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을 적용받는 당사자인 노인들은 박근혜 정부의 복지 정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프레시안>은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있는 노년유니온 사무실에서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을 만났다.
고 사무처장은 "정부가 위에서 일방적으로 뿌리는 정책이 노인들의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꼬집었다. 부자 노인과 가난한 노인을 나누다 보니, 정책과 현실이 괴리된다는 것이다. 기초연금 공약이 사실상 파기된 것에 대해서 그는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20만 원을 지급해도 노인 빈곤율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노년유니온은 청년유니온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만들어진 세대별 노동조합이다. 노인이 바라는 노인 정책을 당사자의 목소리를 모아 만들자는 모토로 지난해 출범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편집자>
프레시안 : 노년유니온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고현종 : 우리나라가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노인 복지, 일자리, 의료 문제가 불거졌는데,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위에서 일방적으로 정책을 뿌리는 식이었다. 그러니 어르신들은 생활에서 느끼는 것과 정부 정책 간에 불일치를 경험한다.
어르신이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조직이 필요했다. 기존 노인 조직으로는 대한노인회, 어버이연합 등이 있다. 이들 단체도 권익 단체나 정치적 단체이긴 한데, 정부에 일상적으로 노인 정책에 대한 목소리를 전달하는 활동은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정부와 안정적으로 정책을 조율하고, 협상할 제도적인 틀을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노동조합이라는 형식을 통해 교섭권을 얻어 정부에 정책을 제안하고, 검토하고, 조언하자는 의견이 모였다.
부자 연금 수급자, 가난한 연금 탈락자?
프레시안 : 정부 정책과 현실이 어떻게 괴리됐나?
고현종 : 정부에서 하는 노인 일자리 사업이 있는데, 정부 예산이 한정되다 보니 자산을 조사해서 기초연금을 받는 사람에게 우선 준다. 자기 명의의 집 한 채만 있고 그 밖의 소득이 없어 생활하기 어려운 어르신도 있다. 그분들에게도 일할 기회가 균등하게 보장돼야 하는데, 집 한 채 있다고 해서 기초연금도 못 받고 일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 ⓒ프레시안(김윤나영) |
그러니 현장에서 어르신들이 집 등 자산을 갖가지 편법으로 증여하거나 숨기는 일이 생긴다. 그렇게 노인 일자리 사업 참여하려고 하고, 가난하신 어르신은 (일자리를 빼앗겼다고) 그런 어르신들을 고자질한다. 어르신들 간에 갈등과 감시, 불협화음이 일어난다.
의료 보장 관련해서도 문제가 있다. 한 사람 의료비 지출이 60세 넘어서 수입의 50% 이상 들어간다. 조사해보니 의료비가 한 달에 5~10만 원, 많이 들어가면 20만~30만 원 든다. 기초연금을 많이 받아야 9만80000원이다. 약값도 안 나온다. 자식에게 돈 받아야 하는데, 자식이 '못 나가면' 용돈을 못 받는다. 그러면 폐지를 주워야 하는데, 기껏해야 한 달에 15만 원이다. 이분들은 밥을 뭐로 먹고 생활은 어떻게 하나? 그러다 보니 당연히 한국 노인 빈곤율이 OECD 1위, 노인 자살률 1위다.
기초연금 공약 파기, 장관 말고 대통령이 나서야
프레시안 :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초연금 공약 수정에 책임지고 사퇴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알려졌는데, 어떤 생각이 드나?
고현종 : 진 장관이 새누리당 정책위의장도 하고, 국민행복추진위원회 부위원장도 했다. 기초연금 만드는 데 약속을 못 지켜서 책임지고 사퇴한다는 것 같다. 애초에 대통령 공약 사항이었다.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라도 내서 왜 못 지키는지, 대안은 있는지, 사과라도 해야 한다.
우리 요구는 일단 대통령이 공약이라도 지키라는 것이다. 사실 어르신들이 20만 원 받아도 노인 빈곤율을 해소하는 데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는 보고가 있다. 20만 원이 아니라 30만 원 정도는 돼야 그나마 노인 빈곤율을 해소할 수 있다. 일단 20만 원이라도 지급하고, 부족하면 증세하고, 차등을 두지 않고 모두에게 줘야 한다.
"어르신 젊으세요" 하면 기분은 좋겠지만…
프레시안 : 최근 <조선일보>의 신중년 기획이 많은 호응을 얻었다. 고학력 스펙을 가지고 몸도 건강한 60~75세를 일컫는 용어다. 노년유니온 회원들은 어떤가?
고현종 : 노년유니온의 어르신 회원도 70세가 넘었는데 건강하시다. 신체는 건강한데, 일자리가 없거나 있어도 질이 낮다. 급여가 용돈 수준인 10만~20만 원이다. 이분들이 노후 소득이 없다 보니 사회에 참여할 방법이 없다. 주말 되면 무료인 전철 타고 서울에서 천안, 춘천까지 갔다가 김밥 한 줄 먹고 오는 일과를 많이 보내신다.
어르신들이 사회 참여하고, 경험도 살리고, 사회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노후 소득이나 의료를 먼저 보장해야 한다. 어르신들한테 "어르신 젊으세요, 청년이에요"라고 얘기해주면 기분은 좋은데, 뒷받침 되는 환경이 없다. '신중년'은 극소수다. 현실은 노인 빈곤율이 45%에 육박한다. 2명 중 1명은 빈곤한데, 여유 있는 어르신들이 몇 분이나 되겠나.
어르신들은 정년 제도 폐지를 원한다
프레시안 : 노년층이 나이 들어서까지 일을 하고 싶은 것도 한국의 특수한 사정이 있지 않을까. 프랑스에서는 2010년에 정년을 60세에서 62세로 연장하는 정부 법안에 반대해 수십만 명 규모의 시위가 열렸다. 은퇴하면 연금을 받는데, 정부가 재정 지출을 줄이려고 정년을 연장하자 노동계가 반대했다. 노후 복지가 잘 갖춰지지 않은 한국과는 다른 풍경이어서 생경했다.
고현종 : 노후 연금 제도가 잘 돼 있으면 어르신들에게도 그런 욕구가 있을 것이다. 자식 키우고 나면 누구나 편하게 노후를 보내고 싶지 않겠나. 우리 사회에서는 일하지 않으면 노년에는 먹고살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어르신들은 정년 연장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정년 자체가 폐지되길 바란다. 정년 때문에 차별받기 때문이다. 용역 업체 끼고 경비직 하시는 분들이 일 잘하다가 갑자기 정년 60세가 넘으면 쫓겨난다. 일은 60세 넘어도 잘할 수 있는데, 업체가 그만두라고 한다. 다시 일하고 싶다고 하면, 4대 보험도 적용하지 않고 최저임금보다 낮은 급여를 주면서 재고용한다. 직장에 소속된 사람이 아닌 것처럼 '유령'으로 만들어서 저임금으로 고용하는 것이다. 정년 제도 때문에 어르신들 노동권이 상당히 침해받는다.
정년 제도가 없다면 어르신들도 직장에서 4대 보험을 비롯해 이런저런 복지를 적용받을 수 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65세 넘어서 취업하면 고용보험료를 안 내게 돼 있었다. 그러니 65세 넘어서 취업했다가 실업해도 실업급여를 못 받았다. 다 차별이다. 지난 6월부터 정부가 법을 바꿔서 65세 넘어도 실업급여를 받고 내년부터 고용보험료를 내게 했지만, 앞으로는 정년 제도를 폐지하고 누구도 나이에 의해 차별받지 않는다는 법 조항을 만들어야 한다.
프레시안 : 좋은 일자리를 만들 방안이 있을까?
고현종 : 20만 원 주고 자원봉사하라고 하면 좋은 일자리가 되기 어렵다. 나는 좋은 일자리보다는 '경과적인 일자리'를 제안한다. 어르신들의 과거 경험을 살리되, 과거보다 약간 낮은 임금을 받는 것이다. 대신 복지 안전망, 노후 소득을 확보해야 한다. 어르신들은 의료비 지출도 많으니, 현행 60%대인 건강보험 보장성을 80%까지 올려야 한다.
▲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이 어르신 '지하철 택배' 사업을 위해 주문을 받고 있는 모습. 서울 동대문구의 상인들에게 주문이 들어오면, 어르신들이 지하철로 물건을 배달한다. 수익의 75%는 어르신이 받고, 15%는 사무실 운영비로 쓰인다. 고 사무처장은 "정부에 일자리를 요구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자주적으로 일자리를 만들 만한 사업을 고민하다가 택배 사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
열려 있는 어르신들이 새로운 공동체 만들자
프레시안 : 이번엔 개인적인 질문을 하려 한다. 노년유니온에서 어떻게 활동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고현종 : 내 직업이 사회복지사다. 뒤늦게 사회복지를 공부하면서 현장에서 만나는 분들이 주로 노인이었다. 왜 노인들은 의존적일까? 자주적으로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다. 이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죽기 직전까지 내 인생을 설계하고, 자주적으로 사회 참여하는 것이었다.
어르신들이 약간 '꼰대' 이미지가 있다. 고집불통, 보수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어르신 가운데 중도나 진보도 있고 합리적인 분도 계시고, 열려 있는 어르신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이 어르신들이 같이 모여서 공동체를 구성하면 좋은 노인 문화가 만들어지겠다 싶었다. 젊은이들에게 존경받는 새로운 노인 공동체를 만들자. 어버이연합이 만들어 놓은 노인이 전부는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예전에 개혁적이셨던 분들, 시민운동이나 노동운동하다가 65세 넘으시면 시민단체에 남아있기도 좀 그렇고, 잘 끼워주지도 않는다. 이분들은 나이 먹고도 지역이나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데, 그 틀이 없는 것이다. 그 소중한 자원들이 소진되는데, 그분들이 모일 장만 있으면 젊었을 때 기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활동할 수 있다.
보수 단체에서도 일부 잘나가는 노인들이 권력 잡고, 그 밑에 분들은 경로당에서 고스톱만 친다. 개혁, 진보 쪽은 잘나가는 분들은 개인의 명망으로 대표를 맡고 정치하지, 그 밑에 무명인 사람들은 갈 데가 없다. 그렇다고 경로당도 안 가신다. 이런 분들 경험을 살려야겠다. 그러면 이 사회가 이런 어르신들의 공동체 활동을 통해서 좀 더 균형감 잡힌 고령화 사회가 될 수 있다고 봤다.
노인과 젊은 세대가 긴밀하게 손잡자
프레시안 : 젊은 세대, 장년 세대 독자를 위해 마지막 한 말씀 부탁한다.
고현종 : 어르신들의 욕구가 30~40대와 별로 다르지 않다. 어르신이 돼도 데이트도 좀 하고 싶고, 친구들과 술도 마시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고, 적절하게 일도 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런데 노후 소득이 없다.
젊은 세대와 40~50대 세대, 노인 세대가 긴밀하게 손을 잡았으면 한다. 노년 세대를 부양하는 건 30~40대 직장인들이니까. 어차피 30, 40, 50대 분들도 좀 있으면 노년에 접어드는데, 복지가 취약하다.
어르신들이 정부에 촉구해서 노후 복지 안전망을 갖추도록 노력할 테니까, 젊은 층에서도 노인 부양에 대해서 "내가 왜 노인을 부양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안 했으면 좋겠다. 지금보다 좀 더 세금을 부담해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이 혜택이 40대 젊은 세대가 노년이 됐을 때 다시 돌아올 수 있음을 노인 세대가 지금부터 보여주겠다.
어르신들도 지금은 폐지 주우면 12만~15만 원 번다. 정부가 제공하는 단시간 질 낮은 일자리를 하면 20만 원 버신다. 그러면서 소득세 내신다. 어르신들도 내니까 우리 젊은 층에서도 좀 더 내고, 돈 많이 버는 기업도 더 내서 복지 안전망이 갖춰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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