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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 과연 금기인가?"

[복지국가SOCIETY]누진적 증세는 보편적 복지국가를 위한 수단

머뭇거리는 민주당, 이유는 증세 반대

연 1000만 원에 이르는 과중한 등록금에 시달리던 대학생들이 마침내 촛불시위로 떨쳐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최대 야당인 민주당은 학생들의 요구인 '반값 등록금'을 선뜻 확약하지 못한 채 주저주저하고 있다. 왜 그럴까? 대학생들과 젊은 세대의 정치적 지지를 통째로 얻을 수 있는 이 좋은 정치적 호기를 애써 외면할 정도로 그들의 행동을 제약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 비밀은 바로 현재의 민주당 주류가 복지재정 마련을 위한 재원조달 문제를 보수적 입장에서 바라보는 데 있다. 구체적으로, 현재의 민주당 주류는 GDP 대비 조세부담률을 21~22% 수준 이상으로 높이는 것은 정치적 자살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21~22%인가? 바로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이 역사상 최고인 21%에 도달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8년 집권한 이명박 정부의 감세 기조에 따라 GDP 대비 조세부담률은 불과 3년만이 2010년 현재 19.3%로 떨어졌다. 따라서 현재의 민주당 주류에게서는 이명박 정부의 감세 조치를 노무현 정부 말기 수준으로 원상회복시키고 4대강 사업 등 토목건축 예산을 줄이는 것 이상의 복지재정 마련을 기대하기 힘들다.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는 한 보편적 복지국가 건설은 어렵다고 봐야한다.

부연하자면, 현재 민주당 주류의 '증세 반대' 원칙 즉 사회복지목적세 및 부유세 등 일체의 신규 증세를 반대한다는 가이드라인이 깨지지 않는 한, 반값 등록금과 보편적 아동수당,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30만 원의 기초노령연금 지급,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 생애주기에 걸친 보편적 사회서비스 제공 등의 복지국가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 반값등록금을 요구하는 시위. ⓒ프레시안(최형락)

조세부담률과 복지국가

조세부담률이란 쉽게 말해 국민들이 1년 동안 번 소득 중 얼마를 세금으로 내느냐를 뜻한다. 조세부담률은 국세와 지방세를 더한 액수를 해당 연도 경상GDP(국내총생산)로 나누어 구한다. 조세부담률은 세금 부담이 무거운 지 가벼운 지를 판단할 때 흔히 이용되는데, 조세부담률이 높으면 그 만큼 국민들의 세금부담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세상에 세금 더 내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은 없으며, 세금부담이 적으면 적을수록 국민들은 좋아한다. 그렇지만 세금부담이 적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대학등록금 문제에서 보다시피, 어차피 막중한 대학등록금을 납부해야 하는데, 차라리 십시일반 세금을 조금씩 자기 형편과 소득에 맞게 더 부담하여 대학등록금을 반으로 낮추는 것이 결국은 국민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특히, 많이 버는 사람이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적게 버는 사람은 적게 세금을 내는 사회 연대적 '누진성' 원칙을 잘 지킴으로써 조세징수에 있어 '정의와 공정성'의 원칙을 실현할 수만 있다면, 소득이 낮은 국민일수록 누진적 증세를 통해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는 것이 훨씬 더 이익이 된다. 이는 의료서비스 등의 사회서비스뿐만 아니라 고용보험이나 국민연금과 같은 소득보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편, 많은 사람들이 잘 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 사람들은 흔히 소득과 부의 재분배가 가장 잘 이루어지는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같은 북유럽 복지국가들은 매우 누진적인 소득세 중심의 조세 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본가의 힘이 강하고 개인주의가 발달한 미국 같은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부가가치세 등 소비세 위주의 역진적 조세체계가 발전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에 가깝다. 20세기 초반 이래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미국과 영국의 소득세 및 법인세율은 스웨덴의 그것에 비해 훨씬 가파르고 높았다. 예컨대 1950년대와 60년대에 미국과 영국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85~90%에 달했는데 반해, 스웨덴은 75%였다. 더구나 미국과 영국의 법인세 및 재산세 세율 역시 스웨덴의 그것에 비해 훨씬 높았고 더 누진적이었다. 그리고 총세수에서 소득세와 법인세, 재산세 등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스웨덴보다 미국과 영국이 더 높았다.

그런데 1980년 이후 신자유주의를 본격 도입한 미국과 영국은 감세를 대대적으로 단행하였으며, 그 결과 'GDP 대비 일반정부'의 규모가 2007년 현재 미국은 36.6%, 영국은 45.7%인데 비해, 유로권 전체의 평균은 46.9%, 스웨덴은 56.3%였다. 그래서 복지국가 재원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조세에서 '누진성의 원칙'과 함께 조세체계를 통해 확보할 '정부재정의 규모'라 하겠다. 결국, 현재 미국의 조세체계가 스웨덴보다 누진성은 강하지만 감세로 인해 정부재정 규모가 지나치게 작다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세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세출

'GDP 대비 정부재정'의 규모가 미국보다 압도적으로 큰 스웨덴이 미국보다 복지국가를 훨씬 잘 발전시켰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겠다. 그런데 정부의 재정규모(세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정부의 재정지출(예산지출)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누진적 증세를 통해 소득세와 법인세, 재산세를 많이 거둔다 해도 그렇게 거둔 세금을 미국처럼 복지재정보다는 군사 예산 등에 주로 사용한다면 그것은 소득재분배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예컨대, 무상교육과 반값 등록금이라는 구체적인 복지재정 지출 목표를 제시하면서 이명박 정부가 집행한 감세의 철회, 더 나아가 '누진적 증세'라는 조세수입 증대 목표를 제시하는 것과, 그렇지 않고 막연하게 '증세'를 정치적 의제로 제시하는 것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국민들은 바로 "그렇게 세금 더 거두어서 어디에 쓸려고?"라고 물으며 반발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누진적 증세를 주장하되, 이것이 정확하게 보편적 복지에 사용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복지국가에 대한 '상상력의 정치' - 잠정적 유토피아

우리의 보편적 복지국가 운동은 이제 겨우 출발점에 있다. 무상급식과 '건강보험 하나로'에서 시작되어 이제 반값 등록금 논의로까지 발전한 복지국가 논쟁은 앞으로 대학교육 및 직업훈련을 포함한 공교육 시스템의 획기적인 확충, 그리고 실업수당 및 최저임금의 인상, 보편주의 원칙의 아동수당과 기초노령연금, 그리고 더 나아가 보편주의 원칙의 주거복지 및 도시계획과 함께 대대적인 문화­예술-과학 인프라의 구축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OECD 중간 정도의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OECD 중간 정도의 조세부담률이 불가피하며 이를 위해서는 약 100조 원의 추가 세수 확보가 필요하다고 아무리 말하여도, 그것은 학술적, 분석적 차원의 논의에 불과하다. 이러한 분석적 논의가 대다수 국민들과 함께하는 폭넓은 복지국가 정치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실현가능한 상상력의 정치'가 필요하다.

예컨대 반값 등록금은 하나의 상상력이다. 무상등록금은 더 큰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이건희 회장을 포함하여 65세 이상의 모든 노인에게 향후 3년 뒤 동일하게 40만 원의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한다면, 노인들의 삶이 얼마나 좋아질까? 라고 상상하고 꿈꾸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바로 복지국가 정치의 역할이다. 이런 의미에서 스웨덴의 사회민주당이 전개한 '잠정적 유토피아'의 정치는 큰 시사점을 제시한다.

누진적 증세는 복지국가를 위한 수단

더 나아가, 현재의 스웨덴처럼 우리가 앞으로 20년 후 노인 1인당 120만 원의 기초노령연금(국민연금을 제외한)을 지급할 수 있다면, 그리고 노인들에게 저렴하면서도 온갖 의료-레저 설비가 완비된 실버타운을 제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우리의 노년 생활이 행복하고 풍요로워질까? 라고 국민들로 하여금 상상하고 꿈꾸도록 만드는 것, 이것도 복지국가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이런 멋진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당장 '부자 증세'부터 추진할 건지, 아니면 '보편적 증세'를 추진할 것인지는 방법의 문제, 즉 궁극적 목표에 도달하는 수단의 문제이다. 그런데 우리의 복지국가 정치운동은 아직 상상력의 정치에서 매우 부족하다. 우리가 꿈꾸는 복지국가에서는 10년 뒤 대학등록금은 무상일 것이고, 노인들은 20년 뒤 월 120만 원의 기초노령연금을 받을 것이며, 최저임금은 20년 뒤 월 200만 원에 도달할 것이라는 즐거운 상상을 국민들이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정치를 생각해보자.

우리가 추구하는 이러한 보편주의 복지국가의 목표가 국민들 스스로의 인생에서 목적으로서 공유될 때, 비로소 부자증세 또는 보편적 증세 등은 그런 '목적'에 도달하는 여러 재원 마련 '수단'의 하나로서 국민들 스스로에 의해 자연스럽게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또한 민주당 주류가 고집하고 있는 '증세 반대'라는 터부를 무너뜨리는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풀뿌리 시민과 함께하는 '복지국가 만들기 국민운동'이 더욱 절실하게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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