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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장준하 선생 머리에 6㎝ 구멍"…'타살' 의혹 재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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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장준하 선생 머리에 6㎝ 구멍"…'타살' 의혹 재점화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 의문사 사건…지난 1일 첫 유골 검시

유신시절 독재정권에 맞서다 의문사한 고(故) 장준하 선생의 유골 검시가 37년 만에 이뤄졌다. 검시 결과, 고인의 머리 오른쪽에서 외부 충격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6㎝ 크기의 구멍이 발견됐다. 이로써 박정희 정권의 정치적 타살 의혹이 더 짙어졌다.

고인은 1975년 8월 경기 포천 약사봉에서 하산하던 중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됐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이 사건을 '실족사'라고 발표했으나 '정치적 타살'이라는 의혹이 따라 붙었다. 고인의 시신에 대해서는 간단한 검안만 진행됐을 뿐 사인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검시는 이뤄지지 않은 채 매장됐다.

고인의 유족과 장준하 추모공원추진위원회는 경기 파주시 광탄면 나사렛 천주교 공원묘지에 안장된 장 선생의 유골을 파주시 탄현면 통일동산 안에 마련된 '장준하 공원'으로 이장하는 과정에서 지난 1일 법의학자 1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첫 유골 검시를 실시했다고 지난 15일 발표했다.

고인의 큰 아들인 장호권(63) 씨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고인의 유골 오른쪽 귀 뒤에 5~6㎝ 크기로 톱으로 잘라낸 것 같은 구멍이 발견됐고, 그 주변에 7~8㎝ 길이의 금이 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어 장 씨는 "37년이 지났지만 유골 상태는 아주 양호했다"며 "산에서 떨어졌다거나 바위에 부닥쳐서 생기는 상처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의사 소견을 받았다"고 말했다.

1975년 고인의 사망 당시 실시된 검안에서도 동일한 머리 부위에서 가로·세로 2㎝ 크기로 흉기에 찍힌 상처가 발견됐다. 또 오른팔과 엉덩이 부위에서는 의문의 주사자국이 확인됐고, 억지로 끌려간 듯 어깨 안쪽에 피멍이 들어 있었다.

고 장준하 선생은 일제강점기 중국으로 건너가 임시정부 광복군 장교로 독립운동을 했고, 해방 뒤에는 월간 <사상계>를 창간해 반독재 투쟁에 앞장섰다. 고인은 박정희 정권 시절에도 3선 개헌에 반대하는 등 굽힘 없는 투쟁을 했고, 야권의 대선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만주군 장교 출신인 박정희 대통령과 광복군 장교 출신인 장준하 선생의 대립구도에 대해 당시 정권 수뇌부는 몹시 불편해 했다고 한다.

한국현대사의 대표적인 의문사 사건으로 꼽히는 장준하 선생의 죽음에 대한 공식적인 조사가 이뤄진 것은 지난 2004년이다. 그러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당시 조사는 충분한 자료가 없었던 탓에 '진상규명 불능'이라는 결론으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이번 검시 결과 발표를 계기로, 의혹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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