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50년 세월이 흐른 지금, 외국의 원조에 기대어 근근이 꾸려가던 대한민국은 누가 뭐래도 외형상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눈부신 발전이었다. 대한민국은 20세기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지구상 유일한 국가이다. 기적이라는 표현은 부족하다. 인류역사에 다시는 없을 신화에 가까운 발전을 이루어 낸 것이다.
대한민국은 전통적인 자원빈국이다. 아무리 땅을 파도 기름 한 방울 나지 않고, 변변한 지하자원이라 할 만한 것이 없는 이 나라가 이렇게 엄청난 발전을 이루어 낼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잘 훈련된 인재' 즉, 교육을 통해 경쟁력을 갖춘 인재들을 길러냄으로써 가능한 일이었다. 잘 해 왔다. 현재에 이르기까지 교육은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가장 큰 견인차 역할을 수행해왔다.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그 '교육'이, 특히 이 교육에 소요되는 비용이 국가와 백성의 발목을 단단히 잡고 있다.
정부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24만 원"…거짓말!
연일 신문과 뉴스에는 이 잘못된 교육비용(사교육비)과 관련된 소식들이 줄을 잇는다. 월급 600만 원을 넘겨받는 대기업 부장의 부인이 아이들 학원비가, 생활비가 부족해 마트에 취직을 했다는 둥, 아직 우리말도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어린아이들이 영어 유치원과 학원비용으로 100만 원 이상을 쓰고 있다는 내용까지 얼른 받아들이기 어려운 소식들로 넘쳐 난다.
그런데 정부 발표를 보면 2011년 사교육비 총액은 20조1266억 원, 학생 1인당 월 평균 24만 원밖에 되지 않는단다. 이것이 과연 맞는 말인가? 아무리 고쳐 생각을 해 보아도 이 수치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인당 24만 원이라면 사실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는 집에 이렇게 말했다가는 욕 얻어먹기 십상이다. 우리 모두 계산기 준비해서 몇 가지 계산을 해 보도록 하자.
일단 총 금액 20조1266억 원, 1인당 월 24만원이라는 근거를 가지고 계산해 보면 사교육 대상자는 699만8403명이다. 즉, 1인당 사교육비는 전체 학생 수를 가지고 계산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학원이 없는 산간 도서지역이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을 수 있다. 이중 약 70%만이 사교육을 받는다고 가정하면(정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사교육 참여율은 71.7%였다 <편집자>) 실제 사교육을 받는 학생 수는 699만8403×70% = 489만1882명이다.
사교육비 총액과 관련한 다른 내용들도 살펴보자. 현대경제연구원이 2010년에 낸 보고서에 따르면 사교육비 총액은 33조4968억 원이다. 또 다른 보도 자료를 보면 한해 우리가 사용하는 영어 사교육비만 15조 원에 이르는데 전체 사교육비 중에 영어과목이 차지하는 비중은 33%에 달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전체 사교육비 총액은? 15조÷0.33 = 45.5조 원이다. 아직 또 있다. 2009년 미국의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사교육비가 국내 총생산의 6%를 차지한다고 했다. 2010년 국내 총생산은 약 1조 달러, 우리 돈으로 1100조 원이다. 이것을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1100조원×6% = 66조 원이다. 사교육비가 무슨 연예인 고무줄 나이도 아닌데 이건 차이가 나도 너무 크다. 일단 복잡하니 표로 한번 정리해 본다.
이제 정부 발표 내용과 비교해 보면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총액은 최고 4.5배까지 차이가 난다. 독자는 어떤 생각이 드시는가? 무슨 이런 결과가 다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가? 어떤 것이 맞는 것인가? 어려운 통계나 수학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산수가 맞지 않는다. 이것이 선진국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웃기는 일이다.
필자는 이중 일인당 사교육비가 57만 원이라는 연구결과나(③) 영어 사교육비가 77만5000원이라는(④) 보고가 현실과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것이 많은 것인가? 혹시 다른 나라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이 쓰고 있는데 공연히 엄살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마땅히 비교를 해보아야만 한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우리나라의 영어 사교육비 총액은 15조 원에 이른다. 같은 해 이웃나라 일본은 5조 원(6283억 엔)을 사용했다. 액면으로 3배? 아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인구가 2.6배가 많고 소득수준은 2배에 이른다. 그렇다면 3(절대금액)×2.6(인구)×2(소득수준) = 15.6배에 이른다. 그냥 많이 쓰는 것이 아니고 '미친 짓'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많이 쓰고 있는 것이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인들보다 머리가 나빠서? 아니면 쓰고 넘칠 만큼 돈이 남아서? 필자는 잘 모르겠다. 그저 갑갑하기만 할 뿐,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해할 수가 없는 현실이다. 이외에도 많다. 하지만 적은 지면에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다. 자세한 내용은 필자가 지난 3~4년간 자료를 찾아가며 정리해 본 <비겁한 대한민국…어머니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요람에서 결혼까지, 아이 한 명당 4억 원
이러한 과도한 사교육비는 결국 아이를 키우는 데 들어가는 양육비를 천정부지로 치솟게 하고 있다. 2009년 기준 아이 한 명을 낳아 22년 동안 대학까지 졸업시키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2억6204만 원, 년 평균 1200만 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현재 결혼비용까지 포함하면 대충 아이 한 명을 낳아 키우는데 4억 원 정도의 비용이 필요한 것이다. 말도 되지 않는 소리 하지 말라고? 지금이라도 아이 키우는 사람들과 얘기를 해 보거나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을 살펴보라. 필자가 부풀리거나 확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계산 한 번 더 해 보자. 2011년 4분기 기준 우리나라 가계의 월평균소득은 393만6000원으로 연간 5000만 원이 조금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학교를 마치고 가정을 꾸려 평균 25년 동안 매년 5000만 원씩 버는 걸로 가정하고, 아이 둘을 낳아 결혼까지 시키는 비용을 대는 것으로 가정하면
'평생 버는 돈 (5000만 원×25년 = 12억5000만 원) - 자녀 양육비 (4억×2명 = 8억) = 4억5000만 원'이 된다.
이 4억5000만 원을 가지고 두 부부가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계산이다. 집 사고, 차 사고, 병원 다니며, 놀러도 가야하고, 취미생활도 해야 한다. 잊어서는 안 될 것은 가족 중에 암이나 뇌졸중 같은 중병이 걸리는 사람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집에 불이라도 나 재산을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곧바로 극빈층으로 전락해야 한다. 이것이 사람 사는 세상의 모습인가?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 빚 없이 죽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제 정신을 갖춘 사람이라면 언감생심 어느 누가 감히 결혼을 하고 또 아이를 낳으려 하겠는가? 결과적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은 '출산 파업'이라 불러도 무색하지 않을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
ⓒ뉴시스 |
2010년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와 같은 저출산이 계속되면 우리나라 인구는 2100년에 2468만 명, 2500년엔 현재 인구의 0.7%인 33만 명으로 축소되어 민족이 소멸하고 한글과 한국어는 사어화(死語化)될 것이라 했다. 33만 명이라면 국가라 할 수가 없다. 군인도, 경찰도, 공무원도 채울 수 없는 숫자이다. 근데 과연 그때엔 이 땅에 우리민족 33만 명만이 오순도순 모여서 살고 있을까? 천만에 외국인들이 채우고 있을 것이다. 중국말을 쓰는 사람이 많을 수도 있고, 일본어를 쓰는 사람이 대부분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나라인가? 대한민국은 어찌 되는 것인가? 이것이 전쟁으로 나라를 뺏기는 것과는 도대체 어떻게 다른 것인가?
사태가 이러함에도 정치인들은 이런 어처구니 없는 현실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머리가 나빠서 그런 것인지 아님 또 다른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2011년 여름, 대한민국 서울은 '무상급식'문제로 들끓었다. 월 5~6만 원 정도 되는 아이들 점심값을 가지고 선택적 복지니 보편적 복지니 하며 치고받더니 급기야 백 몇 십억인가 하는 비용을 들여서 주민투표를 강행하고, 서울시장을 다시 뽑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이제 한번 생각해 보자. 서울시민은 과연 무상급식으로 인해 얼마나 많이 행복해 졌을까? 아마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공돈 생겼다고 아이들 학원 한 과목 더 끊어 주고 말았을 것이다. 헌데 그러한 것을 '복지'라 할 수 있는가? 서울시장을 갈아 치워야 할 만큼 중요한 '국가대사' 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고, 생각해 볼수록 가슴 속 치밀어 오르는 화를 삭일 방법이 없다.
앞에서도 살펴보았지만 한해에 얼마나 많은 돈이 아이들 사교육비로 들어가는지 필자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30조에서 60조 원까지 엄청나게 많은 돈을 쏟아 붓고 있다. 그런데 왜 이래야 하는 것인가? 지금의 아이들은 우리 '베이비부머' 세대에 비해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있다. 공교육 환경은 물론이고, 넘쳐나는 참고서, EBS, 인터넷 등 학습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음에도 왜 이렇게 많은 별도의 돈을 들여가며 공부해야 하는 것인가?
"사교육 문제는 저출산, 노후대책, 가계부채 문제"
사교육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돈을 들여 성적을 사는 경쟁'이라고 할 것이다. 돈을 들여 아이들 성적을 사는 행위는 어떻게 생각을 해 보아도 정당화될 수 없다. 부잣집 아이들에게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더없이 순수해야 할 아이들의 배움에 부모의 경제력이 가장 큰 경쟁력이 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가? 또 그 때문에 가정경제가 파탄 나고 국민 대부분이 노후대비를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어찌 이해하여야 하는가?
지금 시점에서 가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저출산, 노후대책, 가계부채 세 가지일 것이다. 이 모두가 돈이 들어가는 일이다. 그러나 아이들 키우는데 이렇게 많은 돈을 쏟아 붓는 무모한 경쟁이 계속되는 한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복지? 웃기는 얘기들 하지 마시라. 구멍 난 독에 물을 부으면 어찌되는지 몰라서 하는 소리인가? 누구 좋은 일 시키려고 그런 엉뚱한 논리로 국민을 기만하고 있는 것인가?
국가와 경제의 가장 기본단위인 가계가 이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어찌 될 것인가? 대한민국은? 나라의 경제는? 함께 붕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4.11 총선과 관련하여 어떤 정당도, 어느 정치인도 사교육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필자는 들어본 적이 없다. 서민들은 당장의 생활이 어렵고, 하루하루 연명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들은 한·미 FTA, 제주 해군기지 문제와 관련하여 서로에게 책임을 떼 넘기기 바쁘고 현실성 없는 복지 문제로 입씨름만 하고 있다. 시퍼렇게 멍든 가슴으로 더 이상 고통조차 느낄 수 없는 국민에게 그들은 마치 '안드로메다 외계인'처럼 느껴질 뿐이다. 2012년 4월 대한민국의 시간은 그렇게 하릴없이 흘러가고 있다.
이제 국민들이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 정치인들이 뭔가를 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을 필자는 보았다. 아이들 교육에 들어가는 돈은 부모들이 희생을 해서라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허나 결코 그렇지 않다. 지금의 부모세대는 매년 100만 명씩 태어났다. 요즘엔 50만 명도 되지 않는다. 100만 명씩 태어난 부모세대는 운이 나쁘면 100살까지 살아야 한다. 그들이 노후대비를 하지 못한 채 늙고, 경제력을 상실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는 한 부모세대를 부양하기 위해 절반 밖에 태어나지 않은 젊은 세대들이 돈을 벌어 충당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사교육비, 과도한 양육비는 결코 우리의 돈으로 지불하거나 투자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 다 크지 않은 철부지 아이들이 미래에 벌게 될 돈을 그들의 동의 없이 가져다 쓰고 있는 것이다.
사교육은 더 이상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고 가르치는 교육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교육'은 가계 및 국민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이다. 부모의 돈으로 성적을 사고 스펙을 준비하는 '비뚤어진 사회의 불공평한 경쟁구도와 관련된 문제이다. 노인층은 늘어 가는데 젊은이들은 아이 낳기를 기피하고 있는 국가의 절망적인 미래에 대한 문제인 것이다. 사교육비는 정치인들의 말처럼 결코 '절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근절의 대상'일 뿐이다.
필자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라도 우리 모두가 찬찬히 계산해보고, 생각하고 고민해서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면 가계와 대한민국의 앞날은 없다. 천천히 그리고 완전히 침몰해갈 뿐이다. 그렇게 우리세대는 역사 앞에 영원한 죄인으로, 부질없는 자신들끼리의 경쟁으로 몰락해 버린 가장 어리석은 민족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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