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한국에서 '루이비통'이 못 나오는 이유?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한국에서 '루이비통'이 못 나오는 이유?

[기고] 면세점에서도 재벌들은 '슈퍼 갑'

1854년에 설립된 루이비통은 창업주 루이비통의 이름을 딴 브랜드다. 지금은 '3초 백(거리를 걸으면 3초 만에 한 번씩 발견할 수 있다는 뜻 <편집자>)'이란 별명을 갖고 누구나 들고 다니지만, 진짜 명품은 파리에서 자동차로 1시간 가량 걸리는 도시 아니에르에 위치한 루이비통 공방(워크숍)에서 특별 주문(special order)을 받아 소량의 한정판으로 공급된다. 루이비통이 대량생산을 하면서도 명품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이어갈 수 있는 비결이다. 구찌도 1904년 이탈리아에서 구찌오 구찌라는 사람이 만든 가내수공업 제품에서 시작해 세계적인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다른 유명 부티크업체들도 비슷한 역사를 갖고 있다. 소기업에서 시작해 탄탄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재벌가 딸들은 탁월한 경영능력으로 명품 수입 몰두

시간이 흘러 루이비통은 이제 국내 재벌가가 탐낼 정도로 유명한 브랜드가 됐다. 루이비통에 눈독을 들린 대표적인 재벌기업이 바로 롯데와 신라면세점이다. 지난해에는 신라호텔이 세계 최초로 루이비통을 인천공항에 입점하는 데 성공했다. 신라호텔은 "뛰어난 협상능력", "인천공항 면세점 대박" 등 언론의 찬양을 받았다. 하지만 재벌가들이 과연 루이비통을 입점하고 수입품 매장을 대박내서 인천공항 매출이 늘어나는 게 국내 경제에 이로울까?

루이비통 등 해외 명품 브랜드의 입점을 위한 재벌가 딸들의 노력은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한국경제가 한창 어려운 때인 2008년부터 시작되었다. 재정·금융위기로 국내 경제가 어려울 때 재벌가 딸들은 내수 진작이나 국산품 판매, 제조업 발전 등 국내 일자리 창출이나 국내경제 활성화와 관련된 사업을 고민하지 않았다. 부자 아빠들이 장악하고 있는 모기업의 안정적인 유통망을 이용해 해외 명품 브랜드 수입에 몰두했다. 국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는커녕 수입대금으로 외화를 뭉텅뭉텅 해외로 빠져나가게 했다. 재벌가 딸들이 뛰어난 경영능력을 갖췄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이다.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국내 중소기업 제품이 잘 안 보인다?

그런데 인천공항에는 롯데, 신라와 같은 재벌 면세점만 있지는 않다. 공공기관인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면세점도 있다. 지난 2010년도 세 면세점의 국산품 판매 비중을 보자. 관광공사가 44.4%, 롯데면세점이 24.2%, 신라면세점이 16.5%로 나타난다. 누가 국민경제 활성화와 국내 중소기업에 혜택을 주고 있는지 통계가 말해주고 있다.

▲ 신라호텔이 면세점에서 루이비통 잔치를 하는 동안, 국산품들은 찬밥신세를 면치 못했다. 하지만 면세시장에서 국산품이 명품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인큐베이팅이 필요하다. ⓒ루이비통 홈페이지 화면캡쳐
신라호텔이 루이비통 잔치를 하는 동안, '한국 제2의 루이비통'이 될 수도 있었던 국산품들은 찬밥신세를 면치 못했다. 물론 인천공항에는 국내 브랜드로서 외국 명품 가방에 도전장을 내민 제품도 있다.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올해 상반기에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국산품을 살펴보면, 화장품은 설화수, 부티크 제품은 MCM, 식품은 역시 정관장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제품들은 수입품에 비해 매출이 낮았다. 제품 선호도의 차이도 있었겠지만, 그 이면에는 공항면세점 매장의 구성과 배치가 국산품 매장에 불리한 방향으로 짜여있다는 함정이 숨어있다.

먼저 매장의 위치를 보자. 공항에서 출국객이 가장 빈번하게 다니는 곳에는 어김없이 수입명품(화장품, 향수, 술, 담배, 외산 부티크)을 전면에 배치한 롯데와 신라면세점이 있다. 국산품을 주로 취급하는 관광공사 면세점은 출국객이 붐비지 않는 후미진 서편에 배치되어 있다. 자연히 수입품의 매출은 높을 수밖에 없고, 국산품의 매출은 낮을 수밖에 없다.

넓이에서도 차이가 난다. 수입 양주와 담배, 부티크 제품을 매장 전면에 배치한 롯데면세점은 약 1,669평(전체 매장의 35%)의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수입 화장품과 향수, 부티크 제품을 전면에 배치한 신라면세점은 약 2,298평(전체매장 49%)의 넓은 매장을 차지하고 있다. 관광공사 면세점은 약 767평(전체매장 16%)의 공간만 차지하고 있다.

인천공항 면세점 영업요율의 불편한 진실

영업요율(면세점이 공항에서 영업하는 대가로 내는 일종의 수수료율. 예를 들어 영업요율 10%가 붙었다면, 면세점은 제품 매출액의 10%를 인천공항에 내야한다. <편집자>)도 국산품 매장에 불리하게 책정되어 있다. 인천공항 내 면세점은 부티크 제품에 대한 영업요율로 평균 20% 정도를 지불하고 있다. 그런데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명분으로 가장 좋은 자리에 배치된 루이비통의 영업요율은 약 7%였다.

인천공항 내 수입품 점포는 시중 가격의 절반 정도에서 가격 책정을 시작할 수 있다. 수입품은 면세점에서 무관세 혜택을 받기 때문이다. 여기에 영업료를 더하면 최종 판매가가 결정된다. 반면에 국산품은 무관세 제품도 아니고, 영업요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따라서 국산품 점포가 조금이라도 남는 장사를 하기 위해서는 가격을 상대적으로 높여서 책정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시중보다 조금 싼 수준이어야 한다. 이래서는 국산품이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힘들고 명품으로 성장해 나갈 수도 없다.

게다가 현실에서는 평균 영업요율이 20% 이상이다. 인천공항은 면세점에서 그보다 많은 돈을 받아간다. '최소보장액'이라는 입찰조건 때문이다. 최소보장액이란 매출과 관계없이 기본영업료를 납부해야 하는 제도다. 현재 최소보장액 조건에 따른 기본영업료는 매출 대비 약 35% 수준이다. 결국 실질적인 평균 영업료는 매출액의 약 35%가 된다. 좋은 장소를 차지하고 많은 매출을 올리는 수입품 매장이라면 몰라도, 구석으로 밀려나서 팔리고 있는 국산품 매장은 최소보장액 조건 때문에 가격 경쟁력을 거의 잃고 있다.

▲ 관광공사 인천공항 면세점 한류관 전경. ⓒ한국관광공사노조

사정이 이렇다면 인천공항이 국산품에 대한 영업요율이나 최소보장액에서 배려해야 한다. 더군다나 인천공항은 최근 민영화 반대로 시끄러운데, 이럴 때일수록 '공항의 공공성'을 유지하기 위해 국산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꾀하고, 홀대받고 있는 국산품 판매도 늘릴 방안을 고민해 보아야 한다. 면세점의 국산품에 대한 영업요율을 하향하고, 국산품 매장의 최소보장액을 수입품 매장에 비해 조금 낮추는 것이 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인천공항 면세점은 수입품의 매출증진과 재벌 면세점의 수익확대를 위해 봉사하는 이상한 구조로 짜여 있다. 누가 보더라도 지금 상황에서는 국산품 업체가 성장할 기회가 적다. 공항에서 이미 국산품 매장은 수입품 매장에 밀려 철저히 왕따당하고 있다. 이러고도 '공항은 주권이다'라고 외칠 수 있을까?

국산품 업체의 싹을 자르고 판매직원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인천공항 민영화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을 여행한 후 출국 전에 마지막으로 방문하는 곳이 공항면세점이다. 한국을 상징하는 국산품 판매를 통해 큰 홍보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곳이 바로 공항이다. 그런데 관광공사 인천공항면세점에 국산품을 납품하는 업체 대부분은 중소기업으로 수입품에 밀려 인천공항 내 국산품 매출이 줄어들면 경영난을 겪을 수도 있는 업체들이다. 약육강식의 시장논리에 따라 인천공항 면세점 진열대에서 국산품이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언제쯤 부자 아빠의 기존 유통망을 이용한 것도 아니고, 부자 아빠의 자본을 사용한 것도 아닌, 맨손 하나로 면세시장에서 한 땀 한 땀 자기 자리를 일구어 가는 국내 명품을 볼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국산품도 세계적인 명품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면세시장에서 국산품이 명품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인큐베이팅이 필요하다. 당장의 이윤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성장할 시간을 주고 인내를 갖고 기다려 주어야 한다. 그리고 국산 명품 브랜드를 키운 경영자에게 '이런 게 바로 진짜 경영능력'이라고 박수를 쳐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인천공항이 민영화되어 관광공사 면세점이 철수할 경우 이를 인수할 것으로 보이는 재벌 면세점은 국산품을 판매하던 장소를 빠르게 수입품으로 채워나갈 것이다. 게다가 관광공사 면세점에는 약 530여 명의 판매직원이 있고 이들 중 상당수가 국산품 판매에 종사하고 있다. 재벌 면세점이 관광공사 면세점을 인수하면 국산품을 판매하던 직원들의 자리도 수입 외산품을 판매하는 비정규직 직원들로 채워 나갈 것이다. 인천공항 민영화는 국산품을 납품하는 업체들의 경영난을 가중시키고, 국산품을 팔던 직원들의 일자리를 뺏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 관광공사노조가 면세점 민영화에 반대해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노조

면제점 시장에서도 재벌은 '슈퍼 갑'

MB 정부는 재벌에 수많은 특혜를 주고 있다. 그러나 MB가 퇴임한다고 해서 경제민주화가 앞당겨질까? 정권이 바뀌어도 여전히 대기업에 특혜를 주려 하는 관료집단인 모피아가 있다. 경제관료 모피아를 해체하면 경제민주화가 앞당겨질까? 경제관료 모피아를 지배하는 것은 재벌이다. 재벌이 언론과 관료를 움직이고 있다. 경제관료 모피아는 자신들이 대한민국 경제를 디자인하고 운영하는 '갑'의 위치에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경제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디자인하고 운영하는 '슈퍼갑'의 위치에 재벌이 있다. 재벌이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한 대한민국의 경제민주화는 더디고 힘들다.

아마도 19대 국회에서는 왜곡된 면세시장을 바로잡기 위한 입법 작업이 진행될 것이다. 첫째, 재벌면세점이 면세점이라는 특혜사업을 운영하는 대가로 면세점 매출액이나 수익의 일정 부분을 공적기금에 출연하는 법령 제정이 논의될 것이다. 둘째, 재벌 면세점이 장악하고 있는 공항 면세점 내 매장의 상당부분에서 국산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법령 제정이 논의될 것이다. 또한 인천공항에서 '국산품이 잘 안 보이는' 이상한 구조의 원인도 분석할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법령들에 대한 입법이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대한민국 면세시장에서도 슈퍼갑인 재벌 면세점이 경제관료 모피아에 대한 로비를 통해 반대논리를 만들어 낼 것이고, 재벌 장학생 출신 언론인들을 통해 반대 여론을 유도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슈퍼갑을 위해 봉사하는 경제관료 모피아 집단과 19대 국회와의 전투를 관심을 갖고 지켜보자.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