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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인수위, '이념 과잉'을 경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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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 인수위, '이념 과잉'을 경계해야

[한반도 브리핑] 남북관계를 위해 인수위가 해야할 일

이제 대통령선거가 끝났다. 통일·외교·안보 분야만 보더라도 온갖 현안이 적체돼 있어 차기정부에서 일할 사람들이 고생을 좀 해야 할 것 같다. 고생할 것을 생각하면 좀 안됐지만, 그렇다고 일을 잘못해도 국민이 봐줄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랏일'이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권력 주변에는 항상 능력없는 아첨꾼이 넘쳐나고, 그런 사람일수록 자신은 '자격이 넘친다'고 생각하는 법이다. 그래서 인사가 어려운 법이다. 모든 분야가 다 마찬가지겠지만,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통일·외교·안보 분야의 인사를 하는 데서도 다음 몇 가지 능력을 등용의 판단기준으로 삼으면 좋겠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첫째, 사물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데서 '균형감각'과 '합리성'을 갖춰야 하며, 둘째, 자기 분야에서 전문적인 식견을 갖추고, 셋째, 자기 분야와 다른 분야들 간의 연계성을 이해함으로써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이해 능력을 갖추고, 넷째, 비전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만들어내는 능력을 보유하고, 다섯째, 진정성을 갖춘 도덕적인 인물로 존경받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최근 여러 나라의 경험을 보더라도, 현실 정책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정책주체가 사물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데서 균형감각과 합리성을 잃고 '이념과잉'에 빠지는 것이다. 특히, 지도자 자신의 이념과잉은 이념과잉을 가진 참모들의 선택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혁명가나 사상가는 극단적인 이념을 추구할 수 있지만, 정책을 다루는 정부와 정책커뮤니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균형감각'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정책이 균형감각을 잃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다른 쪽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희생당하게 된다.

정책에서의 '이념과잉의 문제점'을 정곡을 찌르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 경고한 지도자가 있다면, 그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이념과잉의 문제는 무엇보다도 '이념에 바탕을 둔 해답을 미리 갖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어떤 문제에 대해 미리 답을 갖고 있으면, 아무리 그것과 반대되는 증거와 경험을 갖고 있다 해도, 그것들은 미리 정해 놓은 해답을 바꾸지 못하며, 토론을 한다고 해도 미리 정해놓은 답을 바꾸지 못하기 때문에 시간만 허비하게 될 뿐이라고 했다. 역시 클린턴 대통령의 지적인 능력을 잘 나타내는 명쾌하고 엄중한 경고이다.

클린턴 대통령뿐만이 아니다. 현대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태두인 한스 모겐소(Hans Morgenthau)는 이미 1940년대 후반에 자신의 저서 <국제정치>(Politics Among Nations)에서 '외교의 성공을 위한 9원칙'을 제시했다. 그 중에서 '4가지 근본원칙'만 소개하자면, 첫째, 외교로부터 십자군전쟁 정신을 제거해야 한다(즉, 선악외교, 가치외교, 이념외교를 하지 말라). 둘째, 외교의 목적은 국가이익의 관점에서 정의되어야 하고 필요한 힘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셋째, 외교는 상대방국가들의 관점에서 정치적 장면(상황)을 바라보아야 한다(즉, 역지사지(易地思之)하라). 넷째, 국가는 자신들에게 핵심적이지(vital) 않은 모든 이슈들에서는 기꺼이 타협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 정치나 외교는 상대방을 나의 가치를 중심으로 규정한 선악의 개념으로 보아서는 안 되며, 상대방의 입장을 역지사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상대방이 우리의 정책이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고 손해가 되는 정책이라고 인식한다면, 상대방은 결코 협력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우리의 정책은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없어서 실패한다는 것이다. 전쟁이 아닌 이상, 외교협상에서는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완승'을 거두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고 또 바람직하지도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경우는 어떠했는가? 이명박 대통령의 참모들은 대북정책에서 심각한 이념과잉을 보였다. <중앙일보>의 저명한 모 대기자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인내심을 갖고 8개월 이상 지켜보다가 결국은 그들을 "한국판 네오콘"으로 명명했다. 주지하다시피, 네오콘이란 조지 W. 부시 시절 '선'과 '악'의 양분법적 인식과 가치를 기준으로 이라크, 이란, 북한을 '악의 축'의 국가로 명명하고 이들의 정권교체를 추구했던 사람들을 지칭한 말이다. 상대방의 존재 그 자체를 부정하는 상황에서 외교는 더 이상 없었다.

이명박 정부의 경우, 이념과잉의 문제는 공식적인 대북정책으로 내세운 '상생·공영'과 속내로 갖고 있었던 '북한붕괴론' 사이의 불일치로 나타났고, 그것은 즉각적으로 남북 간에 불신을 야기했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위기론, 북한 급변사태론, 통일준비론으로 이어지는 북한붕괴론을 임기를 다해가고 있는 마지막까지 버리지 않고 있다.

통일준비론은 사실상 이명박 정부가 자신의 대북정책의 실패를 감추기 위해 남북관계 논의의 축을 '상생과 공영'으로부터 '통일'로 바꿔버림으로써 국민을 오도한 일종의 정치공학적 차원의 국내정치용 담론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이념과잉이 초래하는 정책의 비현실성이 어떤 문제를 야기하는지 잘 보여주는 경우이다. 결국 남은 것은 대북정책의 총체적 실패였다. 그런데 그러한 '네오콘'적 이념과잉의 참모들을 청와대와 정부의 요직에 등용한 사람은 바로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었다.

그렇다면, 차기정부가 대북정책에서 '이념과잉하지 말아야' 한다는 맥락에서 박근혜 대통령직 인수위는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대북관계에서 첫 단추를 제대로 꿰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위해서 다음의 너댓 가지가 중요해 보인다.

ⓒ뉴시스

첫째, 지난 12월 12일에 있었던 북한의 인공위성 로켓발사와 그 성공에 대해 정치적으로 '요란하지 않게'(low-key) 논의하고 정리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번 발사 사건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향후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둘째, 주변 4강 뿐만 아니라 북한에도 대통령 당선인의 특사를 보내면 좋을 것이다. 형식은 비공식 특사라 해도 관계없다. 이명박 정부 시기에 남북관계가 너무 망가져서 남북한 지도자 간에 신뢰회복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다. 박근혜 당선인이 새로운 남한지도자로서 북한 지도자와 미리부터 소통해서 나쁠 것 없다. 북한에도 특사를 보낸다면, 박 당선인의 예전 북한 방문과 김정일 위원장과의 만남은 하기에 따라서는 향후 큰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대통령 취임식에 북한 대표단을 초청하되, 이명박 정부 인수위가 했던 것과는 달리, 다른 나라에 보내는 일반초청장이 아닌 '특별초청장'을 북한에 보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는 남한 대통령이 남북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남북기본합의서 정신을 존중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우리가 향후 남북관계를 보다 안정적인 바탕 위에서 진척시켜 나가는 데 필요한 북한의 협력을 얻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넷째, 북한 지도부는 이제 선거가 끝났으니 박근혜 당선인의 생각이 진정 무엇인지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혹시라도 주변 인물들이 북한에 대해 대결적인 말과 행동을 하지 않도록 엄중히 입단속을 하고 통제할 필요가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불필요하게 불신이라는 장애물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박근혜 당선인 자신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민족의 희망을 세워보겠다는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도 외교도 사람이 하는 일인데, 지도자가 진정성을 갖고 상호 윈-윈(win-win)하는 비전을 제기하고 그것을 원칙적인 입장에서 일관성 있게 말과 행동으로써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진정성이 결여된 정치공학적 행위과 기술적 차원에서 솜씨의 현란함은 기본적으로 하수(下手)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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