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오프제(Time-off, 근로시간면제제도)가 시행된 이래 처음으로 사측이 노조 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사건이 외국계 기업인 한국후지쯔에서 생겼다.
한국후지쯔 "전임자 활동내역서 제출 안 하면 임금 안 주겠다"
컴퓨터 제조업체인 한국후지쯔 노사는 특별교섭에서 지난 2월 5일 타임오프 합의서를 체결하고, 최근까지 몇 개월 동안 타임오프 제도를 별 무리 없이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측은 8월 초순경 노조 측에 공문을 보내 "근로시간 면제자의 활동 내역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임금을 줄 수 없다"며 근로시간 면제자인 노조위원장의 8월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사측은 "노조위원장이 상급단체인 전국IT산업노동조합연맹의 사무처장을 겸임하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상급단체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타임오프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반면에 노조 측은 "노조위원장은 관련법 및 노사 간 합의서에 의거해 타임오프제를 사용하고 있다"며 "사측이 지금껏 타임오프제를 잘 시행해오다가 갑자기 관련법 및 노사 간 합의서에도 근거가 없는 요구를 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상급단체 회의 참석도 타임오프 적용 대상"
노사 간 충돌이 일어난 이유는 타임오프 적용을 둘러싼 모호한 법조항 때문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4조 4항은 전임자의 근로시간 면제 범위를 '사용자와의 협의‧교섭, 고충처리, 산업안전 활동'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이 규정이 말하는 범위가 사안별로 어디까지인지 명확하지 않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타임오프제를 도입할 당시 임태희 노동부 장관은 "상급단체 활동만 하는 노조 전임자는 타임오프 적용 대상이 아니"라면서도 "다만 노사 공동의 활동이나 개별사업장에서 건전한 노사관계의 연장선상으로 이뤄지는 상급단체 활동은 개별 사업장의 직책을 겸하면서 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노조 측 또한 "현재 노조위원장이 활동의 대부분을 단위노조 사업에 집중하고 있으며, 노동조합 활동에서 상급단체 회의참석은 관련법과 노사 합의서에도 명시된 정당한 조합활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는 이 사건과 관련해 지난 26일 서울지방노동청에 '단체협약위반 및 부당노동행위 진정서'를 제출했다. 사건을 담당한 근로감독관은 "이 사건의 경우 노조는 근로시간 면제자 활동 내역서를 사측에 제출할 의무가 없는데, 이를 이유로 사측이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민주노총, "노조법 전면 개정해야"
민주노총과 전국IT산업노동조합연맹은 29일 성명을 내고 "이 사건은 사측이 타임오프 제도를 의도적으로 악용한 대표적 사례"라며 상급단체 회의참석이 타임오프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사측의 입장을 규탄했다.
민주노총은 "노조법 전면 개정이 필요하다"며 "법 개정 전이라도 한국후지쯔와 같은 사례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노동부와 서울지방노동청이 강력한 행정지도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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