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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화학교 성폭력 사건, '분노 가라앉히기' 넘어선 성찰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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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화학교 성폭력 사건, '분노 가라앉히기' 넘어선 성찰 필요"

[기고] <도가니> 열풍, 장애인 활동가에겐 불편했던 이유

그야말로 열풍이라 할 만합니다. 6년 전 세상에 드러났던 광주 인화학교의 성폭력 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가 불과 개봉 2주 만에 300만 관객을 넘어섰고, 영화를 본 시민과 네티즌들의 분노는 해당 사건의 재수사를 요청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장애를 전문적으로 다뤄온 언론이 아닌 대중매체들에서도 이 문제를 다루는 각종 기사와 프로그램들을 다량으로 쏟아냈습니다.

이런 예기치 않은 대중의 반응과 여론에 당황한 정부와 관계 당국은 이제 와서야 부랴부랴 각종 대책을 내놓았고, 인화학교 및 인화원의 폐쇄와 해당 법인의 허가 취소 역시 결정되었습니다. 장애계에서도 그동안 장애인시설 문제의 해결과 탈시설을 위한 활동을 벌여왔던 단체들을 중심으로 '광주인화학교성폭력사건해결과 사회복지사업법개정을 위한 도가니대책위원회'(약칭 도가니대책위)가 꾸려졌지요. 정치권의 땜빵식 대책을 넘어선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만들어가기 위해서 말입니다.

장애계에 몸을 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최근의 상황은, 즉 시설에서 벌어진 장애인 성폭력 사건에 대한 대중들의 공분과 뒤늦게나마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적 대책의 마련은, 분명히 긍정적으로 여길 만한 부분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편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왠지 가슴 한 구석이 막막하고 머릿속이 복잡하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주변의 장애인 동료들과 술 한 잔을 기울이며 이 문제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그들도 저와 비슷하게 상당히 복잡한 심경을 토로하더군요.

아직 논리정연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사실 <도가니>라는 영화를 통해 촉발된 대중의 반응은 장애인 주체나 저와 같은 내부적 연대자들에게도 무언가 당황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이 얼마간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건 이번 <도가니> 열풍이 장애 문제에 대한 대중적 소통 및 공유의 가능성을 인식시켜 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다소 역설적이게도 그 극단적인 어려움 또한 재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 <도가니>의 포스터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나는 이 사건을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했다."

그 말처럼, 인화학교의 문제는 어떤 면에서 이 영화를 통해 세상에 온전히 알려졌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이미 6년 전인 2005년에 세상에 폭로되면서 대책위가 구성되었고, 2006년 5월부터 2007년 1월까지 242일간에 걸친 천막농성이 진행되었으며, 영화의 원작인 소설 <도가니>는 다음(Daum)에 연재되는 동안 누적 조회 수 1100만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2007년 6월에 출간된 단행본 역시 장기간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특별한 경우―장애 이슈가 베스트셀러 작가에 의해 소설화되어 널리 읽히고, 다시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배우가 참여해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과 같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장애인이 겪는 고통과 차별은 대중들에게 공감되고 공유될 수 없는 것인가, 그동안 끊임없이 외쳐졌던 장애인 주체들의 목소리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라는 약간의 막막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인화학교 문제는 불행하게도 이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겪고 있는 억압과 폭력의 전부가 아니니까요. 극단적인 한 단면이자,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니까요. 여기가 우리에게 성찰을 요구하는 첫 번째 지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무언가 좀 복잡한 마음이 드는 또 다른 이유는, 제가 보기에 지금 이 땅의 위정자들이 반응하고 있는 것은 장애인 주체들과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싸워왔던 단체들의 목소리라기보다는, 소위 말하는 우리 사회의 '상식과 도덕'에 기초한 대중들의 분노이고, 그 분노를 잠재우는 데에만 급급하다는 점입니다(그 분노가 줄줄이 놓여 있는 선거에 악영향을 주리라 직감했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많은 대중들이 공유하고 있을 그 상식과 도덕 내에는 장애인의 인권을 증진시킬 수 있는 요소도 없지 않겠지만, 장애인을 끊임없이 타자화시켜왔던 '정상성'이라는 기준과 '보호'라는 이데올로기 또한 분명히 내포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 영화 <도가니> 포스터.
쉽게 말해서, 이번 사건에 대해 분노를 표현했던 선한 대중들도, 중증장애인이 시설에서 살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고, 그러한 시설에 가서 불쌍한 장애인을 위해 봉사를 하며 도덕적 위안 또한 얻었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기에 그와 같은 봉사를 하다 장애인의 알몸을 방송에 노출시키는 유력 정치인의 사소한 실수쯤은 그다지 공분의 대상이 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정부가 지난 10월 7일 내놓은, '장애인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대책'이라는 상식선에서의 대책만으로도 현재의 대중적 분노는 진정될 가능성 또한 커 보입니다.

여기가 우리에게 성찰이 요구되는 또 하나의 지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즉, 우리는 우리(사회)의 상식과 도덕이 장애인의 '예외적인' 삶을 구성해내고 승인하는 기반이 되어왔음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화학교 사건은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든, 시설 수용과 탈시설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든, 농인(聾人) 사회와 농 문화에 대한 청인(聽人) 사회의 배타성에 초점을 맞추든, 불쌍히 여기고 분노하고 천인공노할 악한을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는 없는, 지극히 정치적인 문제이며 권력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분노가 이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이번 국면에서 이루어질 장애계의 노력은 제한된 성공―정부가 내놓은 대책만이라도 거짓과 기만 없이 제대로 실행되게 만드는 것―에 머물 수밖에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 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이마저도 그다지 만만치 않은 일이 되겠지요.

그러나 이것이 다소 소심한 성격을 지닌 저만의 생각이기를, <도가니> 열풍이 말 그대로 한 번의 '들끓음'과 '바람'으로 그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장애인이 우리들의 안전한 삶 바깥에서 보호받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분노하고 있는 우리도 변해야 하며 끈질기고 지난한 노력이 요구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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