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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시작과 끝을 관통한 키워드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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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시작과 끝을 관통한 키워드 '노무현'

[해설] 노무현에 업혀 가는 이명박, 노무현 넘지 못한 민주당

지난 2006년 2월 3일 두 나라가 협상을 개시한 이래 6년 1개월여 간 숱한 논란을 일으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15일 0시를 기해 결국 발효됐다. 한미 FTA는 두 정부에 걸쳐 완성된 새 체제며, 특히 '노무현'은 한미 FTA 발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노 전 대통령이 한미 FTA 협정을 시작해서가 아니다. 지난해 말 국회의 비준동의안 처리 이후 여야 공방의 중심에도 노 전 대통령이 있었다. '노무현'은 발효를 코앞에 둔 14일 밤까지도 한미 FTA를 둘러싼 갈등에서 중심에 있다.

노무현에 업혀 가는 새누리당

한미 FTA에 반대하는 이들을 찍어 누른 정부와 새누리당(옛 한나라당)의 태도는 '노무현'과 떼놓을 수 없다. 여권은 반대진영의 목소리가 나올 때마다 "노무현이 시도한 한미 FTA"라는 점을 강조했다. 정책 입안자로서의 자신감이나 정책에 대한 믿음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정략적으로 '노무현'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며 방어막을 치기 바빴다.

이런 여권의 태도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가 지난해 10월 정부가 방영한 한미 FTA 홍보광고다. 이달 27일 TV에 소개된 이 광고는 "노무현 대통령이 시작한 한미 FTA를 이명박 대통령이 마무리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노무현에 업혀가겠다'는 정부의 태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홍보 방식이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문재인 혁신과 통합 상임고문을 공격할 때 동원한 문제의식도 한미 FTA에 대한 문 상임고문의 진정성이었으며, 그 근간에는 '노무현'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는 한미 FTA로 피해를 입는 업종에 대한 어떠한 효과적 구제책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오직 '노무현'을 이용할 뿐이다. 정부가 밝힌 피해산업 지원대책은 곧바로 (진보진영으로 분류되는 시민사회단체가 아니라) 이해관계자들의 비판에 가로막혔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은 지난 정부의 FTA 추진을 들먹이며 '야당과 우리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도식화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 ⓒ뉴시스

노무현 넘지 못한 민주통합당

문제는 야권연대의 수장인 민주통합당이 이와 같은 공세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소수 의원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지난 정권에서 한미 FTA 추진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여권의 비판이 실효성을 거두는 부분이다. 민주통합당 의원들은 비준동의안 처리를 둘러싼 새누리당과의 싸움에서 수세를 면치 못했다. 기껏해야 "노무현의 FTA와 이명박의 FTA가 다르다"는 식의 변명에 급급할 뿐이었다. 투자자-국가중제제도(ISD)와 농업부문 졸속 개방, 허가-특허 연계제도, 래칫조항 등 이른바 '독소조항'으로 불리는 조항의 대부분은 2007년 4월 협정문과 현 발효 협정문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

"한미 FTA는 참여정부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그 내용과 상황이 바뀌었다. 국제금융질서가 바뀌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고 있다. 민주당은 총선에서 승리하면 반드시 재재협상을 하고 (한미 FTA를) 정밀하게 재검토 하겠다. 전면 재검토 내지 재재협상이 무산된다면 폐기할 수밖에 없다"는 지난달 15일 한명숙 대표의 발언이 변명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이유다. 실제 민주당은 발효일이 확정된 이후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의 청계광장 단식농성 등에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

국가 경제는 물론, 사회상까지 바꿀 새로운 체제에 대해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정당이 어떻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까. 정부가 움찔할 까닭이 어디에 있을까. "(민주통합당이) 한미 FTA를 추진했던 참여정부의 원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잘못을 인정하고 고쳐나가는 것이 국민의 신뢰를 얻는 첩경"이라는 정동영 의원의 주장은, 그래서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는 당 내에서 아무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이런 상황은 여론조사 결과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을 이기지 못해 무너지던 새누리당은 최근 지지율에서 민주통합당을 역전했다. 12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발표한 3월 둘째 주 주간 정례조사를 보면 새누리당 지지율은 한 주 만에 4.0%포인트 오른 40.3%를 기록해 32.7%에 그친 민주통합당을 앞질렀다. 새누리당 지지율이 오르는 추세인 반면, 민주통합당은 가라앉고 있다.

단순히 공천 잡음만으로 이 변화가 설명될까. 한미 FTA에 대한 대처 과정에서 민주통합당이 보인 모호한 태도는 새누리당의 대체세력으로서 자리잡는 것을 결정적으로 방해했고, 그 실망감이 공천 잡음 과정에서 폭발했다는 설명이 유력하다.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의 정체성이 결정적으로 뒤섞이는 부분이 바로 한미 FTA다.

민주통합당은 새누리당은 물론, 노무현도 넘지 못했다. 총선을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발효된 한미 FTA가 향후 정치 지형에 남긴 미묘한 균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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