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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수업 만으로는 수리논술 못 푼다"

[사교육 중독, 이젠 빨간불] "대학이 사교육 부추겨"

경희대·고려대·서울대·중앙대 등 서울 주요 대학이 출제한 2012학년도 수리논술 문제의 절반 이상이 대학교과 수준의 문제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들 대학이 낸 문제는 예외 없이 본고사 형식의 문제여서, 논술 문제 출제 의도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같은 문제는 인문계 논술에서도 나타났다. 영어 제시문이 나오거나 수학 문제가 논술 고사에 출제된 사례가 많았다. 학생의 사고력을 측정한다는 논술 문제의 취지는 온데간데 없다. 공교육으로 대비하기 힘든 문제를 출제하는 건 결국 대학이 사교육을 부추기는 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 기사: 부자동네 아이들이 서울대 진학률 높은 진짜 이유 )

수리논술 절반 이상 대학 문제 출시

▲지난해 11월 20일 오전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학교에서 실시된 2012학년도 수시모집 논술 고사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보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뉴시스
21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서울의 10개 대학이 올해 낸 수리논술 문제를 분석한 결과, 분석대상 84개 문제 중 절반이 넘는 46문제(54.8%)가 고교 교과가 아닌 대학교과 수준의 지식을 요하는 문제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는 정시전형 수리논술 4개 문항 전부가 이상적분 등 대학에서 배우는 해석학 수준의 지식을 요하는 문제로 구성됐다. 연세대도 수시전형 4개 문항 전부를 대학에서 배우는 미적분학 수준의 문제로 구성했고, 한양대도 수시전형 13개 문항(오전, 오후 총합) 전부를 선형대수학, 미적분학, 선형대수 해석학, 정수론 등 대학교과에서 출제했다.

서강대는 14개 수리논술 문항(화공·컴공, 자연·전자·기계 총합) 중 11개 문항을 대학수준에서 출제했고, 경희대는 6개 문항 중 3개 문항에서 대학 수준 지식을 요구했다.

특히 이들 대학이 출제한 수리논술 문항은 전부 문제풀이와 정답을 요구하는 본고사 형식이었다. 논술 고사의 본래 취지라 할 수 있는 서술형 문항은 단 하나도 없었다. 현 정부 들어 대입이 자율화될 당시 "논술고사가 지필고사로 변질될 가능성은 없다"던 손병두 당시 한국대학교육협의회장의 주장이 지켜지지 않은 셈이다.

결국 고교에서는 정상적인 공교육으로 수리논술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국제수학교육대회에 참여한 고교 수학교사 16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94%에 달하는 152명이 "학교 수업만으로는 수리논술 대비가 어렵다"고 답했다.

또 92%(149명)는 현행 수리논술을 폐지하거나, 고교 교사가 출제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출제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답했다. 현행 수리논술은 사교육의 도움 없이는 대비하기 어렵다는 것.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제공


인문계 논술도 시행 취지와 거리 멀어"

이와 같은 문제점은 인문계 논술 문제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됐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서울 소재 11개 대학의 올해 인문계 논술문제를 분석한 결과, 경희대·서울시립대·이화여대·한국외대 등 4개 대학이 과거 논술고사 가이드라인에서 금지됐던 영어 제시문을 출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경희대·고려대·이화여대·중앙대·한양대는 수학 문제를 출제했다. 인문계 논술에 제출된 수학 문제 역시 고교 교육과정을 벗어난 대학 수준의 문제였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고려대가 출제한 문제는 고교 교육과정 범위 밖에서 출제됐고, 한양대는 미시경제학의 개념을 활용한 문제를 냈다"며 "선행학습을 한 학생에게 매우 유리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높은 수준의 지식을 요구하는 문제가 늘어남에 따라 사고력과 추리력을 요하는 문제의 비중은 점차 줄어들고, 요약이나 논지 찾기 등을 요구하는 시험이 늘어나게 됐다고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분석했다.

이 기관 조사에 따르면 11개 대학의 141개 세부 평가요소 중 82개(58.2%)가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게 하는 비판·창조적 사고 능력을 묻는 게 아니라, 단순 지문 요약이나 논지 찾기, 분류 능력을 묻는 사실·추론적 사고능력을 평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인문계 논술의 경우, 출제 문제 수 자체가 지나치게 많아 학생에게 과도한 압박감을 안겼다고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지적했다.

11개 대학이 출제한 총 제시문 수는 173개로, 한 시험 당 평균 6개에 달했다. 또 총 논제의 수는 87개였으며, 특히 서울대는 무려 8개의 논제를 한 시험에 물었다. 평균 답안작성 시간은 2시간에 1650~1850자였으나, 서울대는 이례적으로 5시간에 4800~6000자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이처럼 무리한 수준의 내용이 시험에 제시됨에 따라 "학생들이 자신의 창의적인 사고를 찬찬히 펼쳐내는 내실 있는 과정 중심의 시험보다 평소 익혀둔 몇 가지 글의 전개방식, 구성방식 안에서 주어진 제시문과 관련된 사고를 빠르게 풀어내는 속도 중심 시험을 치르게 됐다"며 "선행학습을 통해 알고 있는 지식과 반복 훈련을 통해 얻은 기술적 능력에 국한된 평가로 흐를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같은 문제가 나타난 이유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대입 자율화 정책을 꼽았다. 대학이 자율적으로 논술 문제를 출제하게 허용하면서 논술시험이 본래 취지를 벗어났다는 지적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2005년 교육인적자원부가 제시한 대학별 논술고사 가이드라인이 2009년 폐지되면서 각 대학이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다시 영어 제시문과 수학 문제를 논술고사에 출제하기 시작했다"며 "이런 경향은 지난 2~3년 간 점차 확대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사실상 선행학습을 피할 수 없는 대학 수준의 문제가 출제된 건 심각하다"며 " 각 대학의 장과 이에 대한 관리 책임을 소홀히 한 교과부에 대해 분명한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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