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들과 동거한 지 11년차. 유의선(43) 씨는 그동안 고양이 두 마리를 장기간 맡았고, 두 마리의 임종을 지켜봤으며, 지금은 남은 노령묘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처음 고양이를 키우기는 순탄치 않았다. 2003년 봄, 유기 고양이 한 마리가 우연히 유 씨에게 왔다. 봄에 온 고양이에게 '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싱글인 딸을 걱정하는 어머니가 제일 먼저 싫어하셨다. "혼자 사는 여자가 고양이를 기르는 건 청승맞아 보인다"는 이유에서였다.
"엄마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부정적으로) 바라볼 것 같아서 싫어서 그런 거예요. 지금은 10년이 넘어서 어머니도 많이 포기하셨어요."
시간이 흘러 고양이 식구들은 늘었다. 2004년 "집에서 키우다가 버린 것 같은데, 동네 사회복지관장실에 드러누워" 직원들이 곤란해 했던 '춘이'가 왔고, 2005년 이민 가는 지인의 새끼 고양이 '하루'가 왔다. 이후에도 유기 고양이 한 마리와 주인의 출산으로 장기 탁묘처가 필요했던 고양이들이 왔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유 씨는 더불어 살기 위해 많은 것을 고려해야 했다. 세입자라서 더욱 그랬다. 집주인이 반려동물 동거를 허락해야 했고, 집에 고양이 화장실을 둘 수 있는 베란다가 있어야 했다. 그렇게 고른 집이 서울 성북동 "산 밑 낡은 주택"이었다. 밤에는 고양이와 산책도 할 수 있는 산자락이었다.
학대받은 고양이
유기 고양이를 키우다 보니 다른 고양이들이 눈에 밟히기도 한다. 특히 사람이 다치게 하거나 방치한 고양이를 볼 때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한 번은 사무실 밑에 쓰러져 숨을 헐떡이는 고양이를 발견했는데, 고양이 배에 사람 신발 자국이 남아 있었다. 수의사는 "사람이 발로 고양이를 밟았거나 찼다"고 진단했다. 그 고양이는 이틀 만에 죽었다. 사인은 내장 파열이었다. 유 씨가 장례비를 댔다.
식당 앞에 개 목줄에 묶여 있는 주먹만 한 새끼 고양이를 발견한 적도 있다. 고양이는 젖을 아직 안 뗀 것 같고, 눈에 염증이 생겨서 진물이 나 있었다. 유 씨는 "눈을 닦아주고 나오는데, 그 고양이를 병원에 데리고 갈지 고민하다 말았다"고 했다. "그런 거 보면 너무 속상해요. 차라리 길고양이로 살게 놔두기라도 하지."
길고양이에게 자꾸 정이 갔던 것은 유 씨가 기르는 고양이 '춘이' 때문이라고 했다.
"춘이도 처음에는 정신적인 트라우마가 있었어요. 전에 기르던 사람이 예쁘다고 했다가 발로 찼다가 한 것 같아요. 눈 마주치면 드릉드릉 골골대다가 갑자기 확 물고, 아침에 일어나면 (제가) 피가 철철 나 있고 그랬어요. 지금은 안 그러는데, 전에 키우던 사람이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아요. 키운 지 10년이 지난 지금 춘이는 꼬리 흔드는 '개과' 고양이에요."
▲ 11살 노령묘 춘이. 사람을 잘 따르던 춘이는 2004년 동네 사회복지관에 "드러누워"서 유의선 씨가 업어왔다. ⓒ유의선 |
유 씨는 '음식이 얼 정도로 오늘 너무 춥다' 싶은 날이면 가끔씩 길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주기 시작했다. '캣맘'의 길에 접어든 것이다. 지역 주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여기다 밥 놓지 말라고, 고양이 낀다고, (음식물) 쓰레기봉투 뜯고 지저분하다'고. 그러면 '네' 하고 피해요. 굳이 싸워서 좋지 않거든요. 나랑 싸우고 엄한 데 화풀이하지 않게 안 부딪치려고 해요. 밥 줄 때도 밤에 잘 안 보이는 데다 줘요. 봄, 가을에는 안 주고, 눈 많이 올 때만 줘요. 단, 집에서 국물을 우려내고 남은 멸치는 생기는 대로 족족 창밖으로 던지죠."
일부의 '민폐'가 싫다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과는 달리, 도시에서 반려동물과 타인 모두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기란 쉽지 않다. 개나 고양이를 싫어하는 박서진(가명·25) 씨는 "개와 고양이라는 생물 자체가 싫다기보다는, 키우는 사람들의 민폐 끼치는 태도가 싫다"고 말했다.
아파트에서 짖는 개를 조치하지 않거나, 목줄을 매지 않고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을 예로 들었다. 박 씨는 "목줄을 매지 않은 개가 달려와서 무서워서 피하면 주인이 사과해야 하는데, 웃으면서 '우리 개는 안 물어요'라고 하거나 '아니, 그렇게 큰 아가씨가 강아지를 무서워해?'라는 반응을 보일 때 짜증난다"고 말했다. 옆집에 개가 짖어서 문제를 제기하면 "아기 울음 소리는 참으면서 왜 개 짖는 소리는 못 참느냐"고 하거나, "불쌍하게 수술하란 말이냐"는 말이 돌아와도 싫다고 했다.
목줄을 매고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도 서운할 때가 있다. 개를 키우는 최승환(가명·52) 씨는 "긴 목줄을 채우고 산책하는데, 우리 강아지가 지나가던 사람에게 호기심을 보이며 가까이 간 적이 있다"며 "그 사람이 놀라서 '이 똥개 새끼가…'라고 욕을 해서 서운했다"고 말했다.
집에서 키우는 개나 고양이를 둘러싼 문제는 사람이 주의를 기울이면 해결되기도 하지만, 길고양이의 경우 문제는 조금 더 복잡하다. 박 씨는 "다른 동네에서 와서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가는 사람들 때문에 고양이들이 특정 장소에 모이고 (발정 날 때) 밤에 우는 게 짜증난다"며 "솔직히 굶어죽을 고양이는 죽도록 둬야 일정한 개체 수가 유지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유기 고양이들이 늘어나는 것은 비애묘인에게도 달갑지 않다. 박 씨는 "한때 고양이 키우기 열풍이 일어난 이후로 길고양이들이 늘어난 것 같다"며 키우다 버리는 사람들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길고양이 급식을 둘러싼 논쟁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수의사는 "길고양이에게 밥을 준다고 해서 개체 수가 반드시 늘지는 않지만, 먹을 게 없으면 영양 부족으로 죽을 가능성은 있다"면서도 "다만,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기에 다른 고양이 영역에까지 가서 밥을 먹기는 어렵고, 한 고양이가 사라지면 다른 고양이가 그 영역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그는 "고양이가 먹이를 못 구하면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고양이들끼리 영역 다툼을 할 수 있고, 고양이가 사라지면 쥐나 비둘기 같은 다른 생물이 증식하는 등 기대하지 않았던 사회 문제가 생길 수는 있다"고 덧붙였다.
사람에게 '발라당' 하는 길고양이?
'캣맘'과 '캣대디'들은 유기 동물, 특히 길고양이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안타까워했다. "더럽다, 사납다, 복수하는 동물이다, 부정 탄다" 등 다양한 문구들이 예시됐다.
고양이를 키우는 김지민(가명·27) 씨는 "카카오톡 프로필에 내가 키우는 고양이 사진을 올려놓은 것을 보고 지인들이 징그럽거나 무섭다고 하면 대꾸는 안 하지만 속으로 상처는 받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길고양이가 사람에게 적대적인 것은 고양이를 버리거나 싫어하는 사람 때문일 수도 있다"고 했다.
김 씨는 "몇 년 전 영국에 잠시 살았을 때 길고양이가 거의 없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영국에서는 우리처럼 고양이가 요물이라거나 부정 탄다는 시각도 없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대학 캠퍼스에서도 사람에게 '발라당'을 하는 고양이도 있다"며 "돌 던지고 쫓아내는 사람이 거의 없고, 대학생들이 먹을 것을 주니 고양이가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외국에서도 고양이와 사람의 공존을 모색하는 곳이 있다. 일본의 '고양이 섬' 아이노시마나, 폐광 마을에서 '고양이 관광지'로 탈바꿈한 대만의 허우퉁이 그런 경우다. 이곳에서는 고양이들이 사람을 보고도 잘 도망가지 않는다.
▲ 길고양이. ⓒ프레시안(김윤나영) |
그냥 같이 살 뿐인데
유의선 씨는 "사람도 있는데 왜 동물한테 공을 들이느냐는 말을 듣곤 하는데, (동물도) 똑같은 생명"이라며 "생명과 동거하는 것에 대해 '저 사람의 가족은 사람이 아니고 고양이일 뿐이구나' 하고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유 씨에게 반려동물이란 어떤 존재냐고 물어봤더니 "든든한 동반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반려동물과 사는 것'은 '같이 늙어간다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에게 "학대하거나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고양이가 사람같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집에서 사람들과 술 마시다가 언성이 높아졌는데, 갑자기 '봄이'가 손님에게 적대감을 보이면서 나의 편을 들거나, 몸이 아파서 눈을 떴는데 옆에 앉아서 지켜봐줄 때, 제가 자고 있으면 앞발을 볼에 살짝 얹을 때 그래요. 돌이켜 보니 준 것보다 받은 것이 더 많아요.
지금은 고양이들도 다 나이가 들었어요. 11살, 10살이어서 작년에 환갑잔치를 해줬어요. (고양이들 몸에) 검버섯도 생기고, (고양이가 나이 들어서) 이젠 침대에도 못 뛰어내리거든요. 얘들이 죽고 나면 다신 못 기를 것 같아요. 지금부터 길러서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지 모르겠거든요."
죽이는 대신 '불임 수술 후 방사' 선택한 지자체 박서진(가명·26) 씨는 "집 주차장에서 발정 난 고양이가 내내 울면 싫다"고 말했다. 지자체는 길고양이에 대한 주민들의 민원으로 골머리를 앓아 왔다. 이에 대한 지자체의 해법은 이전까지 발정 난 고양이를 포획한 뒤 안락사시키는 것이었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지난 5월 발표한 '2012 동물 보호 조사 현황'을 보면, 지난해 발생한 유기 동물 9만9254마리 가운데 개는 5만9168마리(59.6%), 고양이는 3만9136마리(39.4%)였다. 유기 동물 중에 오직 2만7223마리(27.4%)만이 사람에게 다시 분양됐다. 2만3012마리(27.4%)는 영양 상태 부족 등으로 자연사했다. 2만4315마리는 안락사 처리됐다. 동물 보호 단체들은 유기 동물 안락사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왔다. 지자체들은 이들 단체의 의견에 따라 기존 안락사 정책에서 길고양이를 포획한 후 '중성화(불임) 수술'을 하고 방사하는 정책(TNR : Trap-Neuter-Return)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한 마리당 10만 원을 들여 안락사시키느니, 차라리 비슷한 비용(9만~11만 원)을 지원해 불임 수술을 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다. 애묘인과 비애묘인의 타협책인 셈이다. 물론 인위적으로 고양이의 개체 수를 조절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반대 의견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수의사는 "최근 미국에서는 TNR도 수술 후 감염으로 인한 사망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약물 복용을 통해(먹이에 약을 타서) 불임을 만드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면서도 "안락사보다는 TNR(수컷은 5만~10만 원, 암컷은 10만~15만 원)이, TNR보다는 약물 요법이 비용이 더 든다는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안락사에 대해서 그는 "미국의 동물보호단체가 한 조사 결과를 보면, 고양이 일부를 포획해 안락사시켜도 개체 수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보고가 있긴 하다"며 "전쟁 때 인구가 일시 감소했다가 전쟁이 끝나면 오히려 폭증하듯이, 모든 길고양이를 잡아들여 몰살하지 않는 한 일부만 포획해 안락사시켜서는 다시 개체 수가 원상 복구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지민(가명·27) 씨는 "길고양이가 생기는 것도 사람이 키우다 버렸기 때문이고, 사람이 (생태계를 파괴함으로써) 길고양이의 야생 공간을 빼앗은 것일 수도 있다"며 "TNR은 길고양이와 인간이 공존하는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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