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의 자살을 막기 위한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는데 의견이 집중된 가운데, 지난 2009년 이른바 '한예종 사태'로까지 불린 고강도 감사와 총장 해임 이후 이어진 학풍 경직화가 근본 원인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학교에 냉소주의 스며들어"
한예종 사태의 상징격으로 한예종 총장에서 물러났다 법원 판결로 학교에 돌아온 황지우 전 총장은 짧은 사이 학교의 분위기가 크게 변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변화가 학생들의 극단적 행동과 연관이 있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그는 "학교에 돌아와 강의를 시작한지 한 달이 조금 넘었는데, 2009년 이전에 비해 냉소주의가 학교에 스며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며 "교수님들은 강의만 끝나면 바로 연구실로 향하고, 학생들의 얼굴에는 우울함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진원 전통예술원 교수도 "안식년을 다녀온 사이 굉장히 많은 부분이 변했다"며 "지난 감사 때 '한예종이 실기만 가르치지, 왜 이론까지 가르치느냐'는 지적을 많이 받았는데, (학생들을 위해) 이론을 더 강화하고, 통섭교육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분위기 변화는 학생들 역시 심각하게 느끼고 있었다. 영상이론과 학생 대표인 변진영 씨는 "우리 학과 교수를 뽑는 과정에서 학생들도 문제를 느낄 정도로 사태가 크게 일어났었다"며 "학생들은 소통 부재의 상황을 통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최근 영상이론과 교수 충원을 놓고 일선 교수와 학교 본부 간 큰 마찰이 일어났었다. 학과가 요구한 관련 이론을 전공한 교수가 아닌 다른 교수를 학교 본부가 임의로 채용하려 했고, 이 과정에서 교수 사회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준의 채용절차가 진행됐다. (☞관련 기고 : 한예종, '괘씸죄' 교수 본보기인가?)
과거 황 전 총장과 함께 통섭교육 등을 주도했으며 최근 교수 충원 문제로도 학교와 부딪친 심광현 영상이론과 교수는 이와 같은 현상이 교내 총장의 독재가 강화되고 민주적 소통이 되지 않는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심 교수는 "특히 자율성과 창의성을 생명으로 하는 예술 교육에서 이런 어이없는 사태가 자행된 것"이라며 "총장이 학과장을 하겠다는 말과 마찬가지 상황"이라고 분개했다.
이번 토론회를 보기 위해 모교로 돌아왔다는 서사창작과 졸업생은 "작년에 한 학생이 박종원 총장을 비판하는 글을 학교 게시판도 아닌 사적 온라인 게시판에 썼는데, 다음날 바로 학교에서 전화가 와 징계하겠다고 위협했었다"며 "학생을 억압하는 학교의 분위기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비판했다.
학생 사기 꺾는 예술학교
'정치적 탄압'이라고까지 불린 한예종 사태 이후 변화한 학교의 분위기는 이뿐만이 아니라고 참석자들은 입을 모았다. 학생들을 성과주의로 재단하려는 학교의 시도가 예술적 창의성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참석자들은 지적했다.
윤상정 총학생회장은 "콩쿠르, 영화제 등에서 수상할 수 있는 학생은 극소수인데, 학교가 이런 극소수 학생들의 성과만 크게 홍보한다"며 "이 경쟁에 끼지도 못하는 대다수 학생은 큰 좌절감을 겪는다"고 말했다.
또 "영화과의 경우 학생들이 휴학 후 아르바이트를 통해 수천만 원의 돈을 모아 졸업작품을 찍어야 하는데, 학교가 졸업영화 상영시간마저 10분으로 제한하고, 기자재 사용을 과거보다 더 엄격하게 통제한다"며 "이런 식으로 학교가 경직화되는 것은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황 전 총장도 "매우 근소한 차이로 일등과 이등이 나뉘고, 이등은 전적으로 무시되는 이런 방식의 구 교수법은 20세기에나 머물던 것"이라며 "(학생들의 자살이) 이런 교수법과 상당한 연관관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규찬 영상원 교수는 "한예종 학생들이 아래 위로 압박받고 있는데다, 대다수 우리 학교 학생들은 이른바 '이 학교를 빛내는' 것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방식으로 예술창작활동을 한다"며 "무대 뒤편의 디자이너, 카메라를 들고 편집실을 돌아다니는 아이들도 모두 우리 사회의 가치 있는 예술가가 된다는 전망과 철학을 새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압적 조직에서 자살 일어나
또 다른 자살 사태를 막기 위한 대책도 여러 가지 논의됐다. 전 교수는 다양한 해외 대학 사례를 들며 "코네티컷 대학은 대학 차원에서 자살예방위원회에 25개 기구를 모아 '대학 자살 예방'이라는 이니셔티브를 만들었다"며 "코네티컷 대학을 넘어, 대학 사회 전체에 자살을 막아보자는 대학 간 네트워크를 만든 것이다. 한국에선 보기 어려운 충격"이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매일 한 명의 대학생이 자살하는 게 우리나라 현실"이라며 "상황이 이 정도로 심각한데도, 우리 사회는 아직 자살에 대한 어떠한 연구도, 서사도 마련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 밖에도 학생 사회는 △선후배간 교류 강화 △홈커밍데이를 통한 졸업생과 만남 강화 △명사초청강의 등의 대안을 주문했다.
자녀가 추계예술대학에 재학 중이라는 한 방청객은 "해병대, 포항 집창촌, 카이스트 등 강력한 독재가 일어나는 곳에서 집단자살이 연달아 발생하고 있다"며 "학내 민주화를 강화하고, 학내 소통을 시급히 회복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교수협의회 의장 김채원 무용이론과 교수는 "(학생들의 자살에) 개인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고, (우리 사회에 퍼진) 신자유주의 영향도 있을 수 있고, 한국 예술의 위기가 학생들을 짓눌렀을 수 있다"며 "교수들의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관련 백서를 발간하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한예종 학생들의 실습 장면.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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