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란다.
서투른 조선말로 웃으며 희망을 품는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란다.
니혼노 각고오 요리 이히데스."
일본에서는 한국어로 교육할 수 없다는 법령에 맞서 조선어학교를 지키기 위한 재일교포들의 애환을 담은 안치환의 노래가 울려퍼지자 객석은 숙연해졌다. 교포 2~3세쯤으로 보이는 노인 몇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일본인인지 교포인지 모를 젊은이들의 눈시울도 뜨거워졌다. "니혼노 각고오 요리 이히데스(일본 학교보다 더 좋다)"로 노래가 끝나자 나지막한, 그러나 뜨거운 박수가 번져나갔다.
<사진 1: 관중>
재일교포가 가장 많이 살고 있다는 일본 오사카의 오사카성 태양의 광장. '한일 우정의 잔치'가 열린 30일 이곳에는 5000여 명의 교포와 일본인들이 모여 한민족의 문화를 나누고 재일교포들의 고단했던 삶을 위로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제는 생존자가 드문 교포 1세들과 초로(初老)의 2~3세들은 한국어조차 서툰 자녀들과 함께 가을하늘 높은 일요일 한낮을 시간가는 줄 모르게 보냈다. 한국에서 온 300여 명의 평화대표단(단장 함세웅 신부)도 교포들을 위한 행사를 자신들의 손으로 처음 준비했다는 생각에 늦게나마 '마음의 빚'을 던 듯 홀가분한 표정으로 행사장 곳곳을 누볐다.
***삼계탕 1만여 그릇 공수…"옛날 맛이 안 나"**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삼계탕 잔치. '한일 우정의 잔치 조직위원회'(위원장 이창복)는 일본에선 낯선 삼계탕 1만여 그릇을 한국에서 직접 공수해 행사에 참가한 모든 이들에게 무료로 제공했다.
교포들과 일본 기업인, 시민단체 회원, 일본 시민 등은 광장에 차려진 천막에서 정태춘, 박은옥, 안치환, 유진박 등 한국 연예인 및 문화예술인들이 펼치는 공연을 즐기며 삼계탕 한 그릇씩을 들었다.
<사진 2: 삼계탕>
"일본에서 삼계탕을 먹으려면 한국식당에 가야 하는데 예전 맛이 안 나. 이 삼계탕도 완전히 똑같지 않지만 그래도 어머니가 해주시던 맛하고 거의 비슷해."(오사카 거주 교포 2세 이모 할머니)
"한국 연예인들이 요즘 인기가 좋은데 이런 음식도 (일본에) 들어오면 잘 팔릴거야."(교토 거주 교포 2세 조모 할아버지)
교포들의 이같은 전망이 실현된다면 삼계탕 아이디어는 적중될 듯하다. 조직위는 일본 도시 20여 곳의 2000여 한국식당에서 삼계탕 대접 행사를 계속할 계획이다. 한국음식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재일교포 노인 8만여 명과 일본 내 친한(親韓) 인사 2만여 명에게 삼계탕과 교환되는 1200엔짜리 초대권이 보내졌고 행사 기간 2000여 개 한국식당은 음식값을 30% 가량 할인한다.
이번 행사를 준비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양금식 홍보팀장은 "우리 교포들이 식당을 많이 운영하는데 일본에 삼계탕이 보급되면 여러 모로 도움이 될 것"이라며 "경제적인 도움만이 아니라 우리 문화와 마음을 알리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조직위는 <NHK>에서 방영되는 드라마 <대장금>의 인기로 한국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도 적극 활용하겠다는 복안도 갖고 있다.
***한류스타 등장에 관객석 '들썩'**
삼계탕을 먹은 후 참가자들은 또하나의 문화공연인 '원 코리아 페스티벌'을 관람했다.
교포수가 많은 만큼 민단-총련 간 갈등도 뿌리깊은 이 지역에서는 양 단체를 뛰어넘어 교포사회의 결집을 꾀하자는 취지로 교포 문화예술인들이 주도하는 '원 코리아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올해로 21회째다.
이 행사는 "재일 코리안이 먼저 하나되어 원 코리아 실현에 공헌하고 궁극적으로는 세계시민과 연결되는 '아시아시민' 창출을 위한 '아시아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사진 3: 원 코리아 페스티벌>
이날 페스티벌에서는 <대장금>을 소재로 한 뮤지컬과 판소리·고전무용 등 우리의 전통예술 공연이 저녁 늦게까지 이어졌다. 교포와 일본 시민단체 회원들은 해가 넘어가 쌀쌀해진 날씨 속에서도 공연을 끝까지 지켜봤다.
특히 임호, 권해효, 박현숙 등 일본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한국 배우들이 무대에 오르자 남녀노소 할것없이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웃고 즐거워 해 '한류 열풍'을 실감케 했다.
<사진 4: 한류>
***우토로 마을·민족학교·조선시장에서 민족애 나눠**
이날 무대 주변 행사장에서는 한국 연예인들의 사진, 음반 등 '한류 상품'을 비롯, 각종 기념품에서 자동차까지 한국상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임시 가게가 개설돼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끌었다. 또 한국의 대학을 소개하는 부스도 마련돼 한국으로 유학을 원하는 교포학생들의 관심을 끌었고,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일본인들을 위한 임시 한국어 교습소도 문을 열었다.
한켠에서는 일본의 마지막 징용 조선인촌 '우토로 마을'을 돕기 위한 모금소도 마련돼 우토로 교포들의 토지 매입 대금을 모으는 행사도 펼쳐졌다. 한국에서 온 300여 명의 평화대표단은 행사 다음날인 31일 3개 조로 나눠 교토의 우토로 마을과 오사카의 민족학교·조선시장을 방문할 계획이다.
<사진 5: 우토로 마을 모금운동>
28일 히로시마에서 열린 '평화를 위한 한일 교류의 밤'과, 29일 '한일 원폭피폭자 공동추도식'으로 시작된 이번 행사는 31일 '한일 양국의 현안과 과제'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을 끝으로 일단락 된 후 11월부터 도쿄로 자리를 옮겨 계속된다.
<박스 시작>
***[인터뷰]**
***'한일 우정의 잔치' 평화대표단장 함세웅 신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사진 6: 함세웅 신부>
- 이번 잔치는 어떻게 마련된 것인가.
"광복 60주년 관련 행사가 국내에서는 많았다. 그런데 국내 행사로만 그쳐서야 되겠느냐, 일본에서 고생하신 동포들에 대한 사랑과 배려, 또 마음으로 함께 모시는 자리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어 광복60주년 기념사업회에서 한일 우정의 잔치 조직위원회를 구성하게 됐다. 특히 가장 고생하신 재일교포 1세대들을 우선 생각했다. 정부가 하는 행사에서도 그분들을 놓친 것 같아 우리가 그분들을 포용하자는 것이었다. 마침 올해가 한일 수교 40주년이라서 '한일 우정'이란 말을 넣게 됐다."
- 삼계탕은 이채롭다.
"우리 민족 고유의 음식인 삼계탕을 내놓으면 동포들에게는 고향에 대한 향수를, 한국을 사랑하는 일본인들과 시민단체에게는 우정의 마을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여기 동포들이 식당을 많이 경영하셔서 우리의 음식을 일본에 알린다면 실질적인 도움도 줄 수 있으리라 본다. 11월 6일부터 3~4일 동안 동경에서 같은 행사를 여는데 그때도 마찬가지로 삼계탕을 대접해서 우리 음식을 알릴 생각이다."
***"교포들의 삶을 '조국의 확장'으로 보자"**
- 28일 있었던 원폭 피해자 추모식은 최초의 한일 공동 추모식이었는데….
"가장 큰 의미는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였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니었다. 일본은 원폭으로 인한 피해만을 얘기하고 있는데 원폭이 왜 떨어졌는지를 스스로 물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일본 정부가 그런 비극을 자초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전쟁을 일으켜 약한 나라를 짓밟고 수탈했던 원인 제공을 했다는 말이다. 추모식에서 이에 대한 근원적인 반성과 회개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아프지만 지적했다. 일본인들은 이를 깨닫고 역사바로세우기에 매진하고, 과거를 올바르게 반성하고, 우리 동포들에 대한 차별을 포함한 일본 내의 각종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지적했다."
- 31일 일정도 남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한국 대표단이 3개 조로 나뉘어 우토로, 민족학교, 동포시장을 방문한다. 우토로는 우리 동포들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를 확인해주는 현장이다. 우리의 민족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만든 민족학교도 최근 남북간의 갈등과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힘들다고 하는데 이제 남한에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 동포들이 일본에 사는 그 자체를 '조국의 확장'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해야 한다."
<박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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