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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 높은 분 오면 우린 바퀴벌레처럼 숨어야 해요"

[인천공항 비정규직 연속 기고 ②] 청소 노동자

2001년 개항한 후 12년 만에 처음으로 인천공항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이 벌어지고 있다. 인천공항은 국제공항 서비스 평가에서 8년째 1등을 기록하고 있지만 이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87%는 비정규직이다. 1년을 일하나 10년을 일하나 신입 사원인 노동자들이 세계 1등 공항의 안전과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파업에 나선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말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인천공항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 어떤 노동이 필요하고, 그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왜 파업에 나섰는지를 말이다. <편집자>


인천공항 청소 노동자는 숨는다

한 청소년 인권 활동가를 만난 적이 있다. 그 활동가는 길거리의 청소년을 얘기하며, 청소년들이 바퀴벌레 같다고 했다. 도심 길거리에 모여 있는 청소년에게 말을 걸려고 다가가는 순간, 바퀴벌레처럼 자취를 감춘다는 얘기였다. 조금 기다려보면 그들은 어느새 어디선가 나타나 네온사인 번쩍이는 길거리를 다시 채운다. 자기들만의 집단을 만들고 살아가지만, 낯설거나 자신들을 가르치려고 드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감쪽같이 사라지는 길거리 청소년을 얘기하며 그 활동가는 마음 아파했다.

▲ 청소할 때 쓰는 카트 속에는 액체 세제, 락스, 방향제, 손걸레, 마포 걸레, 기름걸레, 빗자루, 쓰레받기가 들어있다. 하다못해 쓰레받기 하나도 잘 지급해주지 않아 길게는 13년째 쓰이고 있는 손때 묻은 카트다. ⓒ인천공항지역지부 환경지회
인천공항공사에서 일하는 청소 노동자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바퀴벌레 얘기가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얘기를 들을수록, 환경미화 노동자들은 다른 이로 하여금 바퀴벌레 취급을 받고 있다고 느껴졌다.

"높은 사람들이 지나가면 우리는 화분 뒤에라도 숨어야 해요. 얼른 없어져야 해요. 청소하는 사람은 추잡해 보이니까."

높은 사람들이 지나가면 사라져야 하는 사람들. 하지만 항상 그곳에서 공항을 쓸고 닦아야 하는 사람들. 마치 불을 딱 켜면 '사람' 눈에 띄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숨어야 하는 그들의 삶이 바퀴벌레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다. 뭘 잘못한 것도 없고 윤이 날 정도로 청소하는 노동자들이지만, 숨는 게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길거리의 아이들은 자신이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피하기 위해 바퀴벌레처럼 숨지만, 공항의 청소 노동자들은 자신을 바퀴벌레 취급하는 사람들 때문에 바퀴벌레가 된다. 그래서일 것이다. 공항의 청소 노동자들은 일이 고되고 임금이 박한 것보다 더 비참한 순간을, '일하다가 숨어야 할 때'로 꼽는다.

낮에 쓰레기 치우는 일본 청소 노동자들

공항의 청소 노동자들은 일하다가 숨어야 하지만 아예 처음부터 사람들이 보지 않는 시간에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쓰레기를 수거하는 청소업체 노동자들이다. 그들은 밤이 깊어갈 때쯤 일을 시작해서 새벽이 오기 전에 일을 끝낸다. 쓰레기차가 지나갈 때 나는 역겨운 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들이 밤에 일하는 사실을 당연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본의 환경미화원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보통의 사람들처럼, 해가 떠 있을 때 일한다.

일본의 쓰레기차는 더럽고 냄새나지 않을까? 한국은 꼭 밤에 쓰레기를 수거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오히려 쓰레기를 낮에 내놓으면, 사람들이 그렇게 쓰레기를 막 버리는 일이 줄지 않을까? 여기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일'에 대한 두 나라의 인식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우리가 모두 만들어낸 생활의 결과물인 쓰레기를 치우는 일은 이 사회를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일을 일반 사람들과 격리해야 할 일로 생각한다. 아니, 하찮게 여기고 더러워한다. 세계의 시민들과 여행객이 모여드는 공항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일을 하는 노동자는 더럽게 여기는 공항공사가 청소 노동자들을 바퀴벌레로 만들고 있다.

▲ 적정 길이 30cm.인 휴지. 평가 기간에 손님 한 명이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오면 청소 노동자들은 밖으로 나온 휴지 길이조차 매번 맞춰줘야 한다. ⓒ인천공항지역지부 환경지회
사람은 바퀴벌레 취급을 받지만, 그 노동자들이 하는 일은 세계 공항 서비스 평가(ASQ) 8연패의 영광을 만들어냈다. 한 달에 2, 3번 있는 서비스 평가 날에는 그야말로 비상이다. 평가 항목 중 '청결'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아파도 병가를 쓸 수 없고, 집안 사정이 있어도 연차를 쓸 수 없다. 무엇보다도 힘든 것은 하루 종일 화장실에서 대기하며 1분 1초도 화장실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손님 한 명이 화장실을 사용하면 바로 들어가서 정리하고, 손님이 없어도 절대 화장실을 나갈 수 없다. 간식을 먹고 싶어도 화장실에서 먹어야 한다.

"그렇게 열심히 해서 우리 공항이 1등 하면 저희도 기분 좋죠. 뿌듯하고. 그리고 1등 하면 3만 원이든 5만 원이든 분기별로 포상금도 줬고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원래 우리가 받아야 했을 임금인데 따로 떼어 놓고 있다가 선심 쓰듯이 준 거예요."

공항공사는 용역 업체와 노동자에게 줄 인건비를 정하고 하도급 계약을 맺는다. 하지만 업체는 그 금액을 모두 지급하지 않았다. 지급하지 않은 금액 일부를 '포상금'으로 기분 내며 줬던 것이다.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자부심으로 서비스 평가를 위해 열심히 일했는데, 이 정도면 이용당했다는 느낌이 든다. 속상하다.

이뿐만 아니다. 2010년에는 시간 외 수당과 휴일 근무 수당을 반도 못 받고 있었던 일이 밝혀졌다. 받아야 할 돈이 13만4900원인데 4만9516원밖에 못 받고 있었던 것이다. 명백한 근로기준법 위반임에도 업체는 뻔뻔했다. 나이 든 청소 노동자라고 뭘 모를 거라 생각했나 보다. 화가 난 청소 노동자들은 그 자리에서 들고 일어나 노동조합을 만들고 여태껏 모르고 받지 못한 체불 임금을 받아냈다.

우리는 바퀴벌레가 아니라 사람이다

▲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함께 살자' 8보 1배를 진행하는 모습. ⓒ인천공항지역지부 환경지회
파업 12일째, '비정규직 함께 살자'를 외치며 8보 1배를 했다. 700여 명의 사람이 여객터미널에서 줄지어 절을 하며 "비정규직도 함께 살자"라고 외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화장실 밖으로도 나오지 못하고 VIP 손님이 나타나면 숨기 바빴던 노동자들이었다. 청소하고 있어도 승객은 눈앞에 담배꽁초를 버렸고 이에 항의하면 '내가 이렇게 쓰레기 버려줘야, 당신들이 먹고사는 거야'라는 말도 들었던 노동자들이었다. 그런 청소 노동자들에게는 이 모든 일이 가슴 벅찬 일이다. 내가 일하는 일터에서 구호를 외치고 손뼉을 치고 노래를 부르고 율동을 배우는 일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여태까지 일하면서 찍소리도 못하던 곳에서 막 크게 소리치니까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아요. 외국인들이 사진도 많이 찍고, 직원들도 많이 쳐다보고. 어찌나 뿌듯한지 몰라요."

나뿐만 아니라 이후에 들어올 사람을 위해 2014년 1월이 정년퇴직인 노동자, 7월이 정년퇴직인 노동자들도 기꺼이 파업에 동참하고 있다. 그리고 파업을 하며 청소 노동자들은 자신이 여태껏 했던 일의 가치를, 우리도 사람이었음을 깨닫고 있다. 그래서 파업하는 청소 노동자들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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