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 '모피아'의 대표격으로 불린 그가 퇴장하게 되면서, 전 정권에서 시도한 은행 대형화 작업인 '메가뱅크' 논의도 물거품이 될 공산이 커졌다.
'MB 측근' 물갈이 시작?
강 회장의 퇴장은 예고됐다. 지난 11일 박근혜 대통령이 새 정부 첫 국무회의에서 "각 부처 산하 기관과 공공 기관에 대해 앞으로 인사가 많을 텐데, 새 정부의 국정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말한 건 그의 퇴장을 예고했다.
강 회장이 이른바 'MB노믹스'의 상징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으로선 국민의 반감이 높은 전 정권의 경제 정책과 다른 길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고, 강 회장은 따라서 자리를 보전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사이 감사원은 산업은행 감사에 들어갔고, 그 결과 강 회장 체제에서 나온 다이렉트예금이 역마진 상품이라고 지적했다. 산은지주 민영화가 실패한 데 대한 책임론도 일각에서 대두됐다. 더구나 산업은행의 지난해 순이익은 전년보다 33%나 줄어들었다. 신제윤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아예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의 임기는 보장할 수 없다는 공언까지 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강 회장은 자리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내보였으나, 버티기는 통하지 않았다.
강 회장의 퇴장은 이 전 대통령의 다른 측근 물갈이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여론은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리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이미 현직에서 물러난 상태다.
비금융권에도 이 전 대통령의 '낙하산'은 많다. 주강수 한국가스공사 사장, 장석효 한국도로공사 사장, 정정길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양유석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원장, 김선규 대한주택보증 사장, 정창영 코레일 사장, 정승일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 정정택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등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인사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공공 기관은 300곳 가까이 된다.
포스코, KT 등 민간 기업 중 정부의 입김이 강한 곳 역시 '낙하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수 기관에서 전 정부의 '낙하산'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낙하산'이 임명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박근혜 정부가 실적을 중시하겠다고 했으나, 역대 정권의 '낙하산' 임명·해임 과정을 돌이켜 보면 이를 액면 그대로 믿기란 쉽지 않다.
▲'모피아'의 핵심이던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이 물러난다. 'MB 낙하산' 물갈이의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강 회장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힐튼호텔에서 '2013 한국을 빛낸 창조경영대상 시상식'에 참석해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뉴시스 |
'MB 노믹스'도 끝?
강 회장의 사퇴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해온 경제 정책의 종언으로도 읽힌다. 강 회장은 2008년 이명박 정부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공직에 복귀해 고환율 정책과 감세 정책, 부동산 시장 규제 완화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당시 그가 '747'(7% 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 공약 달성을 위해 고수한 고환율 정책은 물가 폭등, 경제 위기와 맞물려 여론의 강한 비판을 받았다. 뒤늦게 환율을 끌어내리느라 당시 외환보유고의 4분의 1에 달하는 600억 달러가량을 써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전임 정부에서 한때 소비자 물가가 5% 수준으로 폭등한 데다, 최근 들어서도 물가를 잡기가 좀처럼 쉽지 않음을 감안하면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 노선에 일정 정도 선을 그을 가능성이 높다.
학계의 비판을 받은 메가뱅크, 은행 민영화도 물거품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 정부는 정부가 지분을 보유한 우리금융지주와 산은금융지주를 민영화하고, 이들을 포함한 국내 은행 간 합병을 유도해 '세계적 크기의 은행'을 만들겠다는 금융 정책을 강하게 추진했다.
그리고 강 회장은 이 작업에서도 핵심 인물이었다. '메가뱅크' 논리 자체가 강 회장의 작품이었다. 강 회장은 지난 2011년 산은금융이 우리금융을 인수해 민영화하는 방안을 언론에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당시 정부는 '은행을 대형화해야 해외 투자은행과 벌이는 경쟁에서 밀리지 않는다'는 논리로 이와 같은 작업을 추진했으나, 이는 오히려 민간 금융 산업이 정치권에 휘둘린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1년 6월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초대형은행, 국민에게 득인가 실인가?' 토론회에서 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는 메가뱅크 논리를 "'규모가 곧 경쟁력'이라는 1970년대 토건 경제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결국 강 회장의 퇴진은 전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었던 금융 정책에 대해 현 정부가 어느 정도 신중하게 접근하리라는 신호로 해석 가능하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전 정권의 패러다임에서 '성장과 일자리를 동시에 추구'한다는 목표로 전환했다. 수출 중심보다 내수 중심을, 건설 경제보다 이른바 '창조경제론'을 국정 과제로 내걸었다는 점도 전 정부와 다른 점이다.
다만 어디까지나 현 정부의 주축도 경제성장에 방점을 찍는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혁명적'인 변화는 기대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MB맨 내치기가 MB 노믹스의 진정한 종말로 이어질 것인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말이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지점은, 박 대통령이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에서 벗어날 것인지 여부다.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때 박 대통령이 내세운 구호였던 '줄푸세'는 이명박 정부의 '747'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비판을 여러 차례 받았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내세운 경제 민주화와도 상충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대해 박근혜 당시 후보는 "'줄푸세'와 경제 민주화는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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