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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20만원짜리', 노인은 '100만원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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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20만원짜리', 노인은 '100만원짜리'?

[돌봄노동 연속기고·①] 바우처 제도의 그림자

올해는 사회서비스 제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지 5년이 되는 해다. 하지만 간병노동자, 요양보호사, 보육교사, 장애인 활동보조인 등 돌봄노동자들은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돌봄노동자들은 "노동자의 노동권과 건강권을 보장해야 양질의 사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며 오는 10월 20일 보신각에서 '제3회 돌봄노동자대회'를 열 예정이다. 이에 공공운수노조는 사회서비스 영역의 현재를 진단하고 제도개선안을 제안하는 기고를 <프레시안>에 7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2006년 이후 한국 사회 복지제도 중에서 사회서비스제도는 두드러지게 확대됐다. 사회서비스인 전자바우처의 제공대상은 2008년 약 60만 명 미만에서 지난해 약 140만 명으로 3년 사이 두 배 이상 늘었다. 정부 재원의 경우 같은 기간 약 2850억 원에서 7707억 원(보육의 아이사랑바우처 제외)으로 세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용자와 재원 규모의 적정성을 논외로 한다면,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제도의 수치적인 발전 전망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사회서비스가 확충된 이후 '서비스 공급구조의 시장 편향성' 문제, 그에 따른 결과로서 '서비스 질적 제고의 한계'와 '돌봄노동자의 노동문제' 등은 지속되고 있다. 사회서비스의 시장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와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는 관련 정책에 전향적인 개혁의지를 반영하지 않고 있다. 다만 대선 주자들 사이에서 사회서비스에 대한 '공공성' 확대가 거론될 뿐이다.

그러나 선거 이후 새 정권은 사회서비스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혁하는 데 소극적일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미 형성된 시장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와 충돌하고, 경직된 국가재정운용은 팽창된 복지담론에 미치지 못하며, 사회서비스를 바꿔야 한다는 국민들의 의식도 낮기 때문이다. 결국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근본을 바꿀 만큼의 절박성이 없는 셈이다.

그렇다고 이 문제가 그냥 묻어 두기에 적당히 괜찮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사회서비스, 특히 돌봄서비스는 우리 사회가 사람에게 얼마만큼의 가치를 부여하고, 그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는지에 대해 매우 구체적인 형태로 실현되는 대표적인 제도이다. 한 사회의 돌봄서비스 수준은 그 사회가 사람의 가치를 어느 정도 존중하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바로미터다. 이에 필자는 사회서비스의 시장화 문제가 인간의 가치를 어떻게 훼손하는 가를 살펴보고 그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돌봄의 본질은 '자기지향적'이 아니라 '타인지향적'

사회서비스란 개인이나 사회 전체의 복지 증진이나 삶의 질 향상을 위하여 사회적으로 제공되는 서비스이다. 대표적인 서비스 영역은 사회복지(보육, 아동/장애인/노인 등 요보호자에 대한 돌봄), 보건의료(간병, 간호 등), 교육(방과 후 활동, 특수교육 등), 공공행정 등이다. 영역은 구분되지만 사회서비스는 포괄적으로 돌봄의 성격을 띠고 있다. 사회서비스는 돌봄서비스의 다른 이름이다.

전통적으로 아동이나 노인에 대한 돌봄은 주로 가정에서 여성이 담당해왔다. 하지만 고령화, 가족구조의 변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증대와 같은 사회·경제적 구조변화는 사회적 돌봄의 필요를 대두시켰다. 돌봄에 대한 책임도 개인의 영역에서 사회적 영역으로 서서히 전환되고 있다. 그런데 돌봄이 사회적 책임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사회적 돌봄의 가치'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가정에서 수행됐던 돌봄의 가치는 특정 목적을 추구하지 않는다. 즉 돌보는 사람의 이해와 목적을 위해 돌봄의 대상자인 아동이나 노인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돌봄의 가치는 '타인지향적'이다. 그러므로 개인이 수행하던 돌봄을 사회적 돌봄으로 바꾸려면, 행위의 동기가 '자기지향적' 요소보다는 '타인지향적'으로 실현되도록 체계화해야 한다.

그런데 보육시설이나 요양시설이 개인의 재산권을 근거로 설립되고 운영된다면 돌봄의 가치는 자기지향적 요소로 지배될 수밖에 없다. 돌봄서비스에서 이윤이 중요한 동기로 작동하면 돌봄의 가치는 시장적 지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구조에서 아동, 노인, 장애인과 같은 요보호자들은 대상화될 수밖에 없고, 사람들은 복지혜택을 받기 위해 대상화된 시장으로 가족을 진입시켜야하는 딜레마에 노출된다.

복지대상자는 잘 보살펴지고 있나?

돌봄서비스는 전자바우처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바우처제도란 일종의 쿠폰제도로, 이용자가 특정 사회서비스를 이용할 때 드는 비용을 정부가 대납하는 제도다. 대표적인 전자바우처 사업은 노인돌봄, 가사간병도우미, 산모신생아도우미, 장애인활동보조, 아이돌보미, 지역사회서비스 투자 등이다. 이러한 다양한 바우처사업은 생활시설, 재가, 그리고 보육시설의 형태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복지서비스질은 정부가 현금지급 방식인 바우처사업의 대부분을 민간기관에 떠맡기면서 나아지지 않았다. 생활시설의 대표적인 사례인 노인요양시설의 경우를 보자. 최근 사설 노인요양기관이 급격히 늘어났고 시설들 사이에서 노인을 유치하려는 경쟁도 치열해졌지만, 서비스 수준은 시설마다 천차만별로 다르다. 거동이 어려운 노인들은 시설에서 자신의 권익을 스스로 지키기 어려운 구조에 처하기 때문이다. 결국 노인들에 대한 서비스 수준은 가족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시설의 운영방침에 따라 달라진다.

최근 한국에서 3등급 판정을 받은 노인들이 생활시설에 들어가는 경우가 20%나 늘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만하다. 사실 국제적으로 노인에 대한 서비스는 시설보다 재가에 더 많은 비중을 두는 추세다. 이는 노인이 그동안 향유해왔던 삶의 터전에서 살게 하되, 필요한 부분을 지원하자는 사회적 합의에 따른 것이다. 죽음을 기다리는 생의 마감이 아니라, 생이 지속되는 생활의 지원이 서비스의 중요한 가치인 셈이다.

그런데도 노인들의 시설 입소가 늘었다는 사실은 노인 스스로가 자녀의 부담을 덜거나 가족 내 갈등을 피하기 위해 시설에 입소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은 노년의 삶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의 목적과 다르게 오히려 당사자의 복지를 왜곡시켰다. 이 구조를 단절할 수 없다면 결국 개인과 사회가 노인부양의 책임을 사설시설에 맡긴 형국이 된다. 이것을 이용권 강화라고 볼 수 있을까?

▲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실시 1주년인 2009년 7월 1일, 보건복지부 앞에서 전국요양보호사협회 주최로 열린 '요양제도 시행 1년'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요양서비스 질 개선과 요양보호사 인력 확충 문제 등을 제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인, 장애인, 산모,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재가서비스의 현실은 어떨까. 재가서비스는 가정으로 파견되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실제 서비스의 내용과 수준을 측정하기 어렵다. 특히 독거가구에서 이용자와 제공자 사이의 서비스 기준에 대한 이해가 다를 때는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 2인 이상 가구의 경우, 이용자 중심의 서비스가 가족중심의 서비스로 이전되는 문제가 생긴다. 장애인 활동보조의 경우 시간의 제한에 따른 욕구불충분이 문제가 되고 있다.

끝으로 0세부터 취학 전 영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보육시설의 경우를 보자. 보육서비스는 아동의 욕구보다는 부모의 필요에 의해 이뤄지며, 대상자인 아동에 대한 권익은 보육교사 및 원장에 의해 대리된다. 문제는 정부가 공공보육시설을 만드는 대신, 민간시설에 보육료를 지원하는 보육정책을 펼친다는 점이다.

시설운영과 관련된 이해당사자가 영유아들의 건강한 양육을 위해 투명하게 운영된다면 스스로 대변될 수 없는 영유아의 욕구달성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설이 재산권을 근거로 한 자기지향적 가치로 돌봄을 제공하고, 이러한 구조에서 영유아는 시설 수입구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질 낮은 급식, 아동에 대한 방치 및 학대, 부당 수입 등은 일부 비상식적인 원장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구조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가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이들의 인권이나 가치가 제도 운영에 중요 변수가 될 수 있을까?

복지대상자를 '돈벌이'로 만든 바우처제도

전자바우처는 돌봄서비스의 가치를 자기지향적 요소로 확정되는 데 기여했다. 전자바우처 도입을 위한 강력한 논거는 '개인의 서비스 선택권 강화'와 '공급자 간 경쟁 유발을 통한 서비스질 및 효용성 제고'였다. 그러나 한국에서 바우처 도입에 대한 논의는 매우 편향적이었다. 정부는 바우처도입을 통해 기존의 관료적인 공급자중심구조가 개혁된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또한 제도의 확장을 꾀하면서도 공적 공급구조에 대한 계획 없이 이용자의 선택권만을 부각시켰다. 그 결과 바우처는 사회서비스 공급구조를 시장화시키는 데 매우 효율적인 수단이 되었다.

지난 2010년 말을 기준으로 전체 전자바우처 사업 제공기관 4831개소 중 국가기관 및 지자체 기관은 단 3곳에 불과하다. 영리기관은 1300개소(27%)이고, 개인소유의 기관수는 1058개소에 이른다. 정부가 공공기관 대신 민간기관에 사회서비스사업을 떠맡긴 셈이다. 아직은 비영리기관이 주로 전자바우처 사업을 제공하지만, 비영리기관 역시 더 이상 비영리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문제는 바우처사업의 민간 위탁이 정부의 주장대로 '시장 경쟁을 통한 서비스의 질적 제고'를 실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난립한 민간기관들은 제한된 이용자를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편법을 활성화시켰고, 서비스의 직접제공자인 돌봄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심화시켰다. 특히 노인요양기관의 경우 이러한 폐해가 심화되어 이용자의 가족까지 다양한 편법에 협조하거나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수준이다.

이러한 공급구조에서 돌봄의 대상자는 수입원으로써 '20만 원짜리 아이'부터 '100만 원 이상의 노인'으로 여겨진다. 물론 그 어떤 제공주체도 노골적으로 대상자를 '돈'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겉으로는 복지를 내세워 스스로를 속이면서 안으로는 기관의 유지와 수익확보를 위한 고민에 골몰하게 된다. 시장에 돌봄을 내던지는 순간 이러한 현실은 예견됐고, 정부는 차후적인 평가인증 수준으로 문제를 수습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이미 포화상태인 민간시장구조를 바꾸기는 힘들다고 말한다. 이를 뒤집어 본다면 수익적 개념으로 접근되는 아이들과 노인에 대한 가치전환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돌봄서비스 공급자들은 정부의 지침대로 사회서비스 시장에 진입했다. 그들에 대한 도덕적 판단은 유의미하지 않다. 다만 우리의 아이들과 노인들을 그렇게 돌보게 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재고되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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