원인을 세 가지 각도에서 분석하고 있다.

첫째로 선거를 앞두고 불거진 일련의 스캔들 및 정부의 실정(失政)이다. 불법 정치자금 문제로 농림수산상이 사임했고 그 후임자가 똑같은 정치자금 문제로 몰리면서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더욱이 5000만 명 분에 달하는 국민연금의 기록이 분실되면서 연금 수급자인 노인층을 중심으로 국민 일반에게 불안감이 커졌다. 이에 대한 아베 총리의 대응은 뒤늦은 것이었고, 선거에 치명적인 쟁점이 되고 말았다.

연금문제는 그야말로 국민생활에 직결된 사안이며, 더욱이 주된 피해층은 아무래도 자민당 지지의 보수 성향을 보이는 노인층들이다.

정치자금 문제도 선거에서는 매우 민감한 도덕적 문제가 된다. 더욱이 연금 기록 분실문제는 민주당 의원이 찾아내며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정치적 성과이기도 하다.

대중의 생활과 동떨어진 의제만 쥐고 있으니

둘째로 취임 이래 줄곧 아베 총리의 지도력 및 신뢰감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되어 왔던 점을 들 수 있다. 아베 총리는 여성들에게 어필하는 용모에다가 납치문제에서 대북 강경입장으로 국민적 인기를 모았고, 개헌문제를 선도하며 급속히 성장한 정치인이다. 일본 정치의 극우보수화 흐름 속에서 인기를 끈 전형적인 포퓰리즘형 정치인이다.

하지만 전임 고이즈미 총리가 우정민영화, 공공사업 축소 등 경제개혁을 일관되게 추진하며 인기를 견지한 데 반해, 이 점에서는 타협적인 자세를 보이며 오히려 헌법개정, 대북 강경자세 등 이념 문제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민 생활과는 거리가 있는 이슈에 치우치면서 국민 일반의 생활감정과는 멀어져 갔다. 특히 대북 강경자세는 조지 부시 미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협상노선으로 전환하면서 현실성을 잃어 갔고, 역사문제에서도 중국과의 관계가 어느정도 개선됨에 따라 부각되기 어려워졌다.

특히 일부 각료의 스캔들이나 망언 사태는 물론이고 연금사건에서도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함으로써 통치능력 자체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인기로 부상한 정치인이 이를 유지하지 못할 때 급전직하할 수 있다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고 있다.

경기 회복됐다지만, 서민에겐 '남의 이야기'…자민당 텃밭, 농촌이 허물어졌다

셋째로 국내 보도에서는 별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못 한 정당 지지기반의 변화라는 측면을 봐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는 29개의 1인 선거구에서 자민당 대 민주당이 6 대 23, 비례구에서 14 대 20으로 어느 쪽에서나 일방적인 열세였다.

이는 두 가지 면에서 분석할 수 있다. 고이즈미 총리 당시 우정 민영화를 단행하면서 지방벽지의 소규모 우체국들이 대거 폐쇄됐는데, '특정우체국'으로 불리는 이 조직들은 전통적으로 자민당의 '집표기구'였다. 더욱이 건설업을 중심으로 한 지방 공공사업의 축소도 자민당의 지방 지지기반을 크게 약화시켰다.

이것은 개혁의 효과로서, 부정적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사태는 더욱 심각한 곳에 있다. 즉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10년을 극복하면서 회복되기는 했으나 경기회복이 도시에 집중되고 지방까지 확산되지 못하면서 도시-지방 '격차 문제'가 대두하게 된 점이다.

특히 지방 건설업을 축소하는 개혁을 실행하면서도 지방경기 침체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더욱이 최근 자민당이 발표한 농촌 구조개선 계획은 대규모 농가 및 농업기업 위주의 정책이며, 90%에 달하는 소규모 농가에는 불리하다는 여론이 확산됐다.

농촌 버리고, 대도시 잡은 고이즈미…이도 저도 아닌 아베

민주당의 오자와 이치로 대표는 이러한 도시-지방의 격차, 농업의 경시라는 쟁점 외에도 비정규직 노동의 확대에 따른 노동격차 문제도 쟁점으로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자민당 패배의 가장 주된 무대가 된 1인구의 대부분은 농촌지역을 포함하는 선거구이며, 전통적으로 지방과 농촌에 강한 자민당의 지지기반이 허물어졌음을 드러내고 있다.

선거 전략이란 측면에서 보면, 고이즈미 전 총리는 도시 주민에게 유리한 시장주의적 개혁을 일관되게 견지함으로써 농민 등 전통적인 지지층을 잃는 대신 대도시에 집중된 부동층을 확보하는 전략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아베 총리는 고이즈미 총리의 불리한 유산을 그대로 이어받으면서도 자민당 내 기존 이해관계와 타협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국민생활과 거리가 먼 개헌 등 이념문제에 갇힘으로써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전략으로 임하면서 전통적 지지층은 물론 새로운 지지기반 마저 잃는 기록적 패배를 맛본 것이다.

사회 양극화, 일본 정치 이슈로 떠올랐지만…보수성은 여전, 불안정성만 심화

이번 선거결과는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사회적 불균형 문제가 일본에서도 핵심적인 정치 이슈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중의원 선거에서는 자민-공명의 연립여당이 3분의2를 넘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둠으로써 자민당 지배의 강고함에 비한 야당의 취약함, 일본 정치의 정체가 부각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야당인 민주당이 약진하며 자민당 집권을 위협하는 기세를 보임으로써 역동성이 되살아나고 있다.

다만 일본 정치의 이러한 역동성도 전반적 보수화의 흐름을 되돌리는 것은 아님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소수정당의 대표성이 반영될 여지가 큰 참의원 선거에서 좌파정당인 사민당, 공산당이 가뜩이나 미약한 의석을 더 잃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민주당 돌풍에 소수 정당이 매몰된 형국이지만, 공산당의 경우 전후 정치 60년 동안 유지했던 도쿄 주변의 수도권 의석까지 상실했다. 무엇보다도 민주당이 대승을 거두었다고는 해도 불과 수개월 전 중의원 선거에서는 참패를 면치 못했다는 사실은 좋게 말해 일본 정치의 역동성이지, 오히려 불안정성이라는 말이 어울릴지 모른다.

자민당 내 파벌 영수들이 '아베 총리직 유지' 지지했지만

자민당의 전후 정치사상 처음으로 참의원내 제1당의 자리를 빼앗기는 역사적 패배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는 개헌 문제 및 교육개혁 문제를 추진하기 위하여 총리직을 유지하겠다고 선언했다.
▲ 지난달 29일,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한 아베 신조 총리가 자민당사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단상에서 내려오고 있다. 아베 총리는 "취임 당시 새로운 일본을 만들겠다고 약속한 개혁 작업을 완수하는 것이 나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총리로서의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선거 참패에도 불구하고 물러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연합뉴스

이는 극우 포퓰리즘의 동력을 재가동하여 정권의 구심력을 되찾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자민당 우파 입장에서도 전후 정치 총결산의 상징인 개헌을 2010년까지 실현시키기 위한 회심의 카드로 내세운 아베 총리가 허망하게 단명 총리로 끝나는 사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바로 이 자민당 숙원의 원점인 기시 전 총리의 외손자로서 개헌세력의 정통 맥을 잇는 적자(嫡子)였기 때문이다. 사실 개헌 지지로 보면 야당 민주당 의원 사이에서도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일본 정치의 전반적 보수화는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개헌에는 3분의 2이상 의석이 필요한 만큼 현재와 같은 실추한 리더십으로 개헌이란 힘겨운 과제를 수행해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베 총리의 후임으로 나설만한 각 파벌의 유력한 후보가 부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민당 내 각 파벌 영수들은 아베 총리의 임기 지속을 지지하고 나섰다.

일본, '양당 정치' 시대 들어설까?

여기에는 고이즈미, 아베 총리를 거치며 자민당의 중앙집권적 체질이 강화되어 왔으며, 파벌의 힘은 더욱 약해지고 있다는 구조적 측면이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고이즈미 개혁의 일부인 공공사업 축소에 따른 이익정치의 약화와도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과반수를 얻어 법안통과 저지선을 확보한 민주당 입장에서는 내심으로는 아베 총리의 재임이 집권전략에는 더 유리하다고 본다는 관측도 있다. 더욱이 지지기반의 변화에 따른 민주당의 농촌 진출로 자민당 장기지배의 이른바 '1.5당 체제'에서 정권교체가 가능한 양당정치로의 이행이 이루어질지 향후 일본 정치의 주목거리이다.

참의원 선거 이전까지 중의원 의석의 3분의2 이상을 확보한 연립여당 앞에 민주당은 수권정당이라기에는 무력하기 짝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어떻든 현재 중의원 임기가 만료되는 2009년 9월까지 아베 총리가 정권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견해는 거의 없다.

동아시아 및 한반도외교와 관련해서 강경기조를 취하던 아베 총리의 위상이 약화되고 상대적으로 대중, 대아시아 관계를 중시하는 오자와 대표의 민주당이 약진함으로써 일본의 대북 정책이나 아시아정책에 일정한 변화가 점쳐지고 있다.

중-일 관계, 북-일 관계에 청신호…한-일 관계는?

대중 관계에서는 이미 아베 총리 시절에 원자바오 총리 방일을 계기로 개선되고 있었다. 역사 문제도 중일 관계 개선에다가 미 하원까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죄 결의안을 채택한 만큼 아베 정부가 이를 더욱 악화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대북정책에서는 일본 자체의 움직임보다는 미 부시 정부의 대북 정책이 전환했기 때문에 일본 아시아 외교의 대미 의존성을 고려할 때 일본의 변화는 시간 문제라는 전망이 유력했다.

아베 총리가 선거 후의 위기국면을 넘긴다고는 해도 장기집권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면 아베 총리가 스스로의 정치적 정체성으로 삼고 있는 대북 정책에서 유연성을 발휘하기는 더욱 수월해질 것이다.

문제는 악화될 대로 악화되어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는 한일 관계일 것이다. 노무현 정부도 아베 정부도 새로운 정책을 추진할 내적 동력은 거의 없어진 듯하다. 따라서 한일FTA처럼 국내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걸려 있는 사안에 손을 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임기 말로 접어드는 노무현 정부와 정권의 전망이 불투명해진 아베 정부가 시간적으로는 오히려 부담 없이 한일관계 개선에 나설 여지는 커진 점도 있다. 물론 이것도 두 정부의 선택에 달린 문제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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