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방송'을 수년 간 보지 못한 시민들의 분노가 공연 내내 내리는 봄비에도 수만 명의 사람을 여의도공원에 묶어놓았다. 언론사에선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데스크와의 갈등'에 강경한 징계로 맞선 사측의 든든한 뒷배가 이 나라 최고 권력이라는 점은, '좋은 직업', '선망의 대상'인 이들의 파업을 시민들이 열광적으로 지지하게 만들었다. 4년여 간 지난했던 싸움을 경험한 모두가, 그간 익숙했던 광경을 웃음으로 즐겼을 뿐이다.
▲16일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방송 3사 공동 파업콘서트에 참여한 관객들. ⓒ프레시안(최형락) |
낙하산 사장님을 꽂은 분
16일 저녁 7시,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이들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MBC와 YTN 노조, KBS 새노조의 공동 파업 콘서트를 관람하기 위해 모였다. 이날 콘서트 이름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방송 낙하산 (사장들의) 동반퇴임 축하쇼"였다.
오상진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위원장 정영하) 조합원, 최원정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위원장 김현석) 조합원, 권민석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위원장 김종욱) 조합원의 첫 인사로 시작한 콘서트는 밤 10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의 화려한 출연진에서 방송3사의 파업이 대중적으로 어느 정도의 지지를 받는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대에 오른 가수들이 관람하는 이들에게 건네는 말은, 분명 이번 파업 사태의 책임을 져야 할 이가 단순히 '사장님'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주제의식을 담고 있었다.
이날 <위대한 탄생> 생방송과 스케줄이 겹쳤던 가수 이승환 씨는 "생방송 리허설을 진행하다 '째고' 나왔다"며 "방송 3사 언론인들의 헌신과 용기, 모이신 분들의 수고와 관심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박진수 YTN 조합원이 파업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이은미 씨도 "서로 기대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시대"라고 오늘날 한국을 진단하며 "그러나 모두의 뜨거운 가슴을 모은다면 달라질 것"이라고 언론 노동자들과 참석한 시민을 격려했다.
바로 김재철 사장이 경영하는 MBC의 인기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 출연 중인 이적 씨는 뼈 있는 농담으로 현 세태를 빗댔다. 이 씨는 "이런 행사는 오랜만이다. 제 이름이 '이적'이고 <왼손잡이>라는 노래를 갖고 있어서 오해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제가 신뢰하는 분들이 하는 일에 힘이 되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타이거JK는 노래 후렴구를 "낙하산 발라버려('밟아버려' 정도의 뜻을 가진 은어)"로 개사해 불렀다. DJ DOC는 노조 파업을 지지하는 무대에 오르는 부담을 전하면서도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 <놀러와> PD가 나오라 해서 나왔다"고 농쳤다.
'스타 언론인'들은 이번 파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각 방송사의 사장 퇴진 필요성을 역설했다.
<1박 2일> 하차후 파업대열에 합류한 나영석 KBS PD는 "비도 오고 날도 추운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서 고성방가를 지르는 이유는 (이 목소리를) 들어야 할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며 "사람은 눈치껏 떠나야 할 때를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말 <뉴스데스크>에서 하차한 후 파업대열에 합류한 최일구 앵커는 "이 자리에는 배부른 돼지가 아니라 배고픈 소크라테스만 있다"며 "MBC, KBS, YTN 노조가 뭉쳐서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수 YTN 조합원은 해직 언론인들의 이름을 차례로 부른 후 YTN 노조가 파업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박 조합원은 일명 '복직송'을 불러 많은 박수를 받았다.
▲이명박 정부 들어 일터에서 쫓겨난 언론인들이 한 무대에 섰다. 좌로부터 정연주 전 KBS 사장,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 이근행 전 MBC 노조위원장, 엄경철 전 KBS 새노조위원장, 조상운 국민일보 노조위원장, 공병설 연합뉴스 노조위원장. 각사 노조 관계자 중에서는 엄 전 위원장(징계 6개월)과 공 위원장만이 아직 해고되지 않았다. ⓒ프레시안(최형락) |
파업하는 언론인들
이날 콘서트에서 가장 큰 박수를 받은 무대는 사측의 징계를 받은 각사 언론인들이 무대로 오르는 순간이었다. 공연 말미 정연주 전 KBS 사장은 기립박수를 받으며 무대에 섰다. 정 전 사장은 지난 2008년 8월 11일 해임된 지 3년 6개월여 만인 지난달 12일, 법원서 자신의 해임과정서 받은 모든 혐의가 무죄였음을 법원으로부터 확인받았다.
정 전 사장은 각 언론사로부터 징계 받은 언론인들을 거론하며 "이런 사람들과 방송사를 하나 했으면 좋겠다"며 "여러분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새로운 언론을 시작하고, 새로운 방송을 시작할 것"이라고 격려했다.
뒤이어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 이근행 전 MBC 노조위원장, 엄경철 전 KBS 새노조위원장, 조상운 국민일보 노조위원장, 공병설 연합뉴스 노조위원장이 차례로 무대에 올랐다. 지난 15일 총파업에 돌입한 연합뉴스의 위원장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사측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상태다. 이들은 비를 맞으면서도 콘서트를 지켜본 시민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1박 2일> 시즌1 종료후 파업대열에 합류한 나영석 KBS 새노조 조합원. ⓒ프레시안(최형락) |
이 전 위원장은 "언론인으로서 양심을 속이지 않고 살았다면 누구나 해직될 수 있는 시대"가 됐다면서도 "여러분을 보면서 제가 잘못 살지 않았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강조했다.
엄 전 위원장은 특히 해직자들의 복직, 사장들의 퇴진 못지않게 방송사 내부 개혁이 중요한 과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김인규 사장이 퇴진한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지금도 '방송이 뭐가 문제냐'는 사람들이 KBS에 많다. 우리가 들어가서 지난하게 싸워야 할 과제가 많다"고 말했다.
조 위원장과 공 위원장은 그간 자사의 억압된 분위기를 역설적으로 설명했다. 조 위원장은 "해고돼서 행복하다. 회사에 묶이지 않으니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 위원장은 "지난 4년 간 <연합뉴스>가 걸어온 길을 여러분께 사죄드린다"며 "우리가 언론사 파업 사태를 끝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파업에 나선 언론인들은 단순히 '사장 퇴진'을 넘어 언론사의 대규모 파업사태를 불러온 현 정권에 책임을 묻기 시작하고 있다. 지난 15일 오후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전국언론노동조합 집행부와 KBS, MBC, YTN 노조는 "KBS·MBC·YTN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파업은 지금까지 낙하산 사장 퇴진 투쟁이었지만 지금 이 시간부터는 이들을 방송사에 앉힌 대정부 투쟁으로 확대한다"며 "현 언론파업은 MB 정권이 벌인 언론파괴 악행에 대한 지극히 정당한 투쟁"이라고 선언했다.
파업 언론인들은 이처럼 선명해진 의식을 오는 23일 서울광장에서 진행하는 총궐기대회에서 다시금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방송3사 파업콘서트에 참여한 이승환 씨가 열창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KBS 새노조 조합원들이 <개그콘서트>의 인기코너 '비상대책위원회'를 패러디한 무대를 선보였다. ⓒ프레시안(최형락) |
▲가수 이적 씨는 곡명으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한 <왼손잡이>를 마지막 노래로 불렀다. ⓒ프레시안(최형락) |
▲<나는 꼼수다> 멤버들은 '어김 없이(?)' 이번 콘서트에도 참여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타이거JK는 랩핑으로 파업 언론인들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혔다. ⓒ프레시안(최형락) |
ⓒ프레시안(최형락) |
▲이은미 씨는 강렬한 무대매너로 환호를, 언론인들의 파업 여정을 담은 영상화면을 배경으로 한 노래로 차분함을 선사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특유의 너스레와 '시원한(?)' 욕설을 섞어 관객들을 휘어잡은 DJ DOC.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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