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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의 예술영재들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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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네 명의 예술영재들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진단] "이렇게 해서 밥 먹고 살 수 있을까? 아시잖아요"

지난 5월부터 9월, 다섯 달 사이 네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차별화된 교육 시스템으로 예술계열 명문으로 불리는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서다.

죽음의 원인은 알 길이 없다. 남은 학생들은 먼저 간 동기들에 대한 보도를 원치 않았다. 총학생회는 애도문에서 "이미 우리는 선배 작가의 죽음과 관련한 보도를 통해, 카이스트 학생들과 관련한 보도를 통해(그리고 보도되지 않은 수많은 죽음들을 통해), 언론과 사회가 얼마나 선정적으로 우리들 각자의 죽음을 다루는지 보았"다고 밝혔다. 미술원의 한 학생은 "(동기의 죽음과 관련해서 언론에는) 할 말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한예종 출신 작가인 고(故) 최고은 씨의 죽음, 역시 영재교육기관을 표방하는 카이스트 학생들의 잇따른 자살 등을 다룬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한 극도의 반감이다.

이들은 분노하고 있었다. 분노의 방향은 제각각이었고, 불분명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이 죽음의 원인에는 분명 '예술의 길을 걷는 이들이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무엇'이 자리하고 있으리라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그간 쉬쉬하던 학교는 결국 문제 해결을 위해 일어서려 하고 있다. 김채현 교수협의회 의장은 추도식이 열린 지난 6일 "학생들의 죽음 원인이 '이러이러하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당장은 청년 예술인의 죽음을 두고 사회적 중지를 모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일단 공론화부터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단 교수협의회는 오는 12일 오후 4시 공개토론회를 열어 공론의 장을 열 예정이다. 학생 사회도 대안을 놓고 다양한 움직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무용과 학생들이 정기공연을 갖고 있다. 한예종은 개교 20여년 만에 한국 예술계열 교육의 정점에 섰다. (사진은 본문 내용과 관련 없음) ⓒ뉴시스

우연은 아니었다

이들 각자가 나름의 이유를 안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이유만으로 이 젊은 죽음을 설명할 길이 없다. 네 명 중 둘은 영상원 방송영상과에, 나머지 둘은 미술원 조형예술과에 재학 중이었다. 동기들과 담당 교수의 말에서 두 학과의 특성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영화과와 방송영상과 학생 대부분이 피디(PD)나 감독을 지망하죠. 그리고 대부분은 독립 영화, 독립 다큐 저널리즘의 길을 고민해요. 돈 안 되는 일이죠. 꿈은 창대했는데, 졸업할 때가 되면 막막해지는…. 조형예술과도 마찬가지에요. 고독을 안고 고민해야 하죠. 자기 세계에 대해 계속 고민하다가, 어느 순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와요. '이렇게 해서 밥 먹고 살 수 있을까' 하는. 아시잖아요?"(윤상정 총학생회장)

전규찬 교수(영상원)의 말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예술이 소수 천재적인 사람의 업적으로만 기억되죠. 그런데 현실은 아니라는 거죠. 집단 노동과정이 수반됩니다. 당장 영화를 보세요. 감독과 배우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소위 말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이 학교를 나온 아이들 대부분의 미래는 영화 현장 스태프죠. 비정규직에다, 박봉에 시달리고, 미래는 불안하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죠. 교육받은 내용과 현실 사이에서 엄청난 괴리를 느끼게 돼요. 결국 옛날 학생들처럼 연대할 줄도 모르고, 옛날처럼 분명한 적이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학생들의 저항이 자살로 나타나고 있어요. 일종의 '역전된 봉기'가 아닐까 싶어요."

예술 전공자가 예술에 대한 고민만을 안고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이 분명 존재했다는 지적이다. 이런 불안한 미래를 학교 역시 자극하고 있었다. 윤 총학생회장은 학교 역시 학생들을 일정 정도 나쁜 방향으로 자극했다고 지적했다.

"우리 학교 출신이 예술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학생이 많죠. 툭하면 학교에 'OOO 학생, XXX 콩쿠르 대상 수상', '△△△ 졸업자, □□□ 영화제서 ◇◇상 수상'과 같은 현수막이 내걸려요. 한번은 무려 석 달간이나 큼지막한 현수막이 걸린 경우도 있었어요. 그런데 대다수 학생들이 그걸 보고 자랑스러워할 줄 아세요? 아니에요. 대다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삶이거든요. 저런 상으로 학생의 질을 선전한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되죠."(학교가 학생의 자존감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느끼나요?)"네."

윤상정(영상이론과 3학년) 총학생회장 인터뷰

-친구의 죽음을 직면한 학생 사회 분위기가 어떤가?
일단 학생들부터도 잘 몰랐다. 추도식을 준비하면서 느낀 건, 학생 사회 전체가 우울함과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의 일이 아니다'라는 반응이다. 그래서 모두 더 슬퍼한다.

-주요 원인이 무엇이었다고 보나?

지난 토요일(1일) 학생비상대책회의에서 학과과정 문제가 거론됐다. 미술원의 경우 '파운데이션 과정'이라고 해서, 굉장히 빡빡한 기초과정을 1학년 때 거친다. 과제가 많이 밀려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다. 2학년이 되면서 어느 정도 넉넉해지기 시작하는데, 이 상태에서 상당수 학생이 일종의 심리적 공황상태를 겪는다고 하더라. 방송영상과의 경우 적잖은 학생이 상당한 정도의 취업 스트레스를 겪는다.

학교 탓만 하자는 건 아니다. 젊은 예술가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안고 있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세계와 '밥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현실 사이에서 대부분의 학생이 우울함을 느낀다. 특히 다른 전공에 비해 예술전공이 개인작업 비중이 높다보니 고민을 나누고, 서로 위로해주기도 쉽지 않다.

-취업문제가 상당한 원인이 됐다?
그런 면이 있다고 본다. 연초에 최고은 선배가 가셨고, 그 이후로 카이스트에서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고, 이번에 우리 학교에서도 발생했다. 경쟁이 강력해지고 살기는 더 힘들어지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당장 학교도 학생들에게 더 경쟁적인 환경을 원한다. 콩쿠르 수상을 강조하는 등의 분위기가 분명 있다. 그런 식으로 예술 하지 않는 대부분의 친구는 이런 분위기에서 큰 열패감을 느낀다. 우리나라의 예술 교육이 학생들에게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오나?
우리 학교가 그간 사회적 문제에 전혀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이에 반성하는 분위기가 학생 사회 바닥에 형성되고 있다. 그간 개별적으로 희망버스에 참여하던 학생들이 5차 희망버스에는 깃발을 들고 합류했고, '자립음악생산자조합'과 교류가 생겼고, 학생 사회의 교류를 돋우기 위한 '영감다방'도 만들었다. 학생회 차원에서도 생협을 만들기 위한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예술인에 대한 복지 강화가 필요하다고 보나?
당연하다. 예술을 공부한 학생이 사회로 나올 때 겪을 충격을 완화해줄 완충장치가 필요하다. 구조적으로 잘못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 복지 강화라고 본다. 우리가 예술 하니 밥 먹여 달라는 게 아니라, 잘못된 것을 바로잡자는 얘기다.


▲전규찬 교수는 "영상원의 경우, 일반 대학을 다니며 진로에 대해 방황하다 오는 학생도 많다. 그만큼 많은 고민을 안고 학생들이 꿈을 선택하지만, 현실 앞에 좌절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본문 내용과 관련 없음) ⓒ뉴시스

예술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예술전공자의 미래뿐만 아니라 현실도 암울하다는 건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사실이다. 추계예술대를 비롯한 예술학교에 대한 정부의 지원중단 논란에서 부각됐듯, 예술전공자 상당수는 정규직 취업을 하지 못한다. 고정 수입이 없고 4대 보험에서 제외되며, 그나마 있는 수입수준도 매우 떨어진다.

이와 관련, 지난해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과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영화진흥위원회가 공동으로 실시한 영화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영화산업노동자들의 최근 1년간(2009년 기준) 평균 연소득은 1221만 원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회사대표(평균소득 4186만 원)가 포함돼 나온 결과로, 감독(1518만 원) 이하의 현장 스태프로 한정할 경우 평균소득 수준은 심각할 정도로 떨어진다.

수습 스태프의 연소득은 274만 원에 불과했으며, 세컨드는 615만 원을 벌었다. 이 임금마저 영화노동자의 45.1%는 제때 받지 못했다. 음악 전공자 대부분은 졸업 후 대학원 진학을 하지 못한다면 음악강사로 '레슨 알바'를 한다. 미술 전공자도 마찬가지다.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길은 극히 좁다는 얘기다.

그동안 침묵을 지키던 한예종 교수협의회가 지난 5일 발표한 입장문을 보면 청년예술가들은 "신자유주의 시대 '잉여' 청년이 겪는 삶의 위기"를 겪고 있으며 "전망 부재의 불안한 현실 속, 힘든 예술인의 길"을 걷고 있다.

교수협의회는 이들이 "현 상황은 상담실, 상담요원, 상담시간 확대와 같은 단순 대책으로는 제대로 해소할 수 없는 참으로 위급한 상황"에 몰려 있다며 이들 예술인을 기르는 교수들에게 "누구보다 청년 예술인들이 처한 위기의 삶"을 해소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자성했다.

6일 저녁 열린 추도식에서 전규찬 교수는 "많은 사람이 이야기하기 두려워하는 죽음에 대해 우리 사회가 책임지고 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며 "반성이 시간이 진지하게 시작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영화관계자들도 후배들의 죽음에 우려를 표했다. 지난 8일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찾은 정지영 감독은 "국민이 예술을 향유하는 것도 복지고, 예술가들은 국민의 복지를 높여주는 노동자"라며 "정부의 복지기금을 문화예술 종사자에게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진욱 영화산업노조 위원장 인터뷰

-영화 전공자의 삶이 얼마나 불안한가?
영화와 방송 관련 학과생 대부분이 연출로 진로를 택한다. 이들 졸업생 중에서 감독이 될 수 있는 확률은 20%도 안 된다. 감독이 된다 하더라도 새로운 영활를 다시 할 수 있는 확률은 50%도 안 된다. 연달아 영화를 찍을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전무하다고 보면 된다. 이 때문에 예비 영화인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가지는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영화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해야 예비 예술인이 가지는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
그렇다. 영화진흥법에서 영화노동자의 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한 항목을 개정하고,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개선작업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부에서 이 문제를 너무 옛날 잣대로 본다. 왜 기존 공무원, 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노동법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고, 문화계 종사 노동자를 기존 잣대에 맞추려 하나? 기본적으로 예술가도 노동자고, 이 광범위한 노동자 다수가 처한 열악한 현실은 개선해야 한다.

그나마 이쪽 세계에서 영상 관련학과 졸업생은 '성골'로 불리는데, 이 정도 교육받은 학생들도 '반백수'라는 낙인을 찍는 사회라면 답이 없다.

-한예종 학생들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할 또 다른 이는 누구인가?
한예종 교수들도 제자들을 위한 책임을 져야 한다. 학생들이 무너지지 않고 올바르게 취업전선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열악한 노동환경에 좌절하지 않도록 할 역할을 교수가 해야 한다. 감독, 배우 등 잘 나가는 영화인들은 '우리 안의 민주주의'부터 돌아봐야 한다. 만날 다른 부문 문제에만 목소리를 높이면 뭐 하나? 영화노동자들이 감수해야 하는 고강도 노동과 수없이 이뤄지는 임금체불을 해결하자고 목소리 높이는 이가 누가 있나? 우리나라 영화 관련 교수들 중에서 이런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는 이를 한 명도 못 봤다.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과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영화진흥위원회가 공동으로 구성한 영화산업협력위원회가 지난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영화노동자들의 수입 수준은 극히 열악했다.(통계단위: 백만원)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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