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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힘없는 주부? 뭉갠다고 뭉개질까요?"

[인터뷰] 최옥화 이마트 용인수지점 노조위원장

"왜 포기 안 하고 계속 하냐구요? 약 오르잖아요! 아~ 이 원수를 어떻게 갚나 싶다니까요. 정말."

이마트 역사상 최초의 노조를, 그것도 40대 계약직 여성들의 노조를 '겁없이' 만든 최옥화 위원장(43)의 '씩씩함'은 요즘 세간의 화제를 모으고 있는 드라마 캐릭터 '삼순이'를 떠올리게 했다. 처음 노조 설립을 결심했을 땐 그저 '이런 부당한 일이 계속되어선 안되겠다'는 마음이 전부였다.

***"힘없는 주부라고 깔아뭉개는 데 참을 수 없었다"**

"노조 시작할 때 그렇게 대단한 각오로 한 거 아니거든요? 그 땐 이마트가 '무노조 경영'으로 악명높은 삼성 계열사인지도 몰랐어요. 알았다면 그렇게 쉽게 시작 못했죠. 오히려 이마트가 대기업이고 윤리경영, 윤리경영 노래를 부르니깐 법은 지키겠지… 믿고 시작한 거예요. 이렇게 노조를 무서워할 줄 알았겠어요?"

<사진 1>

당시 이마트 용인 수지점의 계약직 캐셔들은 50여명. 그 중 23명이 노조에 가입하고 50명 전원이 준비 기간동안 회사에 비밀로 부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들의 내면에 켜켜이 쌓인 분노와 상처였다고 한다.

"그저 세상 물정 모르고 힘 없는 주부라고 생각했나봐요. 무시하고 깔아뭉개는 인격모독은 다반사였어요. 슬금슬금 일하는 시간을 늘리지 않나, 캐셔인데 청소까지 시키지 않나…. 도저히 그냥 봐줄 수가 없더라구요" 최 위원장이 예로 든 일명 '장갑 사건'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점장 : 최옥화씨, 본사 홈페이지에 캐셔들이 일 때문에 손가락 끝이 갈라지는데도 장갑을 못 끼게 하는 게 본사 지침이냐고 글 올렸다면서요? 그것도 최옥화씨 이름 내걸고 당당하게.
최옥화 : 네. 그런데요.
점장 : 지금 나 골탕 먹이려고, 컴플레인 걸릴까봐 무서워하는 점장으로 보이게 본사에 그런 글 올린거요?
최옥화 : 아니, 일 하다가 불합리한 점이 있고 사원의 고충이 있으면 얘기해서 고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점장 : 고충? 최옥화씨 그런 단어를 쓰는 거 보니 아주 불순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 아닙니까?
최옥화 : 아니 왜 그렇게 화를 내세요? 도대체 장갑을 왜 못 끼게 하는 건데요. 전 옷같이 깨끗히 다뤄야 할 물건은 일일이 장갑 벗고 처리하거든요?
점장 : 내가 꼴보기 싫어 그럽니다. 미관상 보기 안 좋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최옥화 : 아니 여기는 왜 이렇게 사원한테 문턱이 높아요? 되게 웃기는 회사네요!!!
점장 : 최옥화씨. 스트레스 받으면 남.편.한.테. 화풀이 하세요. 여기서 돈 벌게 한 장본인이 남편이니까.

최 위원장은 그날 자고 있는 남편 얼굴을 보며 펑펑 울었단다.

"점장이 다짜고짜 불러다가 막 화를 내는데, 처음엔 기가 막혀서 처다만 보다 나중엔 이판사판 저도 소리를 지르며 대들었죠. 아니, 솔직히 저도 인간이고 나도 인간인데 자기가 나보다 그냥 회사에서 직급이 높아서 점장일 뿐이지 똑같은 인간 아녜요? 집에 가면 한 집안의 남편이고 아내고 다들 평등한 사람들이잖아요. 근데 그렇게 사람을 깔아뭉갤 수 있어요?" 당시 상황을 전하는 최 위원장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사람의 양심도 져버리 게 하는 곳"**

<사진 2>

이런 저런 사연으로 시작된 이마트 최초의 노조 설립은 역시나 순탄치 않았다. 지난해 12월 노조를 창립하자마자 회사의 협박과 회유에 19명이 곧바로 노조를 탈퇴했고, 끝까지 남은 3명은 곧바로 3개월 정직 처분을 받았다가 5월 결국 해고통보를 받았다는 것. 이들은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했고, 사측은 이에 지난 7일 이들을 복직시켰다가 14일 '계약만료'로 다시 해고했다.

"어쨌든 우린 합법적 노조니까요. 법을 어긴 건 이마트고" 최후통첩처럼 날아든 '해고 통보'도 그녀의 당당함을 꺾진 못했다. 풀이 죽진 않았다. 최 위원장은 다만 슬프다고 했다. 지난 7일 문자메시지로 '복직' 통보를 받고 좋아하는 최 위원장에게 이마트 동료들은 '이마트가 복직시켜놓고 다시 해고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해줬다.

"이게 나중 법정싸움에 증거가 될 수 있겠다 싶어 증언을 부탁했죠. 근데… 다들 미안하다면서 거절하더군요. 캐셔 월급 70만원이 그렇게 사람을 비굴하게 만드는지… 그렇게 만든 이마트에 더 화딱지가 나요. 점점 갈수록 실망이죠. 있었던 일도 말 못하게 하는 거예요. 그 분들도 자기가 관리 대상이니깐. 노조 한번 가입했다는 이유로 집요하게 감시하거든요. 그 현실이 슬퍼요. 사람의 양심까지도 져버리게 하는 곳이 이마트예요."

***"이 싸움 하며 애들한테 강압적이었던 스스로를 반성"**

최 위원장은 애들 학원비를 마련하려고 일을 시작했다. 얼마 전에 조합원들끼리 대리운전을 하면 하루에 4만원씩 번다는데 혼자하면 무섭고 둘이 같이 타고 해볼까 하는 얘기까지 했다. 평범한 주부에서 이마트에서 노조 만든다고 투사가 된 지 200여일. 가족들의 반응은 어떨까.

<사진 3>

"딸애가 고3인데 '엄마가 정당하다'고 지지해줘요. 힘이 되죠. 딸애 담임이 전교조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찾아가서 까놓고 말했어요. 사정 얘기하고 제가 입시도 잘 모르니 잘 지도해 주세요라고 부탁했더니 '어머니 대단한 일 하십니다'면서 흔쾌히 그러마고 하시더라구요. 고맙죠.

중학교 다니는 아들은 처음에 절 오해했어요. '엄마, 학교 사회시간에 노조는 이익집단이라고 그랬는데 엄마가 하는 행동 이기적인 거 아냐' 그래서 제가 '엄마의 첫 출발은 이기적인 생각이었을지도 몰라. 그런데 지금까지 싸우는 건 비정규직 법안도 있고 우리 여성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다는 걸 이렇게 자꾸 알려나가야 세상이 좋아지니깐 하는거야. 어차피 시작한 거니깐 엄마는 결과를 보고 싶다'고 했어요. 이해해주더라구요. 남편도 그렇고."

최 위원장은 이 싸움을 하면서 예전에는 다소 강압적인 엄마였던 스스로를 반성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제는 애들을 민주적으로 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익숙치는 않지만 많이 노력한다고 한다.

<사진 4>

***"계속 가다보면 끝이 보이지 않을까"**

"이 싸움 하면서 물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만 제가 많이 다듬어졌어요. 사람들도 많이 알게 되고. 저는요, 스쳐지나가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만남을 되게 소중하게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힘들어도 이렇게 저렇게 도와주는 사람도 많아요. 하하하."

순회투쟁 할 때, 이마트 안에 들어가면 "언니들 덕분에 너무 좋아졌어라고 그래요. 그럴 때마다 보람을 느끼죠. 단 한명이라도 노조에 들어오면 교섭할 수 있으니 큰 힘이 될텐데…."

최 위원장은 법정소송, 부당해고 구제신청 등 줄줄이 남은 싸움에 대해 "제 철학이요? 조급하게 살지 않고 물 흐르듯 살자예요"라며 "미리 걱정하고 살았다면 여기까지 못 왔을 거예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오늘을 충실하게 살려구요"라고 말했다. 역시 '삼순이 스타일'의 아줌마답다. 당당하고 낙천적이다.

"계속 가다 보면 끝이 보이지 않을까 싶어요. 남은 조합원에게 맏언니처럼 행동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늘 미안하죠. 그래도 서로 동반자로서 같이 있어주는 조합원들한테 고마워요. 든든하구요."

<사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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