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스트림 데이터란 인터넷 이용자가 웹 사이트의 링크 주소를 클릭할 때마다 발생하는 기록이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이들은 5개 유럽 국가(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에서 나라별로 인터넷 이용자 5000명의 클릭스트림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했다. 연구진은 총 2만5000명의 조사 대상 중 음악 사이트를 이용한 10세 이상 75세 이하 소비자 1만6290명을 따로 떼어내, 이들이 방문한 각 사이트가 합법인지 여부를 살폈다. 보고서는 분석 결과 해적 사이트에서 클릭 수가 10% 증가할 때 합법 구매 사이트의 클릭 수 역시 0.2% 증가한다는 결론을 냈다.
보고서는 분석 대상인 이용자들이 실제로 무단 공유를 통해 파일을 내려받았는지, 혹은 실제로 결제를 완료해 합법 음원을 구매했는지까지는 추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음원 해적 행위와 합법 구매 사이에 '양의 상관관계'가 관찰됐다는 점은 음원의 저작권 보호와 관련된 논의에 새로운 시사점을 던져준다.
음원 해적 행위는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음원을 취득해 뮤지션들의 저작권과 생계를 위협하고, 음악 시장의 발전을 가로막아 장기적으로 창작자들의 지속적인 활동을 저해한다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위 보고서의 내용은 '음원 해적 행위=음원 시장 피해'라는 단순한 공식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증명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각국의 저작권 규제와 국민의 저작권에 대한 인식, 음악 시장의 성숙도, 인터넷 환경, 개인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권리 등이 변수가 된다.
이를 무시하고 '저작권 침해 행위'만을 문제 삼아 규제하는 것은 디지털 시대로 진화하고 있는 음악 산업의 현주소를 볼 때 대다수 사회 구성원이 수긍할 수 있는 결론을 도출하기 힘들다는 점을 이번 보고서는 보여준다. 음원의 저작권과 무단 공유 사이에 얽힌 관계를 살펴야 하는 이유다.
디지털 음원의 경제학
음원 무단 공유가 합법 음원 판매 시장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 오프라인 매장에서 CD나 테이프를 구입해 음악을 듣던 시절에는 MP3 파일 등 디지털 음원이 끼치는 부정적 영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사람들은 디지털 음원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좋아하는 뮤지션의 특정 곡을 듣기 위해 전체 곡이 담긴 CD를 사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구매자가 가치를 부여하는 곡을 구입하기 위해 더 큰 비용을 지불해야 했던 셈이다. 개별 곡을 선택해 들을 수 있는 디지털 음원이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디지털 음원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보이던 음악 산업계도 합법 음원 사이트를 만들어 정당하게 디지털 음원을 소비할 수 있는 길을 냈다. 1편의 앨범으로 거둘 수 있는 수익은 CD보다 적지만, 애플의 아이튠스와 같은 음원 판매 사업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전 세계 디지털 음원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인다. 좋아하는 곡을 사기 위해 기존보다 적은 돈을 들일 수 있으니 수요층이 늘어나는 건 당연하다. 앨범을 제작하기보다는 디지털 싱글을 주로 내보내는 뮤지션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문제는 같은 디지털 음원을 공유하는 합법 시장과 무단 공유 사이트의 상관관계다. CD 시장의 매출과 디지털 음원 해적 행위는 여러 연구를 통해 반비례 관계에 있다는 점이 알려졌지만, 해적 행위가 합법 음원 시장의 이익까지 침해한다는 주장은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음원과 CD 사이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디지털 음원을 합법으로 구매하는지는 소비자가 해당 음원에 부여하는 가치에 따라 차이가 난다. EC의 보고서는 "불법 내려받기를 통해 얻는 곡의 가치가 합법적으로 판매되는 음원의 가격보다 높은 소비자는 불법 내려받기를 하지 못하게 됐을 때 합법 음원을 구매할 것이다. 반면에 불법 내려받기를 통해 얻은 곡의 가치가 음원의 실제 가격보다 낮은 소비자는 불법 내려받기를 하지 못하게 됐을 때 음원을 구입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보고서의 기준에 따르면 전자는 해적 사이트가 근절됐을 때 합법 음원 시장으로 진입할 이들이다. 반면에 후자에 속하는 이들은 해적 사이트가 근절된다면 합법 시장으로 진입하기보다는 해당 곡을 듣지 않는 편을 택할 것이다. 바꿔 말하면, 후자에 속한 이들의 해적 행위는 결과적으로 합법 음원 시장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고 소비자의 잉여를 증가시킨 셈이라고 보고서는 분석한다. 불법 내려받기가 근절되면, 사회 전체로 봤을 때 음악 문화를 향유해서 얻는 소비자의 이익 총량은 감소하는 셈이다.
해적 행위에 따른 합법 음원 시장의 이익 침해 여부를 소비자들의 합법 시장 유입 가능성으로 따지는 이유는 음원의 가격이 시장의 법칙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뮤지션의 인지도나 인기, 음악성에 따라 CD의 가격의 크게 차이나는 게 아니었듯이, 디지털 음원 역시 아이튠스가 초기 표방했던 '1곡당 99센트' 정책처럼 음원 유통업체가 정한 일률적인 가격대 내에서 움직인다. 소비자들의 수요에 따른 변화는 없는 편이다. 영국의 방송통신 규제 기관 오브콤(Ofcom)은 최근 설문조사 결과 약 99센트(약 1113원)에 제공되는 음원 1곡의 가격이 비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 '당신은 클릭할 수 있지만, 감출 순 없다'라는 문구를 담은 해적 행위 근절 포스터. |
음원 해적 행위 애호가들이 합법 구매도 더 많이 한다?
음악 산업에서 불법 내려받기의 해악에 대한 논쟁은 위와 같은 틀에서 합법 소비로 전환되는 비율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 무단 공유 규제에 의해 합법 구매로 돌아설 이들이 많아서 음악 산업이 성장할 수 있다면, 무단 공유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저작권 진영의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한 많은 연구가 수행되고 있지만, 명확한 결론을 내지는 못하고 있다. EC의 보고서는 과거 설문조사를 통해 합법 음원 구매 의사가 있는지 묻거나, 특정 집단을 장기간 관찰해 음원 해적 행위와 합법 구매 사이의 상관성을 살펴본 연구를 언급한다. 이러한 연구들은 대부분 음원 해적 행위와 합법 구매 사이에는 음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결론 내린다.
하지만 EC의 보고서는 이러한 연구 방식의 한계를 지적한다. 설문조사의 경우, 응답자들은 음원 해적 행위가 불법 혹은 도덕적으로 정당하지 못한 행위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신의 음원 소비 방식을 감출 가능성이 있다. 학생 등을 상대로 한 집단 연구의 경우 전체 음악 소비 인구를 대표할 수 있느냐는 반론이 나온다.
EC의 보고서 역시 국가별로 5000명의 표본이 전체 인구를 대표할 수 있는 숫자인지 의문이 제기되고, 각 사이트에 접속한 이들이 실제 음원을 내려받았는지 여부까지 알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또 국가별로 음원 해적 행위 건수가 크게 차이가 났는데, 이는 각국의 저작권 규제와 인터넷 환경, 이용자들의 저작권 인식 등의 차이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보고서가 분석한 이들은 자신들의 클릭 행위가 관찰되고 있다는 점을 의식하지 못했기에 설문조사보다 솔직한 반응을 보인다는 장점이 있다. EC의 보고서가 내린 결론의 방향성을 인정한다면, 음원 무단 공유 사이트를 모두 폐쇄했을 때 어느 정도의 성과가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보고서를 보면 해적 사이트를 자주 이용하는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합법 음원 사이트나 합법 스트리밍 사이트를 더 자주 이용했다. 해적 사이트에서 무상으로 내려받은 음원을 자주 듣는 이들은 마음에 드는 곡을 합법으로 재구매하거나 CD를 사는 경향이 있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또 가계 수입이 많은 이용자는 합법 구매 사이트의 클릭 수도 높지만 수입이 적은 이용자는 해적 사이트의 클릭 수가 더 많은 경향도 관찰됐다. 또 음원 무단 공유 사이트가 사라진다면, 합법 음원 사이트의 클릭 수 역시 2% 감소할 것이라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유럽 지역을 대상으로 한 이 보고서를 한국의 음원 시장에 곧바로 적용할 수는 없다. 음악 시장의 성숙도, 소비자의 음악 소비 형태, 인터넷 환경, 해적 행위에 대한 인식 수준 등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과도한 저작권 적용으로 소비자들이 온라인에서 음악을 즐기는 행위가 제한받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무단 공유를 '불법'으로 낙인찍고 규제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또 온라인에서 법의 규제를 기술의 진보로 회피하는 현상은 항상 관찰됐다.
저작권 이슈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남희섭 오픈넷 상임이사는 "개인이 혼자 즐기기 위해 음원을 내려받는 것은 저작권법에서도 허용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창작자의 생계와 창작 행위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보장하려는 노력만큼, 소비자들이 음악을 제대로 향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창작자의 저작권이 제대로 된 대가를 취하고 있지 못한 한국의 현실에서 무단 공유의 '순기능'을 보려는 시도는 자칫 해적 행위에 대한 일방적 옹호로 비난받기 쉽다. 지난달 25일 <포브스> 온라인판에 오른 칼럼의 한 대목은 이러한 딜레마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사람들은 단순한 답을 좋아한다. 우리는 옳고, 사실이고, 틀린 것에 대해 듣길 좋아한다. 만약에 문제가 복잡해지면, 우리는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 따라서 정보 과잉의 시대를 살면서 복잡한 이슈에 대해 흑백논리의 관점을 수용하는 것은 항상 더 쉬운 방책이었다. 음악 '불법' 내려받기에 대해 논할 때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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