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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 '온종일 학교', 학부모에게 물어보니…

[대선후보들은 모르는 사교육의 속살·<4>] "아이 맡길 데 없어서 학원 보내는 부모들, 대안은?"

"맞벌이 가정에서 늦은 시간까지 아이들을 돌볼 수 있게 도움을 요청할 데가 학교밖에 없다면 이 정책은 정말 솔깃할 것 같아요."

"학교에서 10시까지 아이들을 붙잡아 놓는다는 게 말이나 되나요? 부모가 야근한다고 애들까지 야근시키는 꼴이죠."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지난달 21일 초등학교에서 오후 10시까지 아동을 돌보는 '온종일 학교'를 실시한다는 공약을 발표했을 때, 누리꾼들의 반응이었다.

- 대선후보들은 모르는 사교육의 속살

☞<1> '대입 자율화' 대못 누가 뽑을까?
☞<2> "이력서에 한줄 쓰려고 3천만원 쏟아부었다"
☞<3> 영어유치원, 부모 욕망이 만든 아이들의 지옥

박 후보 측 "밤 10시까지 초등학교 운영…사교육비 부담 경감"

논란이 된 '온종일 학교' 공약의 세부 내용을 살펴보자. 박 후보는 "방과 후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초등학생들이 안전한 학교에서 다양한 체험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원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오후 5시까지 방과 후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박 후보는 온종일 학교를 통해 학생들에게 다양한 예체능, 놀이 및 체험 활동 등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2006년 교육과학기술부가 실시해 온 '방과 후 학교'를 확대 운영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현행 '방과 후 학교' 제도는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 2시 경에 끝나는데, 이 시간을 5시까지 늘리겠다는 것.

아울러 박 후보는 밤늦은 시간까지 돌봄을 원하는 맞벌이 가정을 위해 원하는 경우에는 오후 10시까지 무료 돌봄을 실시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이를 위해 '방과 후 학교운영 및 교육복지지원법' 입법도 추진키로 했다.

박 후보는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돌봄의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박 후보 측 배은희 새누리당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위원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오후 10시까지 연장 운영하는 온종일 돌봄교실에서 학생의 숙제 보조 및 독서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온종일 학교의 효과로 배 위원은 △학원 이용이 줄어 사교육비 부담 경감 △강사 채용 확대에 따른 일자리 창출 △아이들이 안전한 학교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부모가 안심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 한 초등학교에서 운영하는 '방과 후 학교' 풍경. ⓒ뉴시스

"아이는 어린데 맡길 곳은 학원밖에 없어"

실제로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둔 중산층 맞벌이 부부의 고민을 들어보자. 서울 은평구에 사는 워킹맘 이 모 씨(35)는 올해 큰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자녀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다. 지금은 아이를 오후 1시부터 퇴근 시간인 7시까지 어린이집 방과 후 반에 맡기고 있지만 내년이 문제다. 어린이집 방과 후 반은 초등학교 2학년생까지만 받는다고 했다.

초등학교에서 제공하는 '방과 후 학교'(초등 돌봄교실)도 이 씨에게는 소용이 없다. 대부분 수업이 일주일에 1시간밖에 제공되지 않았다. 하교 시간을 몇 시간이라도 늦추려면 7, 8개 과목을 신청해야 해서 아이가 혼란스러워할 것 같은데다, 그마저 오후 7시까지 종일 돌봄은 제공되지 않았다.

이 씨는 "내년부터 영어나 수학학원에 아이를 뺑뺑이 돌려야 할 것 같다"며 "종일 봐주지도 않는데 학원비만 40만 원이 넘어서 부담이 크다"고 호소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를 하루 종일 집에 두기엔 불안하다. 지난 10월 파주의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 초등학생 남매가 유독가스에 질식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가슴이 철렁했던 그였다.

이 씨는 "지금도 두 아이 합쳐 월 소득의 5분의 1을 보육비와 사교육비에 쓰고 있는데, 맞벌이 부부가 돈이 넘쳐나거나 보내고 싶어서 학원을 2~3개씩 보내는 게 아니"라며 "초등학교 저학년에게는 돌봄과 교육이 필요한데 학원이라도 없으면 맡길 곳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낙인, 내 아이는 학교에 10시까지 남기고 싶지 않아"

사교육비가 부담인 이 씨에게 '온종일 학교' 서비스를 이용할 의향이 있느냐고 물어봤다. 이 씨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이유는 "밤 10시까지 학교에 두면 아이가 불안해하고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었다.

일례로 그는 6살 난 작은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지금도 10시까지 '연장 보육반'을 운영하는데, 50명 원생 중에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아동이 1명밖에 없었다고 했다.

"어린이집에 보냈을 때도 애들은 자기 엄마가 언제 오나 창문만 보고 있어요. 상식적으로 다들 집에 가는데 혼자 10시까지 남으면 아이가 스트레스 받지 않을까요? 10시면 애들은 자야할 시간인데…. 아이가 불쌍해서 그렇게 오래는 못 맡길 것 같아요."

일종의 '낙인 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또 다른 워킹맘인 박선희(가명·37) 씨도 "엄마가 집에 없어서 10시까지 그냥 아이들을 안전하게 데리고만 있는 식이라면 또 하나의 선긋기가 될 것"이라며 "되도록 내 아이는 안 맡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설사 어쩔 수 없이 맡기더라도 그렇게 남아 있는 아이들 속에 내 아이가 있어야 한다는 게 속상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서권석 전교조 초등위원장은 "학교가 보육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적절한지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학교에 아이들을 너무 오래 있도록 하면 아무리 돌봄이 따뜻하더라도 아이 발달상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고급 인력·시설·프로그램에 예산 투자해야"

교육과 보육을 모두 제공하는 종합기관이 있어야 한다는 아이디어 자체는 신선하다는 반론도 있었다. 단 조건이 붙었다. 충분한 준비와 예산 투입을 통해 양질의 시설과 인력,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기선 가톨릭대 교육학과 교수는 "지금도 학교에서 방과 후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는데, 기존의 '불 꺼진 교실'을 10시까지 연장해서 아이들을 모아놓는 것은 곤란하다"며 "교육과 보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올리지 않는다면 부모가 제도를 거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 후보 공약만큼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도 지난달 22일 무소속 안철수 전 후보와의 TV토론에서 "학교와 지역에 있는 도서관, 아동센터 등을 연계해 방과 후에 아동을 돌볼 수 있는 서비스 체계를 마련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다만 문 후보 측은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어 어느 정도 규모로 지원할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두 후보의 공약을 종합하면서 성 교수는 "모든 학교에 해당 제도를 도입하기보다는 거점학교를 지정해서 고급의 인력과 건물, 시설, 프로그램에 투자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학교가 양질의 보호와 교육 기능을 그 어떤 기관보다 우수하게 제공하는 것을 보여준다면 훌륭하겠지만, 어설프게 제도를 도입하면 역효과만 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학부모들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현재 초등학교 3학년 자녀를 '방과 후 학교'에 보내고 있는 박 씨는 "엄마가 집에 없어서 아이가 방황하는 게 아니라, 엄마가 집에 있어도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곳이 방과 후 교실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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