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행법에 개성 공단은 없다
고(故) 노무현 전(前) 대통령은 2007년 4월, 한·미 FTA 타결 담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개성공단 제품도 한반도 역외가공지역위원회 설립에 합의하여 국내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그러나 미국 의회의 한·미 FTA 이행법에는 '개성공단'이라는 단어도, '역외가공지역위원회'라는 낱말도 없다. 그리고 이행법안에 첨부된 미국 정부의 행정조치성명(SAA)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Neither the Agreement nor this implementing bill alters U.S. sanctions on North Korea, including those imposed by Executive Order 13570 of April 18, 2011. Persons who violate U.S. sanctions may be subject to substantial civil and criminal penalties."(한·미 FTA 협정도, 그 이행법안도 2011년 4월 8일 자 행정명령 제 13570호에 따른 무역제재를 포함하여 북한에 대한 미국의 무역 제재를 변경하지 않는다. 미국의 제재를 위반한 자는 상당한 민·형사 처벌의 대상이 될 것이다.)
고 노 대통령의 담화 후, 오히려 미국은 강화된 위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그래서 북한으로부터 모든 상품, 서비스 및 기술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미국에 승인없이 들여오는 것을 아예 금지시켜 버렸다.
한·미 FTA에서 개성공단 제품이 한국산으로 인정받는 근거라는 것은 없다.
미국의 이행법에 반덤핑 장벽 철폐는 없다
또한 고 노 대통령은 담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의 반덤핑 조사 과정에서 우리 입장을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강화할 수 있는 수단도 확보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한·미 FTA 이행법에는 '반덤핑(Anti-Dumping)'이라는 단어가 없다. 그리고 미국 정부의 행정조치성명(SAA)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Implementation of these obligations does not require any changes to US. AD laws and regulations."(한·미 FTA의 의무들을 이행하는 데에 미국의 반덤핑 법률과 규정을 바꿀 필요가 없다.)
이에 의하면 한국의 관료들이 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한국이 확보한 것인 양 보고했던 것들은 이미 미국 법률과 규정에서 가능한 것들이었다.
미국의 이행법에 미국 취업 비자는 없다
한·미 FTA에서 한국의 핵심 이익의 하나는 한국인을 위한 미국 취업 비자였다. 이는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도 강조했다. 김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2007년 6월, 한·미 FTA 추가협상에 응하는 대가로 미국이 한국민을 위하여 전문직 취업 비자 쿼터를 제공하겠다는 서한을 요구했다. 그가 쓴 책에 의하면 그는 미국으로부터 같은 달 29일 한국에게 전문직 비자 쿼터 서한을 제공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받았으나 그 내용이 한국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여 한국의 요구를 반영하는 것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워싱턴행 비행기를 타지 않겠다고 했다. 미국은 전문직 비자 쿼터 서한을 수정하여 다시 보냈고 김 전 본부장은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평가하고 워싱턴에 건너가 한·미 FTA에 서명하였다. (<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p. 244)
그리고 당시 김종훈 한·미 FTA 협상 대표는 전문직 취업비자를 1만개 이상 받아 낼 것이라고 기자들에게 말하였다. (2007년 7월 2일자 <중앙일보>)
그러나 미국 의회와 행정부의 이행법에는 '취업 비자'라는 단어조차 없다. 그리고 외교통상부는 김 전본부장이 받았다는 미국의 취업비자 서한의 공개를 거부했다. 비공개 사유는 미국으로부터 그런 서한을 받은 사실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한국의 핵심 이익은 실종되었다.
미국의 이행법은 한국인이 미국 법원에 제소하는 것을 박탈했다
한·미 FTA는 미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을 보호하는가? 한·미 FTA는 투자 유치국이 상대국 투자자를 보호하는 여러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만일 투자 유치국이 이 의무를 지키지 않을 경우, 투자자는 투자 유치국의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거나, 국제 중재에 회부할 수 있는 선택권을 부여하고 있다. (11.18조) 곧 미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에 대해 미국 정부가 협정의 투자자 보호 의무를 위반할 경우 한국 기업은 미국 정부를 상대로 미국 법원에 소송을 하거나 국제 중재에 회부할 수 있다.
이는 한국 정부의 공식 설명도 같다. 한국 정부는 2008년 10월에 '관계부처 합동' 이름으로 낸 <한·미 FTA 상세설명자료>에서 다음과 같이 명시했다.
"투자자는 상대국 법원 또는 국제중재절차에 제소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짐"(p.149)
그러나 미국의 이행법은 다음과 같이 한국인이 미국 법원에 제소할 권리를 박탈했다.
"No person other than the United States (1) shall have any cause of action or defense under the Agreement or (2) may challenge any action or inaction by any department, agency of the United States or any State on the ground that such action or inaction is inconsistent with the Agreement"(102조 (c)항) (미국 정부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자도 (1) 한·미 FTA 협정을 근거로 청구권이나 항변권을 갖지 못하며, (2) 미합중국 또는 주 정부 기관의 어떠한 조치 또는 부작위에 대하여 그것이 한·미 FTA 위반이라는 이유로 소를 제기할 수 없다.)
미국의 이행법은 한국산 원산지 요건 미확인 섬유에 대해 통관을 금지시켰다
한·미 FTA는 한국산 섬유 제품의 미국 수출을 얼마나 늘려줄까? 미국의 이행법에는 한·미 FTA에도 나오지 않은 무역 장벽이 있다. 한·미 FTA 특혜 관세 혜택을 받으려면 한국산 섬유 제품은 매우 까다로운 원산지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한·미 FTA에는 미국이 요청하면 한국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한국산 섬유제품의 한국산 원산지 검증이 있다. 그리고 그 검증이 진행되는 기간 동안에는 해당 한국산 섬유제품에 FTA 특혜 관세 혜택을 주지 않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한국산 원산지를 확인할 정보가 부족한 제품에 대해서도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이행법에는 검증 기간 동안 아예 수입절차 진행을 정지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한국산 원산지 확인 정보가 부족한 제품에 대해서 미국으로의 수입을 거부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207조)
이것은 한·미 FTA 위반이다. 한국산 섬유 제품이 한·미 FTA의 원산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FTA 특혜 관세 혜택을 주지 않으면 된다. 일반 관세를 매겨 미국으로 수입되게 하면 된다. 그러나 미국의 이행법은 아예 수입절차를 중단시켜 버린다. 이것은 한·미 FTA가 허용한 적절한 조치가 아니다.
미국의 이행법에 미국의 의무는 없다
미국은 한·미 FTA를 제대로 준수하는가? 이행법은 한·미 FTA가 미국 법률과 불일치할 경우 한·미 FTA가 무효라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 규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법에 대해선 어떠한가? 미국의 이행법은 주의 법률이나 규정이 한·미 FTA에 위반되더라도 그 적용을 무효로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102조) 그 유일한 예외로 미국 연방 정부가 그 무효를 선언할 목적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를 들고 있다. 그래서 미국 정부의 행정조치 성명은 미국은 연방 및 비연방 수준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한·미 FTA 협정을 준수할지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고 명시하였다.
과연 한·미 FTA는 미국을 변화시키는가? 미국 정부의 행정조치 성명은 이렇게 대답하고 있다.
"한·미 FTA 제 1장(최초 규정 및 정의), 제 21장(투명성), 제 23장(예외) 및 제 24장(최종규정)을 이행하는 데에 행정조치의 변경은 필요없다."
"제 3장(농업)을 이행하는 데에 법이나 행정조치의 변경은 필요없다."
"제 5장(의약품 및 의료기기)을 이행하는 데에 법, 행정부 규정 및 실무 변경은 필요없다."
"제 7장(관세행정 및 무역 원활화)을 이행하는 데에 법의 변경은 필요없다."
"제 8장(위생 및 식물검역 조치)을 이행하는 데에 법이나 행정조치의 변경은 필요없다."
"제 9장(무역에 대한 기술장벽)을 이행하는 데에 법의 변경은 필요없다."
"한·미 FTA의 의무들을 이행하는 데에 미국의 반덤핑 또는 상계 관세 법률과 규정을 바꿀 필요가 없다."(10장 무역구제)
"제 11장(투자)을 이행하는 데에 행정조치의 변경은 필요없다."
"제 12장(국경간 서비스 무역)을 이행하는 데에 법이나 행정조치의 변경은 필요없다."
"제 13장(금융서비스)을 이행하는 데에 법이나 행정조치의 변경은 필요없다."
"제 14장(통신)을 이행하는 데에 법이나 행정조치의 변경은 필요없다."
"제 15장(전자상거래)을 이행하는 데에 법이나 행정조치의 변경은 필요없다."
"제 16장(경쟁)을 이행하는 데에 법이나 행정조치의 변경은 필요없다."
"제 18장(지적재산권)을 이행하는 데에 법이나 행정조치의 변경은 필요없다."
"제 19장(노동)을 이행하는 데에 법의 변경은 필요없다."
"제 20장(환경)을 이행하는 데에 법의 변경은 필요없다."
이처럼 한·미 FTA로 인하여 변화될 미국의 의무는 무역 관세와 수수료 외에는 사실상 없다.
미국의 이행법은 한국에게는 발효 이전 준수를, 미국에게는 발효 후 1년 이내에 준수를 규정한다
미국의 이행법은 관세 특혜 규정 등 한·미 FTA를 준수할 조치를 취할 권한을 대통령에 위임하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에게 한·미 FTA 협정 발효 후 1년 이내에 이러한 준수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반면 한·미 FTA가 발효되기 위해서는 한국은 협정 발효일 이전에 한·미 FTA를 준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101조, 103조)
MB가 기다리는 미국의 FTA 이행법에 한국은 없다
이렇게 한·미 FTA는 실패했다. 한국이 확보했어야 할 핵심 이익을 반영하지 못했다. 미국의 관세율은 이미 매우 낮고 미국이 1990년대 소득수준으로 퇴보했기 때문에, 한·미 FTA 특혜 관세가 수출을 늘리는 효과가 크지 않다. 이것은 한·EU FTA가 오히려 한국의 EU 무역 수지를 악화시킨 사실에서 증명된다. MB가 기다리는 미국 FTA 이행법에 한국은 없다.
- 2011년의 눈으로 본 한·미FTA <1> "손학규 대표의 운명, 한·미 FTA의 운명" <2> "'쌀은 지켰다'라던 노무현 대통령의 믿음은 꿈이었나?" |
▲ 고(故) 노무현 전(前) 대통령. ⓒ프레시안(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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