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고액 연봉을 받는 최고경영자(CEO) 중 일부는 심지어 그들이 다니는 기업이 국가에 내는 세금보다 더 많은 돈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1일 <로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연봉순위 100위 안에 드는 CEO 중 25명은 회사가 내는 연방 소득세보다 더 많은 돈을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기업들이 로비에 쓰는 비용도 세금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사실은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인 정책연구소(IPS)가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알려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짐 맥너니 CEO에게 1380만 달러(약 147억 원)를 준 보잉사는 연방 소득세로는 1300만 달러(약 139억 원)를 냈다. 또한 보잉은 로비와 캠페인을 벌이는 돈으로 무려 2080만 달러(약 222억 원)를 썼다.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제프리 이멜트 CEO의 작년 연봉은 1520만 달러(약 162억 원)였지만 GE는 지난해 33억 달러(약 3조5181억 원)의 세금을 환급받았다. 존 도나휴 CEO에게 1240만(약 132억 원) 달러를 준 이베이도 1억3100만 달러(약 1397억 원)의 세금을 돌려받았다.
<로이터>는 이번에 조사된 기업의 3분의 2가 외국의 조세피난처를 이용해 세금을 적게 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주주들은 회사가 세금을 적게 내면 자신들의 배당이 늘어난다고 생각하지만 보고서를 작성한 척 콜린스 IPS 연구원은 조세 회피 등 회계적인 방법을 써서 기업 이윤을 늘리는데 의존하는 것은 기업의 약점을 노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를 본 일리야 커밍스 미 하원의원(민주당)이 경영자 보수에 대한 공청회를 요청했다. 커밍스 의원은 자신이 속한 정부개혁 감독위원회의 대럴 이사 위원장(공화당 하원의원)에게 보낸 서한에서 CEO 보수 문제가 현존하는 경제 위기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커밍스 의원은 또 노동자들의 급여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고 실업률은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CEO와 기업 이윤만 하늘로 치솟는 이유와 함께 이러한 차이를 더 벌리는 미국 세제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번 조사 결과는 재정위기를 겪는 전세계 국가에서 화두로 떠오른 '부자 증세' 논의를 더욱 뜨겁게 달굴 것으로 보인다. 지난 14일 워렌 버핏 미국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부자 증세'를 언급한 이후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주창하는 각국 부유층과 서민층을 의식한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부자 증세 이슈가 급격히 부상했다.
독일에서는 기업인과 전문직, 교사 등으로 구성된 '자본 과세를 요구하는 부자들'이란 단체가 29일 국가 부채 문제의 해결책으로 부유세 5% 납부안을 들고 나온데 이어 30일에는 독일과세연맹(DSG)도 증세를 촉구하고 나섰다.
영국에서도 자민당인 빈스 케이블 기업부 장관이 토지세 및 고급 주택에 대한 과세를 제안했다. 프랑스에서는 니콜라스 사르코지 대통령이 이미 50만 유로 이상의 고소득자에 3%의 추가 세금을 한시적으로 걷겠다고 발표했다. 스페인 정부도 3년 전에 폐지한 부유세 부활을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각국 정부가 긴축 정책만을 강조하면서 국민들의 삶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더 빨라지고 있다. 평범한 소득을 올리는 이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부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정치적인 효과까지 거두겠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각국의 보수 정당과 재계에서는 부자 증세가 '마녀 사냥'이나 다름없다고 반발하고 있어 앞으로 증세를 둘러싼 논쟁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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