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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국적 제약사가 땅 짚고 떼돈 버는 비결, 에버그리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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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국적 제약사가 땅 짚고 떼돈 버는 비결, 에버그리닝

[기고] 인도 대법원의 '글리벡 판결'과 FTA 시대 한국

4월 1일, 전 세계 환자들을 애타게 했던 7년간의 소송이 정말 끝났다. 인도 대법원은 항암제 글리벡에 특허를 줄 수 없다고 판결했다. 글리벡은 만성골수성백혈병과 위장관기질종양(GIST) 등의 치료에 사용하는 항암제이다. 표적 항암제의 선두 주자이고, 골수 이식 이외엔 치료법이 없던 백혈병에는 '기적의 약'이라고 불린다. 왜 이런 약에 특허를 주지 않은 것일까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인도 대법원의 판결은 이 '기적의 약'의 핵심 성분에 특허를 주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인도 대법원 "인도에서 에버그리닝 전략은 안 돼"

글리벡의 핵심 약효 성분은 이마티닙이다. 글리벡은 이마티닙에 메실산염과 같은 염을 붙이고, 베타결정형을 취하여 흡습성이나 열역학적 안정성 면에서 더 좋게 만든 것이다. 이마티닙을 개발한 것은 제약 회사가 아니었다. 미국 오레곤 보건과학대학의 암 연구소에서 브라이언 드루커(Brian Druker) 박사팀이 1990년대 초에 개발했다. 1993년에 시바-가이기(1996년 시바-가이기와 산도스가 합병하여 노바티스 설립)라는 제약 회사가 이마티닙과 이마티닙 메실산염에 대해 미국과 유럽 등에서 특허를 출원했다. 1997년에는 이마티닙 메실산염의 베타결정형에 대해서도 특허 출원을 하기 시작했고, 2001년부터 글리벡이란 이름으로 출시했다. 이렇듯 제약 회사들은 하나의 약에 하나의 특허만 거는 것이 아니라 염, 결정형, 용량, 이성질체, 용도 등에도 계속 특허를 건다. 기존의 의약품에 '사소한 변화'를 주어 2차 특허를 얻어 특허 기간을 연장함으로써 제네릭(복제약) 생산을 막고 약값을 높은 상태로 유지하려는 행위를 "에버그리닝(evergreening)" 전략이라고 부른다.

노바티스가 2002년 봄 인도에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을 출시하고 1년이 지날 무렵, 인도의 10개 제약 회사가 글리벡과 똑같은 약을 세상에 내놓았다. 2003년도 당시 인도에서 글리벡의 한 달 약값은 2667달러(약 300만 원)였다. 인도 암환자지원협회(cancer patients aid association)는 인도 제약 회사로부터 1개월치 약을 89달러에 구입하여 환자들에게는 22달러에 공급하고 있었다. 인도 정부가 1972년 의약품에 대한 물질 특허를 폐지하여 의약품에 대해서는 제법 특허만 인정되었기 때문에 인도 제약 회사는 초국적 제약 회사와는 다른 제법으로 똑같은 약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인도는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여 2005년부터 트립스 협정(무역 관련 지적재산권 협정)을 이행해야 했다. 그래서 2005년에 특허법을 개정해 1995년 이후에 개발된 의약품에 대해서도 물질 특허를 인정했다. 트립스 협정 유예 기간인 1995년-2004년까지 받았던 특허 신청들의 목록이 2005년에 공개되자, 노바티스가 1998년에 글리벡에 대해 특허를 신청한 사실이 알려졌다. 인도 암환자지원협회는 글리벡에 특허를 주어서는 안 된다며 사전 이의 신청(pre-grant opposition)을 하였다. 첸나이 특허청은 2006년 1월에 글리벡 특허 신청을 반려하였고, 노바티스는 고등법원과 특허심판원(IPAB)에서도 거듭 패소하였다. 그러자 글리벡 특허 거절의 핵심적인 근거가 된 인도특허법 제3(d)조의 해석에 대해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 최종 결론이 4월 1일에 나온 것이다.

인도특허법 제3(d)조는 1995년 이전에 개발된 약에 비해 '상당히 개선된 치료 효과'를 입증하지 못하면 새로운 적응증, 새로운 제형, 새로운 조성을 가진 약일지라도 특허를 얻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이다. 인도 대법원은 이마티닙 메실산염의 베타결정형이 이마티닙이나 이마티닙 메실산염보다 인도특허법 제3(d)조를 충족시킬 만큼 효과(efficacy)를 향상시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노바티스의 소송을 기각했다. 즉 글리벡은 이전에 발명된 이마티닙이나 이마티닙 메실산염의 새로운 형태일 뿐, 효과 면에서 별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특허를 줄 수 없다는 의미다. 다른 나라 정부가 WTO에 제소하는 것 외에는 노바티스가 직접 문제 제기할 수 있는 수단은 남아 있지 않다. 인도는 아직 투자자-국가소송(ISD)을 용인하지 않기 때문에 대법원 판결이 유효하기 위해서라도 인도-EU FTA가 체결되어서는 안 된다. 인도-EU FTA의 향방은 4월 15일을 전후로 판가름이 날 예정이다.

ⓒDon't trade our lives away(http://www.facebook.com/donttrade.ourlivesaway)

인도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인도 암환자지원협회 대표 사프루(Y K Sapru)는 "만약 우리가 졌다면 현재 한 달에 약 13만-17만 원에 사 먹는 약을 약 263만 원에 사 먹어야 하기 때문에 큰 승리"라고 했다. 그리고 "이 판결은 앞으로 모든 특허 분쟁의 기준이 될 수 있기에 에버그리닝 전략이 인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실시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세계 각국의 에이즈 운동 단체, 보건의료 단체, 지적재산권에 비판적인 단체들도 환영했다.

노바티스는 4월 1일 보도자료를 통해 "인도가 점점 지적재산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가장 우려스럽다"고 했다. 그리고 여러 외신과 한 인터뷰에서 인도에 어떤 신약도 도입하지 않고 더 이상 투자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 제약협회(PhRMA)는 4월 1일 "매우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존 카스텔라니 미국 제약협회 회장은 <로이터>에 "이번 결정은 혁신 환경을 악화시키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인도 비즈니스위원회(US-India business council)도 4월 2일 성명에서 "인도가 이러한 점증적 기술 혁신에 대한 특허를 인정하지 않는 유별난 나라가 됐다"면서 "글리벡 특허권을 부정하는 것은 의약계에서 중요한 수많은 혁신에 대해 특허권을 없애는 일이 될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인도 대법원의 판결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며 "이번 문제에 대해 인도가 지속적이며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당장 미국무역대표부가 매년 4월말에 공개하는 스페셜301조 보고서에서 인도를 어떻게 언급할지 주목된다. 인도는 작년에 항암제 '넥사바' 특허에 강제 실시(공익적인 필요가 있을 때 특허권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특허를 사용케 하고 특허권자에게는 보상을 제공하는 제도. <편집자>)를 허락한 대가로 '우선 감시 대상국(priority watch list)'으로 선정되었다.

"건강권이 우선"이라는 상식을 지키기 위한 싸움

대법원 판결에 대한 반응에서 보듯이 이 소송은 글리벡 특허 여부에 국한되지 않는다. 전 세계의 환자와 활동가들은 "세계의 약국"을 지켜냈다고 환호하고, 초국적 제약 회사들은 의약품 연구 개발을 못하게 생겼다며 호들갑을 떠는가 하면 협박도 하고 있다.

이렇게 전선이 형성된 이유는 인도가 그야말로 "세계의 약국"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인구의 10%가 인도산 복제약(제네릭)을 이용하고 있다. 특히 120개 국가가 넘는 개발도상국에 공급되는 에이즈 치료제 양의 90%가 인도산 제네릭이고, 전 세계 에이즈 치료제 양의 50%를 인도에서 공급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인도는 건강권과 특허권이 대립하는 최대 격전지이기도 하다. 인도를 상대로 한 초국적 제약사의 소송과 미국, EU 등 외부의 압력이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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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이 형성된 또 다른 이유는 블록버스터급 의약품의 특허 만료 시기가 다가오자 초국적 제약 회사들이 특허의 "에버그리닝" 전략에 더욱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이즈 치료제도 "에버그리닝" 문제가 심각하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2차 에이즈 치료제인 '칼레트라'는 특허가 있어 매우 비싼데다 초국적 제약 회사 애보트가 "에버그리닝 전략"을 이용하여 특허 기간을 계속 연장시키고 있어서 12개 국가의 운동 단체들이 독점을 깨기 위한 국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런 이유로 노바티스 소송은 초국적 제약 회사의 특허권과 환자의 건강권이 대립하는 다양한 이슈들의 상징이었다.

게다가 인도 특허법은 트립스(TRIPS) 협정 체제 하에서 가능한 대안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트립스 협정이 1995년 발효됨에 따라 세계무역기구 회원국은 일률적으로 모든 발명에 20년간 특허를 보호해야 하지만, 인도 특허법에는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안전장치가 담겨 있다. 강제 실시, 사전·사후 이의 신청 제도, 제3(d)조가 대표적이다. 실제 몇몇 국가에서 인도 특허법을 벤치마킹하려고 한다. 2012년 5월에 아르헨티나는 인도특허법 제3(d)조와 유사한, 엄격한 특허 적격성 기준을 발표했다. 필리핀도 마찬가지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에이즈 운동 단체 치료행동캠페인(Treatment Action Campaign)과 '국경 없는 의사회'가 인도 특허법을 모델로 "특허법 개정(Fix the Patent Laws)"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보츠와나는 사전 이의 신청을 수용했다. 따라서 인도산 제네릭을 먹고 있는 개발도상국의 환자 그룹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의 보건의료 단체, 에이즈 운동 단체, 지적재산권 관련 단체 등이 수년에 걸쳐 노바티스 항의 시위와 국제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한국에서도 글리벡 특허는 "에버그리닝"

인도 대법원 판결이 있기 3일 전 한국에서도 글리벡 관련 특허 하나가 무효 처리되었다. 다행스런 소식이긴 하나 200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기억 때문에 회한이 밀려왔다. 2003년 4월 특허청은 글리벡 특허에 대한 '강제 실시' 청구를 기각하여 한국의 환자들은 매월 약 300만 원 이상을 내고 글리벡을 먹어야 했다. 강제 실시권은 국가 비상 사태나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경우에는 특허 만료 이전에도 특허약과 똑같은 약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이다. 보험 적용이 안 되는 위장관기질종양(GIST) 환자들은 인도 제약사 낫코(Natco)로부터 글리벡과 똑같은 약 비낫(Veenat)을 글리벡의 20분의 1도 되지 않는 가격으로 구입하여 연명하기도 했다. 드디어 2013년 6월이면 특허가 만료된다. 그런데 특허가 또 있다. '이마티닙 메실산염'에 대한 특허는 올해 6월에 끝나지만 '고함량의 이마티닙 메실산염'에 대한 조성물 특허 기간이 2023년 4월까지란다. 또 노바티스는 2021년 10월에 만료되는 위장관기질종양(GIST) 적응증에 대한 용도 특허도 갖고 있다.

▲2003년 4월 한국 특허청은 글리벡 특허에 대한 강제 실시 청구를 기각해 한국의 환자들은 매월 약 300만 원 이상을 내고 글리벡을 먹어야 했다. 사진은 2001년 노바티스 한국 지사 앞에서 열린 글리벡 약가 인하 시위 모습. 사진의 환자는 실제 백혈병 환자들이었고 이 중에는 고인이 된 이도 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이마티닙 메실산염의 특허 만료를 앞두고 국내 제약사들이 제네릭 출시를 준비하면서 2011년말에 고용량에 대해 특허 무효 심판을 청구하였다. 그 결과 3월 29일 한국특허심판원(1심)은 고함량의 이마티닙 메실산염을 포함하는 글리벡의 조성물 특허는 특허 기준 중에서 진보성이 없으므로 무효라고 결정했다. '부실' 특허를 수년간이나 인정해주었던 셈이다. 노바티스가 항소할 가능성도 있지만 이번 판결로 한국의 제약 회사들은 이마티닙 메실산염 200mg, 400mg, 600mg 등이 함유된 제네릭을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올해 초에 국내 제약사들이 용도 특허에 대해서도 무효 심판 청구를 했다고 한다.

특허는 있는데 약이 없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국에는 글리벡 400mg을 본 사람이 없다. 한국에 글리벡이 출시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왜 글리벡 400mg가 없었을까? 글리벡은 50mg과 100mg, 400mg짜리가 있는데, 보통 하루에 한 번 400mg을 먹어야 하고, 환자 상태에 따라 300~800mg을 먹어야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100mg짜리 4알을 먹기보다는 400mg짜리 1알을 먹는 게 환자에게 더 편하다. 게다가 노바티스는 자사 홈페이지에서 글리벡을 고용량으로 복용하는 환자는 철 중독을 줄이기 위해 400mg을 복용해야 한다고 사용법을 설명하고 있다.

2008년 6월 '건강 사회를 위한 약사회' 등 사회운동 단체들은 환자의 안전과 비싼 약값을 이유로 복지부에 글리벡 400mg 수입 신청을 하였다. 당시 글리벡 100mg의 약값은 2만3045원(현재는 2만1281원)이고, 400mg짜리가 건강보험에 등재될 경우 당시의 약가 제도에 따라 5만7612원이 된다. 글리벡 400mg의 약값을 100mg짜리 약값의 4배로 쳐주지 않는 이유는 재료비가 4배만큼 드는 것도 아니고 400mg을 만드는 기술이 100mg을 만드는 것보다 4배만큼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400mg을 수입하면 환자에게 좋고 건강보험 재정도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노바티스는 수익이 줄어들기 때문에 400mg을 판매하지 않았다. 특허는 있고 약은 없는 기막힌 상황이었다. 특허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쉽게 알 수 있는 사례다. 덕분에(?) 2012년에 글리벡의 건강보험 청구액은 1001억 원으로 의약품 중 2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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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특허를 걸러낼 방법?

한국도 인도처럼 이런 '부실'특허를 사전에 막고 "에버그리닝" 전략을 차단할 수 있을 것인가? 인도에는 특허를 주기 전에 특허를 반대할 수 있는 '사전 이의 신청 제도'가 있지만 한국에는 없다. 도입하고 싶어도 한미FTA 제18.8.4에서 도입할 수 없도록 규정해두고 있다.

각국은 특허를 무효화할 수 있는 제도로 사전 이의 신청, 사후 이의 신청, 특허 무효 심판 제도를 두고 있다. '이의 신청 제도'는 제3자가 특허에 반대할 수 있는 제도로서 특허심사관에 의한 심사의 불완전성을 보완하고, 심사의 공정성을 도모하여 특허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마련한 제도이다. 특허 등록 전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사전 이의 신청 제도를 둘수록 부실하거나 불량한 특허를 걸러낼 기회가 많아진다. 인도에서는 누구나 사전 이의 신청을 할 수 있고, 사후 이의 신청은 이해 관계자들이 제기할 수 있다. 글리벡 소송처럼 인도의 사회운동 단체들은 사전 이의 신청 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 특허의 무효화는 특허 무효 심판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특허 기준도 ISD 대상

또한 설령 한국 정부가 인도 특허법처럼 "치료 효과의 상당한 개선"을 특허의 조건으로 도입하려고 하더라도 한미FTA가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한미FTA 제5.1.조(의약품 및 의료 기기 일반 규정) 나항은 "의약품 및 의료 기기의 연구와 개발에 있어…지적재산 보호, 그리고 혁신을 위한 그 밖의 유인"의 중요성을 당사국이 확인하도록 한다. 초국적 제약 회사는 이 조항을 확대 해석하여 반대할 가능성이 있다. ISD를 통해서도 특허 기준을 문제 삼을 수 있다.

실제로 최근에 의약품 특허 기준을 둘러싸고 ISD가 제기되었다. 작년 11월에 초국적 제약 회사 릴리는 '스트라테라(Strattera)'라는 약의 특허 무효 처분으로 최소 1억 캐나다달러(CDN)를 손해 봤다고 주장하며 캐나다 정부에 중재 의향서를 통지했다. 릴리는 화합물 아토목세틴을 성인과 어린이의 주의력 결핍 장애(ADHD) 치료에 사용하는 것에 대한 특허를 획득했는데, 이 특허는 2016년 1월에 만료될 예정이었다. 제약 회사 노보팜(Novopharm)이 특허 무효 소송을 제기했고, 2010년 9월에 연방 법원은 무용함(inutility) 등의 이유로 특허 무효 판결을 내렸다. 릴리는 대법원 상고까지 했지만 2011년 12월에 기각당했다.

릴리는 캐나다 사법부의 판결이 나프타 협정 11장(투자)의 수용 조항, 최소 기준 대우 조항, 내국민 대우 조항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스트라테라의 특허를 무효화한 것은 '직접 수용'에 해당하고, 이 때문에 스트라테라를 제조·판매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와 관련된 가치(value)를 파괴하는 효과를 낳은 것은 '간접 수용'으로 보았다. 한국에서도 의약품을 둘러싼 '투자자-국가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

"에버그리닝" 부추기는 제도

한미FTA 때문에 도입된 허가-특허 연계 제도를 글리벡에 적용하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허가-특허 연계 제도의 골자는 특허 침해나 특허 무효를 가려내기 전에 특허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제네릭 판매를 허가해주지 않는 것이다. 특허권자가 품목 허가를 받은 후(허가 받은 약을 실제로 한국에 공급할지와는 상관없다) 의약품의 물질, 제형, 조성물, 의약적 용도에 관한 특허 정보를 식약청장에게 등재해놓으면, 특허 등재된 의약품과 같거나 비슷한 의약품의 판매 허가를 특허권자가 허락하지 않을 경우 일정 기간 '자동 정지'된다. 제네릭을 판매하려면 특허권이 무효이거나 그 제네릭이 특허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특허심판원의 심결 또는 법원의 판결을 받아야 한다. 국내 제약 회사가 글리벡 관련 조성물 특허나 용도 특허에 무효 심판을 청구하지 않았다면 2021년, 2023년까지 제네릭은 판매될 수 없다. 무효 심판을 청구하더라도 무효 심결이 나올 때까지 혹은 '자동 정지 기간' 동안 제네릭 판매는 금지된다.

반면 특허 분쟁 결과 특허가 무효로 판정 나도 제네릭 판매가 지연된 것에 대해 보상받을 방법은 없다. 국내 제약사가 글리벡 같이 시장 규모가 큰 특허약에 대해서는 특허 소송으로 맞서볼 엄두를 내겠지만 대부분은 아예 포기할 것을 고려하면 피해는 더 클 것이다. 따라서 허가-특허 연계 제도 자체가 "에버그리닝"을 부추기는 동인이 된다. '부실' 특허를 가려낼 제도도 미흡한데다, '부실' 특허라도 식약청에 등재만 하면 자동으로 제네릭 출시를 막을 수 있다. 인도 대법원의 판결은 며칠간이나 흥분이 가라앉지 않을 만큼 기쁘지만 한국의 상황을 생각하면 속이 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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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약국"을 지키기 위한 다음 목표는 인도-EU FTA 저지

전 세계의 환자와 활동가들은 숨고를 겨를도 없이 4월 9일부터 15일까지 'EU FTA에 대한 국제행동주간'을 정하고 인도 대사관과 EU대표 사무소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인도-EU FTA의 향방은 4월 15일 브뤼셀에서 열리는 인도, EU간 장관급 회담에서 판가름이 날 예정이다. 2007년부터 시작된 인도-EU FTA를 4월 중순에 결판을 내려는 이유는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 등 다른 지역간 무역 협정들의 진행 상황과 2014년에 예정된 인도 총선거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 정부가 WTO에 제소하는 것 외에는 노바티스가 직접 문제제기할 수 있는 수단은 남아있지 않다. 인도는 아직 ISD를 용인하지 않기 때문에 대법원 판결이 유효하기 위해서라도 인도-EU FTA가 체결되어서는 안 된다. 2009년 12월에 리스본 조약 발효 후 외국인 투자가 유럽연합의 권한이 되면서 유럽연합은 FTA에 투자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지적재산권 집행(IP enforcement)조항은 인도 행정, 사법부에게 특허권의 집행을 우선시하고 제네릭 경쟁을 효과적으로 막도록 요구한다. 특히 국경조치(border measure)는 인도산 제네릭을 다른 개발도상국에 수출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 것이다. 인도에서 제네릭을 아무리 싸게 많이 만들어도 그 약이 개발도상국에 도달할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2008년에 이미 겪은 바다. 인도에서 남미로 수출되는 인도산 제네릭을 유럽에서 환적하는 과정에서 사노피 아벤티스, 노바티스, 릴리 등의 초국적 제약 회사의 요청에 따라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세관이 위조품으로 취급하여 압류한 일이 최소 17건 발생하였다. 국제지식생태계(Knowledge Ecology International)가 최근에 입수한 인도-EU FTA협정문 초안 제22조(잠정적 예방조치) 3호에 따르면 세관당국이 지적재산권 침해로 의심되는 경우 환적 중인 의약품을 압류할 권한을 갖는다. 게다가 침해가 상업적 규모로 일어난 경우 사법 당국은 은행계좌를 포함하여 회사의 자산 압류를 명할 수 있도록 하였다. 지적재산권 침해로 '판명'난 의약품이 아니라 '의심'되는 의약품을 압류하고 해당회사의 재산을 압류할 수 있다면 이는 인도산 제네릭의 수출을 막을 수 있는 강력한 근거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지적재산권 집행을 강요하는 국제 협정인 위조 방지 무역 협정(ACTA)이 작년 유럽 전역에 걸친 항의 시위로 인해 유럽의회의 비준을 받지 못하고 폐기되었다. 유럽에서는 폐기한 내용을 개발도상국에 강요하는 것이 작년 노벨평화상 수상자(EU)가 할 짓인가?

▲ 4월 9일 브뤼셀에 있는 유럽 의회 앞에서 활동가들이 인도-EU FTA 반대 플래시몹을 벌였다. 이들은 유럽 협상가를 ACTA 좀비에 비유했다. ⓒ국경없는의사회(M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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