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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박근혜…공약 포기냐, 증세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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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기로에 선 박근혜…공약 포기냐, 증세냐

[재정 논란, 증세로 확장되나 ①] 공약 포기론, 기득권의 '朴 주저앉히기'

'박근혜호'가 출항 전부터 암초를 만났다. 복지 공약 실행을 위한 재정 계획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이제 박 당선인은 "증세는 없다"던 말을 철회하고 공약 이행을 위한 진정성을 보이거나, 강조하던 자산인 '신뢰'의 구호를 버리고 공약을 포기해야 하는 갈림길에 섰다.

순조롭지 않은 미래가 이미 박 당선인을 기다리고 있다. 공약을 철회할 경우, 곧바로 새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크게 흔들리게 된다. 신뢰를 잃고, 국민의 지지를 잃으며, 그에 따라 '국민대통합 시대'는 헛구호에 그치는 결과로 나아갈 수 있다.

공약 이행도 쉽지 않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벌써부터 박 당선인에게 은근한 압력을 행사하려 한다. 무엇보다 증세 카드를 꺼낼 경우, 강력한 조세 저항이라는 난관을 이겨내야 한다. 박 당선인은 어떤 길을 택해야 할 것인가.

<프레시안>이 해법을 구한 전문가 대부분이 박 당선인에게 "증세에 나서라"고 조언했다. 이를 위한 절차, 증세 방식, 규모 등을 놓고는 의견이 다소 갈렸으나, 증세의 필요성만 놓고 보면 이견이 없었다.

오히려 이번 논란을 슬기롭게 이겨낼 경우, 박 당선인은 강한 권한을 갖고 '새로운 복지국가 건설'에 성공한 대통령으로 자리할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도 나왔다.


<프레시안>은 3편에 걸쳐 재정 확충 논란을 다룬다. <편집자>

빨간불은 여권에서 먼저 켜졌다. 새누리당 심재철 최고위원은 지난 14일 "예산이 없는데 '공약이므로 공약대로 하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기초노령연금 확대 및 4대 중증질환 치료비 보장 등의 공약 수정을 요구했다. 이어 16일에는 정몽준 전 대표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공약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우선순위를 정해서 추진해야 한다"며 '속도 조절론'을 제기했다.

이로 인해 복지국가 건설에 위험 신호가 들어왔다. 보수 언론이 앞다퉈 이 문제를 지적하며, 사실상 공약 철회를 요구했다. 급기야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17일 기자회견을 열어 "새 정부가 시작도 되기 전, 정성을 다해 만든 공약에 대해 '지키지 말아라', '폐기하라'든지 '공약을 모두 지키면 나라 형편이 어려워진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며 추가 논란을 차단하고 나서야 했다.

그러나 김 인수위원장의 기자회견만으로 의구심이 진화되리라 보는 전문가는 없다. 박근혜호의 미래가 이처럼 인수위 시절부터 크게 흔들리리라 예상한 이는,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아무도 없었다.

▲박근혜 당선인이 대선에서 승리한 지 한 달여가 지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공약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더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

복지 재정, 현실성 없다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심지어 전문가들까지 목소리는 같다. 공약 이행을 위해 향후 5년간 총 134조5000억 원(연평균 26조9000억 원) 규모로 잡은 박 당선인의 재정 계획에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한다.

당장 기획재정부 안에서 '실현이 어렵다'는 반발이 나온다. 작년 4.11 총선을 앞두고 재정부가 구성한 복지 태스크포스(TF)는 이해 4월 4일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내건 복지 공약 266개를 모두 집행하는 데 기존 복지 재정 92조 원에 추가로 앞으로 5년간 268조 원이 더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물론 중앙선관위는 복지 TF의 발표를 두고 "(복지 불가능 논리를 만들어) 선거에 영향을 끼칠 의도가 있다"는 이유로 선거법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서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제시한 복지 재정에 5년간 27조6000억 원을 추가하면 공약 실현이 가능하다"고 천명한 바 있다. 두 주장엔 분명 간극이 있다.

더구나 인수위가 요구한 재원 조달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는 복지 TF의 보고서를 활용하고 있다. 1월 말 발표가 예정된 재정부의 재원 조달 계획안이 인수위의 의견과 대립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복지 재정 논란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은 건 16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최병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이 박 당선인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자금 소요 예측치를 밝히면서부터다. 이 자리에서 최 원장은 박 당선인의 공약 중 복지부 소관 복지 사업을 실행하는 데 현재 예산안에 5년간 105조 원이 추가로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 당선인이 밝힌 복지 재정 134조5000억 원은 대선 기간 제시한 모든 복지 사업에 필요한 재정이다. 이 중 반값 등록금, 병사 급여 인상 등 복지부 소관이 아닌 사업을 제외한 부문에만도 상당한 예산이 필요하다는 게 최 원장의 주장이다. 이 추계를 100퍼센트 반영한다면 박 당선인 측이 제시한 현 재정 조달 계획으로는 공약을 전부 실현하기가 상당히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최 원장은 4대 중증질환 진료비를 국가가 전액 부담하는 데만 21조 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당선인 측이 밝힌 필요 재원(6조 원)의 3배가 넘는다. 4대 중증질환 진료비 부담, 기초연금 도입, 기초생활보장 확대 등 박 당선인의 이른바 '3대 복지공약'을 이행하는 데는 새누리당 추계인 34조 원의 두 배가 넘는 77조 원이 소요될 것으로 최 원장은 예측했다.

"공약을 발표할 때마다 재원이 얼마나 소요되며 실현 가능한지를 만든 분들이 피곤할 정도로 따지고 또 따졌다"는 박 당선인의 주장이 사실상 '근거 없음'으로 판명나버렸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18일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지금 재정 규모로는 박 당선인 측의 복지 공약은 현실성이 없다"며 "지금도 적자재정을 펴고 있는데, 복지 공약을 위해 필요한 재원은 상당한 규모"라고 단언했다.

▲박근혜 당선인이 밝힌 복지 공약 중 보건복지부 소관 사업은 그림과 같다. 이들 사업 실행 가능성에 의문부호가 자꾸만 붙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공약 철회=복지 포기

여기서 갈림길이 생긴다. 공약 철회는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된 '복지국가'로 이행하는 것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다. 이명박 정부 5년을 지나며 점증한, 그리고 대선 과정에서 폭발한 국민의 요구가 없던 일이 된다는 뜻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복지 공약 철회 요구를 받아들여) 공약을 갈아엎기 시작한다면, 이후에는 경제 민주화와 관련한 공약을 실행하기도 어려워진다"며 "박 당선인이 섣불리 공약을 물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 당선인이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카드다. 공약 포기란 기존에 한국 사회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세력, 즉 가진 자들에게 박 당선인이 굴복한 모습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이는 출범도 하기 전에 박근혜 정부가 힘을 잃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당장 대선 한 달여 전인 지난해 11월 8일, 대한상공회의소·전국경제인연합회·한국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5단체는 당시 후보자이던 박 당선인을 찾아가 증세 철회를 비롯해, 대선의 화두로 떠오른 노동 환경 개선, 정부 규제 강화 등의 공약을 사실상 모두 물릴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오히려 새해 들어 진보 진영이 박 당선인의 공약 이행을 촉구하고, 박 당선인 측의 텃밭이라 여겨지던 보수 진영에서 인수위를 공격하는, 어색한 구도가 연출되는 배경이다.

지난 16일 <한겨레>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가 쓴 칼럼 '박근혜 주변 사기꾼들, 왜 "공약 버리라"고 하나'는 이런 위기감을 고스란히 내비쳤다. 칼럼에서 성 선임기자는 "박근혜는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다. 약속을 지키는 것은 박근혜 정치의 본질이다"라고 규정하고 "야당도 박근혜와 기득권 세력의 싸움에서는 박근혜 편을 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명박 정부 들어 심화된 양극화로 복지 수요가 늘어난 현실은 그대로"라며 "이를 토대로 당선된 박 당선인이 지금 공약을 포기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조언했다.

재정 확충 방안 찾아야

결국 공약 포기란 생각할 수 없다. 답은 재정 확충뿐이다. 늦어도 박 당선인의 국정 철학이 완전히 녹아들 내년 예산안을 짤 올해 중순까지, 해법이 나와야 한다.

재정 확충 방안이 나오면 박 당선인이 제시한 공약 실현 순서를 짤 수 있다. 이를 통해 세간에 가득한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다. 그래야 새 정부가 국민 신뢰를 바탕으로 순항할 수 있다. 전성인 교수는 "신뢰는 중요한 사회적 자산"이라며 "(박 당선인이) 일단 국민에게 (복지 공약을) 약속한 이상, 이를 지키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도 재정 확충은 불가피하다. 올해 정부 예산은 약 342조 원으로, 국내총생산(1237조 원)의 29.7퍼센트(%)에 불과하다. 유로존 평균인 48.5%는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41.7%에도 한참 못 미친다. 재정 규모가 작은 만큼,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에도 한계가 뚜렷하다. 자연히 복지 정책을 실현할 여유가 줄어든다.

이와 관련,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지난해 7월 25일 발간한 '글로벌 재정위기, MB 재정건전성, 그리고 보편 복지 재정'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의 재정 수준이 "나라가 자신의 역할을 다하기 어려울 만큼 빈약한 재정"이라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예산 부족에 허덕이는 근본 원인도 여기서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유로존과 OECD, 한국의 GDP 대비 재정 규모. 한국의 재정 규모(가장 아래 그래프)가 OECD 평균에 비해 턱없이 부족함을 알 수 있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재정을 어떻게 확충할 것인가. 가장 먼저 제기된 의견은 국채 발행이다. 대선 직후인 작년 12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확대 원내대책회의에서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국채를 발행해서라도 박 당선인의 공약 예산 6조 원은 증액하겠다"고 말했다.

국채는 당장 조세 저항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는 선택하기 어려운 카드다. 지난해 말 현재 한국의 국가 부채 규모는 468조 원에 달한다. 연간 이자 비용만 19조 원이다. 한 해 국방비(올해 34조6000억 원)의 절반이 넘는다. 국채를 늘리면 그만큼 이자 비용 부담은 더 커진다.

한국의 국채 규모는 양호한 편이지만, 증가 속도가 빠르다. 2001년 국가 부채는 121조8000억 원에 불과했다. 10년간 4배 가까이 늘어났다. 늘어나는 국채 부담은 곧 미래 성장 동력을 소진한다. 더구나 균형 예산을 강조해 온 새누리당의 정체성에도 맞지 않는다. 바로 이웃 국가인 일본은 국채에 의존한 정부 정책의 실패 사례다.

미래를 갉아먹지 않으면서도 정부의 덩치를 키울 유일한 방법은 단 하나, 증세뿐이다. 박 당선인의 공약 실현을 위해서, 박근혜 정부 5년을 위해서라도 증세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영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박 당선인이 내세운 대로 지출 개혁과 세제 개편에만 매달린다면, 필요한 복지 재정의 절반도 확보하지 못할 것"이라며 "공약 실현을 위해서는 결국 증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건호 연구실장은 "비단 복지 정책 실행 목적이 아니라 하더라도, 정부 재정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건 이미 시대적 과제"라며 "국가 재정 확충을 위해서라도 박 당선인이 증세안을 마련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당장 강한 조세 저항에 부딪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포기하기도 어렵다. 결국, '어떤 증세냐'는 질문에 박 당선인이 답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새 정부 출범까지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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