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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들겨 맞으며 버틴 8년, 얻은 건 '반쪽짜리' 판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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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두들겨 맞으며 버틴 8년, 얻은 건 '반쪽짜리' 판결문"

[현장편지] 현대차 대법원 판결에 대한 다섯 가지 생각

2월 23일 오후 2시30분 대법원 1호 법정. "상고를 기각한다"는 대법관의 한 마디가 흘러나오자, 정적에 휩싸여있던 법정에 작은 탄식이 터졌습니다. 법정 밖으로 쏟아져 나온 조합원들은 쏟아지는 카메라 세례도 잊은 채 서로를 얼싸 안았습니다.

울산에서 올라온 비정규직 노동자는 2010년 11월 15일부터 대법원 판결에 따라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며 25일간 현대차 울산공장 점거농성을 벌였던 그 시간이 떠오른다며 눈물을 쏟았습니다.

'상고를 기각한다'는 이 한마디를 듣기까지, 2004년 12월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 이후 8년이라는 고통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목을 매고, 몸에 기름을 부어야 했습니다. 용역깡패에게 두들겨 맞아 공장에서 끌려나오고, 감옥에 갇혀야 했습니다. 해고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공장을 떠나가는 동료들을 울며 보냈습니다.

'상고를 기각한다'는 한 마디를 듣기 위한 시간 8년

2년 이상 근무한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는 불법파견이므로 정규직이라는 대법원 판결은 최병승 조합원 한 명에 대한 판결이지만, 그 영향력과 파장은 적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당장 현대차에서 일하는 8천여 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압력이 거세질 것입니다.

현대차 1940명, 기아차 500명, 쌍용차, 금호타이어, 포스코, STX조선 등 현재 진행 중인 3천여 명의 근로자 지위확인소송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이번 판결이 100만 명에 달하는 제조업 사내하청 노동자들, 85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정규직화에 대한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역사적인 순간을 보기 위해 다섯 시간을 달려와 한 시간 남짓 있다가 다시 울산으로 내려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대법원 판결을 생각하다가 몇 가지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현대차가 어떻게 나올까? 사내하청 8천명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할까? 빠져나갈 구멍은 없을까? 전자, 조선, 철강 등 다른 제조업 사용자들도 긴장하고 있을까? 노동운동은 무엇을 해야 할까?

흥분을 가라앉히고 대법원 판결에 대해 차분하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프레시안(김봉규)

대법원 판결을 빠져나갈 구멍 숭숭

첫째, 대법원은 2년 미만 근무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정규직이 아니라고 판결했습니다. 법원은 현대차 하청업체는 사업주로서의 독자성이 없고, 노무대행기관에 불과하기 때문에 원청이 처음부터 근로계약을 맺었다는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최병승과 함께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낸 안기호 전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위원장은 정규직이 아니라고 한 것입니다. 1년 6개월 일하다 그만두고, 다시 들어와 1년을 일해도 정규직이 될 수 없습니다.

지금 현대차는 단기계약직, 한시하청, 아르바이트라는 이름으로 3개월에서 6개월짜리 계약직 노동자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2년 이상 근무를 피하기 위해 이 공장, 저 공장을 돌리며 떠돌이 노동을 시키고 있습니다. 오죽했으면,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한시하청을 상시근무자로 전환해달라고 요구할 지경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내하청업체 사장들을 '바지사장'이라고 부릅니다. 대부분 전직 현대차 관리자들인 '바지사장'들은 현대차 '협력지원실'의 지시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지난해 9월 19일 금속노조가 입수해 발표한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관리자의 수첩에 적힌 생생하고 충격적인 내용은 이를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또 지난 해 9월 15일 충남지방노동위원회는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부당징계 구제신청 사건에서 "사내하청업체는 경제적으로나 사업경영상 현대차에 종속돼 사업주로서의 독립성과 독자성이 취약하다"며 사실상 '묵시적 근로계약'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법원 판결을 '반쪽짜리 판결'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차는 단기계약직, 아르바이트, 2~3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사용하고 2년 내에 내보내면 대법원 판결을 유유히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오늘도 계속되는 불법파견 흔적 지우기

둘째, 현대차는 지금 이 시간에도 '불법파견 흔적 지우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도급이 아니라 근로자파견이라는 증거로 현대차의 생산공정이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자동흐름방식으로 진행되고, 현대차의 시설과 부품을 사용하며, 현대차가 사내하청 노동자의 작업 배치와 변경, 노동 및 휴게시간을 결정하기 때문이라고 판결했습니다.

지금까지 현대차 정규직은 왼쪽 바퀴를 끼우고, 비정규직은 오른쪽 바퀴를 끼웠습니다. 현대차 관리자들이 모든 작업 지시서를 작성했습니다. 그러나 법원 판결 이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혼재작업을 구분하고, 현대차가 아니라 하처업체가 인사, 노무, 안전보건을 담당하고 있는 것처럼 문서를 만들었습니다.

노동부의 묵인과 방조 아래 진행된 대대적인 불법파견 은폐로 이후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일부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지난 12월 16일 부산 지방노동위원회는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1, 3공장만 불법파견이라는 '황당한' 판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 현대차는 직접 생산 공정과 지원 부서를 구분하고,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간주된다'는 구 파견법의 '고용의제' 조항을 적용받는 2005년 7월 1일 이전 입사자와 이후 입사자를 나눠 대법원 판결의 대상을 최소화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셋째, 자동차를 제외한 조선, 철강, 화학, 전자공장의 불법파견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노동부의 300인 이상 기업 조사 결과에 따르면 41.2%의 사업장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를 사용하고 있으며, 조선(61.3%), 철강(43.7%), 화학(28.8%), 기계금속(19.7%) 등의 사내하청 비율은 자동차(16.3%)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2011 금속일자리 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조선소 6개사의 사내하청 비율은 모두 50%를 넘어 모든 업종에서 가장 최악이었고, 대우조선,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은 70% 안팎이었으며, STX조선은 무려 81.58%였습니다.

조선소의 생산직 노동자 10명 중 7~8명이 사내하청이고, 정규직은 2~3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포스코(52.26%), 현대제철(34.12%), 현대하이스코(68.50%) 등 철강회사의 사내하청 비율도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2008년 대법원은 현대중공업의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부당노동행위의 원청 사용자성은 인정하였지만,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현대하이스코, STX조선의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이 진행되고 있지만, 사용자들이 불법파견의 증거들을 은폐하고, 합법도급으로 위장할 것이 뻔한 상황입니다.

대법원 판결의 무풍지대?

넷째, 대법원 불법파견 판결의 무풍지대는 가장 야만적인 '비정규직 공장'입니다.

기아차 모닝공장, 현대모비스 8개 공장, 현대위아 3개 공장,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STX중공업 등은 정규직은 관리자들뿐이고, 모든 생산라인은 사내하청 노동자로 채워놓은 '정규직 0명 공장'입니다.

대법원의 불법파견 정규직 판결은 같은 공장 안에서 같이 일하는 정규직과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생산과정을 살펴보고 내린 판결입니다. 기아차 모닝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비교할 정규직이 없습니다.

따라서 나쁜 사용자들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뒤섞여 일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불법파견을 피해가고, 사용자로서의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비정규직 공장'을 점점 더 확대하려고 할 것입니다.

다섯째, 가장 가슴 아픈 것은 보수적인 법원보다 못한 노동운동의 모습입니다.

대법원은 당연히 정규직으로 채용했어야 할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워 착취를 일삼아 온 재벌들의 관행을 근본적으로 막지는 못했지만, 불법 파견에 대해서는 일정하게 제동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왼쪽 문짝은 정규직이 달고 오른쪽 문짝은 비정규직이 조립하는 공장에서 명백하게 자행되고 있는 불법을 바로잡지 못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규에 연대하지 않았습니다.

현대차노조는 10년 전 회사와 생산 공정에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16.9% 사용할 수 있도록 합의해 비정규직 양산과 불법 파견의 물꼬를 열어줬습니다. 현대차노조는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는 1사1조직 규정 개정을 세 차례나 부결시켰습니다.

2010년 7월 22일 대법원 판결 이후 11월 15일부터 시작된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25일간의 점거 파업에 대해 현대차지부는 금속노조 대의원대회 결정사항인 연대파업을 거부했습니다.

경제위기, 신차 생산, 자동화, 정규직 전환배치를 이유로 같이 일하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공장 밖으로 쫓겨나갈 때 정규직노조 간부들은 이를 외면하거나 심지어 회사와 인원 조정에 합의해 비정규직을 고용의 방패막이로 삼았습니다.

2010년 7월 22일 제조업 사내하청은 정규직이라는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금속노조는 2010~2011년 중앙교섭에서 '불법파견 정규직화' 요구를 관철시키지 못했습니다. 단체교섭과 투쟁을 통해 최저기준인 법보다 나은 단체협약을 체결해야 할 노동운동이 엄연한 불법조차 바로잡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보낸 8년이었습니다.

법보다 못한 노동운동

사실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파견근로자보호법에 따라 불법인 현대차 사내하청업체를 폐쇄하면 됩니다. 공장이 멈추겠지요. 8년 동안 파견법을 위반한 정몽구 회장을 구속 수사하면 됩니다. 그러나 재벌의 친구인 이명박 정부에게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조금 전 기아차 한 공장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기아차에서도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천막농성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였습니다. 고요하던 현대차 울산공장도 들썩이고 있습니다.

법원에 호소하며 7년을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현대차 8천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일어서야 합니다. 기아차 노동자들도, 한국지엠 비정규직들도 일어서야 합니다.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힘을 모아야 합니다.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내걸고 당선된 현대차노조와 함께 싸워야 합니다.

재벌의 탐욕을 위해 노동자들을 짓밟았던 이명박 정권 치하 혹독한 한파가 물러가고, 서서히 노동의 봄날이 오고 있습니다. 빼앗긴 공장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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