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삼성전자와 애플의 제품을 생산하는 하청 노동자들은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올해 초 삼성전자 갤럭시S에 들어가는 칩과 안테나를 생산하는 휴대폰 부품 하청 업체인 아모텍에서 과로로 두 명의 노동자가 사망했으며, 한 명은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애플 제품을 생산하는 폭스콘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 환경을 견디다 못해 잇달아 자살하여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던 2010년 이후에도 노동자들의 자살 행렬은 멈추지 않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세 명의 노동자가 기숙사에서 투신하였다.
삼성전자와 애플은 세계 최대의 전자 산업 기업으로서 경쟁 관계에 있으며 경영 스타일도 상당히 다르지만 하청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이 열악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제품 생산 비용을 줄이고 시장 변동에 빠르게 대처하기 위한 생산 전략이 하청 업체 노동자들을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생산 방식을 비교하면서 그것이 하청 노동자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 지난 6월 26일 인천 지역 노동자 권리 찾기 사업단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주)아모텍 앞에서 고(故) 임승현 씨의 죽음을 애도하며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
전자 산업 하청 노동권 연속 기고 ① 죽거나 아프거나…'원청' 삼성 위해 죽도록 일한 죄? |
애플과 폭스콘의 방식
애플은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등을 직접 생산하지 않는다. 설계와 디자인만 담당할 뿐 생산 일체는 전자 제품 전문 생산 업체(EMS)인 폭스콘에 위탁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을 택하는 주요한 이유는 비용을 절감하고, 시장 수요 변화에 따라 생산을 탄력적으로 조절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제품이 잘 팔리지 않을 때 애플은 폭스콘과 계약 물량을 줄이면 될 뿐, 자체 설비가 없기 때문에 공장 설비와 고용 인원에 대한 비용을 별도로 부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애플은 제품 생산을 전적으로 폭스콘에 위탁하여 생산 비용을 절감하고 경기 침체 시 위험 부담을 외부화하면서, 기술 개발과 마케팅에 집중하여 차별화된 디자인과 기능을 선보이며 높은 실적을 거두고 있다.
한편 폭스콘과 같은 전문 생산 업체(EMS)는 위탁받은 제품을 적은 비용으로 생산해야 하기 때문에 마진이 높지 않다. 이 때문에 대량으로 생산해야 수익성이 담보되는 구조라 대규모 설비와 인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상위 업체들이 경쟁력이 있다. 2010년 기준 세계 상위 5대 전문생산업체(EMS) 점유율이 75%로 소수 업체들이 과점하고 있으며, 이 중 폭스콘이 44%의 비중을 차지한다.
폭스콘은 애플, 소니, 델, 시스코 등 세계적인 전자 기업의 제품을 생산하며 EMS 가운데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폭스콘의 성공 요인으로 꼽히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 번째는 범용 부품의 직접 생산을 통한 원가 경쟁력 강화와 사업 수익성 개선이다. 폭스콘은 위탁 생산하는 부품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계열사/관계사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위탁 생산하는 제품에 탑재되는 전체 부품 중 약 3분의 1가량을 자체 생산을 통해 조달한다. 두 번째는 우수한 기계 설계 역량을 통해서 생산 납기를 단축한 것이며, 세 번째는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에 생산 거점이 집중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중국에서도 인건비가 저렴한 내륙으로 거점을 옮기는 추세다.
ⓒAP=연합뉴스 |
삼성전자와 하청 업체의 방식
삼성전자는 핵심 공정을 자체 생산하고 주변 공정은 외주화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애플과 같은 생산 방식은 제품이 잘 팔리지 않을 때 설비와 고용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 부담이 없지만, 단점은 생산에 대한 통제 능력 역시 외부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반면 삼성전자와 같은 자체 생산 방식의 경우 생산 과정을 통제하기 용이하나 불황 시 리스크 부담이 크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삼성전자에는 자체 생산 방식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한편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하청 업체를 포괄하는 철저한 공급 사슬 관리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하청 업체 관리의 핵심은 생산의 일체화, 비용 부담의 외부화라고 할 수 있다. 즉 삼성전자는 자체 생산뿐 아니라 하청 업체의 생산 과정까지 통제하는 것은 물론, 하청 시스템을 통해 리스크를 외부화하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제조, 구매, 판매 등 부문별 프로세스를 표준화하여 국내 사업부뿐만 아니라 해외 현지 법인까지 포괄하는 통합적 정보 시스템을 구축하는 글로벌 공급 사슬 관리(Global SCM)를 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 사슬 관리는 국내에서 해외, 제조에서 판매까지 방대한 조직을 운영하면서 수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각 지역별·부서별로 손발을 맞추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영업 부서에서 제품을 많이 팔 수 없는데 생산 부서는 다르게 판단해서 많이 생산한다거나, 우선순위가 낮은 곳에 계획 이상으로 판매한다거나, 협력 업체로부터 부품 조달에 문제가 생겨 생산에 차질이 생긴다거나 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재고 현황, 생산 능력, 판매 예상 등의 정보를 시시각각 공유하고 이를 토대로 계획을 수립하여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시스템이다.
이러한 시스템에 따라 생산하기 위해서 삼성전자는 1년에 약 52번의 계획, 분석, 조정을 거치면서 시행착오를 줄이고, '3일 확정 생산 체제'를 시행하고 있다. '3일 확정 생산 체제'란 글로벌 공급 사슬 관리의 판매 및 수요 예측 정보를 바탕으로 생산 계획을 수립하고, 구매 및 제조 활동을 수행하기 위해서 3일 이내의 생산 계획은 변경하지 않고 정해진 규칙대로 실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확정된 계획에 대해서는 불변을 원칙으로 하여, 생산주문에 의해 생산 당일 정량, 정시, 정순으로 생산을 실행하는 방식이다.
이는 하청 업체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삼성전자가 하청 업체의 생산 능력이나 재고 등을 파악하고 있어야 부품 조달 계획을 수립할 수 있고, 하청 업체 역시 삼성전자의 계획에 맞춰 생산하기 위해서 상호 정보를 공유한다. 그리고 '3일 확정 체제'와 같은 생산 과정의 공통 원칙을 하청 업체에도 적용하면서 삼성전자는 일체화된 방식으로 생산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하청 업체에 일체화된 방식으로 생산할 것을 요구하지만, 철저하게 비용 절감과 위기 비용 전가에 하청 업체를 활용한다. 단적인 예로 삼성전자는 2008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15억여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공정위는 삼성전자가 정보통신 사업 분야의 2003년 원가 절감 목표액 가운데 1조2000억 원을 납품 단가 인하를 통해 달성하기로 함에 따라, 7개 충전기 부품 납품 업체에 지급할 납품 가격 총액을 상반기 6.6%, 하반기 9.8%씩 일률적으로 낮췄다고 발표했다. 또한 삼성전자는 2003년 휴대폰의 단종이나 설계 변경 등의 사정에 따라 6개 업체가 납품한 부품을 폐기 처리한 이유로 납품 업체에 지급해야 할 대금을 깎았다. 삼성전자의 필요에 따라 부품을 폐기한 뒤, 그 비용을 협력 업체에 뒤집어씌운 것이다.
삼성전자와 애플, 폭스콘의 공통점
자체 브랜드를 보유한 삼성전자와 애플은 제품 생산 방식에서 자체 생산과 위탁이라는 차이점이 있으나, 생산 비용 절감과 위기 비용 외부화에 하청 업체를 활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애플은 경기 변동에 따른 유휴 설비와 고용 유지에 별도 비용을 지출하지 않고 위탁 생산 업체와 계약에서 물량을 조정하면서 생산 리스크를 외부화했다. 삼성전자 역시 공급 사슬에서 확보한 지위를 활용하여 전자 부품을 생산하는 하청 업체에 단가 인하 압력을 넣었고, 경기 침체 시 물량 축소나 계약 해지를 통해 위기 비용을 전가했다.
제품을 생산하는 측면에서 삼성전자와 폭스콘은 자체 브랜드 생산과 위탁 생산이라는 차이점이 있으나, 부품의 일부를 자체 조달하여 원가를 절감하고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폭스콘은 계열사를 통해 부품의 3분의 1을 자체 생산하며 원가를 절감하며, 저임금 노동력 확보를 위해 중국에서 대규모로 생산하고 있다. 삼성 역시 핵심 부품을 계열사를 통해 생산하면서 원가를 절감하고, 해외 생산의 경우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서 노동자를 저임금으로 고용하며, 국내에서는 하청 노동자를 통해 저임금 노동력을 확보하고 있다.
애플의 방식이든 삼성전자의 방식이든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점은 비용 절감 부담을 하청 업체에 전가하고, 최종적으로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청 업체에 전가된 비용 절감 부담은 납품 단가 인하 압력과 물량 변동을 야기하면서, 하청 업체 노동자의 임금과 고용의 불안을 초래했다.
ⓒ연합뉴스 |
단가 인하 경쟁과 저임금, 유연한 노동 시간
삼성전자는 하청 업체들을 경쟁시킨다. 복수 업체로부터 동일 부품을 납품받으면서 업체들 간의 저단가 경쟁을 부추기는 것이다. 단적으로 아모텍의 사례도 그러하다. 아모텍은 삼성전자에 정전기/전자파 방지용 칩과 NFC 안테나를 납품하고 있다. 그러나 아모텍이 해당 부품을 독점적으로 납품하는 것이 아니라 정전기/전자파 방지용 칩은 이노칩테크놀로지, 안테나 부품은 파트론이 경쟁사로서 삼성전자에 납품하고 있다. 하청 업체들은 더 많은 물량을 따내기 위해 단가 인하 경쟁을 벌이고, 이는 하청 업체 노동자들의 임금을 낮추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에 따라 하청 업체는 저임금으로 활용하기 수월한 여성 노동자를 선호한다. 전자 제품 생산 공정의 특징이 단순 반복적이고 섬세한 손 기술을 요구하기 때문이기도 하며, 여성이 상대적으로 이데올로기적 통제 아래에 두기 쉽다고 판단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하청 업체에 고용된 여성 노동자들은 40대 이상이 다수인데, 기혼 여성은 가계 수입의 보조자라는 통념을 근거로 저임금과 고용 불안을 정당화하기 수월한 조건에 있다는 점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고용노동부의 고용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2년에 전자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의 임금은 200만 원이고, 제조업 평균은 250만 원이며, 자동차 산업에 종사하는 남성 노동자의 임금은 295만 원이다. 전자 산업 생산직 다수를 차지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임금이 제조업 평균보다 50만 원이 낮으며 자동차 남성 노동자보다 100만 원 가까이 낮다. 이처럼 다른 산업과 비교했을 때, 전자 산업 노동자들의 저임금 현실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하청 업체들은 저가 납품 능력뿐만 아니라 들쭉날쭉한 물량 변화에도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노동 시간을 유연하게 조절해야 한다.
유연한 노동 시간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서 삼성전자 하청 업체인 A사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10개월간의 월 노동 시간을 분석해 보았다. 2010년에서 2011년 사이에 가장 적게 일한 달에는 150시간을 일했지만 가장 많은 일을 한 달에는 330시간을 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150시간을 일한 달에는 이 노동자의 임금은 최저임금인 90만 원이었고, 330시간을 일한 달에는 230만 원대였다. 기본급 92만 원에 시간외 수당으로 140만 원을 번 것이다.
하청 업체는 이처럼 삼성전자의 생산량 변동에 따라 물량이 넘쳐날 때에는 노동자들에게 초과 노동을 강요하고, 물량이 적을 때에는 연차를 강제로 쓰게 하면서까지 비용을 최소화하려고 했다. 이로 인해 노동자들은 아모텍의 경우처럼 건강을 해치고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장시간 노동을 하거나, 물량이 없을 때에는 임금 감소로 생활이 어려워진다.
하청 노동자의 노동조합 조직화가 필요하다
삼성전자가 직접 생산과 외주 생산을 조절하면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하청 업체 노동자들을 저임금으로 착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폭스콘과 같은 EMS가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적 규제를 피할 수 있고, 성별 이데올로기를 활용하여 여성 노동자들에게 유순하게 일할 것을 강요하거나 저임금을 정당화하기 쉬운 지역에 선택적으로 진출하는 것처럼 삼성전자도 하청 업체 노동자를 활용한다. 하청 업체들은 삼성전자에 낮은 단가로 신속하게 부품을 납품하기 위해 여성 노동자를 저임금으로 활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에 대한 차별을 활용한 착취와, 탈법을 방치하는 정부의 친자본적 행태가 성장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
따라서 삼성전자가 이룩한 경영 성과의 원천이 사실상 중소 하청 업체 노동자를 출혈적으로 착취한 결과임을 폭로해야 한다. 중소 하청 업체 노동자들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문제에 대해서 사회 쟁점화할 기획을 모색하면서, 하청 업체가 밀집해 있는 공단 지역의 여론을 환기하고 노동자들의 집단적 움직임을 조직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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