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어린이집 아이들에게 학습지 시키는 지옥같은 현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어린이집 아이들에게 학습지 시키는 지옥같은 현실"

[돌봄노동 연속기고 ①] 보육교사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하지만 많은 가정들이 정부가 직접 책임지지 않는 시장화된 사회 서비스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사회 서비스에 경제적 부담을 느끼고, 서비스 질에 불만족하는 상황은 사회 서비스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최근 한 달 사이에 세 명의 사회복지사가 연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사회복지사는 하루 10시간이 넘게 일하는 살인적인 업무 강도에 시달립니다. 보육교사도 한 명당 너무 많은 아이들을 돌보며 인건비 착취까지 당하고 있습니다. 간병인들은 병원 배선실에서 서서 밥을 먹고, 탈의실이 없어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쪽잠을 잡니다. 요양보호사들은 12시간 맞교대, 때로는 24시간 맞교대라는 살인적인 노동시간에 시달립니다. 장애인 활동 보조인은 과중한 노동으로 인한 근골격계 질환으로 고통받으면서 최저임금도 안 되는 저임금을 받고 있습니다. 이용자의 그만두라는 말 한마디면 바로 실업자가 되는 불안정한 상황 때문에 인격적인 모욕감마저 느끼며 장애인의 자립 생활을 지원한다는 보람을 잃고 있습니다.

'사회서비스 시장화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는 각 돌봄 노동자들이 이용자들에게 편지를 쓰는 방식으로 문제점들을 알리고자 합니다. 이에 사회서비스의 공공성 확대와 정부 책임 강화와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한 연속 기고를 4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보고 싶은 아이들아!

너희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10년이 넘었구나. 열정만 앞섰던 학생 선생님에서 싱그러웠던 아가씨 선생님을 지나 인간미 넘치는 아줌마 선생님으로 사는 일은 나의 소명이자 의무라고 생각했었단다. 제 아무리 강철 체력을 자랑하던 이들도 무릎 꿇게 만들던 너희들!

그렇지만 너희가 주는 기쁨은 그런 고통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지. 너희들에게 뒤질세라 열심히 놀고 난 날이면 밤새 끙끙 앓기 일쑤라 마라톤 선수만큼이나 보이지 않게 페이스조절에 신경 써야 했단다. 몰랐지? 코끝이 빨개지도록 울다가도 눈물도 안 그쳤는데 어느새 까르르 웃으며 뛰어다니던 너희들! 너희들 얘기만 하면 시간이 왜 그렇게 빨리 가는지, 너희들에게 조금 더 다가가기 위해 나누는 이야기들은 얼마나 가슴을 뛰게 만드는지…. 선생님의 길을 가는 것이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었단다.

▲ 어린이집. 위의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연합뉴스

그런데 사람들은 우리를 그렇게 자랑스럽게 바라보지 않는다는 걸 조금씩 알게 되었단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인 것처럼 바라보는 시선들,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해주면 된다는 기대들, 그러니 부모들보다 적은 월급을 받아도 무급으로 아이를 키우는 수많은 여성들보다 낫지 않느냐는 생각들…. 너희들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나쁜 생각들이지.

다행히 너희들과 지내다 보면 그런 생각 따위가 끼어들 틈도 없이 바쁜 하루하루 덕분에 꼬박꼬박 한 해를 채워가곤 했단다.

정말로 떠날 뻔 한 적도 있었지.

놀아도, 놀아도 부족한 너희들에게 학습지를 시켜야 했을 때, 하루가 다르게 빨라지는 세상에 내던져질 너희들이었기에 깊은 한숨 머금으며 억지로 학습을 시켜야했을 때 무너져 내리던 마음이란 지옥과도 같았지. 너희들의 자발성과 가능성을 벌써부터 네모반듯한 깍두기 공책에 끼워 맞춰야 하다니…. 지금 생각하면 참 별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슬펐을까. 그래도 떠나는 것보다는 그렇게라도 너희 곁에 머무는 게 너희를 위한 길이기에 너희 곁을 더 지킬 수 있었지.

그렇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아, 너희들보다, 너희를 돌보는 우리들보다, 바우처를 발급하고 돈을 지불하는 어른들의 거만한 시선으로 우리를 관리하겠다고 하는구나. 너희들이 건강하고 지혜로운 민주시민으로 자라도록 하는 일이 모름지기 국가의 대사이거늘, 국가적인 책임을 나누어 맡고 있는 우리 교사들을 인증하는 것도 모자라 감시까지 하겠다고 하는구나. 마지막 남은 자긍심마저 감시받아 마땅한 오만으로 비춰지는 세상에서 선생으로 살아간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에겐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도 우리의 일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와 인정도 기대하기 힘든데 이젠 너희들과 울고 웃고 뒤엉켜 살아가는 모습마저도 트루먼 쇼처럼 중계하면서 살라니, 그런 강요된 이중성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너희에게 솔직히 다가갈 수 있을까? 이중성을 대물려 주는 건 아닐까? 찍히고 녹음당하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 너희들은 어떡하면 좋으니!

우리는 너희들이 커서 떠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천년만년 함께이고 싶지만, 세상이 자꾸 우리를 자꾸만 등을 떠미는구나. 그곳에서 살아보려고 발버둥 칠수록 점점 옭아매는 그물처럼, 평가인증으로 한 꺼풀 치장하다 병난가슴에 대못을 박는 이 나라가 너무나 한심스럽구나. 차라리 이렇게 너희들을 버리고 나와 있으니 더욱 인간 대접을 받는 것 같아 어찌하면 좋으냔 말이냐! 이런 환경에서 너희들을 자라나게 해서 어떡하면 좋으니…. 너희한테 미안해서 어떡하니…. 나의 사랑하는 아이들아…….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