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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철도도 '4대강' 꼴 만들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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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국토부, 철도도 '4대강' 꼴 만들 셈인가

[기고] 비가역성 큰 철도 산업, 되돌릴 수 없는 길로 내몰리나

국토부가 26일 철도산업위원회의 형식적 심의를 거친 끝에 '철도 산업 발전 방안'을 발표했다. 국토부 방안의 핵심은 수서발 KTX의 운영사를 설립해 코레일과 경쟁시켜 철도를 효율화하겠다는 것이다(관련 기사 : 박근혜 대통령, 끝내 철도 공약마저 저버리나). 국토부는 '경쟁을 통한 효율화'로 한국 철도에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것처럼 포장한다. 그러나 화려한 도표로 치장된 국토부의 철도 산업 발전 방안은 한국 철도를 돌이킬 수 없는 수렁으로 밀어 넣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국토부가 발표한 철도 산업 발전 방안은 이명박 정권 시절 제출되었던 민영화안과 다를 바 없다. 한국 철도가 비효율적이고 방만하게 경영되는 원인은 독점에서 비롯됐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경쟁을 도입해야 하며, 경쟁을 도입할 바에는 비효율적인 공기업이 아니라 민간이 들어와야 한다는 게 지난 정권의 일관된 논리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이 야심차게 밀어붙인 수서발 KTX 민영화안은 시민사회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주춤했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민영화를 통한 개혁이 힘을 얻었던 데 비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로 세상이 변했다. 작은 정부, 민영화, 무한 경쟁으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가 상위 1%에게는 전에 없는 부를 안겨 주었지만,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달려도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는 쳇바퀴라는 현실을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 지난 14일 국토교통부가 '철도 발전 방안'을 내놓고 밀어붙였던 철도 산업 토론회는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노조, 시민단체 등의 보이콧으로 무산됐다. ⓒ프레시안(박세열)

'민영화'란 단어만 안 쓰면 괜찮은가?

국토부는 기존의 철도 정책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다만 '민영화'라는 비난을 어떻게 피해갈지에 집중하며 시민사회의 반응을 떠보는 유치한 행위로 일관했다. 국토부가 '철도 개혁 방안'이라며 민관 합동 방식의 지분 구조안 등을 내놓았다가 철회하고, 막판에 연기금을 동원하는 안으로 정착하는 모습을 보면 정부 정책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마련되는지 알 수 있다.

국토부의 철도 산업 발전 방안은 한국 철도를 진단하는 전제부터 잘못되었기에 결국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국토부는 한국 철도의 비효율과 방만한 경영 때문에 철도에 적자가 생겼다고 일방적으로 선전만 했을 뿐, 철도 적자의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책에 대해서는 모색하지 않았다. 과연 철도공사가 무능하고 직원들이 무사안일해서 한국 철도에 적자가 생겼는지, 아니면 다른 원인은 없는지, 국제적으로 다른 나라들은 철도 적자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에 대해 단 한 번도 심도 있게 연구되거나 토론되지 못했다.

한국 철도의 적자와 비효율 문제를 접근해 보면, 단순히 무능 독점 기업인 코레일의 문제로 모든 것을 덮어버리기에는 너무도 많은 문제들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한국 철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는 사람들이야말로 그동안 한국 철도의 부실을 더욱 확대 재생산하는 데 일조한 장본인들이라는 것이다.

'자회사 성공=모회사 경영 악화' 체제, 바람직한가?

'수서발 자회사' 설립 문제는 조금만 제대로 살펴보면 하자투성이의 설계도를 포장지만 그럴듯하게 만든 것에 불과하다. 국토부는 '공기업의 자회사'를 출범하면서도 그 자회사를 공기업으로 지정하지 않겠다는 옹색하지 그지없는 주장을 했다. 모회사가 경영 개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자회사 설립 체제를 만드는 것도 사상 초유의 일이다. 모회사와 자회사가 특성과 기능에 맞게 역할을 나누는 게 아니라 주력 상품을 두고 필사적으로 경쟁해야 하는 체제가 구현된다. 자회사의 성공이 모회사의 경영을 악화시키는 것이 경제적으로 바람직한 일인가?

세계 어디에도 '고속 철도 분리 경쟁'시키는 국가는 없다

국토부 방안은 철도 산업적 측면에서 봐도 철도의 특성을 완전 무시하는 발상이다. 세계 어느 나라도 자국의 핵심 간선 철도망의 대표 상품인 고속 철도를 분리해 경쟁시키지 않는다. 독일의 고속 철도 회사에서 프랑크푸르트발 ICE가 따로 있고 베를린발 ICE가 따로 있지 않다. 프랑스나 스페인도 마찬가지다. 자국 철도의 얼굴인 고속 철도는 그 나라의 대표적 공기업이 독점적으로 주 간선망을 책임지고 운영하고 있다. 한국처럼 서울발 KTX와 수서발 KTX라는 이상한 회사로 나누어 경쟁시키지 않는다.

경쟁의 실질적 효과가 없다는 것은 국토부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지난 19일 신경민 의원 등 민주당 의원 5명이 국회에서 연 '철도 산업 관련 토론회'에서 김경욱 국토부 철도국장은 "서울발 KTX와 수서발 KTX의 경쟁 효과가 아니라, 철도와 자동차나 타 교통수단의 경쟁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민간의 비효율, 국가가 극복해온 철도의 역사

사실 철도 산업에서 경쟁이 발생하기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철도 경쟁이 제대로 구현되었던 적도 없다. 철도의 역사는 오히려 국토부의 주장과 정반대로 전개됐다. 즉, 철도가 경쟁을 통해 양산했던 비효율을 국가 독점 체제로 전환하면서 극복해온 역사가 있다.

근대화 초기 철도를 도입한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민간 자본이 철도를 부설했고 운영했다. 이러다 보니 상호 간 호환성의 문제, 경쟁 구간에서 수익성 하락 등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그러자 정부가 나서서 철도를 국가의 소유로 전환하는 '국유화 정책'을 펼치게 된다. 이 국유화 정책이 자리 잡고 국가 독점적 체제가 들어서고 나서야 경쟁이 빚은 많은 폐단들이 극복된다.

국토부, 요금 내리려면 서울 KTX부터 내려야

국토부는 코레일이 방만하고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앞으로 수서발 KTX의 요금을 10% 인하하겠다고 발표했다. 모든 것을 경쟁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국민에게 '경쟁의 효과'를 구현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수서발 KTX 요금 인하'라는 카드를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정부와 공기업의 공적 역할에 대한 관료들의 철학이 얼마나 수준 이하인지를 보여줄 뿐이다. 부산에서 서울 명동에 볼일을 보러 오는 사람이 요금이 10% 싸다는 이유로 수서발 KTX를 이용할까? 고속 철도를 이용하는 이유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함인데, 철도 요금 10%를 아끼고자 수서행 KTX를 타고 다시 한두 시간을 들여 목적지에 가는 비상식적인 행위가 이루어지리라 보는가? 게다가 수서발 KTX는 서울에서도 소득 수준이 높은 강남과 분당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부유층이 더 혜택을 받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런 일을 정부가 유도하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되는지 묻고 싶다.

현재의 고속 철도 요금이 비싸서 이용 시민들의 부담이 가중된다고 느낀다면, 국토부는 지금이라도 코레일에 고속 철도 요금 인하를 유도해야 순서일 것이다. 서민들의 이용 편의를 위해 고속 철도 요금을 인하하자고 요구했던 노조의 주장에 대해 '수익자 부담 원칙'을 내세우며 거부했던 국토부가 태도를 바꾼 이유는 무엇인가?

ⓒ뉴시스

국토부가 독일식 모델 추구? 독일은 4년간 철도노조 의견 들어

철도 산업에 대한 철학과 영혼이 없는 관료들이 수술칼을 들고 철도 산업을 개혁하겠다고 나선 모습은 절망스럽다. 이들 관료들은 독일식 철도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독일 정부가 1989년 철도 개혁을 추진하면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 의견을 들은 대상이 바로 철도노조였다. 전문가와 노조와 정부와 시민이 머리를 맞대고 4년간 지루한 논의와 협상을 거쳐 독일 철도의 개혁안에 대한 합의를 도출한다.

한국은 어떤가? 국토부는 '친위 조직'을 동원하고 여론을 호도하는 전략을 구상하고, 노조에 대한 노이즈 마케팅 전략까지 마련하는 용역을 발주하는 등 온갖 편법과 꼼수로 일관했다. 이해 당사자와 논의하기는커녕 일방적인 안을 정해놓고 학자들을 들러리로 세우고, 형식적인 토론회를 거친 뒤 산업위원회를 열어 이미 정해진 안을 확정할 뿐이었다. 그 어디에도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거나 정부의 안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반영될 통로가 없었다.

그러면서 국토부는 수천억 원의 경제 효과를 운운한다. 인천 공항 철도나 전국의 경전철, 4대강 사업을 추진했던 자들도 장밋빛 미래를 약속했다. 현실은 어떠한가? 더군다나 철도 산업은 비가역성이 크다는 특징이 있다. 다시 말해 한 번 바뀌면 아무리 심각한 문제가 있어도 원래의 자리로 되돌리기 어렵다. 따라서 전문 학자들은 비가역성이 큰 산업에서는 이해 당사자들의 동의를 전제로 성공한다는 확신이 있을 때만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변화를 추진하는 사람들의 진단과 인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여러 곳에서 들어온다면, 일단 변화를 중지하고 현재의 상태에서 개선 가능성을 모색하는 게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무턱대고 수술에 들어갔다가 예상되는 후유증이 심각하게 발생하면 영국 철도나 용인 경전철처럼 파탄에 이르고도 손을 쓰지 못하고 한탄만 하는 상황에 이르기 때문이다.

박근혜, 철도 방안은 '국민적 합의' 통해 마련한다더니…

국토부는 지난 20여 년간 민영화와 철도 경쟁 체제를 통한 효율화를 주장해왔다. 마침내 26일 일단 민영화를 우회하는 경쟁 체제 도입을 기정사실화하고 수서발 KTX의 설립을 통해서 자신들의 20년 꿈을 실현하려 하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일사천리로 수서발 KTX 분리를 포함한 민영화 방안을 밀어붙였다.

이는 박근혜 정권이 국토부가 추진한 한국 철도의 대수술 방안을 승인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국민적 합의를 통해 철도 산업 발전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한 것은 단순히 표를 얻기 위한 수사였단 것인가? 약속은 지키는 대통령을 자임하고 '신뢰 프로세스'를 강조하는 마당에, 집권 초기부터 국민의 뜻을 무시하는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국민을 위한다는 대통령이 할 일은 아니다.

국토부의 정책이 관철되면 3단계 발전 전략에 따라 서울발 KTX와 수서발 KTX가 경쟁을 벌일 것이다. 국토부는 지방 적자 노선 민영화를 추진하고, 모든 노선에 경쟁적 요소를 도입할 것이다. 지하철 9호선과 용인 경전철, 만들어 놓고 운행도 못한 채 법정 소송으로 책임을 떠넘기는 인천의 월미 은하레일 같은 사태가 전국의 철도망에서 벌어질 날이 가까이 오고 있다. 국토부의 철도 산업 발전 방안이 만들어낼 한국 철도의 미래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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