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IMF 체제는 과도한 기업부채 구조조정과 동시에 자영업 부문 거품을 낳았다. 그 여파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자영업자들이 흔들리는 셈이다. 자영업마저 쓰러진다면? 한국 가계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자영업의 위기는 한국 경제가 처한 심각한 위기다. <편집자>
- 위기의 자영업 ☞<1> '레드오션' 자영업 "물러서면 벼랑 끝, 눈 앞엔 핏빛 경쟁" ☞<2> "5년 뒤, 자영업 강제 구조조정 온다" ☞<3> IMF로 시작된 자영업 위기, 해법은? |
▲18일 음식업주들이 서울 잠실 주경기장에서 신용카드 수수료율 인하를 촉구하는 궐기대회를 가졌다. ⓒ프레시안(최형락) |
18일 오전 11시. 서울 송파구 잠실 주경기장으로 전국 곳곳의 음식점 업주 7만여 명이 모여들었다. '사장님'들이 데모에 나선 셈이다. 최근 논란이 된 신용카드 수수료율 인하를 요구하는 집단시위였다. 이들은 이미 지난 2004년에도 여의도 한강 고수부지에서 세제개편을 요구하는 이른바 '솥단지 시위'를 벌인 바 있다.
한국음식업중앙회 주최로 열린 이날 대회에서 업주들은 하나같이 "영세한 자영업자에게 대기업보다 높은 수수료율을 물리는 재벌카드사를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구광역시 달서구에서 갈빗집을 운영하는 박요상(41) 씨는 "장사를 시작한 지난 4년 간 현상유지를 하기도 버거웠다"며 "얼마 안 되는 돈 같지만 수수료율이라도 낮춰졌으면 하는 바람에 서울까지 왔다"고 강조했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일반음식점의 카드수수료율 평균은 약 2.7%로, 업종별 최고 수준이다. 연매출이 1억 원인 음식점은 카드수수료로만 270만 원을 부담하는 셈이다. 백화점은 2.05%, 금융보험업이 1.75%며, 주유소·종합병원·항공사 등은 1.50%다. 주유소 업주들마저 이날(18일), 오는 20일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카드수수료 인하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그런데 카드수수료율만이 문제가 아니다. '자영업'이라는 산업 자체가 경쟁력을 잃어가는 게 더 문제다. 카드수수료율 논란은 위기에 처한 자영업이 안은 여러 문제 중 하나일 뿐이다. 더 높아지는 비용, 강해지는 경쟁,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임대료는 자영업자의 독립을 막는다.
식당은 고물가·경기침체에 '죽을 맛'
▲지난해 자영업자의 평균 빚 수준은 가처분소득의 두 배에 달했다. 퇴직자가 자영업자가 되는 순간, 빚으로 사업을 시작하지만 소득수준은 더 떨어짐을 알 수 있다. (단위: 만원) ⓒ프레시안 |
자영업자들은 경제위기가 올 경우 이중고를 겪는다. 특히 한국처럼 위기에도 경제성장률이 견실히 버티면, 즉 물가가 상승세를 이어가면 '원재료 가격 상승-소비 침체'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중식당을 운영하는 점주들의 말을 종합하면, 최근 들어 지속된 고물가로 인해 2년 전에는 1만6000원 수준이던 식용유 한 통 가격이 최근에는 3만 원가량으로 올랐다. 밀가루 한 포대 가격은 1만2000원에서 2만1000원으로 뛰었고, 탕수육용 돼지고기 600g은 4000원에서 1만 원으로 두 배 이상 올랐다.
자영업자들의 열악한 호주머니 사정은 통계로도 드러난다. 지난해 통계청과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이 공동 조사해 발표한 '가계금융조사'를 보면, 자영업자의 평균 가처분소득은 3457만 원에 머문 반면, 평균 부채는 6896만 원으로 가처분소득의 두 배에 달했다. 임금노동자(1.1배)에 비해 가계부 사정이 극히 나빠, 채무상환이 더 어렵다는 뜻이다.
지난 12일 경기개발연구원이 발표한 '경기도 자영업의 실상과 정책과제' 보고서를 보면, 이 지역 자영업자 142만 명의 42%가 월소득이 150만 원에도 못 미쳤다. 전체 평균은 192만 원으로, 한국의 임금노동자 월평균 임금(284만 원)에 크게 미달했다.
가속 붙은 경쟁, 피할 수 없는 월세
사정이 이런데도 자영업 경쟁은 지속적으로 심해지고 있다. 퇴직자가 기댈 마지막 보루가 자영업인데다, 최근 들어서는 취업을 포기한 청년 세대도 창업에 나서는 추세가 강해졌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통계청 발표를 보면, 지난달 취업자 증가 수는 26만 명으로 8월(49만 명)에 비해 큰 폭으로 줄어들었으나, 자영업자는 8만8000명 증가했다. 감소세를 보이던 자영업자 수는 최근 두달 연속 늘어났다.
서울 마포구에서 중식당을 운영하는 정모 씨(54)는 "이곳에서 중식당을 운영한지 8년째인데, 당시보다 우리 상권에 중식당 수가 5개 더 늘어났다"며 "지역이 개발되는 만큼 경쟁도 치열해져서, 손님 수는 더 줄어들었다"고 답답해했다.
그는 "상암동이 개발 중인데, 우리 지역까지 개발되면 차라리 보상을 받고 나가고 싶다"며 "차라리 IMF 때가 더 나았다"고 혀를 찼다.
인근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박모 씨(32)는 "프랜차이즈는 대기업만 돈 벌고, 커피숍은 마진이 안 남고, 식당은 경쟁이 치열하다"며 "특별한 경쟁력을 못 갖춘 전국의 자영업자 대부분은 남길 마진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쟁 부담을 더 높이는 주요 요인이 월세다. 임대료 부담이 워낙 큰 탓에, 경쟁력이 떨어지는 업소는 곧바로 휴·폐업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마포구 중식당의 정 씨는 "죽은 상권에 자리한 20여 평짜리 가게 임대료가 월 200만 원"이라며 "재계약 할 때마다 계속 뛴다. 내년 8월이 재계약인데, 벌써부터 두렵다"고 말했다.
정 씨의 경우 하루 평균 70~80만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린다. 한 달 평균 2100만 원, 연평균 2억5200만 원이 매출이다. 이 중 임대료가 2400만 원, 종업원 임금이 1억2480만 원, 카드수수료가 680만 원이다. 원재료비와 유류비로도 상당액이 빠져나간다. 카드수수료와 각종 공과금, 원재료비와 유류비 등을 제외하면 임대료 부담이 가장 크다.
▲최근 3년간 신규 등록한 외식업체와 휴·폐업신고한 외식업체. 새로 문을 여는 곳도, 문을 닫는 곳도 늘어나고 있다. ⓒ음식업중앙회 제공 |
국민 30%는 '탈락 위기'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B부동산 관계자는 "전국에서 홍대 인근 상권이 가장 좋다지만, 잘 쳐줘봐야 30% 정도가 돈 잘 벌고, 50%가 현상유지를 겨우 하는 정도라고 보면 된다"며 "임대료는 계속 오르고, 경쟁은 점차 더 치열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 가게 한 곳이 새로 생길 때마다 어림잡아 여섯 곳은 망한다. 음식업중앙회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신규업소는 5만6192개였던 반면 휴·폐업한 곳은 5.3배 많은 29만8758개에 달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15만3787개 식당이 문을 닫아, 새로 생겨난 업소(2만8098개)보다 5.4배 많았다.
음식업중앙회는 "전체업소의 75.1%가 30평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으로,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며 "생계형 사업으로 영위하는 곳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배려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자영업 경쟁에서도 밀려나면? 대부분의 경우 답이 없다. 빈곤층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학재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달 20일 열린 중소기업청 국감에서 밝힌 자료에 따르면 전체취업자의 31.3%가 자영업자다. 거칠게 말하면, 국민의 30%가 빈곤층으로 추락할 위기에 처한 셈이다. (☞<위기의 자영업> 다음 편 보기)
▲카드수수료율이 식당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분노의 대상은 명확하다. 자영업자들이 뭉쳐서 목소리를 내는 이유다. 만일 더 중요한 문제에 대해 자영업자들의 이해와 분노가 맞아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프레시안(최형락)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