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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재의 분노 "우리는 연기하는 노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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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재의 분노 "우리는 연기하는 노동자다"

하도급체제와 닮은 꼴…연기자들 "종방 전 출연료 지급 완료해야"

국내 최대 방송연기자 노동조합인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한연노)이 KBS를 상대로 촬영거부 투쟁을 시작한 지 20일로 9일째다. 연기자들이 힘의 논리에서 절대 우위에 선 방송사를 상대로 투쟁에 나섬에 따라, 방송가에 만연한 하도급체제에 대한 관심이 새삼 커지고 있다.

한연노는 유명 탤런트 조합원들이 출석한 20일 오후 4시, 서울 여의도의 한 중식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KBS에 출연료가 고질적으로 미지급되는 현 외주제작 체제를 개선해줄 것을 강하게 요구했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20일 오후 4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의 한 중식당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KBS가 밀린 출연료를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외주제작화의 그늘

이번 사태는 그간 방송가에 만연한 문제로 알려진 출연료 미지급 행태가 일부 드라마를 대상으로 폭발하면서 발생했다. 한연노는 <공주가 돌아왔다>, <국가가 부른다>, <도망자 플랜비>, <프레지던트>, <정글피쉬2> 등 2009년 9월부터 2011년 2월까지 KBS에서 방송된 드라마 5편을 제작한 외주제작사가 연기자들에게 출연료 12억7400만 원을 지급하지 않았다며, 이 문제를 원청인 KBS가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KBS는 이미 외주제작사에 출연료를 지급한 만큼, 자사는 관련이 없는 문제라는 입장이다.

이처럼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부딪치는 근본 원인은 외주화다. 방송사가 드라마 외주 비율을 늘리면서 영세한 프로덕션이 잇따라 설립됐고, 이들이 드라마 편성을 따내기 위해 무리한 수준의 계약을 감행함에 따라 연기자들이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비용을 절감하려는 원청인 방송사의 이해와 당장 생존을 위해 무리해서라도 계약을 체결하려는 하청인 프로덕션의 이해로 인해 애꿎은 연기자들만 피해를 보게 된 셈이다.

한연노는 "방송사들이 직접 제작할 때와 (지금의 외주제작 환경을) 비교해 보면, 거의 절반 수준의 덤핑 가격으로 제작사와 편성계약을 한다"며 "제작사는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일단 제작하고 보자'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외주제작이라 해도, 실제 현장을 지휘하는 건 방송사 간부와 방송사에서 파견한 PD들"이라며 '관련 없다'는 KBS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KBS는 특히 '덤핑 계약 논란'에 대해서도 "전혀 사실무근으로, 이는 공사에 대한 도가 넘은 일방적인 공격"이라며 "KBS는 지금까지 늘 외주제작사와 합법적이고 공정한 표준 단가에 따라 계약을 체결해 왔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두고 KBS는 이례적으로 매우 강경한 대응 자세를 보이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고질적 문제인 하도급체제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을 고스란히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연기자들 "우리도 KBS 식구… 문제 해결 나서라"

연기자들은 당장 드러난 사례 외에도, 다양한 상황을 통해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연노는 "출연계약을 하고 촬영을 하도록 돼 있으나, 거의 대부분 방송이 끝날 때까지 (외주제작사가) 계약을 미루다가 형편없는 조건으로 강요하듯 계약을 체결한다"며 "앞에서는 협약까지 체결하고, 뒤로는 전혀 이행하지 않는 공수표가 부지기수"라고 지적했다.

한연노는 대표적 사례로 KBS 간판 예능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를 들었다. 단체협약상 최저 출연료 기준에 못 미치는 출연료가 지급되고 있고, 연기자들의 연습시간을 출연료에 산정하지 않아 월 평균 2억 원의 출연료가 미지급됐다는 게 한연노의 주장이다.

20일 서울 여의도의 한 중식당에서 한연노가 연 기자회견에 참석한 연기자 이순재는 "혹자는(방송사는) '줬으니 가서 받으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가 보니 없어졌다. 받을 돈이 없다"며 "이런 일이 한두 건이 아니라 누적돼 온 일이다.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순재 역시 출연료가 미지급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이순재는 "방송국이 조금만 도와준다면. 우리를 식구처럼 생각하고 우리의 고충과 노력을 평가해서 조금만 도와준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며 "이런 풍토가 다신 일어나선 안 된다는 게 우리들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최고령 연기자(88세)로 알려진 최명수는 "연기자들 가운데 KBS 성우실이나 탤런트실에서 배출된 사람들이 3분의 2 이상이다. 어느 방송국보다 KBS는 (연기자들과) 하나의 공동체 의식으로 생각을 해야 하는데, 쓰는 사람과 쓰이는 사람의 상식으로 생각한다"며 "KBS가 사용자의 입장에서만 임하는 게 아니라, 서로 고통을 덜어주는 가족의 입장에서 처리해주셨으면 감사하겠다"고 호소했다.

중견 탤런트 김영철은 "우리 동료들이 굉장히 절실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일을 하고도 돈을 못 받는다"며 "(우리 요구는) 우선 기본급을 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연노가 자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합원의 69%는 연소득이 1000만 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실제 방송·연예계는 노동자들의 임금 격차가 극심한 대표적 사업장으로 알려져 있다.

연기자 송재호는 "우리는 연기하는 사람이다. (방송 환경에서) 가장 약자"라며 "우리가 지금까지 방송국에 여러 번 사정했으나 우리 사정을 들어주지 않아 이런 자리까지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연기자 이순재가 출연료 미지급 사태의 부당함을 강조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촬영 완료 전 출연료 지급 필요"

한연노는 현 사태 해결을 위한 대안으로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이 중 하나는 방송사가 수락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종방 촬영 전까지 연기자들에게 지급할 출연료를 완납하거나, 외주제작사가 아닌 원청인 방송사가 직접 연기자들에게 출연료를 지급하라는 것이다.

나아가 한연노는 KBS가 외주제작사를 선정하는 기준도 보다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며, 건실한 외주제작사를 선택해 연기자들이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해 줄 것도 요구하고 있다.

한연노는 지난 1988년 설립된 국내 최대 방송연기자 노조로, 각 방송사 탤런트, 성우, 코미디언, 무술연기자, 연극인들 상당수가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12일 정오부터 미지급 출연료를 KBS가 지급할 것을 요구하며 촬영거부 투쟁에 돌입했다.

한연노가 촬영을 거부한 프로그램은 KBS 드라마 <대왕의 꿈>, <내 딸 서영이>, <힘내요 미스터 김>, <사랑아 사랑아>와 예능 프로그램 <개그콘서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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