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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없이 술 한번 먹어주고, 그러면 월급 올라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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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없이 술 한번 먹어주고, 그러면 월급 올라가고…"

[또 다른 소금꽃, 비정규직·②] 비정규직에겐 아직도 먼 '희망버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한진중공업 투쟁에 대한 기획 르포를 보내왔다. 앞으로 3회에 걸쳐 김진숙 지도위원에 대한 글, 한진중공업 투쟁의 이면에서 아직도 고립되어 있는 한진중공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 그리고 그를 둘러싼 정치적 이슈들을 차례로 싣는다. <편집자>
- 또 다른 소금꽃, 비정규직
"목숨 붙이고 있는 게 최대 목표지요"

노동자의 실체가 사라져가는 시대. 노동자는 더 이상 노동자가 아니라 소비자, 혹은 대중이라는 이름으로 그 실체가 흐려져 있다. 노동자가 곧 시민이고, 또 대중인데 노동 사안은 항상 사회적 이슈에서 뒤처져 소외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가운데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는 말만 무성할 뿐, 사실은 그 실체가 없다.

이는 한진중공업 투쟁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를 일부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은 '비정규직 문제'라고 규정짓고 있지만,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정규직의 문제'이다. 지금도 비참하게 일 하는 한진중공업 내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는 그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한진중공업 근처에 모인 희망버스 참가자들. ⓒ프레시안(최형락)

비정규직 사안에서조차 소외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실 희망버스의 희망은, 김진숙 지도위원이 증명하는 진정성 있는 그 무언가에 대한 막연한 기대일지 모른다. 그래도 아직 이 세상은 살 만한 세상이라는 그런. 그러나 이 희망은 한진중공업 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가 닿지 못한다. 그들은 매일 같이 우리 곁을 스쳐 지나지만 우리에겐 실체가 없는 존재이다. 우리는 그들도 희망을 가질 권리가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자고 외치지만 정작 한진중공업 안에서 고통 받는 비정규직들을 위한 요구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위한 시국선언문 내에서도 설 자리가 없다. 우리 스스로가 한진중공업 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제외하고 소외시키고 있는 것이다. 시민들의 순수한 마음들을 담은 희망버스가 속속 부산으로 내려오고 있는 이 순간에도 한진중공업 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세상은 여전히 '죽지 못해 사는' 그런 곳이다.

하청노동자들의 희망은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의 절망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고 있는 지금도 한진중공업 내에서는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의 해고가 밥 먹듯 일어나고 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10여 년을 일해 온 일터에서 일회용 물건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일이 있으면 부르고, 일이 없으면 손쉽게 해고해버린다. 그리고 이 모든 사태가 오기 전, 정리해고의 비극은 사내하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2008년 당시 하청노동자 3000여 명이 해고되었고, 70~80%의 하청업체들의 이름이 바뀌었다. 한진중공업에서 오래 일해 온 노동자들은 퇴직금도, 체불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회사를 떠나야 했다.

한진중공업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로 올해 9년째를 맞는다는 채영숙 씨(가명)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바닥을 치고 있다면서 한탄하듯 말을 쏟아냈다.

"그 당시에 도장업체 세 개가 폐업을 했었는데 체불임금은 물론이고 퇴직금을 안 주는 거예요. 결국은 노동부에서 체당금 받으라고 그러더라고요. 그거라도 제대로 나왔으면 말을 안 해요. 아직 못 받은 사람들도 많아요."

물량이 없어 일거리가 떨어지면 하청업체는 관리자 몇 명만 남겨두고 사람들을 모조리 내보낸다. 1년이 되기도 전에 해고는 수도 없이 반복된다.

"업체가 폐업하는 것도 아닌데, 희망퇴직 쓰라고 하면서 다 내 보내요. 시키는 대로 해야지 별수 있어요. 나는 살아남겠지 하는 마음으로 다 희망퇴직서 쓰는 거죠. 그러고서 다 내보낼 것 같죠? 아니에요. 바로 다음날부터 일부는 또 일을 시켜요. 요 근래에도 일이 없어가지고 관리자만 남겨두고 다 내 보냈었어요. 그러고 한 달 지나면 한 사람, 두 사람씩 다시 들어오라 그래요."

현재 한진중공업 하청노동자들에게는 '고용'이라는 것이 따로 없다. 해고시키기 좋게 무조건 모든 사람들을 일당으로 쓰기 때문이다. 이들은 인권을 말할 여유조차 없다. 당장 내일 먹고 살 일이 불안하기 때문에 항의는커녕 온갖 부당한 처우에도 입을 다물어야 한다.

"배 위는 여름에 온도가 상당하거든요. 햇빛이 바로 쬐이니까요. 그래서 작년에는 30˚ 넘어가면 오침 시간을 줬는데 올해부터는 그것도 없어요."

발바닥이 뜨겁도록 달아오르는 쇳덩이 위에서 조선소의 하청노동자들은 "올여름도 무사히"를 외친다. 그들에게 삶의 희망이라는 것은 어떤 형태로 존재하고 있을까.

할 수 없이 술 한번 먹어주고, 잠자리도 하고

"하청에는 취업동의서가 없으면 업체를 못 옮기거든요. 이거 불법이라고 그러던데. 내가 만약에 관리자하고 사이가 안 좋으면 다른 회사 못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술 한번 같이 먹어줘야 하고, 잠자리도 해 줘야 되고. 그렇게 해 주면 임금도 올려주고 그러거든요. 회사에 항의하면 시급도 안 올라가고 그랬어요."

하청노동자들의 삶에 인권이란 먼 나라 이야기인 듯했다. 남자 관리자가 여성 하청노동자들에게 폭언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라면서 그보다 심한 일도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서 그런 비참한 상황도 견뎌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어떻게 하겠어요. 맨날 반장한테 맛있는 거 싸다가 갖다 주고 하면서 잘 봐 달라 하는 수밖에 없지요."

외국인 노동자들은 심한 폭행을 당하고도 해고되고 있다. 실제로 우즈베키스탄 노동자 한 명이 관리자에게 심한 폭행을 당한 일이 있었다. 당시 폭행을 당한 노동자는 결국 회사를 떠났고, 가해자는 아직도 회사를 다니고 있다고 했다. 이것이 한진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의 현실이었다.

유서 비공개, 묻힌 하청노동자의 죽음

"한 3년 전인가? 2도크에서 사람이 죽었어요. 떨어져서 죽었거든요. 유서까지 남겼다는데 그 유서를 아직 한 번도 공개를 안 했어요. 그러더니 갑자기 그 사람이 하청사람이 아니라고 그러는 거예요. 밖에서 담치기 해서 넘어와 죽은 거라고."

조선소 사내하청노동자 한 사람이 죽었다. 그는 유서를 남겼지만 유서는 공개되지 않았다. 서럽게 살던 한 사람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려 목숨을 던졌지만 그 목소리는 세상에 미처 전해지지 못했다. 회사는 그 일을 그렇게 무마시켜버렸다. 당시를 떠올리던 고민혁 씨(가명)의 목소리는 분노로 떨리기 시작했다.

"아니, 말이 되느냐고요. 그 담이 얼마나 높은데, 그 사람이 죽을라고 밖에서 담치기 해서 배 위까지 올라와 자살하겠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다음 날 출근해서 옷 갈아입고 갔더니만 시신이 안 보이더라고요. 경찰이 와서 시신 데려가고, 그 자리에 바로 다른 사람 집어넣어서 일 시켰어요, 하루 만에."

하루 만에 회사는 한 사람의 죽음을 말끔히 치워버렸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가는 일상에 하청 노동자들은 각자의 울분들을 배 위 곳곳에서 삭혀야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비참한 현실에 대해 말 한마디 내지 못한다. 회사에 대해 항의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소위 말해 '찍히고' 온갖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한다고 했다. 그런 이유로 고민혁 씨는 인터뷰 요청을 하자 골목골목을 돌아 사람이 많지 않은 식당의 2층 방으로 안내하고서야 말을 꺼냈다. 신분보장을 해 줄 것도 재차 다짐받았다. "한 4년 동안 대여섯 명이 죽었는데 그걸 다 그렇게 무마시켰어요."

요즘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분노하라>라는 책은 권태와 냉소에 빠진 사람들에게 분노와 각성을 요구한다. 하청노동자들도 끊임없이 치솟는 분노들을 뜨거운 배 위에서 십수년간 삭혀야 했다. 비정규직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지 십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여전히 비참하게 살고 있다. 그들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조차 두려워 하고 있다. 하청노동자들은 하나같이 인터뷰 요청에 신분보장을 요구했다. '비정규직 철폐'라는 선언의 공허함은 조선소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목소리로 증명되고 있다.

야당은 지금 진정성 대결 중

최근에는 여야가 할 것 없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열을 올리고 있다. 그만큼 비정규직 문제는 이미 사회 전반에 걸쳐 중심 의제로 떠오른 지 오래기 때문이다. 손학규 대표나 정동영 의원, 유시민 대표 등 야당의 대권 주자들은 최근 노동문제가 불거지는 곳마다 부지런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희망버스에도 나란히 탑승하고, 경찰들과 대치하는 상황에선 용감무쌍하게 선두에서 최루액을 맞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그들이 말하는 '비정규직 문제'는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집권 당시에 비롯된 것이다. '기간제법'과 '파견법'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 만들어졌고, '정리해고법'은 그보다 앞선 김대중 정부 때 만들어졌다. 이들은 지금 현상화되고 있는 비정규직 사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들이다. 그들은 희망버스를 타거나 길거리에서 단식을 하며 진정성 운운할 것이 아니라 법과 제도에 대한 정비에 힘써야 한다.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은 법제도 정비에 있고 최소한 그에 대한 약속을 담보해야만 그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 대한 반성과 성찰 없이, 한진중공업 사측과 한나라당을 비판하는 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손학규 대표, 유시민 대표를 위시한 정치 지도자들은 이 물음에 먼저 진정성 있게 답해야 한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와 같은 사태는 다시 올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노동자들은 전국 각지에서 소리없이 해고되고 있다. 그때마다 노동자들을 크레인으로, 송전탑으로 올려야 하겠는가. 그 때마다 또 다른 김주익 열사가 김진숙 지도위원이 목숨을 걸어야 하겠는가.

희망버스의 탑승자들에 부쳐

새로운 희망을, 운동을 만들어내고 있는 전국 각지의 희망버스 탑승자들의 순수한 마음에도 한 말씀 올린다. 그 순수한 희망을, 에너지를 한진중공업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과도 나누자고. 85호 크레인 너머에는 아직도 처참하게 살고 있는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희망버스는 그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연대는, 그리고 구호는 그 사람들에게도 향해 있어야 한다.

"노동자들에게 남의 일은 없습니다. 장애, 비정규, 이주노동자, 성적소수자 등을 노동운동 내에서 차별한다면 자본의 차별을 어떻게 극복하겠습니까."

2008년 어느 강연장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이 했던 말이다. 김 지도위원의 진정성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지금 저 너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손 내밀어야 한다. 이 폭염에 쉬지도 못한 채 종일을, 비참한 생을 버티고 있는 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말이다. 희망버스의 희망이 한진중공업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희망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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