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슘페터와 그람시의 봄,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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슘페터와 그람시의 봄, 서울

[김운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서']<10>

제 2 장. 슘페터와 그람시의 봄, 서울

□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니

제가 어릴 때 이야기입니다.

당시 유명 연예인 부부가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말을 하면서 이혼을 했습니다. 언론사들은 이것을 앞을 다투어 보도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제가 들은 바로는 남편이 큰 빚을 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알쏭달쏭한 말이기도 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이제는 그 말의 뜻을 알만한 나이가 된 듯도 한데 아직도 그 말 뜻을 모르겠습니다.

만약 사랑한다면 역경을 같이 극복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오히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혼(離婚)'을 택하고 있습니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사랑하는 아내가 빚에 쪼들리지 말고 편안히 살게 하고 싶었겠지요. 문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아내의 입장입니다.

아내가 진정으로 그 남편을 사랑한다면 이별(離別)을 택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만약에 두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말입니다.

(1) 영원한 변화, 자본주의 : 슘페터

슘페터(Joseph A. Schumpeter, 1883∼1950)는 여러 면에서 의미 있는 패러다임의 이론가였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본주의를 가장 냉철하게 바라 본 이론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슘페터하면 으레 '혁신(Innovation)'과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슘페터는 기업가의 혁신을 경제의 성장과 변화의 원동력으로 생각했지만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해서는 아주 냉정히 바라보았습니다. 슘페터는 자본주의는 장기적으로 몰락한다고 보았습니다. 일단 슘페터의 생각을 간단히 살펴보고 그의 패러다임을 분석해 보도록 합시다.

자본주의 패러다임에 대한 슘페터의 생각은 그의 주저인 『자본주의·사회주의·민주주의(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 : 1942)』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 슘페터(Joseph A. Schumpeter, 1883∼1950)

슘페터는 자본주의는 다른 경제체제와는 달리 쉴 새 없이 바뀌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즉 다른 경제체제는 변하지 않고 있을 수가 있지만 자본주의는 결코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1)

이것은 자본주의가 주변 환경의 변화에 순응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의 기업이 창조해 내는 새로운 소비재, 새로운 생산방식, 새로운 수송의 방식, 새로운 시장, 새로운 산업조직 등에 의해 자본주의가 변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슘페터는 이것을 기업가들의 새로운 결합이라고 합니다. 자본주의의 기업가들은 "부단히 낡은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여 끊임없이 내부에서 경제구조를 새롭게 하는" 행위 즉 창조적 파괴를 통하여 자본주의를 지속적으로 변화시켜 나간다고 슘페터는 지적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자본주의 체제는 늘 기업가들의 창의적 혁신에 의해 항상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슘페터는 이 같은 기업가들의 혁신과 관련하여 경기순환의 과정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어떤 기업가가 혁신(innovation)을 이루면 다른 기업가들이 이것을 모방하여 경제 전체에 확산되어 경제 발전의 동력이 됩니다. 이러한 순환의 과정이 자본주의의 발전의 과정이지요. 슘페터는 혁신이란 부단히 낡은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여 끊임없이 내부에서 경제구조를 혁명화하는 과정으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그 주체는 기업가(entrepreneur)입니다.

슘페터는 기업가들의 혁신이 자본주의 경제 발전과 경기순환의 원동력이 된다고 봅니다. 나아가 기술 혁신으로 새로운 산업 부문이 등장할 수 있고, 새롭게 등장한 산업은 이전의 낡은 산업부문을 대체해 감으로써 경제를 확장시킵니다. 일부에서는 세계경제는 과학기술의 변화에 따라 변해왔으며 대체로 약 50년 주기로 큰 변화(파동 : a long wave)를 겪어왔다고 보기도 합니다.

슘페터가 오늘날 새롭게 조망을 받는 이유는 IT(첨단정보) 산업의 대두와 이에 따른 정보화 사회의 형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 IT 분야는 앞으로도 보시겠지만 기술적 천재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영역입니다. 즉 IT 분야는 기술혁신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슘페터가 활약한 시기는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인1940년대인데 마치 현대 자본주의의 현상들을 꿰고 있는 듯이 말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2) 사랑했기에 헤어질 수밖에 없는

슘페터는 자본주의는 결국 사회주의화 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대단히 재미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자본주의는 눈부신 성공을 이루게 되는데 오히려 그 성공으로 말미암아서 몰락의 길을 밟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경제적 실패의 질곡 속에서 스스로 붕괴될 것이라고 했는데 슘페터는 자본주의는 눈부신 성공을 통해서 오히려 사회주의로 전화된다고 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마르크스와 슘페터는 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슘페터는 자본주의가 몰락하는 이유를 자본주의가 가진 합리적인 성격 때문에 자본주의를 타도하려는 세력들을 자본주의의 체내에서 만들어 키워 이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슘페터는 이들을 '지식인(知識人)'이라는 특수한 집단으로 보고 이들이 합리적으로 자본주의를 공격하게 되면 자본주의는 이들을 방어할 수가 없게 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사회는 전체적으로 반자본주의적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고 자본주의와 자본주의를 주도했던 부르조아(bourgeois) 계급이 해체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왜 자본주의는 이들 반자본주의 세력을 이기지 못할까요? 슘페터는 자본주의가 반자본주의 세력들에 대하여 효과적으로 맞서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자이자 주인공인 혁신적 기업가나 경영진은 직접적인 무력을 가지고 있지도 못한 무기력한 존재들인 반면에, 반자본주의자들은 매우 조직적이고 강력하며 대중적 조작과 선전에 매우 능한 상태에서 매스미디어의 등장은 이를 더욱 촉진하게 되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유지되기가 어렵지요.[같은 시대에 활약한 현대 공산주의의 거인인 그람시(Gramsci, 1891∼1937)는 이 같은 다양한 사회주의 전략들을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시 충분히 검토할 것입니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의 주역인 부르조아들은 그들 스스로가 '자유(freedom)'의 가치를 신봉하며 그 속에 안주하고 있기 때문에 반자본주의 세력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일 때 부르조아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부르조아들이 옹호한 바로 그 자유로 인하여 부르조아들은 반자본주의 세력에 비하여 단합하기 어려운 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얘깁니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발전이 낳은 '자유'가 바로 자본주의를 몰락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사회적 상부구조인 셈입니다. 그러니 자본주의의 발전이 오히려 자본주의를 멸망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인 러시아 혁명(1917) 광경(자료 : 위키피디아)

복잡하게 들리니, 다시 한 번 간단히 정리하고 넘어갑시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가 가진 구조적인 모순으로 인하여 자본주의는 사회주의로 넘어간다고 본 반면,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성공이 오히려 사회주의로 가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즉 자본주의는 그 속성상 자본주의에 대해 적대적인 지식인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이 세력이 자본주의 하에서 성장하게 되고 이들은 사회보장이나 평등성(equality)을 강조함으로써 반자본주의적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어 결국은 사회주의의 길을 밟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에 대해서 부르조아들은 조직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부르조아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서 해체될까요? 이것을 슘페터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즉 대기업이 발달함에 따라서 기업가들의 혁신은 의미가 약화되고 오히려 대기업 내부에서 관료화된 기구들이 이를 대신하게 되어 기업가들의 역할이 갈수록 약화된다고 합니다. 여기에 주식회사 제도의 발전으로 기업에 대한 사유권이 모호해지면서 자본주의를 반드시 수호하려는 의지를 가진 집단이 약화되어 갑니다.

반면에 자본주의를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공격하는 집단의 성격은 강화되고 이들은 각종 매스미디어를 활용하여 자본주의를 공격하면서 평등화와 사회보장, 정부개입 등의 사회적 분위기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회주의화 될 수밖에 없겠지요.

(3) 마르크스와 슘페터

슘페터의 생각은 우리를 복잡하게 만듭니다. 여러분들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했으니, 슘페터의 예언은 틀렸다고 하실 지도 모릅니다. 물론 외형적으로 보면 그렇지요. 그러나 그 내부를 살펴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습니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했지만 오히려 더욱 견고한 형태의 사회주의적 정당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 마르크스(런던의 묘소)와 슘페터(자료 : 위키피디아)


그것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주의는 구조적으로 극소수의 부자와 소수의 중산층 - 다수의 하층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대다수의 국민들은 자본주의에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됩니다. 사회가 합리성을 강조하다보니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선거에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으니 자기 세력을 확장하려는 정치가나 지식인들은 다수의 이익에 충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급진적인 사회주의는 아니라 할지라도 복지국가(welfare state)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됩니다.

사회가 민주화되면 될수록, 언론이 자유화되면 될수록 국가 전체가 사회주의적, 복지국가적 성향으로 가는 것은 막을 수가 없습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 과정에서 국가적 경쟁력(competitiveness)이 약화된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선진화된 현대 정부가 해야할 일은 국민 복지의 증대가 국가경쟁력의 약화를 초래하지 않도록 최대한 줄타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과거 소비에트러시아(USSR)가 있을 때에는 "공산당의 위협"이니 하면서 국민들에게 사회주의 사상이 전파되지 않도록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 사회주의국가가 사라진 지금 그 어떤 명분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사회주의적 정당이 보수적 정당을 이길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마르크스나 슘페터가 말하는 것도 이런 상황일 수가 있습니다. 다만 두 사람은 자기의 표현양식대로 말을 한 것인데 사실은 동일한 현상을 분석한 말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전의 장들에서 지적했다시피, 마르크스주의는 레닌주의와는 많이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제가 보기엔 마르크스의 분석이나 슘페터의 분석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그 표현양식이 다를 뿐입니다.
▲ 레닌과 스탈린 (자료 : 위키피디아)

이런 각도에서 보면 미국(USA)은 정말 특이한 나라입니다. 선진국들 가운데 사회주의 정당이 제구실을 전혀 하지 못하는 유일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놀랄만한 일입니다. 미국은 역사적으로나 구조적으로나 사회주의 정당이 성립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미국의 공화당이나 민주당은 월라스(George Wallace)의 지적처럼 "한 푼(a dime)의 차이도 없는 정당"입니다. 정당의 이데올로기적인 편향성을 기준으로 본다면 완전히 같은 정당이지요. 미국이 이렇게 된 데에는 많은 역사적 이유가 있습니다. 이 부분은 미국적 예외주의(Exceptionalism), 합의이론(Consensus Theory), 아메리카니즘(Americanism) 등을 찾아보시면 됩니다.(2)

패러다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슘페터의 이론은 보다 큰 차원의 분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와 같이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을 보면서 역사의 종언이라고 보는 성급함이 없는 셈이지요.

(4) 슘페터와 그람시

케인즈는 자본주의가 문제는 있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가장 쓸만한 패러다임이며 이것을 능가할만한 체제를 없다고 본 반면, 슘페터는 자본주의는 결국 사회주의로 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슘페터는 견고한 자본주의가 가진 나약한 본체들을 파악한 것이죠.

마찬가지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자체의 모순으로 사멸할 운명이라고 굳게 믿은데 반해, 자본주의는 매우 견고하며 이를 타도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인식한 사회주의 사상가가 또 있었다는 것이죠. 바로 그람시(Gramsci, 1891∼1937)입니다. 마치 마르크스 - 케인즈를 각각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수장으로 본다면 슘페터와 한 조가 될 수 있는 사람이 그람시라고 하면 어떨까요?

현대 사회에 접어들면서 이탈리아와 독일 등을 중심으로 마르크스주의가 여러 형태로 발전하고 질적인 변용들이 일어나면서 많은 이론가들이 나타납니다. 이들 이론가들의 사상을 네오 마르크스주의(Neo-Marxism)라고 합니다. 1945년 이전 네오 마르크스주의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그람시와 루카치(Lukács, 1885~1971)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그람시와 루카치는 같이 이탈리아 공산당에 참가(1918)하였고, 루카치는『역사와 계급의식(class consciousness)』에서 마르크스의 후기 저술로 부터 '소외(alienation)' 개념을 발견 체계화하였습니다. 제가 이 점들은 그 동안 마르크스를 해석하면서 많이 사용하였습니다.(3)

한편 독일의 프랑크푸르트학파(Die Frankfurter Schule)는 변화하는 자본주의의 상황에서 마르크스의 이론이 계속적인 타당성을 가질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마르쿠제(Herbert Marcuse, 1898~1979)나 아도르노(Theodor Adorno, 1903~1969)는 혁명에 대한 희망이 부활되려면, 마르크스에 의해 전개된 내적 모순의 이론 전체가 근본적으로 수정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4)

아게르(Ben Agger)는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들이 첨예화되고 심각한 위기의 시기에는 마르크스주의적 이론은 더욱 과학적이고 결정론적인 성격을 띠는 경향이 있었고, 자본주의 모순들이 무디어진 시대에는 비결정론적인 마르크스주의가 나타났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매우 탁월한 지적이죠.(5)

그람시는 어떤 파벌에도 치우치지 않고 매우 유연한 대표적인 현대 공산주의 이론가였습니다.(6) 그람시는 마르크스-레닌의 전략이론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았던 독창적 이론가였으며 혁명적 변혁의 창출에 있어서 '의식(意識)'의 역할을 주장한 최초의 마르크스주의자였습니다.(7) 그는 시민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현대국가의 자본주의가 사멸해간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그람시는 혁명적 변혁은 단순히 경제적 생산양식이 변해야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존재의 모든 자원을 포괄하여 총체적으로 변혁이 진행되어야 진정한 혁명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였다는 점에서 이전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는 많은 점에서 다릅니다.(8)

그람시는 서유럽의 자본주의가 매우 견고하다고 인식했습니다. 그 이유는 각종 여론기관을 통하여 지배층(부르조아)들의 힘과 동의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자본주의는 자연스럽게 유지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부르조아가 이 같은 문화적인 '헤게모니(hegemony)'와 연대(連帶)를 유지하는 한 프로레타리아 혁명은 불가능하다고 본 것입니다. 그는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맹목적인 추종보다는 보다 현실에 맞는 전략과 이론의 개발이 필요하고 여러 가지의 다양한 변혁의 시도들도 유기적인 관련성을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는 경제를 포함하면서 정치, 문화, 사회적 관계, 이데올로기 등을 연결 짓는 '관계의 앙상블(ensemble)'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는 정부를 전복시키기에는 레닌주의적인 혁명적 전위대보다는 일상적 사회현실과 연결된 '대중정당'이 더 적합하다고 역설합니다. 따라서 이탈리아 현실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일방적으로 내리는 소련의 지침을 거부하였습니다.(9)

그람시는 사회주의 계급혁명은 하나의 사건, 혹은 일련의 사건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변해가는 하나의 유기적 과정으로 파악하고 사람들의 의식개혁은 사회의 구조개혁과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람시는 물리적 혁명만큼이나 '이데올로기적 투쟁'을 중시하여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람시는 교육, 언론, 법, 대중문화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 있어서 국가기구에 의한 물리적 강제력을 통해서라기보다는 시민사회 내에서 획득되는 '대중의 동의'를 통해서 계급에 의한 지배가 이루어진다고 보았습니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를 전복시키려면,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이념적 헤게모니를 국가로부터 탈취해 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 언론, 학계, 예술, 문화 등 광범위한 분야에 진지(陣地)를 구축하여 대항 이데올로기를 전파해야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진지론(陣地論, war of position)'입니다.(10)
▲ 그람시와 로마에 있는 그의 묘소.

그람시는 전략론으로 '기동전(機動戦, war of movement)'과 '진지전' 개념을 사용하였습니다. '기동전'이란 1917년 러시아와 같이 피아(彼我)로 구분하는 두 개의 세력이 정면 대결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기동전'은 적합하지 않고 이보다는 점진적이고 전면적인 '진지전'이 적합하고(11) '기동전'은 '진지전'의 일부여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람시는 진지전이야말로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유일한 교전방식이며 기동전은 절대적으로 필요할 때에 한해서 사용되어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개념을 위하여 그람시는 '유기적 위기(organic crisis)' 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유기적 위기'란 기존의 지배계급이 장기간 치유가 어려운 구조적 모순에 직면해 있는 경우를 말하는데 이때는 기동전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람시가 현대 공산주의 이론가로서 중요한 점은 그의 '유연성(柔軟性)'과 개방성(開放性), 과학성(科學性)에 있습니다. 그는 자본주의 창조물이라고 해서 무조건 거부할 필요가 없으며,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스스로를 닫힌 세계 속에서 고립을 자초하여 대중으로부터 유리되는 것을 경계하였습니다. 그람시의 이론은 유럽같은 선진국에서의 혁명이론으로 적합한 것은 극히 당연하며 그의 영향은 모든 유로코뮤니즘의 이론가들에게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자본주의의 장래를 매우 비관적으로 본 슘페터와 자본주의를 견고한 체제로 인식했던 그람시의 사상들을 간단하게나마 살펴보았습니다. 스스로 보수적이든 우파(right wing)이든 진보적이든 좌파(left wing)이든 간에 그람시나 슘페터의 생각을 제대로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람시를 알면 한국 사회가 보입니다. 이른바 한국의 좌파(left wing)라고 하는 사람들의 행태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람시의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람시 이론이 한국 좌파 운동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현실이 저로서는 답답합니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는 고립된 존재가 아니며 북한(DPRK)이라는 스탈린주의적 국가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항시 기동전이 준비된 국가입니다. 그리고 북한은 한국에 대한 정치적 개입은 당연한 의무이자 역사적 사명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식 체제는 가장 반사회주의적(反社會主義的)이며 그람시가 가장 경멸하는 형태인 점 또한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한국 사회가 가진 딜레마입니다.

현재의 북한체제는 마르크스적인 관점에서 보면 가장 극렬한 보수반동입니다. 왜냐하면 북한의 정치체제는 강한 봉건적 요소와 극심한 관료주의로 인하여 마르크스가 말하는 생산력의 해방과정이 전혀 나타나지 않으며 북한 경제는 오히려 심화된 저개발 상태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종속이론에서 말하는 '저개발의 개발(Development of Underdevelopment)'이 전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경제구조가 북한의 경제입니다. 북한은 마치 조선 말기처럼 상부구조가 하부의 생산관계와 생산력의 발전을 철저히 왜곡시켰기 때문에 역사의 추가 거꾸로 가고 있는 상태입니다. 경제의 최악의 국면에서 원시적인 시장(market)이 등장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경제 시스템이 붕괴된 결과 수십만이 탈북자로 꽃제비로 떠돌고 있고 또 그 만큼의 많은 사람들이 정치범 수용소에서 생존의 한계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이것을 외면하면서, 북한식의 정치경제 체제를 진보적이라는 말과 같은 범주에서 이해하려 한다면, 마르크스와 그람시는 지하에서 통곡할 것입니다.

이른 바 한국의 좌파(left wing)가 진정으로 진보의 길로 나아가려한다면 북한과 같은 반휴머니즘적(anti-Humanistic)이고 반사회주의적(anti-Socialistic)인 정체(political entity)와는 분명히 단절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원래의 마르크스주의는 철저한 휴머니즘(Humanism)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추구해야할 패러다임도 휴머니즘을 기반으로 재탄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세계의 대중들이 바보가 아닙니다. 그들 대부분이 북한은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회라고 인식을 하고 있으면 그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사회입니다. 저는 한국이 만약 외부변수가 거의 없는 상태라면 그람시의 이론을 의미 있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맹목적으로 북한의 기동전과 결합하기 위한 한국사회 내에서 진지전을 전개한다면 이것은 한국사회의 발전에 가장 위험한 책동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람시는 마르크스와는 달리 하부구조의 변화에 따른 상부구조의 변혁보다도 혁명적 의식을 중시했습니다. 그리고 철저히 대중의 동의에 의한 계급적 지배를 강조했습니다. 대중의 동의에 의한 계급적 지배는 현대의 서유럽의 사회주의 정당들에 의한 지배와 실질적으로 다를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과거의 바쿠닌(Bakunin, 1814~1876)주의자와 같은 '혁명 미치광이' 또는 '묻지마 혁명주의자'입니다. 물론 혁명(Revolution)이 필요한 사회는 혁명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진화(Evolution)가 필요한 사회는 진화를 하면 됩니다. 수정(Modification)이나 개선(Improvement)이 필요하면 수정이나 개선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혁명은 너무 큰 희생과 비용이 들어가고 돌이킬 수 없는 수많은 결과도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지금 한국은 혁명(Revolution)이 필요한 사회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바쿠닌은 즐겨 "파괴의 열정은 곧 창조의 열정"이라고 단언하였는데, 한국에서의 파괴의 열정은 그 동안 쌓아 올린 공든 탑들을 한꺼번에 붕괴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데올로기의 충돌로 인한 대리전은 한국전쟁(1950) 한번으로 족합니다.

세계 경제사적(世界經濟史的)으로 한국은 지난 2백년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성공적으로 압축성장(壓縮成長, compressed economic growth)을 이룩한 거의 유일한 나라입니다. 한국전쟁 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시작하여 서유럽이 2백년 동안 이룩한 자본주의의 발전을 한국은 불과 30여 년 만에 이루어내었습니다. 한국인의 저력을 세계에 보여준 것입니다. 한국 경제개발 모형은 라틴아메리카나 북한(DPRK) 등 대부분의 저개발 국가의 경제개발 모형으로 수출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의 경제개발 모형은 제가 저개발국에 대해 제시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기도 합니다. 즉 저개발 국가들은 선진국들의 일방적인 경제 전략이나 세계적 흐름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저는 이미 저개발 국가들에 대해 토지개혁(봉건유제타파) - 신중상주의적 모델(국내산업보호와 자본축적) - 유치산업의 보호(경쟁가능 산업육성) - 제한적 세계시장 진입 - 수출지향(노동 집약에서 시작하여 자본 집약적으로 확장) - 철저한 금융 산업 보호 등을 적절히 배합하여 경제개발 모델을 만들고 대외적으로 선진국들의 자본 침탈이나 경제 침략에 대응해야한다는 점을 역설한 바가 있습니다.

가령 우리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북한을 예로 들어 봅시다(물론 이 예시는 여러 가지 사정들을 모두 고려하지 않고 거칠고 간단하게 제시하는 것이지만 큰 범주에서는 저개발국가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북한은 먼저 남북한의 신뢰를 회복하고 민족 파멸의 핵 개발을 중단하여(이 핵무기는 서울을 목표로 하는 것이지 도쿄나 워싱턴이 목표가 되는 것이 결코 아니지요) 군비 지출을 대폭 줄이고, 최소한의 자위적 군대를 남기고 군대를 감축하면서 제조업 육성에 필요한 생산적 노동력(productive Labor force)을 확보해야 합니다. 사회적으로 비생산적인 개인 우상화의 비용 지출도 중단하고 토지를 유상 분배 또는 무상 분배를 실시하거나 개별 기업이나 협동조합의 형태로 전환하여 보다 효율적인 농업 생산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한국의 많은 경제 관료와 학자들의 지원을 받아 면밀히 생산요소 부존도(production factor endowment)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통해 경제 개방 및 개발 계획을 확립하고 제도 정비에 착수해야합니다(이 기회에 한국의 경제관련 부처는 북한의 개방 및 경제개발 계획을 수립해주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국가 주도의 자본 축적(capital accumulation)을 강화하면서 노동 및 자원 집약적인 분야를 집중 육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풍부한 지하자원이나 저렴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동북아의 제조업(manufacturing industry)의 공장으로 다시 탄생해야합니다. 임금(wage)이 상승하여 중국이 포기한 산업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한국의 기업들과 광범위한 협력을 모색해야 합니다. 나아가 경쟁이 가능한 분야에 제한적으로 세계 시장(World market)에 적극적으로 진입하여 세계 시장에 대한 적응력을 기르는 한편, 항만과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Social Overhead Capital)들을 확충해야합니다. 그리고 지식집약적인(knowledge-intensive) 소프트웨어(S/W) 산업이나 일부 정보통신(IT) 산업에 적극적으로 진입하여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안을 찾아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세계시장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Know-how)를 한국으로부터 적극적으로 배워야 합니다.

강력한 사회 통제력을 바탕으로 신중상주의적(Neo-mercantilistic) 경제 전략을 총동원하여 경제를 운용하고 기업의 경영권을 보호하는 한편, 금융제도도 정비하여 미래에 대비하여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교육효과(Learning effect)를 극대화하면서 미래 경제 인력을 육성하고 실질적인 경제개발에 필요한 지원을 한국에 요청하여야 합니다.

다음 단계로 한국과 북한은 가장 느슨한 형태의 경제통합(Economic Integration) 과정인 선별적 자유무역지대(FTA, Free Trade Area)를 형성하여 북한 상품의 관세를 철폐하여(북한에서는 한국의 공산품에 대해서는 관세를 강하게 부과, 나머지 농산물 등 북한에 피해를 주지 않는 상품은 무관세) 생산물의 완전한 이동을 보장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진전이 되면, 북한 경제에 피해를 주는 품목은 선별적으로 제외하고 한국과 관세동맹(CU, Custom Union)을 맺어 제3국에 대한 동일한 관세 정책을 시행하여 신중상주의 정책을 강화하여 경제 이익을 극대화하여 경제성장률을 제고하여야 합니다. 그 다음은 남북한이 공동시장(Common Market)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공동시장은 생산요소(자본과 노동, 기술 등)의 이동이 자유로운 상태로 실질적인 경제 통합의 단계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이 과정들에서 정치는 철저히 배제되어야 합니다.

지금 이대로 가다가는 북한은 최악의 경제위기 상황에 최악의 인권 국가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국가의 전면적 붕괴 상황이 올 것입니다. 그러면 2천만 이상의 비숙련 노동 (unskilled Labor) 인구가 중국으로 한국으로 유입되어 동북아시아는 큰 경제적 재앙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현재 유럽연합(EU)의 경제 위기에서 보듯이 경제통합은 감정적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경제통합이 제대로 되려면 두 나라가 분야별로 비교우위(Comparative Advantage)가 많이 있는 것이 좋고 기술과 경제력의 격차는 적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관세동맹(CU)과 공동시장(Common market)의 효과도 극대화 됩니다. 경제력과 기술 격차가 너무 벌어져 있으면 반드시 실패하거나 막대한 경제적 혼란을 초래하게 됩니다. 그래서 남북 간의 무분별한 통일은 위험한 것입니다.

한국의 시민단체들도 감상적인 이데올로기적 접근이나 '무작정 퍼주기식 지원'은 중단하고 보다 실질적이고 건설적인 경제 개방과 협력의 방안을 모색하는데 촉매 역할을 해야 합니다. 목표는 동북아 제조업의 공장입니다.

제가 보기엔 다른 저개발 국가보다는 북한이 오히려 나은 점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토지 개혁은 다른 국가라면 매우 어려운 과제이지만 북한은 상대적으로 쉬울 것입니다. 나아가 신중상주의의 실현, 유치산업 보호 등의 문제에 있어서도 북한은 다른 자본주의 저개발 국가에 비해 매우 유리한 측면이 있습니다. 북한은 하루라도 빨리 이 정책을 시행하고 한국은 이에 적극적으로 도와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한편으로는 북한이 제조업 공장으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도와서 비교우위(Comparative Advantage)에 따른 상호 경제적 이익을 얻고 나아가 보다 실질적인 경제통합 방안을 데카르트(Descartes) 식으로 치밀하게 준비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좌우 대립, 가계 부채 등의 한국 사회가 가진 모순들을 지속적으로 극복하면서 보다 나은 복지국가(welfare state)의 건설에 매진하면 될 일입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국제경쟁력의 상실이라는 부담이나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도 최대한 막아야 하는데 이것이 한국인에게 주어진 큰 숙제겠지요.

필자 주석

1. "원래 자본주의라고 하는 것은 경제변동의 하나의 형식 또는 방법이며, 따라서 자본주의는 결코 정태적이 아님은 물론 결코 정태적일 수가 없는 것이다. … 자본주의 엔진을 가동시키며 그 운동을 계속시키는 기본적 충격은 자본주의 기업이 창조해 내는 새로운 소비재, 새로운 생산방법 내지 새로운 수송방법, 새로운 시장, 새로운 산업조직 형태에서 연유되는 것이다." 슘페터『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삼성세계사상 24)』이상구 譯 (삼성출판사, 1999)

2. 이와 관련한 책으로는 권용립『미국 - 보수적 정치문명의 사상과 역사』(역사비평사 : 1991)가 권할만한 책이다.

3. 마르크스 이론은 크게 ① 소외론과 인간해방, ② 자본주의 사회구조의 법칙과 그것의 내적 모순, ③ 내적 모순 해결의 논리 등으로 대별이 된다. 마르크스의 초기 저서들은 소외에 관한 일반론에 토대를 두고 있다. 자유란 외화(外化)된 활동에서의 인간의 자기 실현이며 소외는 자유의 부정이다. 마르크스는 인간이 그의 본질과 목적을 자유롭게 외화시키지 못하게 되는 상황들을 분석하였으며, 이를 토대로 자본주의 비판을 전개시켰다.

4.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와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한 네오 마르크스주의의 한 분파를 말한다. 이 명칭은 1923년에 세워진 프랑크푸르트 사회조사연구소에서 따온 것이지만, 이들은 1930년대 히틀러의 통치기간 동안 미국으로 이주하여 활동하였다. 그 후 1953년에 연구소를 다시 프랑크푸르트에 재설립하였다. 중심인물은 막스 호르크하이머, 테오도르 아도르노, 허버트 마르쿠제, 에리히 프롬 등이다. Ben Agger. Western Marxism An Introduction Classical and Contemporary Sources (Goodyear Publishing Co., 1979), 박재주·임종화 譯『현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이해』(서울 : 청아, 1987) 23쪽.

5. Agger. 앞의 책, 234∼244쪽.

6. 그람시의 개념 언어는 마르크스주의 일반적인 용어 사용법과는 거의 공통점이 없다. 그의 핵심 개념인 '헤게모니', 역사적 블럭, 시민사회와 정치사회 등은 지금까지 마르크스주의가 등한시한 영역, 즉 상부구조와 그것의 다양한 단계 및 상호관련의 영역을 가르킨다. Karin Priester, Studien Zur Staatstheorie Des Italienischen Marxismus, 윤수종譯,『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와 국가이론』(새길, 1993) 20쪽. 참고로 그람시의 주저인 '옥중수기(獄中手記 Kerkerheften : 1937)'는 검열 등의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씌어져 애매모호하거나 망실된 부분도 있다.

7. Karin Priester, 앞의 책 그리고 石堂淸倫(編).『グラムシ問題別選集 全4券』(東京 : 現代の理論社, 1971). 및 山崎功. 『イタリア勞動運動史』(東京 : 靑木書店, 1970)를 참고.

8. 그람시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과학적 예측을 강조하면서 정치적 역할을 등한시하는 '숙명론적 경향성'을 우려하면서, 혁명적 변혁은 인간의 모든 차원을 포괄하여 총체적으로 진행되어야만 진정한 변혁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Carl Boggs. Gramsci's Marxism (London : Pluto, 1976) (강문구譯)『다시 그람시에게로』(서울 : 한울, 1992) 25쪽. 35쪽.

9. Gramsci (이상훈譯)『옥중수고』Ⅱ (서울 : 거름, 1993) 70∼156쪽. 그람시의 궁극적인 관심은 노동자계급 출신의 지식인 창출이었으며, 그 자신의 일생이 바로 그러한 지식인 형성의 역사였다.

10. 그람시는 "동유럽에서 국가는 시민사회가 그 초기에 가지고 있던 것이며 그 윤곽은 뚜렷하지는 않다. 서유럽은 국가와 시민사회 사이에 정선된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고, 국가가 동요할 때는 당장에 시민사회의 견고한 구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국가는 앞에 설치된 참호이며, 그 뒤에는 보루와 포곽의 굳건한 연쇄가 버티고 있다. 물론 보루와 포곽의 수는 나라마다 다를 것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민족적 성격에 대한 철저한 탐색을 요구하는 것"(옥중수고, 866) 이라고 하여 매우 유연한 논리를 전개한다. 옥중수기의 번호표기는 Karin의 책에 따름.

11. 그람시는 그 자신이 은유로 묘사한 '진지전'의 유형이 서구사회에는 적합하다고 하였다. 그람시는 서유럽과 같이 오래된 시민사회는 잘 기능하는 오래된 헤게모니의 장치가 존재하고, 이것이, 경제적 갈등이 전체 체계로 직접적인 위기로 전화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수행해왔다고 하였다. 여기에 바로 진지전의 필연성이 있는 것이다. 즉 서유럽과 같이 발달한 시민사회에서는 자신의 적대 계급들을 대자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매커니즘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극단적인 파국을 언제나 피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지전에서의 혁명은 특정한 시점에서의 권력 장악이라는 일회적이고 단기적인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과정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진지전의 과정에서는 '지적, 도덕적 개혁'이 혁명 모형을 특징지으며, 이것은 어떤 형태든 간에 블랑키주의(Blanquism, 소수정예 혁명)적 속성을 거부하는 것이며, 동시에 근본적인 원리 자체를 거부하는 어떠한 형태의 개량주의도 거부하는 것이다(Karin Priester, 앞의 책, 79∼81쪽. 참고로 그람시의 주저인 '옥중수기'는 검열 등의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씌어져 애매모호하거나 망실된 부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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