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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쪼개기 조장하는 국책 연구원 '청부 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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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KTX 쪼개기 조장하는 국책 연구원 '청부 용역'

[기고] 국토부의 고속철도 민영화 시도와 한국교통연구원

한국 철도의 운명을 가를 5월이 지나고 있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은 대통령 업무 보고와 이어진 기자회견을 통해서 5월까지 수서발 KTX 운영 주체 선정을 포함한 철도 발전 전략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는 이에 따라 사회적 의견을 모으고 여론을 수렴하겠다며 철도 산업 발전을 위한 민간 위원회를 구성하고 인선까지 마친 상태다. 지난날 국토교통부의 소수 철도 정책 담당자가 밀실에서 '철도 개혁안'이란 이름의 정책을 수립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에 비하면 나아진 모양새이긴 하다. 그러나 이 민간 위원회의 구성과 인선 과정을 보면 이것이 과연 민주 정부의 여론 수렴이나 사회적 합의 방식인지 의심스럽다.

5월 말까지라는 한시적 여론 수렴 기구가 갖는 한계는 분명하다. 한국 철도 산업에 대해 고민하고 미래 전망을 밝히기 위한 논의가 한두 차례의 회의로 가능한가. 유럽과 일본 같은 철도 강국들이 철도 산업 발전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심도 있게 했는지 알고 있는 국토교통부의 진짜 속셈은 무엇인가? 수서발 KTX 운영 주체를 국토부 입맛에 맞게 결정하면서 사회적 합의와 전문가 의견 수렴을 거쳤다는 면피성 절차를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또한 민간 위원회 참여 인사들은 모두 국토부가 자의적으로 선정했다. 단지 공정성이나 중립성 논란을 피해가기 위해 KTX 민영화에 반대 입장을 밝혔던 코레일에서 일부 인사를 추천받고 시민단체 이름을 끼워 넣는 구색만 갖추었다. 이런 민간 위원회는 결국 정부 정책의 타당성을 추인하는 거수기 역할을 벗어날 수 없으며 선의를 갖고 참가한 민간 위원들의 명예조차 훼손한다.

▲ 8일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KTX민영화저지범대위 등 관련 단체 회원들이 '철도 민영화 추진 국토부의 여론 조작 꼼수 규탄 및 철도 민영화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교통연구원은 어떤 집단인가?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민간 위원들이 기초로 삼아야 할 철도 산업 발전안이 한국교통연구원이 마련한 철도 진단과 미래 전망이란 점이다. 민간 자문 위원회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소위원회에는 전문가를 자처하는 한국교통연구원의 연구진이 간사로 참여하여 민간 위원들의 입장을 조율하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가 철도·지하철 등 교통 관련 산업에서 겪은 수많은 재앙의 근원에는 한국교통연구원이 있다. 명색이 국책 연구원이라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으로 국가나 지자체가 '의지의 과잉'으로 범할 수 있는 오류 문제를 지적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국책 연구원의 존재 이유이며, 국민들의 혈세를 낭비하지 않도록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통연구원의 전력은 어떠한가? 세계 최고로 한적한 철도라는 비아냥을 들었던 인천공항철도부터 최근 개통된 용인 경전철의 문제까지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사회적 손실을 양산한 집단이다.

한국교통연구원이 하루 이용객 17만 명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던 용인 경전철의 실체는 끔찍하다. 용인시는 용인 경전철이라는 '돈 먹는 블랙홀'에 시 재정을 모두 쏟아 부어야만 한다. 더 큰 문제는 이 황당한 문제가 개선될 여지조차 없다는 사실이다. 용인 경전철 문제는 민간 투자 사업이 갖는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보여주는 종합 세트다. 정치적 성과만을 고려한 무지한 정치인과 사적 이익 확보에만 관심 있는 토건 금융 자본들, 그리고 이들에게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한국교통연구원이 모두 한통속이 되어 시민들을 수렁에 몰아넣었다. 최소한 국책 연구원인 한국교통연구원만이라도 자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서 용인 경전철의 문제를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했더라면 현재와 같은 재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시 공무원 → 지하철 9호선 민자 CEO → 한국교통연구원 원장

한국교통연구원이 이렇게 망가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상급 기관의 입맛에 맞는 연구 결과를 제공해야만 하는 청부 용역 관행이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인적 구성에서도 공익적 임무보다는 사적 이익 확보에 어울릴 것 같은 인사들이 요직을 장악하고 있다. 현재 한국교통연구원의 수장인 김경철 원장만 해도 2002년 7월부터 2006년 6월까지 서울시 교통개혁단장을 역임했다. 정확히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서울시장 임기와 일치한다. 주목할 점은 2005년 5월 서울시는 서울메트로 9호선(주)과 실시 협약을 맺는데, 서울시 교통개혁단장은 이 실시 협약의 주요 당사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시 맺었던 실시 협약이 지하철 9호선(주)에 일방적 특혜를 준 것 아니냐는 비판이 지난해 지하철 9호선 측의 기습적 요금 인상 추진 과정에서 거세게 제기됐다. 김경철 원장은 서울시 교통개혁단장을 그만둔 뒤 3년 후 베올리아 트랜스포트 코리아의 CEO로 취임한다. 이 베올리아 트랜스포트 코리아는 어떤 회사인가? 바로 지하철 9호선 운영사이다. 실시 협약과 관련해 줄다리기를 했던 기관의 주요 인사가 협상 상대였던 민간 사업자의 최고 책임자로 등용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교통연구원은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의 의뢰로 철도 경쟁 체제 도입과 수서발 KTX의 민영화를 철도 발전 전략으로 내놓았고, 이에 근거해 추진된 KTX 민영화 문제는 지난해 내내 한국 사회의 주요 이슈였다. 수서발 KTX 민영화를 강력히 추진할 때 한국교통연구원의 철도정책기술본부장은 생방송으로 진행된 KBS 뉴스에 출연해 '민간이 운영하는 수서발 KTX는 지하철 9호선처럼 효율적인 철도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하철 9호선이 사회 문제가 되고 비난 대상이 되자 국토부가 나서서 KTX 민영화는 서울지하철 9호선과는 다르다고 해명했지만, 만약 9호선 문제가 터지지 않았다면 수서발 KTX 민영화의 모델은 지하철 9호선이 되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철도 민영화 문제에 대해 현재의 방식이 아닌 중장기적 발전 전망을 수립하고 이를 근거로 새로운 대안을 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중장기적 발전 전망은커녕 지속적으로 재앙을 생산했던 한국교통연구원은 무늬만 다른 청사진을 내놨고, 국토교통부는 이를 바탕으로 밀실 논의를 통해 한국 철도의 전망을 세우겠다고 한다. 이러한 국토교통부의 행태는 한국 철도의 앞날에 커다란 장애물을 놓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일부 시민단체는 이미 결론이 난 문제에 거수기 역할로 동원될 수 없다며 민간 위원회 참가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KTX 쪼개기는 또 다른 민영화…'밀실 논의' 멈춰야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국토부가 한 역할이라고는 졸렬한 탐색전뿐이었다. 철도 민영화 추진이라는 틀을 유지한 상태에서 몇 가지 방안을 흘려 이해 당사자들의 의중을 떠보면서 정치적 부담이 적은 방안을 찾는 구태를 되풀이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코레일에 절대로 수서발 KTX 운영권을 맡기지 않겠다는 자신들만의 원칙을 고수하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민영화의 기초를 마련하겠다는 심산이다.

수서발 KTX 개통은 용량 한계로 제 역할을 할 수 없었던 한국 철도에 최소한의 완결적 네트워크를 마련해 철도 발전의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다. 이런 새로운 도약의 시기에 민영화와 경쟁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자들의 입맛에 맞춰 지속적으로 재앙을 만들어온 한국교통연구원이 설계한 안을 철도 개혁의 방안이랍시고 밀어붙이고 있는 현실은 참담하기만 하다.

진정한 한국 철도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국토교통부는 수서발 KTX 정책을 두고 열린 광장에서 더 많은 사회적 의견을 모아야 한다. 무엇이든 급하게 결정하고 힘으로 밀어붙이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박근혜 정부가 진정 국민을 위한 정부라면, '철도 발전을 위한 중장기적 대안 마련'이라는 국민과 한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현재 진행 중인 "그들만의 밀실 논의"를 중단시켜야 한다. 집권 초기부터 사회적 대립을 부추기고 갈등을 촉발하는 일들이 반복된다면 정부에도 국민들에게도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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