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중반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민족사학자 한 분이 “조선(朝鮮)은 숙신(肅愼)에서 나온 명칭”이라고 쓰신 글을 읽고 놀랐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몹시 기분이 나쁘고 숙신 했습니다. 경상도 사투리로 ‘숙신하다’는 말은 ‘어수선하고 혼란스럽다’는 뜻입니다.
어찌하여 우리같이 문명화되고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나라가 그런 오랑캐에, 미개인들에서 나왔는가 말입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비록 형편없이 가난하기는 했지만 오천년 역사를 가진 자랑스러운 단일 민족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똘똘 뭉쳐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그 ‘숙신하다’는 말 자체가 사람에게 사용하기가 경멸스러운 말인데 도대체 그런 족속들이 우리의 조상이 된다니 말이 됩니까?
당시 사회의 풍조는 한국의 것이면 대체로 수준이 낮고 뒤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노래조차도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나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의 미국 유행가(Pop Song), 니꼴라 디바리(Nicola Di Bari)의 칸쏘네, 에디뜨 삐아프(Edith Piaf)의 샹송 등을 들으면서 힘겨운 입시전쟁에서 잠시나마 위안으로 삼았습니다. 항상 아름다운 벌판에 우리가 지은 마음의 집은 그림 같이 하얀 미국식 집이었습니다. 크게 유명하지도 않은 영국 가수 클리프 리처드(Cliff Richard)가 한국에 와서 이화여대(梨花女大)에서 공연을 했을 때는 아주 난리가 났었습니다. 요즘 오빠부대는 저리가라 할 정도였지요. 지금부터 30~40년 전의 이야기였습니다.
우리가 숙신의 후예(後裔)라는 생각은 그냥 잊기로 했습니다. 오랑캐이자 미개인(未開人)과 소중화(小中華) 백성이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발음이 비슷하다는 생각은 떨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최루탄 연기 자욱한 대학으로 들어갔으며 숙신은 기억 속에서 멀어져갔습니다. 많은 세월이 흐른 뒤 저는 운명적으로 다시 ‘숙신’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1) ‘코리’인가 ‘쥬신’인가?**
우리 민족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나타나는 명칭은 예맥(濊貊)과 숙신(肅愼)입니다. 그런데 이 숙신의 문제는 고대 동아시아 역사상 가장 복잡한 문제로 남아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연구자들은 이 숙신을 도대체 어떻게 봐야하는지를 답답해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한번 생각 좀하고 넘어갑시다. 숙신[쑤썬]은 그 발음을 보면 조선[짜오썬,또는 쭈썬]이라는 말과 비슷하죠? 현재의 중국음과 과거의 중국음은 차이가 있지만 우리말의 한자음이 중국 고대음에 가까우므로 숙신과 조선은 오히려 비슷하게 들립니다. 현대 중국어가 주로 요동(遼東)ㆍ허베이(河北) 지방의 한어(漢語)를 기반으로 성립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렵겠죠.
참고로 말씀을 드리면 중국의 학계에서는 과거 예맥족의 말을 ‘예맥어’로 표시하고 있지만, 1945년 이후 남북한의 언어학계에서 이 예맥어를 대신하여 과거 부여사람이 사용한 원시부여어(原始扶餘語)와 고대 요동ㆍ반도에 걸쳐 사용한 원시한어(原始韓語)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원시부여어나 원시한어는 어간(語幹)이 같아서 경상도 사투리나 전라도 사투리의 차이와 같은 방언(方言)의 차이가 있을 뿐으로 보고 있습니다(權兌遠, “古代 韓民族의 石塚文化系統” 『道山學報』제9집).
그나저나 어, 이 야만인과 소중화인(小中華人)이 비슷하다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소중화인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상당히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조선이나 숙신이라는 말은 아직도 베일에 싸여진 말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말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기를 쓰고 찾고 있지만 아직 아무도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그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 동안 제 경험으로 말하자면 조선과 숙신의 기원을 잡으려하면 할수록 마치 무지개처럼 조금씩 멀어져 가는 느낌도 듭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하나의 문제가 생겨납니다.
조선이라는 말은 우리 민족을 말하는 어떤 고유어를 한자로 표현한 듯 한데 그 원음(原音)이 무엇인지 오늘날에는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동안 ‘조선’에 대한 순 우리말 이름에 대한 연구가 있었고, 그 연구들 가운데 하나로 나타난 것이 ‘쥬신’입니다. 왜냐하면 이와 유사한 말[직신(稷愼)ㆍ숙신(肅愼)ㆍ식신(息愼)]들이 중국 고대 사료에 많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많이 나타나는 말은 코리(Khori), 또는 까오리·구리·고구려 등의 말이기도 합니다.
이 두 개의 말, 즉 코리와 쥬신 가운데 어느 말이 우리 민족의 범칭(凡稱)으로 타당할 것인지 이제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합니다. 먼저 숙신ㆍ조선이라는 말을 분석해보도록 합시다.
***(2) 숙신과 조선**
그 동안 민족의 여러 스승들은 조선(朝鮮)이라는 말의 어원을 숙신(肅愼)에서 찾았습니다.
신채호 선생은 조선의 어원은 숙신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조선의 고어(古語)가 숙신이라는 것이지요.『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에서는 숙신의 옛 이름은 ‘주신(珠申)’, 또는 ‘주리진(朱里眞)’이며 이것은 관경(管境)을 가리키는 만주어라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신채호 선생은 『만주원류고』를 토대로 조선의 원래 발음은 주신이고 그 뜻은 “주신(珠申)의 소속 관경(管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관경’이란 우리 쥬신 민족이 살고 있는 온 누리를 말합니다.
정인보 선생도 은나라ㆍ주나라 시대부터 등장한 숙신(肅愼)이 식신(息愼)ㆍ직신(稷愼)ㆍ주신(珠申) 등으로 기재되었음에 근거하여 이런 형태로 ‘조선(朝鮮)’이라는 나라 이름이 성립되었을 것으로 추측하였습니다[정인보, 『조선사연구(上)』(서울신문사 : 1946) 52쪽].
조선에 대한 말의 기원을 오랫동안 연구했던 러시아의 L. R. 꼰제비찌도 조선이라는 말이 숙신에서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꼰제비찌는 ① 사료에 나타나는 고대 조선족과 숙신족의 인구분포가 지리적으로 서로 일치하고 있다는 점 ② 사료 상으로 동이(東夷)에 속하고 있다는 점 ③ 숙신과 조선족의 종족형성 과정이 유사하고 새(bird)라는 공동의 토템을 가지고 있으며, ④ 두 민족 모두 백두산을 민족발상지로 보고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L. R 꼰제비찌 『한국의 역사적 명칭』(모스크바 : 1970) 63~67쪽].
그리고 안호상 선생은 조선(朝鮮)이라는 명칭은 ① 한국의 고유 명사에서 유래했거나, ② 선비족(鮮卑族)의 명칭에서 유래했거나, 또는 ③ 숙신족의 명칭에서 유래되어 그 파생어가 직신(稷愼), 혹은 주신(珠申)이라고 했습니다.
안호상 선생의 견해를 보면 숙신ㆍ동호ㆍ예백에 대한 구분이 전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조선이라는 말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예맥을 표현하는 말인데 동호는 선비ㆍ오환을 지칭하는 말이고 숙신은 후일의 만주족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안호상 선생은 이 세 가지를 하나의 범주로 두고 있습니다. 안호상 선생의 견해를 좀 더 살펴봅시다.
안호상 선생은 아사달에서 유래한 아시밝(첫 빛 : 태양이 처음 나타난 장소)을 중국어로 묘사한 것이 조선(朝鮮)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밝’, ‘숙신’, ‘직신’ 등등은 모두 이 말에서 나온 파생어라는 것이죠[안호상, 「나라 이름 조선에 대한 고찰」『아세아연구』Ⅷ-2 (서울 : 1965) 81쪽]. 즉 조선이란 ‘첫 빛’ 즉 언젠가 태양이 처음 나타난 장소를 의미하는 고대 한국어인 ‘아시밝’을 중국어로 표현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림 ①] 태양의 이미지
이것은 당시 ‘아사달’, ‘아시밝’, 또는 ‘아사타라’, ‘아이신(金)’ 등등으로 표현되던 지역이나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쥬신’이라는 국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명칭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여러분들은 의문을 가지실 것입니다. 보편적 명칭이라면서 왜 이렇게 조금씩 다른지 말입니다.
당연합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한국을 ‘코리아(Korea)’라고 하여 현재의 국제어(international language)인 영어로 국명을 표기하지만 이것도 일관성이 없기는 마찬가집니다. 코리아를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꼬레·꼬레아 등으로 부르지 않습니까? 심지어는 ‘솔롱고스’라거나 ‘한꾸어(韓國)’라고 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쥬신에 대해서도 조선·숙신·식신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즉 본래의 말에 대한 발음을 한자로 묘사하는 과정에서 여러 형태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마치 고려를 코리아·꼬레·꼬레아 등등으로 묘사하듯이 쥬신을 朝鮮(조선)·肅愼(숙신)·稷愼(직신)·息愼(식신)·發(밝) 등등으로 묘사했다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이 모두가 서로 다른 사람들로 보이는 거죠.
[그림 ②] 올림픽에서 한국선수단의 입장
리지린 선생은 『고조선 연구』에서 ‘숙신’, 또는 ‘조선’ 이라는 말이 고조선족의 명칭이고 이 말은 고대 한국어로 수도(首都), 또는 ‘나라’를 의미한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말은 대단히 타당한 견해입니다. 즉 제가 사용하는 쥬신이라는 말은 ‘태양의 첫 빛이 비치는 나라(해 뜨는 나라)’라는 뜻이고 이 말은 그대로 ‘서라벌(서울)’이라는 말과 동일하지요. ‘서라벌’에서 원래 발음이 ‘’라는 말은 동쪽, 해 뜨는 곳이라는 말이고 벌이란 벌판, 즉 넓고 평평한 땅이죠. 그리고 과거의 국가는 도시를 중심으로 하여 촌락을 지배하는 형태였으므로 ‘수도 = 나라’라고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리지린 선생의 견해는 타당합니다.
***(3) 숙신이 조선에서 나온 아홉 가지 이유**
이상의 견해들은 우리 민족의 기원을 밝히는 데 있어서 매우 귀중한 말씀들입니다. 그렇지만 여러 스승들의 견해들을 곰곰이 살펴보면 의문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즉 과연 “조선의 고어가 숙신인가?” 하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숙신(肅愼)이라는 말이 아사달이나 아사밝을 표현하기엔 다소 약하기 때문입니다. 숙(肅)이라는 글씨는 ‘장엄함’을 나타내기 때문에 태양숭배와 무관하지는 않겠지만 조(朝)보다는 확실히 의미가 약하죠? 뿐만 아니라 숙(肅)이라는 글자는 신조(神鳥)를 의미하는 숙(鷫)의 약자로 사용되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엔 숙신(肅愼)의 고어(古語)가 오히려 조선(朝鮮)이라는 것이지요. 즉 숙신이라는 말은 조선에서 나왔으며 이 말은 조선을 표현하는 여러 가지 말들 가운데 하나였다는 것이지요. 왜 그럴까요? 이 점을 하나씩 살펴봅시다.
첫째, 조선이라는 말이 숙신이라는 말보다도 훨씬 이전부터 있었다는 일반적인 인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보면 단군(檀君)이 나라를 열고 세운 나라가 바로 조선인데, 이때가 요임금과 같은 시대라고 합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위서(魏書)』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단군왕검이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고 새로 나라를 세워 국호(國號)를 조선(朝鮮)이라고 불렀으니 이것은 고(高 : 요임금을 말함)와 같은 시기였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시기는 대체로 B. C. 2333년경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이것을 신뢰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조선이라는 말이 매우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조선이라는 말이 숙신이라는 말보다는 훨씬 범위가 큰 말이라는 것이죠. 즉 단군신화가 동호를 포함한 예맥족 전체를 포괄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한반도 만주 일대를 대표하는 신화로 정착되었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단군신화에 나오는 조선이라는 말이 전체 쥬신족들을 대표하는 말로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엄밀하게 보자면 단군은 고조선 지역의 어느 지배적인 종족의 조상신(祖上神)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만주족의 조상이라고 보는 숙신계와 한국인들의 조상으로 보는 예맥계 모두가 공통의 조상신으로 숭배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천관우, 「고조선의 몇 가지 문제」『한국상고사의 제문제』(한국정신문화연구원 : 1987)]
경우에 따라서 단군(檀君)을 선비족의 대영걸이었던 단석괴(檀石塊 : ?~181)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단석괴는 고구려의 영락대제(광개토대왕)같은 분으로 『후한서』나 『삼국지』의 기록에 따르면, 대체로 2세기 중반 남으로는 허베이(河北) 등의 지역과 북으로는 정령(丁靈), 동으로 부여 등에 이르는 곳을 점령한 대정복 군주였습니다.
중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지요. 『사기』에서는 요순의 시대나 하나라ㆍ은나라ㆍ주나라의 조상은 모두 주(周)나라의 조상신인 황제(黃帝)로 되어있지요. 즉 중국이 조상으로 간주되는 신들은 복잡다기하지만 『사기』에서는 이들을 모두 통합하여 화하계(華夏系)인 주나라의 조상신인 황제가 조상신으로 정착되고 있죠. 일본의 저명한 동양사가 카이즈카 시게키(貝塚茂樹 : 중국사학계 교토 학파의 지도적 인물)는 황제가 중국 전역의 조상신으로 확대되는 시기가 전국시대(戰國時代 : B. C. 403~B. C. 221) 중기 이후라고 합니다. 대체로 보면 B. C. 3세기 이후가 되겠지요. 그래서 제가 B. C. 3세기, 또는 한(漢)나라 이후부터 쥬신과 한족(漢族)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셋째, 조선이라는 명칭은 B. C. 7세기경에 저술된 『관자(管子)』에 나타나 있으나 숙신이라는 명칭은 그 보다 2백년 뒤인 B. C. 5세기경에 씌어진 『상서(尙書)』에 처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춘추 시대의 민요를 모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 된 시집『시경(詩經)』에는 주나라 선왕(宣王) 때 한후(韓侯)가 주나라 왕실을 방문한 것을 칭송한 노래를 전하기도 합니다(韓奕篇). 이 한후를 조선(朝鮮), 또는 고조선의 왕과 직접 연관시키기는 어렵지만 그 시의 내용을 보면 “주나라왕은 한후(韓侯)에게 추족(追族)과 맥족(貊族)까지 내려주어 북쪽의 나라들을 모두 다 맡아 그 곳의 패자(覇者)가 되었다.”고 하여 고조선과 무관하지는 않습니다. 이 기록은 지금부터 3천 년 전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아무튼 웬만한 사서(史書)들보다는 오래된 기록입니다.
『관자』에는 “밝조선에서 생산되는 범가죽(發朝鮮文皮 : 『管子』卷23 揆道篇)”이라는 말이 있고 『상서(尙書)』에는 “무왕이 동이를 정벌하자 숙신이 와서 이를 하례하였다(武王伐東夷肅愼來賀 :『尙書』書序)”는 기록이 있습니다. 『관자』의 말은 제나라의 환공(桓公)이 관자에게 해내(海內)에 귀중한 일곱 가지 예물이 뭐냐고 묻자 관자는 그 가운데 하나로 밝조선의 범 가죽을 들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밝조선이 조근(朝覲 : 조공)하지 않는 것은 비싼 범 가죽과 태복을 예물로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管子』卷24 輕重甲篇).
넷째, 쥬신의 고유 영역이나 종족을 의미하는 알타이·알탄·아이신·아사달·아사타라·아시나·아사밝·아사다께 등의 말에서 조선이 파생되는 과정은 유추하기 쉽지만 숙신은 유추하기가 다소 어렵습니다.
즉 숙신이라는 말에서 아사달이나 아사타라·아시나·아시밝을 유추하기는 어렵다는 얘기죠. 그러나 쥬신의 고유영역이나 종족을 의미하는 말에서 쥬신, 즉 조선(朝鮮)이 나오고 이 조선이라는 말에서 숙신(肅愼)·직신(稷愼)·주신(珠申)등은 쉽게 나올 수가 있는 말이기 때문입니다[말하자면 코리아(Korea)라는 말이 있으면 코레· 꼬레아·코리 등의 말들이 파생될 수 있다는 말이죠].
다섯째, 조선(朝鮮)과 숙신이 같이 나오는 기록이 없어 숙신(肅愼)은 조선(朝鮮)의 다른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지요. 즉 숙신은 한(漢)나라 이전에는 허베이(河北) 지역과 남만주지역에서 나타나고 있고, 한(漢)나라 이후에는 흑룡강과 연해주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죠. 그런데 한(漢)나라 이전 숙신의 영역은 고조선의 영역과 대부분 일치합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보면 『좌전(左傳)』에 “숙신은 연박(燕亳)에 있으며 우리(중국인), 즉 한족(漢族)의 북쪽 땅”이라고 했는데 이 연박이라는 말이 당나라 때의 대학자인 공영달(孔穎達 : 574~648)은 북경(北京) 부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결국 그 위쪽은 바로 고조선의 영역이죠. 따라서 이 둘은 서로 다르지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 책에서 조선(朝鮮)이라는 명칭이 나오는 경우, 숙신(肅愼)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사기(史記)』를 보면“연나라는 북쪽으로는 오환·부여·동·예맥·조선과 진번과 이웃하고 있고(夫燕烏桓夫餘東濊貊朝鮮眞番之利 : 권129 貨殖列傳)”, “연나라의 동쪽에는 조선과 요동이 있으며(燕東有朝鮮遼東 : 「蘇秦列傳」)” “진나라 영토는 동쪽으로는 바다에 이르고 조선과 접하며(地東至海 曁朝鮮 : 권6)” 등의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염철론(鹽鐵論)』에서는 “연나라가 동호를 기습하여 천리 이상을 패주시켜 요동 땅에 이르렀고 다시 조선을 공격하였다(燕襲走東胡地千里度遼東而攻朝鮮 : 『鹽鐵論』「伐攻篇」).”라고 합니다. 『전국책(戰國策)』에서는 “소진(蘇秦)이 연나라 문후(文侯)에게 말하기를 ‘연나라의 동쪽에는 조선과 요동이 있으며’ … (『戰國策』「燕策」)”라고 합니다. 또한 『산해경(山海經)』에서는 “조선은 열양(列陽)의 동쪽에 있는데 바다의 북쪽이며 산의 남쪽이다. 열양은 연나라에 속한다(『山海經』「海內北經」).”라고 하고 있지요. 『회남자(淮南子)』에서는 진(秦)나라가 북쪽으로는 요수(遼水)와 만나며 동쪽으로는 조선(朝鮮)과 국경을 맺는 장성(長城)을 쌓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어느 곳에서도 조선과 숙신을 함께 사용한 흔적이 없지요.
여섯째, 숙신과 조선이라는 말이 서로를 대신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사기』에 “산오랑캐와 밝숙신, 이들을 일컬어 동북오랑캐라고 한다(山戎發肅愼 謂之東北夷 : 『史記』「五帝本紀」,「本紀」).”라고 합니다. 여기서도 ‘밝조선’이라는 말 대신에 ‘밝숙신’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한국인들은 이 말을 들으면 분통이 터질 것입니다. 한국인이라면 모두 숙신이 오랑캐로만 알았는데 조선이 들어갈 자리에 숙신이 들어갔으니 말입니다. 소중화주의자들이라면 혼절(昏絶)할 일이죠.
일곱째, 조선과 숙신에서 파생된 말이 조선과 숙신과 유사한 말의 변화를 보인다는 점입니다. 즉 조선에서 숙신이라는 말이 나왔고 이 말에서 ‘직신(稷愼)’, ‘주신(珠申)’, ‘식신(息愼)’ 등의 말이 나왔다면 이 말들도 조선이 사용된 것과 유사한 형태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죠.
그 예를 보면 『관자(管子)』에는 “밝조선에서 생산되는 범가죽(發朝鮮文皮)”이라는 말과 유사하게 한(漢)나라 때 대덕(戴德)이 편찬한 『대대례기(大戴禮記)』에는 “밝식신(發息愼)”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뿐만 아니라 『사기』에 “북쪽에는 산오랑캐와 밝식신이 있다(北山戎發息愼 : 「五帝本紀」)”는 기록이 있죠(참고로 오제시대는 하(夏)나라의 이전시기로 전설상의 시대입니다).
여덟째, 밝조선 이전에 조선이 이미 성립될 정도로 조선이라는 말의 연원이 깊다는 것입니다. 즉 조선이라는 말이 숙신보다는 오래전에 나온 말임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나오는 조선이라는 말이 밝조선(發朝鮮)으로 되어있죠? 이것은 조선의 강역(국경이라는 말이 아님)은 매우 넓었으며 밝조선이란 전체 조선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하지요(마치 북조선, 남조선 하듯이 말이지요). 물론 나머지 조선의 정확한 의미를 아직은 알 수는 없지요.
일반적으로 밝식신(發息愼)이나 밝조선(發朝鮮) 등을 보면, 밝과 조선이 다른 종류인지 하나를 말하는 것인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이들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밝 + 식신(조선) 등을 하나의 말로 봐야합니다. 왜냐하면 밝(發)이라는 말이 단독적으로 사용한 예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朝鮮)이라는 말은 독립적으로 사용되고 있죠. 따라서 조선이라는 개념은 밝조선보다는 훨씬 큰 개념으로 그 이전에 정착되었다고 볼 수 있죠.
아홉째, 쥬신계의 건국신화를 보면 고구려와 숙신계의 건국신화가 많은 공통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고구려의 주도세력을 숙신으로 보기도 합니다.
고구려가 숙신계라니? 이 점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인 듯한데요. 좀 더 구체적으로 볼까요?
무엇보다 고구려의 건국신화는 부여와 대동소이하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는데, 이것이 숙신계에 가깝다는 말입니다. 만주의 역사를 오랫동안 연구했던 일본의 이나바 이와키치(稻葉岩吉 : 1876~1940)에 따르면, 주몽이 군사들에게 쫓겨서 남쪽으로 내려가는데 따르는 사람은 없고 도피처[흘승골(紇升骨)]에 이르자 세 사람을 만나서 이들과 합류하는데 바로 이 부분이 숙신계와 유사하다는 말이죠. 이 삼(三)이라는 숫자가 열쇠입니다. 이규보의 『동명왕편(東明王篇)』에 이 세 사람이 세 여자로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후금(청나라)의 건국신화에도 세 사람의 하늘에서 온 여자[天女]가 나타나고 있지요.
그러면 이제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우리 민족의 명칭을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 쥬신의 고유영역이나 종족을 의미하는 말(알타이·알탄·아이신·아사달·아사타라·아시나·아사밝·아사다께 등)이 고유어로 존재.
㉡ 쥬신의 고유영역이나 종족을 의미하는 말을 당시의 국제어(international language)인 한자(漢字)로 조선(朝鮮)으로 표기.
㉢ 조선(朝鮮)이라는 말에서 숙신(肅愼)이 파생.
㉣ 조선(朝鮮) 또는 숙신(肅愼)을 표현하기 위한 많은 말들이 나타남. 예를 들면 ‘직신(稷愼)’, ‘주신(珠申)’, ‘식신(息愼)’ 등.
제가 보기엔 과거 한족(漢族)의 압박으로 고조선(古朝鮮)이 몰락하고 허베이 - 요동 - 만주 - 연해주로 이동하면서 흩어져가는 조선이라는 민족을 부르는 말이 숙신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이 부분은 다음 장을 보시면 더욱 명확해질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조선이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에 대한 의문이 풀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 우리들의 책 속에 나오게 된 것도 말입니다.
***(4) 아이신(金)**
조선에 대한 말의 어원을 이제 안다고 해서 해결이 다 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또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죠.
‘조선(朝鮮)’에서 조(朝)는 ‘아침’, 또는 ‘찬란한 태양의 영광’, ‘불’, ‘아침 해처럼 빛나는 황금, 또는 금속’ 등의 뜻을 빌려온 것이라고 생각은 들지만 ‘선(鮮)’은 과연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분석ⓐ]ㆍ[분석ⓑ]ㆍ[분석ⓒ]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분석ⓐ] 조(朝)와 선(鮮) 모두 한자(漢字)의 뜻을 빌려온 경우**
조선이라는 말이 ‘장엄한 아침’, 또는 ‘찬란한 태양의 영광’, ‘불’, ‘아침 해처럼 빛나는 황금, 또는 금속의 아름다움’ 등을 그대로 한역(漢譯)한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가능성은 매우 낮게 봅니니다. 왜냐하면 조선이라는 말이 단순히 정확히 한역한 말이라면 다양하게 변형된 명칭이 나오기가 어렵기 때문이죠.
이와 관련하여 어떤 학자는 선(鮮)이 순록의 겨울 주식인 선(蘚·이끼)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견해는 한자(漢字)에 지나치게 집착해서 본 견해라고 생각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 분석은 일부 부분은 타당할 수 있을진 몰라도 쥬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견해로 전체 쥬신을 포괄적으로 부르는 명칭이 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쥬신은 단순히 초기 동물 토템단계의 미개한 유목민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죠. 어떤 종족이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 가장 자랑스러운 이름을 부르지 문화적으로 낙후된 유목민의 특성을 자신의 이름(그 연구가 예시하고 있는 이름은 수달·너구리·순록 등)으로 삼겠습니까?
[그림 ③] 유목민의 삶의 근거지 초원
쥬신이라는 말은 지금까지 우리가 본 대로 ① 천손사상의 표현 및 ② 태양의 숭배와 당시에는 ③ 첨단기술인 금속 제련과 관련된 말이라고 봐야 합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IT Korea’라고나 할까요? 이 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분석ⓑ] 조(朝)는 뜻을 빌리고 선(鮮)은 어미의 음을 빌려온 경우**
알타이 산맥을 주변으로 하여 몽골 초원 지역이나 만주 지역까지 거주했던 민족들은 자신들이 사는 지역이나 도읍을 오손(烏孫), 오논(몽골지역), 아이신(만주지역) 등으로 불렀는데 이 말들은 모두 알타이 말인 ‘아사나’[해뜨는 곳(日本, 日出地)]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박시인, 『알타이 신화』). 그리고 금(金)을 의미하는 아이신·알탄 등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여기서 조선이라는 말은 ‘아이신(金)’과 관련이 있다고 추정됩니다(참고로 말씀드리면 쥬신이라는 말을 가장 오랫동안 사용한 사람들이 만주 쥬신입니다). 즉 오손ㆍ오논ㆍ아이신ㆍ아사나 등의 말은 “해가 뜨는 아침” 또는 “밝게 빛나는”이라는 뜻을 가지므로 중국어에서 아침, 또는 첫 빛을 의미하는 ‘조(朝)’를 따오고 ‘아이신(金)’에서 신에 해당하는 중국말을 따온 것이 선(鮮)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니 결국 조선(朝鮮)이란 ‘조(朝 : 뜻을 빌려옴) + 선(鮮 : 음을 빌려옴)’이 되는 것이죠. 이 때 사용된 선이라는 말은 황금의 의미를 일부 가지면서도 말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어미(語尾)가 되겠습니다. 우리말이나 몽골어에는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여자를 의미하는‘니’, 사람을 의미하는‘치’ 등).
***[분석ⓒ] 조(朝)는 뜻을 빌리고 선(鮮)은 ‘산(山)’이란 음을 빌려온 경우**
아사달(阿斯達)에서 조선(朝鮮)이 나왔으며 ‘아사’에서 조(朝)가 나오고 ‘달’에서부터 산(山)이 나오는데 이 산(山)을 선(鮮)으로 잘못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거나 선(鮮)이라는 글자가 산(山)의 대용으로 사용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본다면 ‘아사(阿斯)’는 중세국어의 ‘아’[朝], 일본어의 아사[朝]에 해당되고, ‘달(達)’은 고구려어의 ‘달[山]’에 해당하지요. 그래서 결국 조선이라는 말은 아사달을 한역(韓譯)한 것이라는 말이고 그러면 결국 조선이란 아침처럼 밝게 빛나는 큰 산, 즉 황금의 산 ‘알타이산’을 의미하는 말이 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철ㆍ구리와 같은 금속을 품은 산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쥬신족의 이동경로와 철ㆍ구리ㆍ금 산지와는 상당한 일치성이 있습니다. 그러면 조선이라는 말은 앞에서 본대로 오환산(烏桓山 : 선비), 붉은산(赤山), 부르항산(몽골)과도 같은 의미가 됩니다.
그런데 산(山)을 선(鮮)으로 대신 사용한다? 금방 납득이 되지 않죠?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해석을 지원하는 것으로는 B. C. 2세기경의 책으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자서(字書 : 고금의 문자 해설서)인 『이아(爾雅)』에 “동북에 있어서 아름다운 것으로는 척산의 범가죽이다(東北之美者 斥山之文皮 : 「釋地篇」).”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상하죠? 척산이 조선(朝鮮)이라는 말에 들어갈 자리에 들어가 있지요? 그런데 이 척산(斥山)의 발음이 츠샨[chìishān]입니다. 선(鮮 - 샨[xiān])과 발음이 거의 같습니다. 그래서 조선이라는 말이 이 척산에서 왔다고 하는 학자들도 있기는 합니다. 이 해석은 선(鮮)과 산(山)이라는 글자가 서로 교환되고는 있지만 다른 부분과 연계되어 전체적으로 깨끗하게 해석이 되는 장점이 있지요.
결국 제가 제시한 조선(朝鮮)의 어원(語源)에 관한 위의 세 가지 분석 가운데 어떤 것을 택하든 간에 조선, 또는 쥬신은 ① 태양(하늘) 숭배, ② 금제련술 ③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는 민족(아침의 의미), ④ 찬란히 빛나는 민족이라는 자부심 등을 표현한 말이라는 것이지요.
[그림 ④] 쥬신 이미지 (아침 - 태양 - 금속제련 - 황금)
어떻습니까? 쥬신이라는 말의 분명한 어원이나 실체는 우리가 아직 완벽히 알 수는 없더라도 조선(朝鮮)이라는 말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는 알 수가 있죠?
이런 끝도 없는 분석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또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예맥을 대표하는 국가가 부여와 고구려였고, 고구려는 이후 여러 나라에 의해 계승 발전했는데, 그렇다면 고구려라는 말이 쥬신 전체를 포괄하는 말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라고 말입니다.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이 점을 구체적으로 볼까요?
***(4) 그리고 코리아(Korea), 태양의 아들**
고구려 사람들을 맥족(貊族)이라고 보는데 고구려를 맥(貊)이라고 표현한 것은 후한대(後漢代) 이후 시기를 기록한 사서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진나라 이전에는 예와 맥은 각기 중국의 북방이나 요하(遼河 : 랴오허) 동쪽에 거주한 민족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三品彰英 「濊貊族小考」『朝鮮學報』4, 1953 ; 황철산, 「예맥족에 대하여」『고고민속』1963-2).
『사기』에는 예맥이 확인됩니다만 대체로 맥은 중국 북방의 민족을 말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맥이 의미가 확장되면서 예와 결합하여 예맥이 된 것으로 보고 있지요. 그러니까 진(秦)나라 이전부터 요동에 있던 민족들의 범칭이라고 볼 수 있죠. 그래서 주로 허베이(河北) 지역에 살다가 중국의 동북방으로 밀려갔으며 이들이 다시 흑룡강 부근까지 밀려가서 부여를 건설하고 부여의 일파 가운데 한 무리가 남하하여 고구려를 건설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점은 이전 강좌에서 충분히 보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고구려의 건국시조는 부여의 왕자 출신이라는 기록과 관련지어 생각해보면 예맥의 집단적인 민족이동으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고리’, 또는 ‘구려’라는 말은 이전부터 나타나지만 고구려(高句麗)라는 명칭은『한서(漢書)』에 처음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한(漢)나라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나서 설치했던 4郡[한사군]중에 하나인 현도군(玄菟郡)과 관련이 있습니다(한사군중 진번과 임둔은 실제로 없었던 군현으로 보고 있죠). 후한 때 학자인 응소(應劭)는 『史記』「조선열전」에 대한 주석에서 “현도군은 본래 진번국이었다”고 썼으며 『한서(漢書)』「지리지」에서는 “고구려현은 옛 고구려 오랑캐(胡)이다(현도군 고구려현에 대한 주석).”라는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즉 현도군의 고구려현을 바탕으로 고구려가 생성되었음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대체로 고조선 서부지역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코리족(고리족, 혹은 구리족)에서 기원한 고구려족은 고조선이 멸망(108)한 후 한족 세력들과의 투쟁을 통해서 성장한 국가로 볼 수 있습니다. 고구려가 한족(漢族) 세력을 몰아낸 것은 “현도군은 후에 이맥[고구려]의 침략을 받아 구려의 서북으로 옮겨갔다.”라고 하는 진수『삼국지』의 기록으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도군이 압록강 중류지방에서 쫓겨난 시기가 B. C. 75년경이므로 이 시기엔 이미 고구려가 하나의 국가로서 존재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고구려라는 나라 이름에 대해서 한번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이 고구려, 즉 고려는 오늘날 ‘코리아(Korea)’의 어원이 되는 말이죠. 어떤 면에서 보면 쥬신이라는 말보다도 ‘코리’라는 말이 반도쥬신(한국인)에게는 더욱 연륜이 깊고 익숙하게도 들립니다.
고구려, 또는 고려(Korea)라는 말을 당시에는 어떻게 불렀는지를 알기는 어렵지요. 그 동안 여러 분들에 의해 고구려는 ‘가오리’, ‘가우리’, 또는 ‘고구려’, ‘고구리’ 등으로 불린다는 분석들이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① 고구려라는 말이 애초에 뜻으로 사용된 말이 아니라 기존의 쥬신 말들을 한자어로 표현한 것이라는 점, ② 중국어의 특징인 성조(聲調)는 쉽게 변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변화무쌍한 중국어의 성조(聲調)를 생각해 보면, 2천 년 전의 고유 발음을 안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당시 쥬신의 호수였던 고구려인들은 스스로를 어떻게 불렀을까를 알기는 거의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이 문제를 한번 짚어나 보고 갑시다.
제가 보기에 고구려라는 말에서 구려는 ‘구리(銅)’를 한문으로 표기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이 부분은 ‘똥고양이와 단군신화’에서 충분히 검토했으리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고구려가 고리(고리국)에서 나온 것은 사료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고 고구려가 ‘구리’에서 나왔을 경우 다른 부분도 쉽게 해명되기 때문입니다. 또 그 말(구리 등의 금속)은 쥬신을 다른 민족들과 구별하는 하나의 토템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청동기 시대나 철기시대를 주도한 세력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의미를 요즘 식으로 한번이라도 생각해보신 적은 없습니까?
제 생각엔 구리나 철의 제련 기술은 당시에는 최고 첨단 기술입니다. 그래서 이 말에 가장 가까운 요즘 표현으로 고친다면 ‘IT 강국’, 또는 ‘바이오(Bio) 강국’ 또는 ‘최첨단 신무기 국가’라는 식이 될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것이 바로 고구려에 대한 발음입니다. 중국의 『강희자전(康熙字典)』등에 ‘麗’를 나라 이름으로 읽을 때는 ‘리’로 발음하여야 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러면 고구려는 ‘고구리’가 되겠지요. 그러면 고구려, 또는 구려(句麗)라는 말은 구리[銅]나 쇠[金]와 깊은 관계가 있겠죠. 그래서 저는 고구려에서 구려의 실제 명칭에 가장 가까운 것은 아무래도 구리[銅]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앞의 고(高)는 종족의 성씨나 또는 찬란한, 위대한 등의 의미로 천손을 나타내는 수식어라고 봅니다.
그래도 일단은 의문은 남습니다. 왜냐하면 과거 고려를 출입한 외국 상인들은 고려를 ‘Corea’, 또는 ‘Korea’로 표기했는데 이 발음은 ‘고려’, 또는 ‘고구려’에 가깝지가 않습니까? 우리와 언어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일본의 경우에도 ‘려(麗)’는 ‘れぃ[레이]’, ‘うるわ[우루와]’, ‘うら[우라]’ 등으로 발음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의 명사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많은 의미로 확장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영어나 한문에서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집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도(道)’나 ‘나라(國)’ 같은 단어들입니다. ‘도(道)’는 단순히 길(road)일 뿐만 아니라 근원(origin)·방법(method)·인의(仁義)· 덕행(德行)으로 발전할 뿐만 아니라 통하다·말하다(speak)는 의미까지도 가지고 있습니다.
나라(國)의 경우도 만만치가 않죠? 나라를 의미하는 국(國)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경계[□]가 있고 창(戈)을 가지고 사람[口]이 지키는[或] 마을이라는 의미라고 생각되는데 이것이 오늘날 국가로 쓰입니다. 초기에는 원시부락에서 스스로 지킬 수 있는 경계 정도라는 말로 사용되었겠지만 이것이 발전하여 제후의 영지가 되고 작은 국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삼국시대 초기에는 경상도만 하더라도 수십 개의 나라(國)가 있었다고 합니다. 요즘도 일본어에서도 국(國 : くに)이라는 말은 나라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지방’이라는 말로 많이 사용되지요. 예를 들면 일본어에 ‘유끼구니(雪國)’이라는 것은 눈이 많이 내리는 지방입니다.
이렇게 말의 뜻이 확장되는 것은 아무래도 그 말이 주변의 말과의 관계를 통해서 진행된다고 봐야 합니다. 즉 고구리라는 말은 비슷한 발음이 나는 골(마을)이라는 말과 서로 부딪히면서 ‘(구리족의) 고을’, 또는 ‘(구리족의) 나라’라는 의미로 확장되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원래 구리(銅)를 의미했던 고구리는 고을[村]을 의미하는 ‘골’이라는 말과 상호작용하면서 ‘구리족의 마을’, ‘구리족의 나라’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과거의 종족명은 그 종족이 시조의 이름에서 오는 경우도 있고 그들의 거주지(나라)를 딴 경우도 많기 때문에 그 민족명이 바로 그 민족이 사는 고을 또는 나라를 의미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금(金)나라죠. 금나라 황제의 성도 금씨고, 나라 이름도 금이죠.
따라서 고구려라는 발음이 구리와는 다소 다르게 코리어로 정착될 수도 있다는 얘기지요. 뿐만 아니라 세월이 흐름에 따라 구리가 철기로 바뀌면서 구리라는 본래의 의미가 퇴색하고 천손사상을 보다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이것은 아래의 천손사상을 중심으로 고구려 - 고려를 분석해보면 좀 더 확연해집니다).
여기서 잠시 중국인들은 고구려나 예맥을 얼마나 이해했는지를 보고 넘어갑시다. 『맹자(孟子)』에는 맥족의 맥(貊)자는 과거 중국 동북지방의 고유어인 백(白)ㆍ호(毫)ㆍ박(薄)과 같다고 하며 별칭 박고(薄姑)란 밝다[明](또는 밝고)는 의미라고 풀이합니다(『孟子』告子篇 章句). 산해경(山海經)에서도 “맥이란 본래 우두머리가 되거나 하얗게(밝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貊字本作伯或作白)”라고 합니다(山海經白民國條). 따라서 중국인들도 쥬신인들이 어떤 의도로 나라와 민족의 명칭을 정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죠.
따지고 보면 이들의 나라 이름 속에서는 상당한 민족적 자부심(pride)이 표현되고 있다는 것을 항상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민족을 수달이니, 너구리·순록 등으로 정한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양주동 선생은 백제(百濟)에 대하여 잣․재라 하여 광명한 성(光明城)․나라의 으뜸이 되는 성(國原城)․불과 같이 빛나는 성(夫餘城)의 뜻이 있다고 했습니다. 결국 고구려나 부여·백제가 가지는 의미가 별로 다르지 않죠?
이제 좀 다른 각도에서 고구려라는 말을 다시 살펴봅시다. 즉 고구려라는 말을 쥬신이 가진 보편적인 신앙이자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인 천손사상(天孫思想)의 측면에서 한번 보자는 것이죠(이 분석은 앞의 분석과는 언어적으로 다소 차이는 있습니다. 그러나 민족이나 나라 이름은 수백 년, 또는 수천 년에 걸쳐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의 경로로 해석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다양하게 보자는 것이죠).
고구려 - 발해 - 고려에 이르는 ‘고구려’라는 이름을 가진 국가의 공통성은 그 왕들이 하늘의 자손이라는 생각을 견고하게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죠.『속일본기(續日本記)』에서는 발해왕(대고구려, 또는 후고구려)이 일본에 보낸 국서에 스스로를 고려국왕(高麗國王)이라고 칭하고 있고 스스로 하늘의 자손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천손 사상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늘에 하늘나라[천국(天國), 또는 환국(桓國)]가 있고 그 구체적인 실체는 해와 달입니다. 쥬신족들은 조상이 하늘나라 임금(桓仁)의 아들 [단군신화에서는 환웅(桓雄)]과 하늘나라와 관련된 무리들이 지상 세계로 내려와 지상의 인간들을 다스립니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는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무리(與 또는 黎)라고 칭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봅시다. 하늘에는 태양이 있고 태양은 우주만물의 근원입니다. 물론 요즘에는 태양 이외에도 많은 항성(恒星)들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지만 태양은 당시 사람들이 아는 우주에서는 가장 중요한 존재였을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요. 그리고 이들은 스스로 하늘의 무리 또는 하늘의 백성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하늘 또는 태양을 의미하는 말에다 무리를 나타내는 말을 더하여 나라 이름으로 했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추론할 수 있죠. 이 점을 다시 ① 하늘, 또는 태양의 의미, ② 무리, ③ 하늘 또는 태양 + 무리 등의 순서대로 추적합시다.
‘하늘’이나 ‘태양’을 표현해야 하는데 쥬신족들에게는 문자가 없었습니다(일부 사람들은 문자가 있었을 것으로 말하고 있지만 어쨌든 지금은 제대로 전하여지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중국의 한자말을 빌려서 써야했습니다. 태양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글자들이 바로 ① ‘高(고 : 뜻을 빌림 - 높다)’‘桓(환 : 소리를 빌림 - 환하다)’ ‘白(뜻을 빌림 - 빛나다)’ ‘不[소리를 빌림 - 의미는 불(火)]’ 등이라는 것이죠. 여기에 무리를 나타내는 말은 ② ‘여(與)’ 또는 ‘여(黎)’이므로 이것들을 조합(① + ②)함으로써 뜻은 대동소이하지만 다양한 나라의 이름들이 나올 수 있겠죠.
이제 ① 하늘, 또는 태양이라는 말과 ② 무리를 붙인 말들을 만들어 보면 ‘高黎(고려)’, ‘不與(불여)’, ‘不黎(불여)’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뜻은 모두 하늘의 자손, 또는 그 무리라는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한족(漢族)들은 단지 쥬신들이 부르는 소리를 가지고 기록을 하기 때문에 ‘고여(高黎)’, ‘고려(高麗)’, 또는 ‘고리(高離)’ 라든가 부여(夫餘), ‘불이(不而)’나 불여(不黎) 등의 말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여기서는 한자(漢字) 말이 가지는 의미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민족의 나라’라는 말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고구려, 또는 고려(高麗)와 부여(夫餘)라는 명칭은 쉽게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구려를 천손사상으로 해석하든 구리(銅)로 해석을 하든, 고구려는 태양(하늘) 숭배하고 금속 제련에 능하며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는 찬란히 빛나는 민족이라는 뜻으로 수렴이 됩니다. 다만 고구려는 후기에 갈수록 구리라는 말보다는 천손이 강조되고 있다고 봐야합니다. 그래서 구리를 의미하는 구려보다는 고(高)자가 강조되는 것이죠. 이후 고구려는 고려(高麗)라는 이름으로 다시 지속적으로 계승이 됩니다.
그렇다면 ‘코리’ 역시 쥬신을 의미하는 명칭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마치 현재의 우리가 조선(朝鮮), 코리아(Korea), 한국(韓國 : 汗國) 등의 말들이 동시에 사용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실제로 북한의 공식적인 명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입니다.
이상의 논의로 보면 쥬신은 코리로 불러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쥬신이나, 코리나, 결국은 그 의미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그 어느 것도 ① 태양(하늘) 숭배, ② 금제련술 ③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는 민족(아침의 의미), ④ 찬란히 빛나는 민족이라는 자부심 등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5) 쥬신의 나라**
쥬신의 나라이름에 대해 부분적이지만 체계적인 연구가 최근에 있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한번 봅시다.
2002년 공명성(34 : 북한 사회과학원 역사학연구소 근대사 실장) 박사는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국조보감(國朝寶鑑)』, 『기자조선』 등 370여 권의 고문헌을 7년간 연구한 끝에 우리나라 역대 국호(國號)의 뜻은 모두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고 제시하였습니다. 즉 고조선 이후 한반도에 실존했던 역대 국가들의 나라 이름은 모두 같은 의미라는 것이지요.
월간 『민족21(2003.11월호)』에 따르면, 공명성은「조선 역대국호 연구」(2003)라는 논문에서 우리 민족역사의 많은 나라들이 건국시기와 이름은 서로 다르지만 그 이름에는 ‘동방의 해 뜨는 나라’, ‘태양이 솟고 밝고 선명한 나라’라는 공통된 뜻을 담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예를 들면 고조선의 아사달(阿斯達)은 ‘밝게 빛나는 아침’, ‘광명을 가져다주는 동방의 아침’을 뜻하며 여기에서 유래한 조선(朝鮮)이란 나라이름도 ‘태양이 솟는 동방의 나라’라는 의미라는 것이죠. 부여는 태양·불[火]을 의미하며, 고구려는 태양을 뜻하는 ‘고(高)’와 성스러우며 크다는 ‘구려(句麗)’를 결합한 것으로 결국 ‘태양이 솟는 신비한 나라’라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또 옛말로 박달인 백제(百濟)는 ‘밝은 산’을, 신라는 ‘새 날이 밝는 곳’ ‘태양이 솟는 벌’을, 발해는 ‘밝은 해가 비치는 나라’ ‘밝은 태양이 솟는 나라’를, 고려(高麗)는 ‘태양, 신성하다, 거룩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공명성의 연구는 국호의 의미를 한자의 뜻으로만 해석하지 않고 각 나라 사람들의 시원(혈연적 계보), 건국 과정, 신앙과 염원, 고유 조선어 등을 통해 입체적으로 종합 분석한 것입니다.
공명성 박사의 분석은 일단은 만주 - 한반도에 국한되어 있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본대로 몽골 및 일본 지역 역시 동일합니다. 알타이 지역에서 몽골 만주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지역이나 도읍을 오손(烏孫), 오논(몽골지역), 아이신(만주지역) 등으로 불렀는데 이것은 모두 ‘해뜨는 곳’을 의미하죠? 그리고 일본(日本)은 ‘일본’이라는 말은 그 자체가 이미 ‘해뜨는 나라’라는 의미로 오손·조선·부여·백제·구려와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일본말로 ‘아사(あさ)’라는 말은 아침이라는 말로 알타이어와 완전히 일치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 들리시겠지만 ‘일본’이나 ‘조선’은 같은 의미의 말이라는 것입니다. 조선이란 ‘해뜨는 밝은 아침’, 또는 ‘아침 해[朝陽]’, ‘동녘의 나라[東國]’, ‘해뜨는 나라[日本]’ 라는 의미로 해석이 됩니다.
금나라(청나라의 전신)의 역사서인 ‘금사(金史)’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태조께서 말하시기를) 요나라는 쇠를 나라 이름으로 삼았습니다. 쇠가 단단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쇠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삭아갈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세상에 오직 애신(금 : 金)은 변하지도 않고 빛도 밝습니다. 우리는 밝은 빛[白]을 숭상하는 겨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라이름을 애신[金]이라고 합니다(遼 以賓鐵爲號 取其堅也 賓鐵雖堅 終亦變壤 惟金不變不壤 金之色白 完顔部色尙白 於是國號大金 : 金史 2권 太祖紀).”
이를 보면 쥬신족들은 알타이(金)라는 말이 가진 의미들 즉 ① 금(金)이나 쇠, ② 해뜨는 곳 즉 동쪽(東), ③ 시작하다(始), ④ 밝다[明], ⑤ 하늘을 나는 새[鳥] 등의 의미들을 토대로 나라 이름을 만들어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6) 요약하면**
지금까지 우리는 몽골 - 만주 - 반도(한국) - 열도(일본) 등에 거주한 민족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그리고 그것이 ‘쥬신’이라는 말과 ‘코리’라는 말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점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약간의 발음상이 차이는 있었지만 ‘쥬신’이나 ‘코리’라는 말은 결국 그 내용은 대동소이함을 여러 각도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가운데 한 분이 제게 물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왜 ‘쥬신’으로 불러?”
그렇지요. 그것이 문제가 되겠네요. 제가 지금까지 드린 말씀으로는 고구려(고려· 구려)는 구리족으로 원쥬신에 해당되는 민족인데, 이 민족으로부터 몽골의 코리족이 나왔으며 이들은 북위·거란·몽골 등을 건설하는 민족인데 차라리 코리, 또는 가오리·고구리·고구려·구려·구리 등이 범쥬신을 포괄하는 말로 사용되어야 하지 않는가 말입니다.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쥬신족을 코리족으로 불러도 전혀 문제가 없고 이 두 말은 서로 바꿔 사용해도 상관이 전혀 없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즉 ‘쥬신’이라는 말을 쓰든가, 아니면 ‘코리’라는 말을 사용하든가, 여러분의 자유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몽골 - 만주 - 반도(한국) - 열도(일본) 등에 거주한 우리 민족의 뿌리를 코리(가오리, 또는 코리·고구리·고구려), 또는 쥬신(숙신·조선)으로 불러도 된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몽골 - 만주 - 반도 - 열도에 이르는 민족을 ‘쥬신’으로 부를 것인지, ‘코리’로 부를 것인지는 제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두 개의 명칭 가운데 어떤 명칭이 이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민족 명칭으로 적합한가 하는 점입니다. 이 점에서 저는 ‘쥬신’이 좀 더 적합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코리’ 는 너무 ‘코리아(Korea)’에 치우쳐 이 지역 전체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가 있는 말이기 때문에 저는 ‘쥬신’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쥬신이라는 명칭도 하필이면 조선(朝鮮)이라는 말과 매우 가깝게 들리지만 이 말은 만주족들이 늘 사용해 온 숙신(肅愼), 또는 주신(珠申)·제신(諸申) 등의 말이기도 해서 별 부담 없이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몽골 - 만주 - 반도(한국) - 열도(일본) 등에 거주한 우리 민족의 뿌리를 코리 또는 쥬신이며 앞으로 우리 뿌리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다시 쓸 때는 이 점을 고려해서 사용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다음 장에서는 이 숙신이 중국 사서에서는 어떤 변신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는지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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