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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대통령님, 노예처럼 일하는 귀족도 있나요?"

[폭력에 내던져진 노동자들·②] SJM 폭력, 경찰·대통령의 2차 가해

15년간 미국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결심을 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레지스탕스 출신의 93세 스테판 에셀이 쓴 <분노하라>를 접한 나는 심하게 마음이 흔들렸다. 귀국하자마자 밥벌이 자리를 찾아야 하는데, 양심이 가리킨 곳은 달랐다. 여기저기 찾아보다가 다산인권센터를 알게 되었고, 그곳을 통해 알게 된 수원촛불에서 매주 수요일 촛불을 들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SJM노동자 인터뷰를 제안 받고 선뜻 나선 길에 노동자 박동혁 씨를 만났다. 사건이 발생하던 날 사진과 동영상을 찍으면서, 현장을 지키던 박동혁 씨는 용역직원들에게 쫓겨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그래서 다리와 발을 다쳐 한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불과 며칠 전 퇴원했다고 한다. 끔찍했던 불면의 밤이 한 달이 지났건만 아직 그의 발바닥에는 멍자욱이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완치되지 않은 그는 절룩거렸고, 그보다 더 심하게 상한 마음도 절룩거리고 있었다.

▲ 용역직원에게 쫓겨 옥상에서 뛰어내린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박동혁 씨의 발바닥에는 아직 멍자욱이 지워지지 않고 있다. ⓒ다산인권센터

먼지와 쇳가루 마셔가며 일한 대가가 '용역폭력'

인터뷰하는 내내 그는 코막힘 때문에 불편해 했다. 감기냐고 조심스레 물으니, 알레르기 비염이란다. 안산에 와서 심해졌는데 공장에서 먼지와 쇳가루 속에서 온종일 일을 해야 하니 낫기는커녕 마스크 등 안전장구를 착용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지경이라고도 했다. 그나마 예전에는 안전장구조차 없이 일을 했다고 덧붙인다. 대부분 나이든 동료들은 안정장구 없이 소음 심한 작업을 오래 하다 보니 심각한 청각장애가 있다고 했다. 그러한 동료에 비하면 나는 별것 아니라는 투로 얘기한다. 몸이 상해가면서 7년간 열심히 일했지만 회사는 용역에게 노동자들의 자리를 내어주고, 직장폐쇄를 해버렸다. 자신보다 더 오랫동안 일한 노동자들이 받은 배신감을 생각해 보면 자신은 그래도 덜 상처 받은 것이라며, 멍자욱도 남보다 내 것이 작으니, 나는 괜찮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더 걱정이라고 한다. 이들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긴 그들은 알까.

휴가를 떠나기로 되어 있던 박동혁씨는 7월 27일 자정이 조금 지났을 때, 공장에 나쁜 일이 있을 것 같다는 동료의 전화를 받고 부인에게 별일 없을 것이니 곧 돌아오겠다는 말을 하고 공장으로 갔다. 헬멧을 쓰고 방패를 들고 진압봉을 든 그들이 경찰인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이 용역직원들인 줄 알고 보니 불안감이 엄습했다. 설마 공장 안으로 들이닥치겠는가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그나라 갑자기 용역들이 SJM 노동자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위급한 상황에서 이들의 폭력을 사진에 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경비실 옥상에 올라갔다. 회사로 물밀듯이 용역들이 들이 닥치자 남아있는 사람이 없었다. 두려움에 빠진 그는 그를 향해 욕을 하며 달려오는 용역들을 피하려고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그때는 오른발 뒤꿈치 뼈가 으스러진 줄도 몰랐다. 삐끗했다고 생각했고 용역들에게 쫓겨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공장 2층으로 그 발을 질질 끌면서 도망갔다. 아픈 줄 몰랐다. 아니 그런 감정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상황이 수습되고 동료의 부축을 받으며 간 병원. 그 날 상처의 치료는 입사이후 가장 긴 휴가를 선물했다. 3주 넘게 입원한 후 통원치료를 받고 있지만 아직 그는 집 밖으로 나가기도 힘든 상황이다.

아픈 몸을 이끌고 용역폭력에 대한 경찰의 조사를 받았지만, 자신이 다친 피해자임에도 4시간이나 계속된 조사에서 그는 노조에 대한 질문이나 유도성 질문에 시달려야만 했다. 과연 그들이 피해자인가? 우리가 가해자인가? 마지막에 서명할 때, 그는 자신을 조사한 경찰관에게 자신이 피해자인지 피의자인지 분간이 안 된다고 말했다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경찰이 더는 미덥지가 않다.

평범한 서민이 '귀족노동자'로 몰리기까지…

박동혁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배달, 웨이터 등 많은 일을 했다. 기술을 익혀 제대로 된 직장에 들어가 보자고 생각해서 특수용접을 배웠다. 그 기술로 직장에 취직했고, 더 나은 생활을 위해 대학을 가야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7년 전에 SJM에 입사했는데, 오래간만에 들어온 신입이라고 부서에 있던 선참 노동자들로부터 열렬한 환대를 받았다. 그런데 그 이후 채용이 되지 않아 아직도 막내다. 직장 분위기도 좋았고 노조는 튼튼했다. 단체협약도 잘 되었고 야간근무는 강제적이지 않았다. 그 점이 너무 좋았다. 계획했던 대학을 마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특근과 야근에 지쳐서 회사와 집을 오가며 파김치가 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지난번 회사 생활을 그만 둔 이유였다. 노동조합이 있는 SJM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 주었다. 다른 회사로 옮길 것도 생각해 봤지만, 다른데 가더라도 여기보다 나을 것 같지는 않았다. 가정을 가지면서 안정적인 직장에 있었으면 했고 그리고 이 회사 동료와 함께 일하고 지내는 것이 좋았다.

▲ 박동혁 씨의 두 살 난 아들. ⓒ다산인권센터
야간대학 다닐 때 만난 예쁜 각시와 결혼도 하고, 지금은 곧 만 24개월이 되어 가는 아들도 있다. 용역폭력과 직장폐쇄라는 사태가 가져온 상황이 없다면, 그의 집은 여느 신혼부부의 집이 그렇듯이 아기자기하고 아름답다. 시간외 노동으로도 감당이 되지 않는 빠듯한 생활 때문에 부인은 얼마 전부터 맞벌이를 시작했다. 그런데 SJM을 두고 한 말인지 이명박 대통령이 노동자 중에 월급을 많이 받는 귀족노동자가 있다 했단다. 우리가 귀족이냐고, 대통령이 말한 월급 벌려면 매일 밤새워 일해야 하는데 노예처럼 일하는 귀족이 어떻게 귀족이냐고 되묻는다. 인터뷰 중 아빠를 부르며 그와 부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아들을 보는 그의 행복한 얼굴에 걱정스러운 표정이 스쳤다.

경찰도, 대통령도 외면한 '노동자'의 삶

박동혁 씨에게 지금 가장 큰 소원이야 빨리 직장폐쇄가 풀리고 회사에 복귀해서 일하는 것이다. 그런 평범한 그는 이번 사태로 배운 게 있다. 한국에서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알아 버렸다. 회사가 고용한 용역들이 노동자를 폭행하고, 폭력을 막아야 할 경찰은 노동자들을 보호도 안 하고,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귀족노동자들 운운하면서 노조를 헐뜯고 있는 이 사회에서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어려움. 자기 아들이 이러한 사회에서 살아야 할 것을 생각하면 희망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가끔 마음먹고 있었던 대로 외국에 나가서 자신의 기술을 발휘할 수 있는 직장을 구해야 하나 생각한다. 과연 이 사회가 박동혁 씨의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을 것인가? 작지만 소소한 일상을 누리고 싶어하던 한 아이의 아빠, 이 시대의 노동자에게 사회는 폭력으로 절룩이게 만드는 마음만을 안겨줬다.

15년 동안 떠나있던 한국은 많이 바뀌어져있었다. 가끔 미국에서 함께 지내던 친구가 찾아오면 '한국은 왜 이렇게 돈 돈 하는거냐' 물었다. 나 역시도 15년 전 한국과 지금이 너무나 달라져보였고, 그 중심에 '돈'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았다. 돈이 뭐라고, 7년을 일한 그에게, 15년을 일한 그의 동료들에게 54억 원이라는 돈을 들여 폭력을 사주했다. 그가 평생 밤새워 일해도 벌 수 없는 그 돈이, 그의 7년 직장 생활, 청춘의 일부분을 무너뜨렸다. 평온한 일상을 사랑했던 직장을 산산이 조각내 버렸다. 그 조각들을 다시 맞추는 일 분명 어려울 것이다. 그의 아픈 다리가 다시 회복되는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사랑했던 직장이 그가 보냈던 청춘의 한 부분의 조각이 다시 맞춰지길 바라본다. 그리고 그 중의 한 조각이라도 나의 작은 글이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 이광훈 경희대 강사와 SJM 노동자 박동혁 씨. ⓒ다산인권센터

폭력에 내던져진 노동자들
두들겨 팬 용역보다 '조폭두목'처럼 설쳐댄 회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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