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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남편의 마지막 유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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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남편의 마지막 유언은…"

[반도체에 가려진 그림자 노동·②] 김진기

"우리는 솔직히 말해서 인간 실험동물이었어요. 그들은 처음부터 이 화학약품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우리를 신경 쓰지 않은 거예요. 그들은 오직 돈 버는 것에만 신경을 썼어요."

IBM 반도체 노동자 케이스 버락은 말했다. 그는 IBM에서 일한 대가로 고환암에 걸렸다. 20년 후, 반도체 주요 수출국인 한국에 수많은 케이스 버락이 생겨났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노동자들은 암과 같은 희귀질환에 걸렸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 제보된 반도체 직업병 피해 수는 150명에 다다른다. <기고자>


반도체에 가려진 그림자 노동
"삼섬 반도체에서 일하다 '앉은뱅이 병'에 걸렸어요"

"산재 신청하란 말이 유언이 될 줄은…"

"죽기 3일 전에 제정신이 돌아 온 거예요. 자기가 중환자실에 있는 걸 안 거예요. 울더라고요. 우느라고 말도 못 하고, 내 손만 붙들고. 내가 '자기야, 끝까지 버틸 거지?' 그러니까 끝까지 버틴대, 고개를 끄덕끄덕 하면서. 그러면서 산재(신청)를 하라고. 마지막 말이었지, 그게."

김진기

73년생, 97년 하이닉스 매그나칩반도체(LG반도체-하이닉스-매그나칩으로 소속이 바뀜) 입사, 14년간 클린룸 임플란트 공정에서 근무, 2010년 백혈병 확진. 2011년 사망.

▲ 김진기 씨. ⓒ임진숙
"늘 가족 챙기던 사람이었어요. 외식을 하려고 '자기 뭐 먹고 싶어?' 물으면, '내 얘기는 물어보지도 마라' 그래요. '니가 먹고 싶은 거, 니가 가고 싶은 데로 가면 된다. 가족한테 내가 맞춰야지. 아들하고 부인이 최곤데.' 우리 남편이 그랬어요. 그래서 마음이 더 아파요. 자기 하고 싶은 거 조금이라도 하고 살았으면….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안 먹었으니까. 오로지 회사, 집, 이것 밖에 몰랐어요."

서른 후반의 남자가 있었다. 그는 아팠다. 백혈병이었다. 그는 방사선에 노출되면 백혈병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14년간 방사선에 노출되는 일을 했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백혈병 진단이 내려진 후에야 그는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를 깨달았다.

그럼에도 회사를 그만두지 못했다. 큰 수술을 받으려면 돈이 필요했다. 병이 나아도 한동안 직장을 구하지 못할 게였다. 그의 아들은 아직 어렸다. 그는 통원치료를 받으며 회사에 나갔다. 그러나 결국 병원 중환자실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다.

자신의 죽음을 인정한 순간, 그는 가족들에게 당부했다. 산재신청을 하라고. 자신의 병은 직업병이니, 직업병 보상을 받으라고. 그의 아내, 임진숙씨는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알려온 <반올림>에 연락을 했다. 이번 글은 임진숙 씨의 구술로 진행된다.

끝까지 버틸 거지?

"마지막에는 호흡이 정지됐어요, 5분 동안. 그때 심장을 공격받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중환자실로 옮기게 된 거죠. 오후에 깨어났는데, 사람을 못 알아보는 거예요. 뭐지? 지적장애 애들 있잖아요. 그런 행동을 하는 거예요. 뇌에 손상을 입은 거 같다고. 피부도 손상을 입어서 막 허물이 벗겨지고. 그게 표현하자면, 생선이나 고기가 썩어갈 때 껍질이 흘러내리잖아요. 그렇게 된 거예요. 얼굴이 다 벗겨져가지고 피가 막 흘러내리고.

남편이 살 거란 희망을 버리지 않았는데 그걸 본 순간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애기를 올라오라고 했죠. '빨리 데리고 올라 온나. 얼굴이라도 한번 보여 줘야 겠다' 애기를 불러서 면회를 시켰어요. 그런데 애기한테 안 보여줬어야 되는데…, 나는 또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아빠를 보여준 거예요. 애기가 충격이 되게 컸나 봐. 소리를 막 지르는 거예요. 그래서 애기를 얼른 병실 밖에 데려다 놨어요.

다시 병실로 들어가서 남편한테 '금방 들어온 애기 누구야?' 하고 물으니까, 자기 친구래. '자기야, 우리 아들이잖아' 그러니까, '몰라' 그러는 거야. 기가 막히는 거예요. 사랑하는 자식은 알아볼 줄 알았거든요.

내가 또 '나는 누구야?' 그러니까 안다는 거예요. '알아, 빨간 잠바' 이러는 거예요. 그런데도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운 거예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거 같지만 그 모습마저 예쁜 거예요. 그런 상태로라도 집에 데리고 오고 싶으니까. 평생 이렇게 살아도 같이 있고 싶으니까. 내가 '끝까지 버틸 거지?' 물으니까, 뇌에 이상이 생겼는데도 그 말을 잊지 않았더라고요.

6인실에서 정신이 온전할 때 항상 둘이 한 대화가 그거였어요. '끝까지 버틸 거야? 안 버틸 거야?' 하면 '끝까지 버텨야지, 끝까지 버텨서 살아서 건강하게 예전으로 돌아갈 거다' 그랬어요. 뇌에 이상이 생겨서 나도 못 알아보고 자식도 못 알아보는 상황인데도 그 말은 기억하더라고. '버틸 거야? 안 버틸 거야?' 하니까. '버틸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거야' 그러더라고요. 그 말은 안 잊어버렸더라고요."

김진기 씨는 올해 5월 숨졌다.

"장례 치르고 일주일 동안은 완전 죽은 사람 같았어요. 아무것도 안 먹었어요. 애기가 없었으면, 아마 나는 어떻게 됐을 거예요. 애기가 이상한 거예요. 울고불고. 그러면서 말은 안 하고. 아빠도 없고 엄마도 병원 간다고 없고, 아이가 마음에 상처를 입었나 봐요. 내가 이러고 있으면, 우리 애기조차 없어져버리겠구나. 남편이 남겨준 보물이잖아요. 남편이 만날 '보물, 보물' 그랬거든요. 안 되겠다. 일어났어요. 일어나서 친정엄마한테 그랬어요. '엄마, 장 보러가자. 마트 가자. 오렌지가 너무 먹고 싶다.'"

어떤 곳인지 몰랐어요

임진숙 씨는 산재신청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남편의 마지막 당부였다. 생전 남편은 <반올림>에 연락을 해두었다. 반올림을 만난 후에야, 그녀는 남편이 회사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알았다. 남편은 방사선이 방출되는 설비를 보수하고, 포스핀과 같은 유독가스를 다루었다.

결혼 전 그녀는 '반도체 공장 엔지니어'라는 남편의 직업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다.
"거기가 어떤 곳인지 몰랐어요. 저는 세상에서 반도체 공장이 제일 깨끗하고 좋은 데인지 알았어요."
남편을 잃음으로 그녀는 반도체 클린룸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반도체 노동자들은 직업병을 인정받지 못한다고 했다. 이미 산재신청을 해 결과를 통보받은 18명의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직업병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았다. 근로복지공단의 역학조사는 이들의 작업장에 병을 일으킬 위험이 없다는 결론을 냈다. 그것은 몹시 이상하고 의심스러운 일이었다. 임진숙씨는 말했다.
"예전에 내가 다니던 회사도 조사를 나온다고 하면, 하다못해 손님이 온다 해도 지저분한 것은 치웠어요."

그 조사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들이 이상했다. 그녀는 남편의 죽음을 두고, 이상하게 돌아가는 세상을 보았다.

"이런 고통이 누굴 정해 놓고 오는 게 아니잖아요. 남편 회사뿐 아니라, 반도체는 여러 회사가 많잖아요. 반도체 회사에 다니면 누구한테나 올 수 있는 병이거든요. 그렇다고 사람들이 병 무섭다고, 다 회사를 그만둘 수는 없잖아요. 생계 수단이고 먹고 살아야 되니까. 그럼 대비책을 일시키는 회사에서 마련 해놔야죠. 왜 아무도 안 하려고 하지요?"

ⓒ양희석

산업재해가 뭔지 모르는 사람도 많더라고요

9월, 그녀는 남편 김진기 씨의 산재신청을 했다. 산재신청을 위해 이곳저곳 다니다 보면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갈 때가 많다. 어느 날은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울었다고 했다. 하루아침에 달라진 자신의 인생이 서러웠다는 그녀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말했다.
"산업재해가 뭔지 모르는 사람도 많더라고요."

그 사람들을 붙잡고 설명한다. 직업병 인정이 왜 필요한지, 예방과 보상이 왜 필요한지, 은폐된 작업환경이 어떻게 한 생명을 앗아가고 한 가정을 망가뜨리는지. 임진숙 씨는 서러워 울지만, 세상에 나와 변해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살면서 남을 해하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않고 살았거든요. 물론 어려운 사람을 뒤돌아보지도 않았어요. 그냥 내 가족만 위하고, 내가 남한테 피해 안 주고 살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큰일을 겪으니까, 나보다 더 없는 사람을 보살펴야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백혈병, 소아암 걸린 사람들 후원하는 거요. 한 달에 1~2만 원 내는 건데, 커피값이잖아요. 내가 먹고 싶은 빵 하나 안 사먹고 커피 한 잔 안 사먹으면 충분히 남 도울 수 있는 돈인 거예요. 전에는 그런 생각 못했어요. 요즘은 애기 데리고 외출하면 보온병에 물 담아가고 집에 있는 티백 가져가고. 외출할 때 다 챙겨 나가는 거예요. 짐이 많아졌어요."

세상 보는 눈이 달라진 자신이 기특하기도 서럽기도 한 그녀는 오늘도 산재신청을 위해 분주하다. 틈이 나면 남편이 있는 납골당을 찾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일도 중요하다. 남편의 보물인 아이는 여전히 말을 하지 않는다. 그녀는 산재신청이 하루 빨리 되어 예전 같은 평온을 찾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곧 말 하나를 덧붙였다.
"남편이 없으니, 예전 같이는 될 수 없겠죠?"

매그나칩 엔지니어 김진기 씨가 일한 임플란트 공정은 방사선은 물론, 발암물질인 비소와 맹독성 가스인 포스핀 등이 사용되는 유해위험 공정이다. 이곳에서 그는 유지보수 업무를 14년간 해왔다. 그는 일의 특성상 매일 10차례 이상 설비 안을 출입했다. 그래서 설비의 반송장치 쪽은 늘 인터락(잠금장치)을 해제해 두었다. 그가 보수를 하러 들어간 설비 반송장치 공간은 고전압 방사선 노출 공간과 단지 파티션으로만 분리되어 있었다.

2010년, 회사에서 내부적으로 실시한 방사선 측정이 있었다. 김진기 씨는 자신이 사용하는 설비에 방사선 측정 검사기계를 2개월간 부착했다. 검사결과 약 30mSv의 방사선이 측정되었다. 이는 방사선작업종사자의 노출기준의 9배에 해당하며, 일반인 노출기준의 180배에 해당하는 고농도의 노출이다.

매그나칩 반도체는 2004년 하이닉스 반도체의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부문'이 분리·독립되어 만들어진 회사다. 사업장은 청주와 구미에 있으며, 연간 약 7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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