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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이 있었던 곳에는 반드시 복수노조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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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이 있었던 곳에는 반드시 복수노조 나타난다?

[복수노조 1년, 사라지는 노동권·①] 창구단일화 제도, 어용노조만 키운다

지난해 7월 1일 시행된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제도의 핵심은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사업장단위에서도 자유롭게 제2, 제3의 복수노조를 만들 수 있다. 둘째, 그러나 산업평화와 교섭비용 절감을 위해 교섭창구 단일화 과정을 거쳐 과반수 노조에게만 교섭권, 쟁의권을 부여한다. 셋째, 그렇지만 사용자가 원할 시 소수 노조와도 자율교섭 할 수 있다.

복수노조 제도가 도입되면서 단결의 자유는 넓어졌지만 교섭권과 쟁의권은 제한됐다. '창구단일화' 제도는 복수노조의 의의를 살리기보다는 오히려 탄압의 무기로 활용되고 있다. 이 신무기에 의해 민주노조가 파괴되고 친 기업노조로 대체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민주사회의 기본원리이자 헌법상의 기본권리인 노동기본권이 박탈되고 노사관계는 자본 일방으로 재편됐다.

'창구단일화' 아래서 친 기업노조는 다수든 소수든 유리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를 매개로 한 민주노조 파괴 시나리오는 친 기업노조 설립으로 시작된다. 회사 측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친 기업노조가 다수를 장악하면 창구단일화 절차를 밟아 교섭권, 쟁의권을 독점할 수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민주노조 소속 조합원들을 압박하여 탈퇴시키고 친기업 노조에 가입시키면 게임은 거의 끝난다. 소수노조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건 교섭대표 노조에게 공정의 의무를 다하라고 따지는 것 정도이다.

또 하나의 기가 막힌 문제는 민주노조의 교섭대표권이 남아 있거나, 친 기업노조가 다수를 점하지 못한 소수일 경우에도 회사는 자율교섭을 한다는 명목으로 소수노조인 친 기업노조와 교섭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측은 소수노조 상태인 친 기업노조와 먼저 합의하고 민주노조와의 교섭은 형식적으로 임하고 버틴다.

동시에 친 기업노조는 회사의 지원 하에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다수 조합원 확보에 나선다. 조합원들은 갈등 속에서 살기 위해 동료를 등지고 자책감에 괴로워한다. 노동현장은 이전에 겪어 보지 못한 갈등, 분노, 배신감등이 뒤 얽혀 인간성의 파괴를 경험하고 있다. 문제의 근원은 바로 다수노조가 교섭권, 쟁의권을 독점하게 하고, 사측이 교섭에 대한 결정권을 쥐고 임의로 선택하여 자율교섭을 할 수 있게 한 이 모순된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제도이다.

한일파카 유압·유성기업·KEC·한진중공업에서 맹활약한 '창구단일화'

한일파카 유압은 더 많은 이윤, 더 많은 비정규직의 사용을 위해 장안외국인투자단지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2009년 5월 32명을 정리해고 했다. 이후 정리해고 반대투쟁이 전개되었고 2011년 7월 1심에서 승소하였다. 그러나 사측은 2011년 2월 단협을 일방해지하고 그해 7월 1일 복수노조를 설립하였다. 이후 민주노조 소속 조합원들은 잔업, 특근에서 배제되고 부당한 업무지시, 배치전환에 항의하면 중징계를 받아야 했다.

유성기업에서는 공격적 직장폐쇄 기간이 장기화되어 조합원 복귀율이 50%가 되던 2011년 7월 14일 복수노조가 설립되었다. 회사 측이 노골적으로 나서서 친 기업노조 가입운동을 펼쳤으며, 관리직 사원 50명을 가입시켜 다수를 확보해 나갔다. 또한 2011년 12월말까지 '친 기업노조 가입이 50%를 넘지 못하면 현대자동차에서 물량을 안 준다고 했다'는 소문을 퍼뜨리기도 했다. 조합원들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 장기파업으로 인한 징계 및 손배소 대상에서 제외되기 위해 등을 돌려야 했다.

2011년 희망버스의 소중한 성과물인 한진중공업에는 정리해고자들이 복직하기 전에 이미 친 기업노조가 설립되어 다수를 확보해 2012년 7월 18일 이후부터는 '교섭 창구단일화 절차'를 앞두고 있다. 일거리가 없는 조합원들에게 친 기업노조에 가입하면 받을 수 있는 대출형식의 1000만 원 지원과 순환휴직에서 벗어나 먼저 현장에 투입될 수 있다는 바람은 열사의 정신으로 똘똘 뭉쳐 있던 그 애틋한 동지들 사이를 갈라놓고 말았다. 노조 간의 선의의 경쟁은 말할 가치조차 없다. 고도로 준비된 노무컨설팅을 바탕으로 기획적인 노동탄압이 존재할 따름이다. 친 기업노조는 노무관리 대행, 사측의 아바타 역할을 수행 한다. 사측은 '복수노조 창구 단일화'라는 효율적인 탄압의 무기를 얻었을 뿐이다.

▲ 희망버스를 계기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는 정리해고 철회에 합의했지만, 일거리가 없었던 조합원들은 순환휴직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고 싶은 바람에 제2노조에 속속들이 가입했다. 사진은 3차 희망버스 참가자들. ⓒ프레시안(최형락)

그렇다면 소수 신규노조에는 단결의 자유를 주나?

복수노조가 허용되었다고 해서 노조의 무풍지대나 기존 어용노조의 아성에 노조 결성의 바람이 불지 도 않았다. 교섭권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노조를 만들 엄두도 못 내기 때문이다. 소수노조라도 교섭권이 보장된다면 장기적 전망을 갖고 활동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과반수 노조에게만 교섭권이 보장되어 있는 이 제도 하에서는 노조의 확산을 통한 노동자 권리의 확대를 예측할 수 없다.

금속노조에서 기존 친 기업노조 하에서 새롭게 지회를 결성한 곳은 부산 TY밸브가 유일하다. 조합원 160명의 TY밸브 노조위원장은 임금을 결정하고 인사권을 행사하는 등 사측의 인사노무관리 역할을 하고, 조합비를 마음대로 사용하는 전횡을 일삼아 왔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조합원 중 30명이 복수노조 창구단일화가 시행된 2011년 10월 4일 금속노조에 가입하고 지회를 결성하여 교섭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과반수 조합원을 확보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사측과 한 몸인 친 기업노조를 상대로 과반수 조합원을 확보하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과제이긴 하지만 그 산을 오르기가 무척 힘겨워 보인다. 그렇다고 사측이 스스로 선택하여 지회와도 교섭을 할리는 만무하다. 현재 TY밸브 지회는 공정대표 의무 위반으로 친 기업노조를 제소하며 힘겹게 스스로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며, 조직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이렇듯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는 기존 민주노조를 파괴하는 훌륭한 무기가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규 노조의 진입을 가로 막는 강력한 장벽이 되고 있다. 한마디로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 민주사회의 기본원리인 노동기본권을 제한하고 박탈하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다시 '노동법 전면 재개정 투쟁' 앞에 서다

장기간의 투쟁 끝에 민주노조를 파괴하고 교섭대표 노조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친 기업노조는 자주성을 가지고 있는 '노조' 가 아니라 회사 측의 노무관리를 대행한다고 보는 것이 맞다. 2011년 7월 1일 만들어진 복수노조 1호 사업장인 KEC노조는 교섭창구 단일화 과정을 거쳐 2012년 2월 17일 회사 측의 오랜 염원이었던 상여금 300% 삭감, 고정 OT폐지, 교대수당 폐지, 2조 2교대제, 무급순환 휴직에 흔쾌히 합의해 주었다. 유성기업노조는 관리직 50명을 가입시켜 교섭대표권을 행사했고, 단체협약상의 노조활동시간과 구조조정 제한규정 삭제, 여성들의 생리휴가 제한 등에 합의해 주고 있다. 센트랄, 두산 모트롤도 회사 측의 경영방침이지만 민주노조가 걸림돌이 되어 못했던 구조조정 제한규정 삭제, 노동유연성 확대, 노조활동 지원축소, 노동조건 하향조정 등에 합의했다. 이렇듯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는 노동기본권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의 권리를 후퇴시키고 자본일방의 노사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한국에 대한 국제적인 관전평은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데 비해 노동자의 권리는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은 아직 국제노동기구(ILO)와 협약도 비준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가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는 국제적 권고도 잇따르고 있다. 최근 국제노동기구(ILO)의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지난 3월 15일 313차 회의에서 한국이 "모든 노조에게 쟁의권을 부여하고, 과반수 노조가 없을시 모든 노조에게 교섭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복수노조 창구단일화가 도입된 지난 1년을 통해 밝혀진 결론이 있다. 노동기본권을 지키고, 확대시키기 위해서는 노동법을 시급히 전면 재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제한하고, 사용자가 교섭파트너를 선택하게 한 이 악법은 모든 노조에 교섭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전면 재개정해야 한다. 또한 사용자의 부당한 차별행위, 친 기업노조 설립지원, 노조에 개입하는 행위에 대해 처벌을 강화해야 하며, 모든 노조에게 쟁의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투쟁해 나가야 한다. 그 출발이 8월말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이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함께 실립니다.)


▲ 민주노총은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총파업을 예고하는 경고파업을 벌였다. 민주노총 대표단은 이날 노동법 전면 재개정을 촉구하는 서한을 국회에 전달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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