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소원 심판 청구서> 하나가 2009년 6월 2일 헌법재판소에 제출되었다. 청구인은 대한의사협회 회장인 경만호 씨 외 6명이다. 이들의 청구 취지는 현행 국민건강보험법 제33조 제2항, 제62조 제4항과 제5항, 제63조, 제64조, 제65조 제3항이 헌법에 위반되므로 위헌 결정을 구한다는 것이다. 이들 청구인들은 국민건강보험법의 상기 조항들 때문에 헌법 제11조의 평등권과 제23조의 재산권 보장을 침해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위의 국민건강보험법 조항들 때문에 건강보험료 부담의 평등 위반이 가속화되어 청구인들과 같은 '직장가입자'들의 건강보험료 부담을 가중시켜 궁극적으로 이들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헌법소원을 청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은 두 그룹의 가입자, 즉 임금소득자들인 직장가입자들과 비공식 부문의 지역가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직장가입자의 건강보험료는 근로소득인 '보수월액'에다 매년 결정되는 건강보험료율을 곱하여 부과되는 데 비해, 지역가입자의 건강보험료는 비공식 부문에 종사하는 영세자영업자들로 주로 구성된 지역가입자의 특성 때문에 정확한 소득을 파악하기 어려우므로 정부가 개발한 '추정소득' 방식을 적용하여 건강보험료를 부과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추정소득 방식은 일본이나 대만 등 다른 나라에 비해 탁월하게 우수한 것이다.
헌번소원 청구인들은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 간의 바로 이러한 '건강보험료 부과 방법'의 차이를 문제 삼아 자신들의 "평등권과 재산권"을 침해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즉, 직장가입자들인 자신들이 지역가입자들에 비해 부당하게 더 많은 건강보험료를 냄으로써 손해를 보고 있으므로 현행 국민건강보험의 통합재정체계를 직장가입자 재정체계와 지역가입자 재정체계로 분리해 달라는 것이다. 이는 한마디로 '국민건강보험 쪼개기' 시도이다.
▲ 이명박 대통령(가운데)과 경만호 대한의사협회장(오른쪽 두 번째)이 '서비스산업선진화를 위한 민관합동회의'에 참석한 모습. 경만호 회장은 현행 국민건강보험법이 평등권과 재산권을 침해했다며 위헌 소송을 걸었다. ⓒ연합뉴스 |
한국이 의료보험조합 수백 개를 '하나로 통합'한 이유
우리나라는 1970년 이래로 30년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한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국가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들 중 우리나라만큼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한 나라가 어디 있던가! 이제 우리는 아버지 세대와 할아버지 세대가 이룩한 찬란한 성과를 딛고 더 나은 세상, 시민권의 마지막 단계인 사회권의 완전한 쟁취, 즉 경제사회적 민주주의를 달성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역동적 복지국가가 그것이다.
우리가 이룩한 산업화와 민주화 외에, 우리에게는 우리 국민이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세계적인 성과물이 하나 더 있다. 공적 의료보장제도인 국민건강보험이 그것이다. 미국의 <식코>형 시장주의 의료제도가 초래하는 비효율과 의료이용의 불평등이라는 처참한 모습이 국내에 알려진 이후,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우리 국민의 신뢰와 긍지는 더욱 분명해졌다. 특히, 참여정부 후반기부터 시행된 <암부터 무상의료> 정책으로 인해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이 한층 높아지면서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더 깊어졌다.
1977년 7월 법정의료보험이 처음 도입되었을 당시, 우리 국민의 약 8%만이 의료보험의 혜택을 보았을 뿐이었다. 점차 적용 인구가 확대되다가 1989년 전국민의료보험이 실시되었고, 마침내 12년 만에 우리 국민 모두는 의료보험증을 손에 쥐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의료보험의 혜택이 미미했다는 것인데, 즉 의료보험의 보장성 수준이 낮아 서민들에게는 여전히 병원 문턱이 높았다. 이는 수백 개의 의료보험조합 별로 보험재정이 독립적으로 관리 운영되던 소위 '조합주의 의료보험'제도의 구조적 한계 때문이었다. 우리는 이 한계를 넘어야 했다.
그래서 의료보험 통합을 위한 시민운동이 시작되었고, 국민적 지지를 얻게 되었다. 당시 가장 가난한 의료보험조합을 기준으로 의료보험의 법정 보장 수준이 하향 평준화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백 개의 의료보험조합을 '하나로 통합'하여 지역과 직장의 차이를 넘어 전체 국민을 사회연대성의 원리에 따라 하나의 틀 속으로 묶어내야 했다. 이를 통해 조합 간의 격차를 없애고, 의료보험의 보장성 수준을 상향 평준화하자는 것이었다. 1990년대 후반, 당시 의료보험 통합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엎고 여야 정치권이 의료보험 통합에 합의하였으므로 김대중 정부 초반기에 <국민건강보험법>을 제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국민건강보험제도는 크게 발전하여 40%대 후반에 머물던 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을 60% 중반으로까지 높였으며, 소득계층 간 의료이용의 격차도 현저하게 줄였다. 당연히 건강보험료 부담의 공평성도 크게 높아졌다. 2000년대 초반에는 전체 국민의 50%가 직장가입자였고, 나머지 50%는 지역가입자였으나, 현재는 의사나 변호사 등의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이 전부 직장가입자로 편입되었고, 그 결과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비율이 67% 대 33%로 바뀌었다.
지역가입자의 소득파악률도 2000년대 초반의 30-40% 수준에서 지금은 약 70%로 높아졌는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과 같은 것이다. 신용카드 및 현금영수증 제도의 광범위한 보급과 국세청의 소득파악 노력이 더해져 얻어진 결과이다. 현재 직장가입자의 소득파악률이 약 90%이므로, 지역가입자와는 약 20% 포인트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소득자 중 자영업자의 비율이 주요 선진국의 10~15%보다 2~3배가량 높은 30%라는 점에 비춰보면, 즉 이렇게 비공식 부문의 크기가 큰 우리나라에서 자영업 소득파악률이 이렇게 높아졌다는 것은 결코 과소평가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청구인들은 이를 문제 삼아 국민건강보험을 쪼개자고 한다.
"사회적 약자보다 건보료 더 내서 부당?…건보 보장성 하향 평준화될 것"
한 가지 더 짚고 싶은 것은, 헌법소원 청구인들이 직장가입자인 자신들에 비해 건강보험료를 부당하게 적게 내고 있다고 주장하는 지역가입자들은 현재 대부분이 영세자영업자들이거나 은퇴한 노인들, 농민들, 비공식 영역의 도시 영세민이다. 이들 대부분이 사회적 약자들이다. 지역가입자에는 노인인구와 가난한 분들의 비율이 매우 높은 관계로 의료이용률은 높은 데 비해, 건강보험료를 낼 능력은 부족하다. 결국,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쪼개서 이 분들만으로 별도의 지역가입자 재정체계를 꾸린다면, 그 결과는 안 봐도 비디오다. 보험재정은 늘 부족하고, 결국 지역가입자 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은 현저하게 낮아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도와 시기의 차이는 있겠지만, 직장가입자 건강보험도 결국은 지역가입자 건강보험을 따라 보장성 수준을 낮추게 될 것이다. 평등의 원칙을 위배하지 않기 위해서다. 우리는 1990년대의 조합주의 의료보험 시절에 이미 이러한 상황을 경험했었다. 장차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은 지금의 60% 수준보다 훨씬 더 낮아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높아진 의료비 불안은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재정 상황이 나빠진 국민건강보험은 보장 수준을 낮추고, 보험적용 항목인 급여의 범위를 축소할 것이며, 민간의료보험이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을 지배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의료민영화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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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건보 이사장 "건보 쪼개서 의료산업 발전시키자"
얼마 전에 단행된 김종대 전 보건복지부 기획관리실장의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임명은 "국민건강보험을 쪼개려는 현 정부와 보수진영의 꼼수"라는 비판이 시민사회로부터 제기되고 있다. 이는 결코 근거 없는 비판이 아니다. 김종대 신임 이사장은 그가 과거 조합주의 의료보험제도의 철저한 옹호자라는 점 이외에도, 2009년 대한의사협회 경만호 회장 외 6명이 청구한 헌법소원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김종대 이사장은 2009년 대한의사협회 경만호 회장의 출판기념회에서 초청강연을 하면서, 헌법소원과 관련하여 "헌법재판소가 정신이상자 기관이 아닌 한, 100% 위헌 판결을 내릴 것이다"라고 단언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국민건강보험이 쪼개져야 의료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가칭) '건강보험 자치권 회복 운동본부'를 만들어서 헌법재판소의 조속한 판결을 견인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하였다.
그리고 당시 김종대 이사장의 초청강연 자료의 내용과 대한의사협회 경만호 회장 등이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위헌심판 청구서는 세부 문구까지 똑같다. 이렇게 국민건강보험을 쪼개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하면서, 위헌소송까지 배후에서 부추기던 사람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이사장으로 임명된 것이다. 당연히 임명권자는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국민건강의 보루인 국민건강보험이 이명박 대통령과 김종대 이사장에 의해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셈이다.
이에 대한 시민사회의 판단은 이렇다. "이명박 정부와 의료민영화 추종세력들은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통합 건강보험을 쪼개려고 시도해 왔다. 그러나 의료민영화에 대한 국민적 우려와 반발이 계속되자,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통합 건강보험인 국민건강보험을 해체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김종대 전 실장의 이사장 임명은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 이후, 통합 건강보험을 신속하게 해체하기 위한 사전 포석인 셈이다."
더불어, 이명박 정부가 강행한 한미 FTA의 발효는 인천 송도 등 경제특구에 설립될 외국인 영리병원의 영속화와 함께 이들 주식회사 영리병원과 짝지을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함과 아울러, 장차 '쪼개지고 약화된' 국민건강보험의 보장 공간을 사실상 대체하고 들어온 실손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를 되돌릴 수 없게 할 것이다. 우리는 장차 한국형 <식코>의 세상을 목격할 것인가, 아니면 역동적 복지국가를 건설하여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할 것인가, 우리 국민이 선택해야 한다. 이제 국민건강보험의 획기적 강화와 역동적 복지국가 건설은 우리 모두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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