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200명 사형 선고' 홍준표, 당신이 말기 암 걸린다면…"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200명 사형 선고' 홍준표, 당신이 말기 암 걸린다면…"

[위기의 공공 의료 ①] 진주의료원 환자·직원들의 피눈물

휴업 예고 기간 종료를 이틀 앞둔 28일, 진주의료원 로비는 한산했다. 입원 환자들이 있는 5층 병동도 반쪽은 비었다. 오갈 데 없는 환자들만이 불안한 눈빛으로 자리를 지켰다. 도청 직원들이 환자 보호자에게 퇴원을 강요하는 전화를 돌린 뒤였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공공 병원인 진주의료원을 폐업하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았다. 병실을 지키는 김명자(가명·58) 씨는 "도청에서 다른 병원으로 옮기라고 개인 휴대전화로 전화해서 안 받았더니, 이제는 병실로 전화가 온다"고 불안해했다. 200여 명에 달했던 입원 환자는 80여 명으로 줄어들었지만, 김 씨는 끝까지 버틸 계획이다.

김 씨의 동생은 민간 병원들이 꺼리는 장기 입원 환자다. 뇌에 심각한 손상을 입고 24시간 산소 호흡기에 의존하는 동생은 지난해 5월부터 이 병원에 입원해 있다. 산소 호흡기가 잠시라도 빠지면 목숨이 위태로운데다,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기도 해서 응급실에 간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김 씨에게 진주의료원은 최후의 보루다. 그동안 그는 거동을 못하는 동생을 데리고 삼성서울병원, 경상대병원, 진주 지역 종합 병원을 전전했다. 다른 병원에서는 90일 이상 입원하면 병상 가동률이 떨어져 병원 손해가 커지니 나가라고 재촉했다. 건강보험 혜택을 안 줄 수도 있다는 협박도 받았다고 했다. 김 씨가 최종 정착한 병원은 공공 병원인 진주의료원이다.

"다른 병원은 세 달이면 돈이 안 된다고 나가라고 하는데, 여긴 쫓아내지 않아서 좋았어요. 여기 입원하신 할머니도 거동을 못하시는데 몇 년씩 계셨거든요."

대학 병원에서 진주의료원으로 옮긴 후 김 씨의 한 달 병원비 부담은 300만 원에서 150만 원으로 줄었다. 김 씨는 "우리 같은 사람은 여기 말고는 갈 데가 없는데 도에서 공공 의료원을 없애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10년째 진주의료원을 이용하는 서해석(66) 할아버지에게도 진주의료원은 오갈 데 없는 환자들을 받아주는 고마운 곳이다. 서 할아버지는 독거노인이자 기초생활수급자다. 관절염으로 하체에 힘이 없는 그는 얼마 전 넘어져서 갈비뼈를 다쳐 진주의료원에 입원했다. 2주일간 입원하고 총 병원비로 6만-7만 원을 냈다. 의료급여 1종 환자(기초생활수급자) 역시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민간 병원에서 꺼리는 환자다.

▲ 진주의료원의 호스피스 완화 센터의 한 일반 병실. 진주의료원은 6인실 가격으로 환자들에게 4인실을 제공하고 있다. 말기 암 환자들은 이곳에서 전문 의료진의 돌봄을 받으며 임종한다. ⓒ프레시안(김윤나영)

경상남도 "진주의료원 적자 심각" vs "공공병원 적자는 당연"

환자들이 반대 의사를 표명했음에도, 2월 26일 진주의료원 폐업을 발표한 이후 경상남도는 폐업 절차를 일사천리로 진행하고 있다. 보호자 없는 병실 지원 중단, 호스피스 완화 센터 지원 중단, 약품 및 재료 공급 중단 요청, 의사 사직 종용, 환자 퇴원 종용 등이 이뤄지고 있다.

홍준표 도지사는 진주의료원의 적자가 한 해 30억-40억 원에 달하고 2012년 말 누적 부채가 279억 원에 이른다고 몰아세웠다. 그러나 정작 경남도가 진주의료원에 지원한 돈은 지난 3년간 연평균 12억 원에 불과했다. 반면 경남도는 거가대교와 마창대교 건설에 각각 242억 원과 100억 원을 지원했다.

진주의료원 노동자들은 공공 병원이 적자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반박했다. 장애인 전문 치과, 노인 요양 병원 운영, 지역아동센터 지원, 인공관절 무료 시술, 취약계층 무료 진료, 말기 암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 사업 등 다른 병원에서 꺼리는 '돈 안 되는' 공공 의료를 수행해왔다는 것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진주의료원이 이처럼 필수 공공 의료 사업을 수행하는 데 따른 적자가 연간 30억 원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진주의료원 직원들은 7개월간 임금을 전혀 못 받고 고통 분담을 감내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건의료노조는 그 밖에도 30명 인원 축소, 신규 채용 억제, 연차수당 반납, 6년간 임금 동결 등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2012년 말까지 진주의료원에 그렇게 쌓인 체불 임금만 29억7900만 원에 달한다.

행정 직원인 박창범(가명·37) 씨는 5년 동안 계약직으로 일하면서 한 달에 140만 원을 받았다. 7년차인 그의 연봉은 2300만-2400만 원에 멈춰 있다. 그 월급마저 7개월째 못 받았다. 박 씨는 "의사 임금은 줘야 하고 직원들 줄 돈은 없다고 해서 안 받았다"며 "적금 깨고 카드 돌려 막기 하고 가정생활은 파탄 났다"며 "도청 공무원들은 매년 월급을 올려 받으면서 12억 지원이 아까워서 폐업 결정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임금을 7개월 동안 못 받으면 어떤 기분인지 도지사는 모른다"고 덧붙였다.

▲ 보건의료노조는 27일 경남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주의료원 폐업 반대'를 청원하는 시민 3만5000명의 서명을 도청에 전달했다. 이날 진주의료원 노사는 집단 삭발식과 단식 투쟁을 시작했다. 기자회견에 앞서 진주의료원의 한 직원이 눈물을 보이고 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민간 병원이 떠넘긴 '돈 안 되는 환자' 다 받았는데…"

경남도는 "공공의료법의 개정으로 민간 병원도 공공 의료 서비스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의료 공급 과잉 지역인 진주에서 의료원 폐업을 공공 의료 포기라고 주장하는 것은 공공성을 빌미로 실상은 노조원들 주머니를 계속 채우기 위한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간 병원이 공공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주장에 진주의료원 직원들은 회의적이다. 말기 암 환자들을 위한 호스피스 완화 센터에서 일하는 간호사 최희진(가명) 씨는 "대학 병원에서 '환자가 돈이 없어서 치료 못한다'는 그 말 한마디에 바로 우리 병원으로 보낸다"며 "병상 가동률을 떨어뜨리는 결핵 환자가 오면 무조건 우리에게 떠넘기는데, 민간 병원이 그런 적자를 감당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최 씨는 "신종플루가 창궐했을 때도 규명되지 않은 병에 대해서 민간 병원이 '환자 떨어진다'고 부담스러워할 때 우리는 다 받았다"며 "그런 역할을 하라고 있는 게 바로 공공 병원"이라고 강조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에서 다른 병원의 수가 인상을 억제하는 것도 공공 병원의 또 다른 기능이다. 일례로 진주의료원의 MRI 가격은 인근 병원보다 20만 원가량 싸다. 최 씨는 "우리는 최신 기계를 들였기 때문에 기계 값을 충당하려면 다른 병원보다 더 높게 가격을 책정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며 "인근 병원들의 비급여 항목 가격이 진주의료원을 기준으로 책정된다"고 말했다. 진주의료원이 사라지면 인근 병원들의 비급여 진료비가 일제히 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은 공공 병원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유럽 국가들은 전체 의료 기관의 80-90%가 공공 병원이다. 의료 상업화의 첨병이라는 미국조차도 공공 병원 비중은 30%에 달한다. 반면 한국의 공공 의료 기관 비중은 5.9%. OECD 국가 가운데 꼴찌다.

최 씨는 "국가 정책이 복지를 강화하고 공공 병원을 증축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성남도 시립 병원 짓는 마당에 기존에 있는 병원도 없애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6인실 갈 돈으로 4인실 이용, 환자 한 명당 20분 면담"

의료 서비스 질에 대한 환자들의 만족도도 높다. 말기 암 환자인 어머니를 호스피스 완화 센터에서 돌보고 있는 김준혁(가명·34) 씨 또한 "다른 병원은 1만 원을 내고 6인실을 쓰지만, 진주의료원에서는 4인실에 갈 수 있다"며 "병원 과장님(의사)이 직접 병실을 돌며 매일 20분씩 환자와 보호자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간다"고 했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병원을 알아보고 진주의료원을 택했다는 그는 "인근 지역에서 환자와 보호자가 함께 지낼 수 있는 병원은 진주의료원이 유일했다"고 말했다. 그는 "진주의료원이 사라지면 말기 암 환자들은 갈 데가 없다"며 "내 일이 아니었다면 남 일이었을 텐데 막상 있어보니 꼭 있어야 할 병원, 없어지면 안 될 병원"이라고 강조했다.

최 씨는 "말기 암 환자를 위한 심리 요법, 완화 요법에 아직 수가가 책정되지 않아 정부에서 사업비를 받아 운영한다"며 "도에서 호스피스 병동을 지으라고 해서 지난해 10월에 출범했는데, 이제 와 병원을 폐쇄한다니 그동안 임금도 못 받고 그렇게 열심히 일한 게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린 것 같다"고 허탈해했다.

"비록 운영하면 적자가 나지만, 다른 공공 병원에서도 호스피스 병동을 도입할 때 저희 병원에 문의를 많이 했거든요. 그렇게 힘들게 가꾼 호스피스가 없어진다니 하루아침에 내일 죽는다고 판정받은 말기 암 환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에요. 말기 암 환자에게도 삶을 정리할 시간 한두 달이 필요하잖아요. 홍준표 도지사에게 되묻고 싶습니다. 말기 암 선고를 받고 정리할 시간도 없이 죽는다면, 당신 마음이 어떨지. 기분이 어떨지. 정신적·육체적으로 힘든 환자들에게 나가라고 하는 것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습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