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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정부의 교과서 '뉴라이트화' 시도에 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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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정부의 교과서 '뉴라이트화' 시도에 제동

"수정하려면 제대로 심의 절차 밟아야"…갈등 지속될 듯

이른바 '좌편향 교과서'를 뉴라이트 계열과 재벌 경제단체 입맛에 맞게 바꾸려 한 이명박 정부의 교과서 수정안에 대해 대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정부의 교과서 수정 시도가 암초를 만난 셈이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관련법 개정을 시도하고 있어, 교과서를 둘러싼 정부와 교육자들의 갈등은 새 정부 들어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법 "교과서 바꾸려면 제대로 심의해야"

15일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 등 금성출판사의 근현대사 교과서 공동 저자 3명이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상대로 낸 교과서 수정명령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적법한 심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교과서 내용을 바꾸도록 한 교과부 수정명령이 법에 위배된다고 판결한 것.

재판부는 "수정명령이 표현상 잘못이나 기술적 사항 또는 객관적 오류를 잡는 정도가 아니라, 이미 검정을 거친 교과서 내용을 실질적으로 변경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는 새로운 검정절차를 취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검정절차상 교과용도서심의회의 심의에 준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어 정부의 수정명령에 문제가 없다고 판결한 원심에 대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지난 2008년 벌어진 금성출판사의 근현대사 교과서를 둘러싼 '좌편향 교과서 논란'은 다시금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당시 뉴라이트 성향 학자들의 모임인 교과서포럼의 수정건의안에 발맞춰 교과부가 교과서 내용 중 상당 부분을 수정할 것을 출판사에 지시했고, 출판사 측이 이를 수용해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됐다. 논란이 된 후 고교 300여 곳이 금성출판사 교과서에서 다른 교과서로 바꿨다.

당시 교과부는 이른바 '좌편향'의 사례로 "연합군이 승리한 결과로 광복이 이루어진 것은 우리 민족 스스로 원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데 장애가 되었다…광복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역사적 순간은 자주 독립을 위한 시련의 출발점이기도 하였다"는 부분을 꼽았다. '분단의 원인을 왜곡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게 이유였다.

"남한에서 정부가 세워진다면 이는 북한 정부의 수립으로 이어질 것이 확실하였다. 이제 남과 북은 분단의 길로 치닫게 되었다", "통일정부의 건설을 바라는 국민적 열망과 여러 정치세력들의 반대 속에 1948년 5월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세우기 위한 총선거가 실시되었다"는 부분도 '정부 수립의 정통성을 저해할 수 있다'며 수정을 명령했다.

1심은 "수정은 실질적으로 검정과 같으므로 교과용도서심의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 위법하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으나, 2심은 절차상 하자를 인정하지 않고 결과를 뒤집었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다시금 정부의 교과서 수정 명령이 적법하지 않았음이 확인됐다.

▲역사교과서를 뉴라이트 입맛에 바꾸기 위한 정부의 시도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8년 11월 19일 오후 서울 공덕동 금성출판사 앞에서 한 우익 시민사회단체가 주최한 금성출판사 역사교과서 출판 중단 촉구 기자회견의 한 장면. ⓒ뉴시스

교사 "일단 환영"…정부와 갈등 지속될 듯

대법원 판결 직후 전국역사교사모임(이하 역사교사모임)은 즉시 논평을 내 환영의 뜻을 밝혔다.

역사교사모임은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강제 수정 조치는 단순히 교과서 내용 몇 군데를 고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국민의 역사인식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고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며 "이번 판결이 권력의 힘으로 교육을 좌우하려는 행위에 종지부를 찍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전히 정부가 교과서 관련 법안 개정을 강행하고 있어, 앞으로도 교과서를 둘러싼 갈등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2일 교과부는 작년 8월 입법 예고했다가 역사 왜곡 논란으로 무산된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수정 보완해 다시 입법 예고했다.

이 법안은 장관의 교과서 수정권을 기존 대통령령이 아니라, 법률에 직접 명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국정 교과서는 교과부 장관이 직접 수정하게 되고, 검·인정 교과서는 저작자나 발행자에게 수정을 요청할 수 있다.

교과부 장관이 교과서 편찬·검정·인정 단계에서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감수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했다. 출판사가 장관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검·인정 합격이 취소되거나 1년 범위에서 효력이 정지된다. 합격이 취소된 출판사는 앞으로 3년간 교과서 심사에 참여할 수 없다.

출판사에 대한 교과부 장관의 통제 권한을 대폭 강화한 것으로, 철저히 이번 교과서 파동에 맞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법률 개정을 통해, 교과서를 정부 입맛대로 바꾸려는 데 대한 시비 여지 자체를 사전 봉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 '朴통 시대' 발맞춰 '교과서 전쟁 시즌 2' 시작되나?)

역사교사모임은 "정부가 입법예고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스스로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며 "우리는 앞으로도 교육계와 학계, 시민단체들과 힘을 합해 교육과 교과서가 권력의 부당한 압력과 간섭을 받지 않도록 하는 데 힘을 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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