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호방하고 파격적인 모습으로 우리의 선입견을 잠시 뒤흔들어 놓기도 했던 북한 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 그러나 그는 여전히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21세기 3대 '불량국가'의 독재자로 낙인찍힌 그가 사교성 있고 잘 웃는 성격의 소유자라면? 그의 입에서 "감옥에서 청와대까지 간 김대중 대통령의 생애를 영화화하면 좋겠다"는 말이 나왔다면?
<사진 1>
지난 2001년 7, 8월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때 24일간 그와 열차여행을 함께 한 콘스탄틴 보리소비치 풀리코프스키(러시아연방 극동지구 대통령 전권대리인 겸 보안위원회 위원)가 당시의 기억과 메모를 토대로 쓴 책 '동방특급열차'가 한국어로 번역·출판됐다(도서출판 중심).
당시 풀리코프스키는 하루에 3~4시간씩 김 위원장과 대화를 나누는 등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가까이서 관찰한 최초의 외국 고위 관리여서 이 책은 2002년 9월 러시아에서 출간했을 때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당시 김정일은 부시 정권이 들어선 뒤 미국의 대북정책이 돌변한 데 대해 유감을 표시하면서 "부시는 재래식 무기 문제를 양국간 협상 의제에 포함시키자는, 우리로서는 결코 수용할 수 없는 요구를 제시했습니다. 핵무기와 미사일에 대한 미국인들의 우려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재래식 무기 문제를 1차 협상 대상으로 삼으려는 그들의 제안은 결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만일 미국이 계속해서 강경노선을 취한다면 우리는 더욱 강하게 나갈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우리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때와 같은 수준에서 대화를 재개할 용의가 있다"며 북미간 대화 재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한편 김정일은 "이전에 우리는 주로 러시아의 공산주의자들하고만 접촉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과의 관계에서 보다 신중하게 접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책에 따르면 과거 북한을 방문한 러시아연방 공산당 지도자들은 김정일에게 "러시아는 미 제국주의에 무릎을 꿇고 국내에는 극도의 기아와 가난이 만연해 있다. 러시아는 국가의 자주성을 상실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러시아를 직접 방문한 김정일은 러시아 공산당이 인민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푸틴 대통령과 만났을 때 그는 "앞으로 나는 비공식적인 정보는 믿지 않기로 했습니다"라고 말했고, 방문 마지막 날 푸틴에게 보낸 전문에서는 "나는 귀하께서 공산주의자들이 러시아에서 이루지 못한 일을 꼭 이루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프레시안은 김 위원장의 개인적 취향에서부터 군사식견,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회고, 외교에 얽힌 비화에 이르기까지 비밀의 커튼 뒤에 숨겨졌던 그의 솔직한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이 책의 주요 대목을 3차례로 나누어 소개한다. 편집자
***여로의 시작**
러시아 전역을 끝에서 끝까지 열차여행을 할 수 있게 되리라고는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굉음 소리와 함께 군용 열차를 타고 체첸전에 투입된 적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짧은 여정이었다. 24일간의 열차여행, 그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2001년 7월 26일부터 8월 18일까지 나는 열차를 타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수행했다.
<사진 4>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중심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1년 늦봄이나 초여름경 러시아를 방문할 것으로 예상됐었다. 그를 맞이할 모든 준비가 완료 단계에 있었으나 갑자기 그 모든 것이 중단되었다. 북한 지도자는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데 자기만의 방식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의전상의 비밀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다. 그는 방문에 대해 논평하거나 언론에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정상들이 만나서 결의를 채택하고 실질적인 성과를 얻은 뒤에나 가능하다고 본다. 그는 예측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서둘러 공개하지 않는다. 기대하던 바가 예기치 않게 실현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전 준비 과정은 비밀리에 진행되어야 한다. 김정일은 외국의 지도자들이 북한을 방문하거나 자신이 해외여행을 할 때도 항상 이토록 조심스럽게 준비한다.
북한 지도자가 러시아를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은 대통령 비서실과 외무성, 철도부의 일부 간부들에 국한되어 있었다. 김정일의 러시아 방문 일자는 7월 말에서 8월 초까지 매우 유동적이었다. 그를 맞이하는 방안이 다양하게 검토되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사실, 즉 그가 열차를 타고 연해주 지방의 러시아 국경 지역에 있는 하산 역을 통과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김정일의 전용열차는 그의 러시아 방문 훨씬 이전부터 북한측의 두만강 역에서부터 하산 역을 지나 우수리스크 시까지 수 차례에 걸쳐 시운전을 했다. 열차가 이 구간 2백38킬로미터를 통과하는 데는 약 6시간이 소요되었다. 북한의 철도는 러시아의 철도에 비해 너비가 좁기 때문에 바퀴를 갈아 끼우는 작업이 병행되었다. 밤마다 실시된 시운전은 모두 성공리에 끝났다. 그러나 열차가 막상 김정일을 태우고 연해주 지방을 향해 출발하자마자 바퀴 축이 과열되는 축상발열(軸箱發熱) 현상이 일어났다. 필시 윤활유가 지나치게 많았거나 장기간 보관 과정에서 윤활유가 변질되었을 것이다. 여정 초기 아무르 주 행정 수도 블라고베셴스크 시까지는 수 차례에 걸쳐 예정에 없이 정차해야 했다. 광활한 벌판을 달릴 때는 기술 점검이 가능한 곳 외에는 정차하지 않았다. 여행 일정에 관한 한 시간표대로 운행되었으며 기다란 열차는 정차역 사이를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질주했다.
처음에는 러시아 전역을 여행하는 동안 해당 연방지구 대통령 전권대리인*들이 번갈아 가며 김정일을 수행할 것으로 추정했다. 나는 김정일을 치타까지 수행하고, 그곳에서부터는 시베리아 지구 대통령 전권대리인이 나와 교대하도록 되어 있었다. 7월 24일 나는 모스크바로 호출되었다. 대통령이 국빈 수행은 한 사람, 즉 풀리코프스키가 맡아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통보를 받았다. 친선 국가의 정상을 그가 모르는 새로운 사람들이 매번 교대로 수행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비좁은 객실에서 러시아의 동쪽 국경에서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3주 동안에 걸쳐 왕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그리 달갑지 않았다. 물론 평생 한번쯤은 조국의 광활한 영토를 열차로 횡단하고 싶은 개인적인 바람은 있었지만 동일한 노선을 왕복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진 이상 그에 따를 수밖에 도리가 없지 않은가.
<사진 2>
<사진 3>
나를 포함한 우리측 인사 몇 명은 헬기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산으로 이동했다. 나머지 김정일 위원장의 안전담당 요원 약 80명은 우수리스크에서 열차로 이동했다. 북한 대표단을 수행하기 위해 우리가 탈 객차 7량이 특별히 마련되었다. 열차를 타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무더위에 높은 습도, 모기, 날벌레 등이 밤새 괴롭혔다. 그 밖에도 걱정거리가 또 하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외국 원수를 처음으로, 그것도 김정일과 같이 수수께끼에 싸인 인물을 맞이하여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러시아와 북한은 국경을 맞댄 이웃 나라다. 그러나 극동지역 출신인 우리들마저도 북한의 실상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소비에트 시절에는 북한에 대해서는 오로지 찬양 일색이었다. 소련 시절 페레스트로이카가 시작되면서 우리의 대중 매체는 북한의 실상에 대한 일고의 분석도 없이 과거의 찬양을 무조건적인 비판으로 대체했다. 이제 북한과 북한 주민들에 대해 가장 권위 있는 인물인 국가 정상으로부터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2001년 7월 26일 오전 8시 김정일의 러시아 방문이 시작되었다. 열차가 예정보다 몇 분 지체된 가운데 하산에 도착했다. 하산 역의 플랫폼이 매우 낮아 목수들이 계단으로 된 목재 승강대를 제작해서 열차가 정차할 곳을 예측하여 미리 설치해 두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열차가 정차하자 임시 플랫폼은 승강구 앞이 아니라 객차 중앙에 놓이게 되었다. 철도부 직원들은 재빨리 카펫이 깔린 목재 발판을 김정일이 하차하는 승강구 쪽으로 옮겨 놓았다.
북한 지도자가 탄 객차의 문이 열리자 김정일이 출구에 나타나 환영객 모두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며 미소 띤 얼굴로 몸을 굽혀 인사한 뒤 객차에서 내려왔다. 나는 김정일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면서 러시아 땅을 밟은 그를 환영했다. 그는 손에 힘을 주어 악수를 했다. 나는 그의 손이 매우 크고 힘이 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정말로 건강하고 다부졌으며 약간 뚱뚱한 편에 속했다. 우리 둘은 체격이 거의 비슷했으며 키도 거의 같았다. 내 키는 1백80센티미터인데 그는 약간 작았다. 나는 이미 2000년 7월 푸틴 대통령을 수행한 러시아 대표단의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했을 때 수 차례 그를 본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는 의전 관계상 어느 정도 떨어진 위치에서 그를 보았지만 이제는 그와 늘 함께 있어야 했다.
북한측 대표단을 위한 5량의 객차와 우리측을 위한 7량의 객차가 한 조로 편성되어 러시아 전역을 여행했다. 김정일은 나에게 점심이나 저녁 식사 때 매일 만나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매일 서너 시간씩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양측 통역사들을 통해서 일 대 일로 대담을 했으나 나중에는 회의실이 마련된 객차에 우리 두 사람을 수행한 양측 인사들이 초대되어 대화는 한층 더 광범위한 성격을 띠게 되었다.
여행 초기 김정일은 특별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약간 긴장하는 듯했다. 모든 대화는 김정일이 주도했다. 우리는 그의 방문을 준비하면서 그를 우리측 객차에 초대할 수 있는지에 대해 타진해 봤지만 결국 러시아연방 대통령 전권대리인의 지위가 외교 관례상 그러한 제안을 할 수 없는 것으로 결말이 났다. 김정일 자신 또한 우리측 객차를 방문하고자 하는 뜻을 한번도 내비치지 않았다.
***김정일의 '방탄열차'는 스탈린의 선물**
기자들은 김정일의 전용열차가 일본에서 제작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다. 나와 김정일이 정기적인 만남의 장소로 사용한 객차는 스탈린 대원수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첫 번째 지도자였던 김일성에게 선물한 것이다. 물론 그 뒤 객차들을 일본에서 현대화했을 가능성은 농후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순수한 소련제이다.
기자들은 김정일의 러시아 방문 관련 기사에서 그의 전용열차를 끊임없이 ꡐ방탄열차ꡑ라고 보도했다. 모든 객차가 방탄용 철판으로 되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근거가 없다. 철도 장비에 정통한 전문가들이 내게 말한 바에 따르면 객차들은 그저 평범한 일반 차량일 뿐 방탄용 철판이 깔린 것은 김정일 전용칸의 바닥뿐이었다. 필시 사다리꼴 지붕으로 덮여 있고 작은 창문-총안(銃眼)이 나 있는 객차의 모양 때문에 기자들이 착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디젤 발전기에 불과했다. 이 디젤 발전기는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어서 실제로 방탄 차량처럼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