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는 지난 4년간 이 문서의 존재를 부인한 터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주도해 온 정부 담당부서가 국익과 직결된 핵심 외교서한의 존재 자체를 몰랐거나, 알면서도 거짓말한 것으로 보여 파장이 예상된다.
28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재판장 오석준)는 민변이 지난 5월 16일 외교통상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전문직 취업비자 서한 관련 정보공개 청구소송에서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현 삼성전자 해외 법무담당 사장)이 한국과 미국 정부가 교환한 두 건의 외교서한을 재판부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 ⓒ뉴시스 |
김현종 전 본부장이 공개한 두 번째 외교서한은 통상교섭본부가 '발신자 명의를 크리스토퍼 힐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로 격상하고, 한국에 더 유리한 내용으로 바꿔 달라'고 요청한 초안이다.
이 서한의 존재는 작년 12월 김 전 본부장이 쓴 <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에서 처음 드러났다.
이 책에서 김 전 본부장은 한국이 2007년 7월, 미국과 FTA 재협상에 돌입하면서 전문직 비자쿼터를 확보했는데, 이를 위해 김 전 본부장은 2007년 6월 25일부터 26일 사이의 미국 출장에서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의 전문직 비자쿼터를 제공하겠다는 미국 측의 약속을 받아냈고, 같은 달 30일 미국에서 재협상 문서에 공식 서명했다.
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의 약속이란 서명식을 하루 앞둔 6월 29일 에드슨 국무부 부차관보가 김종훈 협상 수석대표 앞으로 보낸 서한이다. 김 전 본부장은 그러나 에드슨 부차관보보다 한 단계 직책이 높은 "힐 차관보 명의의 수정서한"을 보내 달라는 내용의 문안을 다시 미국에 보냈다. 이와 관련, 미국이 수정안대로 서한을 다시 보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책 내용대로라면 간담회 당시 이미 양국이 전문직 비자쿼터에 관한 합의 문서가 존재했을 텐데, 외교부는 그간 존재를 부인했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외교서한의 존재를 다시 확인하라"고 외교통상부에 요청하고 다음달 12일 오후 3시 공판을 열기로 했다.
송기호 변호사는 "중요한 서한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 전직 통상교섭본부장과 현직 본부장의 입장이 다른 셈"이라며 "한국 공무원이 한미 FTA에서 미국을 압박할 수 있는 한국의 핵심이익(취업비자)을 취급하는 방식이 대단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또 "취업비자 문제가 현재 어떻게 추구되고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며 "중요한 문제가 이렇게 상식 밖의 방식으로 처리됐다는 것은, 결국 그만큼 한미 FTA 협상에서 (외교부가) 우리 이익을 충실하게 관철하지 못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2007년 한미 FTA 협상 당시 양국 사이에 오간 외교 문서. ⓒ민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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